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2
이능이 존재하는 세계에선 무언가를 얻기 위해 신에게 기도하기보다는 무공이나 마법을 통해 스스로 얻으려는 경향이 강한 게 정상이니까.
하지만 예외적으로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종교의 힘이 아주 막강하였다.
특히 유럽이나 중동에서는 모든 전쟁이 종교에서 시작되고 종교로 인해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능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도 아닌데 왜 이 지역들에서는 종교의 힘이 강한 것일까?
그 이유는 단순했다.
“세 종교에는 신성력이라 부르는 특별한 이능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신성력!
말 그대로 신성한 힘으로서, 성직자들이 신의 힘을 빌릴 때 사용하는 이능을 말하였다.
특이하게도 이 신성력이란 이능은 소장이 말한 세 가지 종교에서만 발휘할 수 있었다.
마치 진짜 신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습니다. 신을 믿는 것으로 무공이나 마법에 준하는 이능을 얻게 하는 신성력이 있어서 특정 종교의 힘이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론이 뭡니까?”
“회장님께서는 신이 진짜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신은 센추리 세상에서 존재하는 신을 말하는 겁니다, 실제 신이 아니라.”
신성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신성력 자체가 명백한 신의 힘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호영은 세 종교가 믿는 신이 센추리 세상에 실존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만약 세 종교의 신이 진짜 존재한다면 왜 일부 지역에서만 종교의 힘이 미칠까?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경우는 전 세계에서 믿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말이다.
그러니 세상에 신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세 종교가 믿는 신처럼 세상사에 관여하는 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여해 봤자 문명의 한계를 정하는 정도가 끝이리라.
‘신성력이야 마나를 특별한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이겠지. 무공도 그렇게 다양하고 마법도 다양한데 신성력 같은 능력 사용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다만 종교에서 다루는 힘이라 비밀이 지금까지 지켜진 것이 아닐까.’
호영은 자신의 생각을 바로 소장에게 알려 주었다.
“신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신이 세 종교에서 기대하는 신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나 회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군요.”
“왜요? 소장님은 다르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우리 연구소에서는 센추리 세계에 신이 존재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세 종교가 믿고 있는 유일신 말입니다.”
“근거가 있는 이야깁니까?”
“연구원들이 센추리에 있는 세 종교의 교리를 연구하였습니다. 당연히 현실의 교리와 똑같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르게 종교의 이름만 같을 뿐, 교리나 신에 대한 표현이 전혀 다르더군요. 유일신인 것은 같은데 말이죠. 그래서 저희 연구원들은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센추리의 운영자가 직접 관여하였다고. 즉, 센추리의 운영자가 유저들이 만든 이슬람교나 기독교 같은 종교의 교리를 어떤 목적을 위해 수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그 목적은 추후 신과 관련된 이벤트를 개최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장의 답변은 호영으로선 의외의 답변이었다.
베일에 싸여 있는 센추리 운영자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지만, 운영자가 개최하려고 준비한다는 신과 관련된 이벤트란 것도 호영에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주제였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호영은 종교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었던 것이다.
“놀라운 추측이군요, 신과 관련된 이벤트라니.”
“하하하하,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합니다. 솔직히 저희도 센추리 운영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센추리의 운영자야······. 정부도 잘 모르는 자들이니, 어쩔 수 없음을 저도 모르지 않습니다. 대신, 그 센추리의 신이란 존재에 대해서는 계속 조사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소장님의 말처럼 나중에는 그 신이란 작자가 난데없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적어도 8회 차까지는 신이 나타날 일이 없겠지만 9회 차부터는 또 모르는 법이었다.
호영은 9회 차 이후의 미래를 알지 못하는 만큼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대비하기로 하였다.
“신에 대해서는 세 종교의 교리를 통해 어느 정도 알아낸 게 있습니다.”
“어떤 겁니까?”
“신이 세상을 창조한 것은 맞지만, 전지전능하다는 내용이 없더군요. 어쩌면 무공이나 마법으로 사냥할 수 있는 존재이지 않을까 합니다. 대신 교리에 ‘시간의 신’이라는 구절이 많이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에 관해서는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시간의 신이라는 말을 듣자 호영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놀란 얼굴을 하였다.
‘내가 회귀한 원인이 설마······?’
말도 안 되는 상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가 회귀한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않은가.
“회장님? 회장님?”
“아, 예.”
“혹시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아닙니다.”
소장이 의아한 눈으로 그리 묻자 호영은 손을 휘휘 젓고는 말했다.
“확실히 유용한 이야기였습니다. 시간의 신이라니. 어쩌면 회 차마다 존재하는 문명의 한계도 이 시간의 신이 정해 놓은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소장님, 앞으로도 세 종교와 신에 대해 연구해 보도록 하세요. 아주 철저하게 말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저에게 알려 주실 정보가 더 있습니까?”
“더 이상 특별한 정보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세 종교에 대해 알려 주신 것만 해도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시간의 신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설이 호영에게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물론 이 가설이 한국이나 로열그룹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였지만 말이다.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성과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회장님.”
그렇게 호영은 소장의 배웅을 받으며 연구소를 나섰다.
‘신에게 선택을 받아 회귀를 한 것이라고? 무슨 삼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스토리군.’
차를 타고 로열그룹의 본사로 향하던 중, 호영은 소장에게 들었던 ‘시간의 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자신의 회귀가 시간의 신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만약 신의 선택을 받은 게 맞다면 왜 하필 나였을까? 나보다 대단한 인물이 우리나라에서만 수백 명이 넘었을 텐데.’
호영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이 말도 안 되는 가설이 사실이라 해도 지금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회귀가 신의 뜻이라면 이제까지 그래왔듯, 열심히 살아가면 그만이었다.
“회장님.”
“왜?”
“서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비서의 말에 호영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또 중국인가? 이번에는 누구를 보냈지?”
호영이 귀찮은 듯 건성으로 묻자 비서가 무거운 목소리로 답하였다.
“한영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입니다.”
“서열은?”
“7위입니다.”
중국에서 찾아온 손님의 신분을 알게 되자 호영은 비서가 왜 그렇게 당황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기야, 중국에서 권력이 일곱 번째로 강하다는 이가 찾아왔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호영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중국이 아무리 대단한 이를 보냈다 해도, 호영이 두려워 할 이유는 없었던 까닭이다.
“확실히 서둘러야겠군. 중국 권력자들의 성격을 생각하면 무슨 난동을 부릴지 모르니 말이야.”
호영이 농담 삼아 그리 말하는 사이, 그의 차량은 빠르게 본사로 향하였다.
어느덧 호영이 본사에 도착하니 기자와 방송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는 모습이 보였다.
“중국과 협상한다는데 사실입니까?”
“삼국 동맹은 어떻게 되는지 알려 주십시오!”
“6회 차에서는 중국과 힘을 합치실 겁니까!”
최대한 언론의 노출을 피하고 노력하였던 호영이지만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세상이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이제는 세계를 누비는 톱스타들 이상으로 언론의 노출이 잦아졌는데,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라는 중국의 권력자가 그를 찾아온 상황에서 기자들이 가만있을 리는 없었다.
벌떼같이 몰려든 기자들은 로열그룹의 본사 앞에서 진을 치고는 야단법석을 떨었다.
“많이도 왔네.”
호영은 입구에서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을 피해 본사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곧바로 손님이 기다리고 있을 응접실로 향하였다.
“이제 오시는군요.”
응접실에 도착하니 ‘손님’으로 보이는 자가 마치 이곳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거만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저도 스케줄이 있는지라······.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소? 나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인, 한영이라 하오.”
“로열그룹의 회장, 송호영입니다.”
그의 태도는 꽤나 무례하였지만 호영은 내색하지 않았다.
중국 권력자가 거만하게 행동하는 것이야 그리 유별난 일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내가 찾아온 이유를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을 것이오. 중국이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요. 6회 차에서 우리의 동맹이 되어 주시오.”
단도직입적으로 제안을 건네는 한영에게 호영이 무표정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동맹이라고요? 지금 저보고 삼국 동맹을 버리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보다 우리라고 말씀하셨던 나라가 어딥니까? 오나라? 아니면 월나라인가요?”
“아직은 없소. 6회 차에 생기게 될 것이니까.”
그 말에 호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존재하지도 않은 나라와 동맹을 맺으라니.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우리 중국의 힘을 의심하지 마시오. 지금까지야 인민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느라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지만, 정부가 직접 나선다면 통일 왕조를 만드는 것쯤은 어렵지 않으니까.”
“······.”
자신감을 넘어 오만하게까지 느껴지는 한영의 목소리가 호영의 입장에선 불쾌하게 느껴졌지만,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만약 중국 정부가 처음부터 센추리에 전력을 다하였다면 확실히 5회 차 전에 통일 왕조가 만들어지기는 했을 것이다.
중국에 국가 주석의 말을 거부할 수 있는 이는 없으니, 초나라건 오나라건 월나라건 그 나라를 지배하는 이들이 유저인 이상 주석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이것은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북의 몽골이나 청나라야 소수민족과, 외국인이 만든 나라들이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강남만큼은 주석의 명을 강하게 따를 것이다.
‘저리 자신하는 것을 보면 이미 5회 차가 끝나기 전에 강남의 유저들에게 지시를 내려놨나 보군.’
그렇다면 6회 차에는 호영이 걱정하던 중국의 통일 왕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제아무리 중국이라도 그게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제 대답을 해 주시오. 우리가 세운 왕조와 동맹을 맺겠소? 참고로 우리가 세운 왕조의 이름은 명나라요.”
한영의 말에 호영은 눈을 크게 떴다.
‘중국 정부가 세우려는 나라가 명나라였어?’
회귀 전, 한반도에까지 영향을 끼쳤던 강대국 중 하나가 바로 명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