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90화 (290/345)

# 290

그렇게 강하면서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에게는 방심이란 단어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박선후가 수련하는 이유는 단지 무공이 재미있기 때문이니 말이다.

‘나도 수련을 해야겠군.’

* * *

다음 날이 되자 호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일상으로 돌아왔다.

물론 또다시 외부인의 침입을 허용한 근위 사단은 아침부터 살벌하게 경계를 섰다.

더 이상 누구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였다.

하지만 호영은 경비 태세가 삼엄해지건 말건, 자신의 업무에만 집중할 따름이었다.

그야말로 워커홀릭의 전형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호영을 보며 신료들도 더욱 바쁘게 일할 수밖에 없었다.

“습격자 중에 살아남은 자들은 어떻게 처리하기로 하였느냐?”

“고신하여 정보를 최대한 알아낸 뒤에, 모두 처형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가.”

궁궐을 습격한, 제나라의 잔당에 대한 처리는 그걸로 끝이었다.

노예로 만들어야 한다느니, 광산으로 보내야 한다느니, 별의별 이야기가 나왔지만 호영은 깔끔하게 죽이는 것을 선택하였다.

자신의 목숨을 노린 것은 괘씸하였지만 어쨌든 깨달음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처형하는 것으로 끝내고자 한 것이다.

“만주의 한족들은 이제 얼마나 남았지?”

“대략 40퍼센트, 그러니까 430만 명 정도가 여전히 한족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한족임을 포기만 한다면 세금이 줄고, 학교 입학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를 고지했음에도 그러한가?”

“예. 만주의 행정력을 전부 쏟아부어서 소식을 알렸음에도 여전히 400만 이상이 자신의 민족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확실히 중화사상이 대단하긴 한가 보구나. 엄청난 손실까지 감수하고 자신의 민족을 지키려 하다니. 그것도 나라를 잃은 지 수십 년도 넘은 한족들이 말이야.”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는 하나, 씁쓸한 것은 사실이었다.

제나라와의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만주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계속 노력하였지만 중화사상이라는 벽은 도저히 꺾을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세대가 변하다 보면 만주의 한족은 대폭 줄어들거나 아예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이미 만주의 인구 비율에서 한족의 비율은 30퍼센트 이하로 확 떨어진 상태였다.

내지에서 한국인들이 계속 이주하고 있었고 만주의 한족도 스스로 한족임을 포기하고 있었으니 100년만 지나도 만주의 한족은 소수민족으로 전락할 것이다.

“시간이 유일한 해답이라는 거구나.”

“그렇습니다. 구주의 일본인들도 5회 차가 되자 스스로 한국인으로 생각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만주의 중국인들도 6회 차가 되면 자연스럽게 한국인으로 동화될 겁니다.”

“구주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구주를 직접 통치하는 것엔 문제 생길 일이 없겠나?”

본래 한국에서 내지를 통치하는 방식은 총독을 보내 간접 통치를 하는 것이다.

직접 통치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사략 함선을 다루는 문제와 치안 유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가 통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문제가 되는 것은 오히려 전권을 행사하는 총독들이었다.

행정권과 군사권을 모두 손에 쥔 총독들이 독립을 희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5회 차에 이르러서는 구주 총독이 황제의 명령을 무시하는 상황까지 오고 말았다.

이쯤 되면 구주는 반쯤 독립된 세력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당연하겠지만 제국의 입장에서나 호영의 입장에서나 영토가 분리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나 구주는, 앞으로 대양 진출에 있어 그 어떤 영토보다 중요한 곳.

하여 호영은 구주를 직접 통치하기 위해 움직였다.

구주의 통치 기관이었던 총독부를 해체하였던 것이다.

“예. 4회 차보다 함선이 발달한 상태이고, 앞으로도 계속 발달할 것이기에 구주를 통치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5회 차가 끝나고 총독부가 반발할 가능성은 없겠나? 구주에 대한 장악력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참고로 호영이 유혈 사태 없이 구주의 총독부를 해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구주의 총독이 그의 사람이라는 것에 있었다.

운이 좋게도 구주 총독 순신이 로열패밀리 소속의 간부였던 것이다.

하지만 구주 총독이 그의 사람이라고 총독부에 소속되어 있는 관료들까지 그의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이야 순신의 지시가 있어 총독부도 자발적인 해체 수순을 밟고 있었지만, 5회 차가 끝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순신 총독이 일본의 영주가 되면서 총독부의 조직력은 모래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남은 9개월 동안, 구주로 파견 간 중앙정부의 관료들이 구주를 원활하게 통치해 준다면 결국 구주는 아국의 땅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충구의 대답에 호영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한 말처럼, 남은 9개월을 잘 보내기만 한다면 구주를 완벽히 장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북해도야 말썽 없이 잘 돌아가고 있으니, 더 이상 국내에서 독립하겠다고 날뛰는 이는 나타나지 않겠군.’

만주와 일본 열도 그리고 한반도.

이 모든 땅이 대한 제국의 영토로 6회 차까지 남게 된다는 뜻이었다.

물론 타국에게 땅을 빼앗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국내에서 더 이상 신경 쓸 거리가 없어지게 되자, 호영의 시야도 자연스럽게 세계로 넓혀졌다.

당연하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중국 대륙. 그중에서 몽골과 양나라의 전쟁이 가장 신경이 쓰였다.

“5회 차가 끝날 때까지 전쟁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예. 청나라가 중간에 참전한다고 해도 올해 안에 양나라가 멸망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변수라면 변수라고 할 수 있겠군.”

호영이 가장 걱정하는 시나리오 중 하나가, 유저들이 센추리 세상에서 쫓겨난 이후 양나라가 몽골을 무찌르고 청나라까지 이겨 내는 시나리오였다.

한마디로 양나라가 강북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시나리오를 가장 경계하고 있는 상태였다.

강북의 지배자가 이민족이라면 모를까, 한족이라면 무척이나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몽골의 유저들과 청나라의 유저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그런 사태가 오게 만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5회 차가 이대로 끝난다 해도, 갑자기 양나라가 전쟁의 흐름을 반전시킨다거나, 청나라와 몽골이 동맹을 파기한다거나 하는 일들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청나라의 지원은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입니다.”

제나라를 멸망시킨 이후, 청나라는 점령지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순나라 때와 마찬가지로 제나라에서도 무림 세력이 대거 봉기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다행히 제나라의 고수들이 대한 제국의 궁궐에서 호영에게 죽임을 당하여 제나라 무림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기에 청나라는 순조롭게 점령지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점령지를 안정시킨 청나라는 몽골과의 협상을 시작했다.

지원군 파견에 대한 협상이었다.

“대신, 청나라의 지원을 받아들인 몽골은 청나라의 형제 국가가 되었다지?”

“예. 몽골이 청나라의 아우국이 되었습니다.”

“결국 예상했던 대로 청나라가 앞으로 강북 통치에서 우위를 보겠군. 주도권 싸움에서 완전히 승리하였으니 말이야.”

시간이 갈수록 청나라는 강해지고 몽골은 약해지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공식적으로 상하 관계를 분명히 하였으니 국력의 차이는 더욱 커져 갈 것이다.

‘약육강식을 숭상하는 유목 민족의 특성을 생각하면 청나라와 몽골이 하나 될 가능성도 낮다고 볼 수는 없겠어.’

가장 경계하던 시나리오인 양나라의 팽창은 막아 냈지만 두 번째로 경계했던 청나라의 팽창은 막아 내지 못하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나, 그래도 입안이 쓰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젓고는 화제를 전환하였다.

“다른 나라들은? 주의해야 할 나라들이 있나?”

“중국 강남은 이전에 보고했던 그대롭니다. 치열한 전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주의해야 할 나라들이라면 러시아와 필리핀이 있습니다.”

“러시아는 그렇다 치고 필리핀?”

“예. 세 개로 분할되었던 필리핀이 하나로 통일되고 국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모스크바 왕국이 세력을 크게 팽창하고 있다는 소식은 호영도 익히 들은 바 있었다.

애초에 7회 차 이후, 러시아 제국이 된 모스크바 왕국이 동방으로 진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호영이었다.

하지만 필리핀에 대해서는 그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회귀 전의 필리핀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리 존재감이 있는 나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예상 가는 일이 하나 있었다.

“혹시 필리핀을 통일시킨 인물이 세리자와인가?”

“그렇습니다. 폐하를 피해 배를 타고 도망쳤던 세리자와 유우가 필리핀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무슨 바퀴벌레도 아니고, 참 끈질긴 녀석이군.”

신선조의 국장이었던 노인을 생각하며 호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4회 차 때, 자신의 휘하로 받아들일 때부터 느꼈지만 노인이면서도 확실히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었다.

인구만 천만이 넘는 필리핀을 하나로 통일시키다니. 그것도 일본인이 말이다.

‘어쩌면 다음 회 차에 방해가 될 수도 있겠어.’

지금까지야 필리핀이 한국에게 있어 머나먼 국가로만 느껴졌을지 몰라도 6회 차부터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B랭크 이상의 무인이 많아졌고 마법사의 수준도 높아졌으며 함선도 많이 발전한 이상, 해양 마물은 더 이상 두렵기만 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대항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필리핀의 상황은 한국에서도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남쪽 바다에서 대만 다음으로 가까이에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세리자와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왜, 죽이고 싶은가?”

“기회만 있다면 죽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됐다. 6회 차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적으로 삼을 필요는 없어. 그자를 죽인다고 필리핀이 우리 것이 되는 것이 아닌 이상에 말이야.”

“······그렇습니까?”

“필리핀은 더 이상 신경 쓸 거 없다. 외교 관계를 맺는 것도 6회 차 이후로 미루어 둬. 세리자와가 6회 차까지 필리핀의 왕이라는 확신이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폐하.”

5회 차에서는 비록 적대 관계였을지 몰라도, 세리자와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언제든지 타협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니 6회 차 때, 그와 관계 정립을 하여 동맹 관계를 맺거나 아니면 그때 죽이면 그만이었다.

필리핀에 대해서는 그렇게 다음에 결정하기로 한 호영은 이후 미국이나 태국, 그 외에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에 신경 썼다.

태국과 미국의 경우는 그의 양위식, 즉위식에도 사신을 보낼 정도로 한국과의 친선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었다.

한국 역시 두 나라와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호영은 동남아시아 전체로 외교 관계를 확장시킬 생각이었다.

“NPC들이 정부를 장악한 나라들에는 이미 사신을 보낸 상태이고, 유저들이 장악한 나라에는 현실에서 따로 연락을 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호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조롭게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의 모습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원래였다면 아직도 한반도 안에서 투닥거리고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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