# 296
#명나라
“전쟁에서 이기면 청나라를 주겠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청나라를 바치겠다는 롱루의 말에 호영은 그저 불편한 기색으로 침묵하였지만 그의 신하들은 달랐다.
호영이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한 것인지 고성을 지르며 롱루를 비난하였다.
그러자 롱루는 아무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서신 하나를 양손으로 높이 들어 올렸다.
“황제 폐하의 친서입니다.”
청나라의 황제, 푸린의 친서라는 말에 호영은 일단 읽어 보기로 하였다. 참고로 친서에 적혀 있는 문자는 한글이었다.
존경하는 대한국의 황제 폐하시여. 저는 초원의 대칸이자, 중원의 황제인 푸린이라고 합니다. 전 회 차 때, 황제 폐하와 일전을 겨루기도 하고 동맹을 맺기도 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서문만 봐도 청나라 황제가 호영이 아는 그 유저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청나라 황제가 5회 차의 누르하치임은 진즉부터 예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마 사신의 말을 듣고 황당하셨을 겁니다. 난데없이 나라를 바치겠다는 말을 하였을 것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황제 폐하, 저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호영은 푸린의 서신을 읽다가 눈을 크게 떴다. 충격적인 내용이 서신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제 형제가 중국 정부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간악한 중국 정부가 저의 쌍둥이 형제를 저로 착각하여 살해한 것입니다!
형제가 중국 정부에 의해 살해당했다니!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중국에서는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려나?’
어쨌든, 호영은 푸린이 자신이 세운 청나라를 바치면서까지 명나라를 멸망시키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푸린은 복수하려는 것이다. 명나라를 만든 중국 정부에 말이다.
“청나라 황제가 무슨 이유로 그 같은 제안을 했는지는 알겠다.”
“그렇다면 동맹을 받아들여 주시는 겁니까?”
“아니,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리지는 않겠다. 서신 쪼가리 하나로 결정을 내리기엔 너무 중차대한 일이 아닌가?”
“······그렇습니까?”
“신하들과 토의를 한 이후에 결정을 내릴 것이니 청나라는 짐의 결정을 기다려라.”
롱루는 아쉬움이 역력한 얼굴을 하였지만 억지를 부리지는 않았다.
그 역시 쉽게 결정을 내릴 사안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부디 현명한 결정을 내려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롱루가 물러나자 호영은 곧바로 신하들에게 푸린의 서신을 읽어 주었다.
“중국 정부는 정말 미쳤군요. 아무리 그래도 국민을 죽이다니.”
“뭐, 예상했던 일이지 않습니까? 중국이 중국 했을 뿐이죠. 저는 오히려 어설프게 실패했다는 점이 놀랍게 느껴지는데요?”
서신에 적혀 있는 내용을 듣고 난 이후 신하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중국의 만행에 놀라워하거나,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
물론 그 같은 반응도 잠시뿐, 참모진에 속해 있는 신하들은 곧바로 푸린의 제안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건 청나라 황제가 복수를 이루고 난 이후에 나라를 바친다면 우리로서는 나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의 말을 믿을 수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속담처럼 청나라 황제도 복수를 이루고 난 이후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맞습니다. 청나라 황제의 맹세만 믿고 명나라와의 전쟁에 참전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큰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의외로 청나라 황제의 제안에 거부하는 의견이 더 많았다.
이유는 단순하였는데, 청나라 황제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하기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명나라를 무찌른다면 그야말로 중국 전체를 차지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누가 그것을 포기하겠는가?
중국의 가치를 생각하면 누구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직접 참전하지 않는다면? 그저 간접적으로 지원한다면 어떨까?”
호영은 신하들의 의견을 들어 보다가 갑자기 그와 같은 말을 꺼내었다.
“청나라가 불만을 품지 않겠습니까?”
“그 대신 영토를 받을 때 강북이랑 몽골 정도만 받는 거지. 청나라는 명나라의 영토를 차지하고 말이야.”
“5회 차와 비슷한 방식이군요.”
충구의 말처럼 호영이 제시한 주장은 5회 차 때 한국이 했던 전략과 비슷하였다.
5회 차에서도 한국은 삼국 동맹에 가담했으면서도 원정군은 최소한으로 보냈으니까.
물론 명나라의 국력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5회 차 때보다는 조금 더 공세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그래 봤자 30만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말이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딱히 잃을 것도 없어 보이고 말입니다.”
“소신 역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두 나라를 전쟁시키는 것만으로 우리에겐 엄청난 이득입니다.”
참모들이 먼저 호영의 주장에 찬동하고 나섰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했는지 손뼉을 치며 찬성하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전쟁 계획이 완성되었다.
청나라를 후방에서 지원하여 명나라를 무찌르는 계획이었다.
물론 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에 불과하였다.
한국이 무슨 계획을 세웠건, 청나라가 반대한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여 호영은 곧바로 청나라에게 한국의 계획을 전하고자 하였다.
“사신을 불러와라.”
다행히도 롱루와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결과 청나라, 정확히는 청나라 황제도 한국의 계획에 찬성을 표하였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을 추가하였는데 호영은 그 조건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몽골에서 반란이 일어날 시, 한국이 진압해 달라고?”
푸린이 제시한 조건은 바로 이것이었다.
몽골인들의 봉기가 있을 시, 한국에서 군사를 보내 진압해 달라는 것.
그야말로 자국의 반란 진압을 동맹국이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한국이 원하는 것은 후방 지원이니,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 그것은 내정간섭이지 않은가.”
청나라에 내정간섭 하는 행위는 한국으로서도 가능한 피해야 할 일이었다.
청나라 소속 NPC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명나라와의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초원의 대칸은 황제 폐하의 것이 될 겁니다. 초원의 대칸으로서 몽골을 지배하는 것은 결코 흠이 될 일이 아닙니다.”
“대칸이라······. 과연 그런 명분으로 NPC들을 설득시키는 게 가능할까? 짐이 알기로 청나라의 내정이 무척이나 불안정하다고 들었는데. 굳이 몽골족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한족들과 NPC들의 반발은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명나라와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내부 정리부터 할 겁니다. 중국 정부의 첩자들도 잡을 겸 말입니다.”
“그런가.”
롱루의 대답에 호영은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문이야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청나라 측에서 괜찮다는데 호영으로선 딱히 트집을 잡을 이유가 없었다.
‘몽골이라······. 테무르를 다시 볼 수도 있겠군.’
호영은 청나라에서 제시한 조건을 받아 주기로 하였다.
타국의 반란군을 한국에서 진압해야 한다는 사실이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맹으로서 이 정도도 해 주지 않으면 곤란했다.
한국 입장에서도 청나라가 후방을 신경 쓰지 않고 명나라와의 전쟁에 총력을 다해 주는 게 낫기도 했고 말이다.
“전쟁은 언제 일으킬 것인가?”
“최소 두 달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두 달이라······. 좋다. 우리도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양국은 명나라와의 전쟁을 확정지었다.
두 달 뒤. 현실 시간으로는 13일 뒤에 명나라와 전면전을 벌이는 것으로 말이다.
* * *
타타탕!
호영은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자신의 창을 들어 올렸다.
그의 정면에는 열 개의 탄환이 날아오고 있었다.
불과 10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서 쏘아 낸 탄환들이었다.
만약에 그가 A랭크의 무인이었으면 총소리를 듣는 즉시 보법을 극성으로 전개해야 했을 것이다.
A랭크의 무인이라도 총을 맞으면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호영은 총소리를 들었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열 개의 탄환을 보고 있으면서도 일체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전 회 차보다 총이 발달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군.’
챙챙!
가만히 자리를 지키던 호영이 벼락같이 창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를 향해 날아오던 총알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창 한 자루로 총알을 막아 낸 것이다.
“와, 이게 진짜 가능하군요. 창으로 총알을 튕겨 내다니.”
“순간 무협 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호영을 향해 총을 쐈던 무인들이 총을 내려놓고는 손뼉을 치며 감탄하였다.
S랭크의 무인은 호신강기를 사용할 수 있어서 시키는 대로 호영을 향해 총을 쐈지만 그들도 설마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정면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창으로 튕겨 낼 줄이야. 각국을 대표하는 고수들도 쉽게 할 수 없는 신기였다.
하지만 호영은 자신이 한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너희들도 경지만 올리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총알을 튕겨 내는 것쯤이야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호영보다 실력이 낮은 고수들도 총에 당하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총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C랭크가 한계인 것 같군.”
“예, 화약도 그렇고 총도 아직 구식이라······.”
현재 한국군이 사용하는 총기는 강선이 달린 수석총이었다.
화승총을 개량한 것으로 실제 역사에서는 19세기 중엽까지 사용된 총기였다.
그러나 화승총보다 훨씬 발달되었다는 수석총의 용도는 5회 차와 똑같았다.
C급 이하의 무인들을 상대하는 용도란 것이다.
‘사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 무기가 발달할수록 유리한 것은 인구가 많은 중국일 것이니까.’
한국이 중국과 비교했을 때 우세를 띄는 것은 바로 무인 전력이었다.
즉, 무인들의 실력 수준이 중국보다 우위에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만약 총기가 수준 높은 무인들을 살상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면?
중국과의 전쟁은 대번에 불리해지고 만다.
징집병에게 총 한 자루만 쥐여 주면 무인들을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총보다는 아티팩트의 발전이 놀랍지 않습니까, 폐하?”
신태용이란 A랭크 무인의 말에 호영은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의 중심부에는 마정석이 박혀 있었다.
마법 무구!
호영의 갑옷은 바로 4회 차부터 조금씩 만들어지기 시작한 아티팩트였다.
그것도 무려 두 가지 기능이 달려 있는 마법 무구였다.
‘방어력을 더해 주고, 열기를 막아 준다고 했던가.’
무게감은 솔직히 이전에 입었던 갑옷들보다 무겁기는 하지만 중세 시대의 기사들이 입었던 풀 플레이트 아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방어력은 마력이 달려 있지 않은 화살은 물론이요, 총까지 막아 낼 정도로 대단했다.
아마 검기를 담은 공격도 치명상을 입히지 못할 것이다.
물론 5회 차에서도 그 정도의 방어력을 가진 마법 무구가 몇 있었지만 그때는 소수의 고수들만 입는 게 가능할 정도로 대중성에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