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4
“전략 분석 팀에서는, 만약 명나라가 원정에 나선다면 최대 300만까지 동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허, 300만요?”
“미친······. 짱개 아니랄까 봐, 물량이 어마어마하군요.”
조금 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명나라의 국력이라면 300만의 군사력을 동원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명나라의 인구가 2억이 넘었고 유저의 수는 1천만에 가까웠다.
아마 유저들만 동원한다고 해도 엄청난 대군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것도 무공을 익힌 병사들로 이루어진 대군 말이다.
이러니 명나라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청나라도 무리한다면 수백만의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지금 청나라의 영토는 중국 강북 지역과, 위구르, 몽골까지 포함하고 있었는데, 영토 크기로 따지면 세계 1위였다.
이 중에서 위구르, 몽골 지역은 인구가 희박해 병력도 적을 수밖에 없었지만 강북 지역은 명나라 못지않은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 강북 지역에서 군사를 동원한다면 200만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위구르, 몽골에서는 뛰어난 기병을 60~70만 동원할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청나라의 경우 내부가 불안정해 수백만의 군사를 동원한다 해도 원정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이게 이민족 왕조와, 중국 한족 왕조의 차이였다.
“그렇다면 이번 회 차에서는 청나라와 손잡아 명나라를 견제하는 게 좋겠군요. 물론 태국이나 베트남 같은 동남아시아 세력도 끌어들이는 게 좋을 것이고 말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6회 차는 청나라에게 힘을 실어 줘, 청나라로 하여금 아국의 방파제가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간부들 대부분이 청나라와 손잡고 명나라를 견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김성근이나 순현, 강바다 같은 호전적인 간부들은 명나라가 두렵다면 청나라부터 집어삼키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명나라와 청나라를 동시에 적으로 삼게 될 일이었지만, 김성근은 한국의 역량이라면 두 나라를 상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의 의견 말고도 전혀 다른 의견이 나오기도 하였다.
신동일, 8회 차에는 신원식이란 이름의 아바타를 사용하게 된 안지호 같은 경우는 ‘중립국’이 되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거란과 송 사이에서 일종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던 고려처럼 안지호는 ‘고려의 외교’를 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확실히, 고려할 가치가 있는 주장이다.’
호영은 본래 청나라와 동맹을 맺겠다는 뜻이 확고하였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었다.
만약 청나라가 한국을 상대로 거만하게 나온다거나, 아니면 생각했던 것보다 청나라의 힘이 강하다면 계획은 수정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안지호의 주장 이외에도 오히려 명나라와 힘을 합치는 게 어떻겠냐는 주장도 나왔지만 그 주장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쳐 냈다.
중국 강남에서 팽창을 거듭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데 강북이나 동남아시아 진출까지 한국이 도와준다면 미래의 명나라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명나라와 손잡자는 의견은 절대 들어줄 수가 없었다.
“정리하자면 지금 당장은 누구와도 동맹을 맺지 않고 두 나라의 전력을 비교하며 관망하는 것인가?”
“예, 그게 가장 현명한 처사인 것 같습니다.”
호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한국의 입장에서는 급할 것이 없었다.
명나라의 팽창이 위험 수준에 이른다면 청나라에서 먼저 동맹을 청할 터.
한국은 그때 청나라에게서 많은 것을 받아 내고 동맹을 하면 그만이었다.
그 전까지는 명나라와 외교도 하고 교역도 하면서 이익을 얻으면 되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에 말입니다. 청나라와 명나라가 힘을 합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제국 제일의 외교 가문에 소속되어 있는 유저, 모영호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와 같은 말을 하자 돌연 장내에 침묵이 찾아왔다.
하지만 충구가 침묵을 깨고 이견을 내세웠다.
“청나라가 생각이 있다면 명나라와 힘을 합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중국의 지배권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인데 말입니다.”
“맞습니다. 청나라가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의 영토를 모조리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명나라와 힘을 합칠 리가 없습니다. 애초에 청나라 입장에서는 명나라와 손잡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와 같은 이견에 모영호는 논리적으로 설득할 자신이 없었는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호영은 모영호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어. 하지만 누르하치였던 유저가 중국 정부에게 회유당하거나, 협박을 당하는 일이 생긴다면 청나라가 갑자기 명나라 편을 들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야. 그러니 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만 해.’
현재 중국은 대놓고 국가 권력을 사용하여 명나라의 힘을 키워 주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의 중국이라면 청나라라는 강적을 없애기 위해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한영이라는, 권력 서열 7위의 권력자가 비행기를 타고 호영을 찾아왔듯,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청나라의 황제, 누르하치를 찾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호영은 철자하게 대비하기로 하였다.
현실에서든 센추리에서든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할 생각이었다.
* * *
6회 차가 시작된 지 센추리 시간으로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대한 제국은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대륙의 경우도 아직은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청나라와 명나라의 신경전이 점점 가열되고 있는 분위기였지만, 당장 무력 충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현실에서 당장이라도 호영을 위협할 것처럼 보였던 중국 정부도 잠잠하기만 하였다.
한국이 청나라와 동맹을 맺지 않고 있는데, 굳이 도발을 하여 한국의 심기를 건들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인 것 같았다.
어찌 되었건 대륙까지 이렇게 평화로우니, 호영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세계로 향하였다.
“필리핀 상황은 어떻지?”
호영이 묻자 원재가 답했다.
“꽤나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세리자와가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데, 지금 실각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경은 어떨 것 같나? 세리자와가 실각될 것이라 생각하나?”
“반대 세력이 워낙 강성하여, 본래라면 실각되는 게 정상이겠으나······ 세리자와라면 왠지 위기를 극복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호영도 세리자와의 능력을 인정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해야 1만도 안 되는 군대로 3년도 안 되어 세 개로 나뉘어 있던 필리핀을 통일시킨 세리자와였다.
아무런 기반도 가지지 못한 자가, 외지인으로 구성된 1만의 병력으로 필리핀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제아무리 동북아시아의 강대국들에 훨씬 못 미치는 필리핀이라지만, 5회 차 당시에는 인구가 1천만에 가까웠었다.
병력 수도 세 나라를 합하면 족히 15만은 되었을 것이고 말이다.
세리자와는 1만의 병력으로 15만의 필리핀군을 이겨 내고 1천만의 필리핀 인구를 다스리는 데 성공하였다.
뭐로 보나 예사로운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가 방해하면 실각될 수밖에 없겠지?”
“그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소수의 고수들만 파견시켜도 지금의 세리자와라면 당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도운다면?”
“예?”
“우리가 도와준다면 세리자와가 필리핀 장악에 성공할 테고?”
호영의 물음에 원재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대한 제국이 직접 도울 필요도 없습니다. 필리핀으로 가고자 희망하는 일본 유저들을 필리핀에다 데려다주기만 한다면 세리자와 정권은 계속 유지될 것입니다.”
그 말은 필리핀을 도우고 싶다면 직접 개입하지 말고 일본 유저들을 통해 간접 지원하라는 뜻이었다.
‘하기야, 굳이 다른 국가들에게 불안감을 심어 줄 필요는 없겠지. 뭐, 아직 어떻게 할지 결정 난 것은 없지만 말이야.’
세리자와를 도울지, 아니면 제거할지 뭐 하나 결정 난 게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이 필리핀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
“일단 세리자와의 본심을 알아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본심이라면?”
“아국의 속국이 되어 정권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와 적대하여 실권은 물론이요, 목숨까지 잃을 것인가.”
“하면 황실 정보부에서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황제 폐하의 뜻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역시나, 호영을 따른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길게 말하지 않아도 호영의 의도를 간파하는 원재였다.
호영은 흡족한 얼굴을 하고는 ‘그리하라.’라고 말했다.
“대만의 상황은 어떠한가?”
“월나라와 오나라 출신 유민들이 대거 대만으로 넘어온 상태라 그런지 여러모로 불안정한 상태라고 합니다.”
“명나라가 대만의 내정에 개입한 흔적은?”
“다행히 대만은 아직까지 자주적인 국가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서쪽으로는 청나라가, 북과 동쪽으로는 러시아가 가로막고 있는 형국에서, 한국이 당장에 진출할 수 있는 방향은 오직 남쪽뿐이었다.
물론 러시아의 모스크바 왕국은 아직 극동에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을 갖지 못했고 다른 세력들은 별 볼 일 없는 수준에 불과하였지만 굳이 러시아가 아니더라도 북이나 동쪽으로는 진출할 이유가 없었다.
거주하는 인종은 백인이 대부분이었고, 토지는 황폐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자원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한국으로선 굳이 백인과 이종족, 몬스터 등과 싸워 가며 황량한 땅을 개척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연해 주와 시베리아는 나중에 러시아가 어느 정도 개발해 주면 그때 진출하면 그만이다.’
그렇기에 6회 차에서 한국이 진출할 수 있는 방향은 오직 남쪽뿐이었다.
뭐, 여력이 된다면 태평양 정도는 진출해도 괜찮겠지만 말이다.
“계속 대만을 감시하도록. 만에 하나 명나라가 개입하려 한다면 제때 막을 수 있게끔 말이야.”
호영은 굳이 대만까지 속국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 남방 진출의 발판은 필리핀만으로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대만을 속국으로 만든다면 명나라와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 있었다.
강북의 패자인 청나라를 지원하면서까지 명나라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려고 하였던 한국의 입장에서는 명나라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위는 가능한 피해야 할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철저하게 감시하여 명나라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하겠습니다.”
똑똑!
그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렸다.
황실 정보부장의 보고를 들을 때는 웬만해선 방해하는 이가 없는데, 꽤나 다급한 소식을 가지고 온 모양이었다.
“들어와라.”
문이 열리며 사내 한 명이 들어왔다. 로열패밀리 소속으로 아바타의 신분은 내관인 관중이란 자였다.
“무슨 일이냐?”
“폐하, 청나라의 사신이 지금 막 북경에서 출발하였다고 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관중은 꽤나 중요한 소식을 가지고 왔다.
물론 이게 다급한 소식으로 봐야 할지는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사신을 보내는 이유는?”
“공식적으로는 형제 국가로서 우애를 다지기 위함인데······.”
“실제 이유는 다른가?”
“분석 팀에서 추측하기로, 형제국끼리 힘을 합쳐 명나라를 치자는 제안을 할 것 같다고 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