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87화 (287/345)

# 287

“······설령 청나라가 그런 강대국이 된다 한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금 당장은 중국을 견제하는 게 먼저이니 말입니다.”

그 말에 호영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전쟁이 지나칠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자 저도 모르게 방심하고 말았는데, 지금 그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은 청나라가 아닌 중국이었다.

만에 하나 강남의 국가들이 힘을 합쳐 북진하거나 바다를 건너오려 한다면 한국으로선 상당한 위협일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사실 소신은 청나라가 강북의 유일한 국가가 된다 해도 아국에게는 그리 위협이 된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강북의 유일한 국가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건가?”

“물론 알고 있습니다. 세계 초강대국, 어쩌면 실제 역사에서의 중국처럼 세계 중심의 나라가 될 수도 있겠죠.”

“한데도 청나라가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고? 이유가 뭐지?”

“단순한 이유입니다. 청나라는 이민족 왕조이지 않습니까?”

“······!”

“청나라는 중국의 자원과 인구를 가졌지만 자원은 몰라도 인구만큼은 제대로 활용할 수 없을 겁니다. 중화사상으로 물든 중국의 한족들이 청나라에게 애국심을 가지거나 충성심을 가질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시간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듯, 청나라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중국인들도 결국 청나라에 동화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중국 유저들이 존재하는 한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한족이 동화될 때쯤, 중국인들이 중화사상을 일깨워 줄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리셋될 수밖에 없을 거고요.”

청나라가 지금 중국 강북의 절반을 지배하기 시작했다지만, 충구의 말처럼 아직은 땅만 차지했지 인구는 제대로 지배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청나라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엔 한족들도 청나라의 백성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충구의 생각은 달랐다.

중국 유저가 존재하는 한, 청나라가 중국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만주에서 하는 것처럼 청나라도 똑같이 한족을 여진족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리된다면 청나라의 역사는 더욱 짧아질 것입니다. 한족을 지배계급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중국 유저들에게 힘을 실어 주겠다는 뜻과 똑같지 않습니까? 누르하치가 중국 유저들까지 통제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는 NPC라면 몰라도 유저들에 대한 장악력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충구의 말에 호영은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충구의 말이 맞아. 한국처럼 어느 정도 인구가 되는 나라라면 모를까, 청나라의 인구로는 강북의 중국인들을 제대로 다스릴 수가 없어. 아니, 지금의 한국도 턱없이 부족하지. 인구가 최소 1억 정도 되어야 강북을 확실하게 지배할 수 있지 않을까.’

인구가 곧 국력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청나라는 적은 인구에도 중국의 일부를 정복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이건 단순히 군사적으로 적의 통치 집단과 군사력을 쳐부순 것에 성공한 것일 뿐, 진짜 중국을 지배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한국이 걱정해야 할 것은 청나라가 아닌 중국이었다.

‘지금이야 사분오열 되어 있는 중국인들이지만 적어도 강북의 중국인들만큼은 청나라의 등장으로 하나 될 가능성이 높아졌어.’

한국이, 아니 세계 모든 나라가 걱정하는 것이 바로 하나 된 중국이었다.

그리고 현재, 하나 된 중국은 아니지만 중국의 절반은 통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삼국 동맹이라는 공공의 적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청나라에 이 이상 힘을 실어 주는 것도 부담이 되고 말이야.’

하나 된 중국을 막는 일은 청나라의 역할이었다.

한국이 해야 될 것은 청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동맹국으로서 청나라를 지원해 주는 것이다.

4회 차 때, 중국의 공격을 요령성의 동맹국들을 통해 막아 냈듯, 5회 차나 6회 차에서는 청나라와 몽골을 통해 중국의 공격을 막아 낼 속셈이었다.

아무튼, 중국이건 청나라건 간에 지금 당장 문제 될 일은 없었다.

지금 당장은 그런 거창한 미래를 대비하는 것보다 눈앞에 닥쳐온 양위식을 준비하는 것과 5회 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참고로 5회 차의 마무리는 이전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저들이 사용하고 있는 아바타들의 스텟과 성향 등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옥석을 가리는 일과 그의 통치 철학이 천년만년 이어지게끔 영속성을 더하는 일이었다.

‘내년부터는 아예 연구소 같은 것을 차려야겠어. 전략 분석 팀은 순발력이 좋을지 몰라도, 나라의 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서투른 편이니 말이야.’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변수는 발생하였다.

5회 차에서도 대균이란 황제 때문에 국력이 심각하게 약화되지 않았던가.

하여 그는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여 연구소 같은 것을 설립할 생각을 하였다.

미래학자와 역사학자, 통계학자 그리고 그 외 여러 학자들이 다음 회 차의 미래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연구소를 말이다.

“그나저나 나도 이제 S랭크가 되어야 하는데.”

A랭크에서 막힌 것도 벌써 수십 년째였다.

지난 회 차까지야 A랭크가 세계 최고였으니 별로 상관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아니었다.

이제 S랭크의 무인이 조금씩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한국만 봐도 S랭크가 벌써 두 명이었다.

김성근이나 황보훈의 재능을 생각하면 6회 차에는 최대 다섯 명으로 늘어날 수도 있으리라.

물론 그는 군주였고 대한 제국이 존재하는 한 그의 권력은 영원할 것이다.

하지만 꼭 권력 때문이 아니더라도 S랭크의 무인이 되어야 할 이유는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상징성이었다.

지금이야 최강의 무인이란 칭호를 준기나 박선후에게 빼앗기고 만 호영이지만 본래 최강의 무인이란 칭호는 그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칭호 하나로 한국 유저들은 물론이요, 일본 유저들의 지지까지 얻었다.

호영이 황제라서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최강의 무인이라 충성하는 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호영의 무공 수준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는데 만약 S랭크 무인의 숫자가 열 명 이상 늘어날 때까지 S랭크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적지 않은 유저들이 호영에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유저들의 실망은 그저 실망으로 끝나지 않을 터.

어쩌면 호영이 S랭크의 무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란이나 독립을 꿈꾸는 유저들이 나올 수 있었다.

‘상관없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내 팬이나 나를 응원하는 국민들의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아무튼 실제 전장에서 쓰일 일이 없더라도 그의 무공 실력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한 두 명이 아니기에 그는 되도록 빨리 S랭크의 무인이 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S랭크라는 게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황태자로서 대리청정을 할 때도 무공 수련을 빼먹지 않을 정도로 노력을 거듭하였지만 그래도 S랭크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다.

‘장인어른께서 무공 수련을 잠시 멈추는 것도 방법이라 해서 한 달 정도 수련을 멈추기는 했는데 이게 과연 소용이 있을까 싶군.’

단 하루도 창을 손에 쥐지 않으면 무언가 허전하고 개운치 않은 그가, 박선후의 가르침을 듣고 잠시 수련을 멈추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수련을 멈추는 것만으로 S랭크에 오를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준기라도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네. 현실에서도 배울 수 있지만 아무래도 센추리에서 배우는 것만 못하니까.’

호영이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할 때, 현실의 정보를 수집하고 전달해 주는 역할을 맡은 내관 중 한 명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전하! 제나라가 완전히 멸망하였습니다!”

“제나라가 완전히 멸망하였다고? 황제가 죽은 건가?”

“그렇습니다! 황도가 포위되자,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였는지 제나라의 황제와 황태자가 모두 자결하였습니다!”

마침내 제나라가 멸망하였다. 1년 넘게 이어졌던 전쟁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황제의 최후가 자결이라는 게 찝찝하군. 이왕이면 목숨을 비루하게 연명하는 쪽을 선택하였으면 좋았으련만.’

이미 예정된 승리였기에 호영은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제나라 황제가 자결하였다는 소식에 우려를 표하였다.

앞으로 제나라 점령지에서 한족의 저항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그건 청나라가 알아서 할 일이겠지.’

전에 말했던 대로 중국을 막는 것은 청나라의 역할이었다.

그러니 한국은 중국인들의 저항이 심해지건 말건 간에 이익만 보면 될 일이었다.

#깨달음을 얻다

제나라가 멸망한 이후로도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어느덧 4분기, 즉 5회 차의 마지막 연도가 되었다.

겨울이 끝날 무렵, 호영은 마침내 황위를 계승받았다.

기존의 황제는 별다른 술수를 부리지 않고 깔끔하게 황위를 양위하였고 호영은 그렇게 확실한 정통성과 강력한 실권을 가진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황제가 된 호영의 일상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박선후의 조언으로 무공 수련을 잠시 멈추었을 뿐, 대리청정을 하였을 때처럼 통치자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히 할 따름이었다.

물론 이 통치자로서의 역할에는 자식을 생산하는 일도 있어, 로그아웃을 할 때마다 아바타로 하여금 열심히 씨를 뿌리게 만들기도 하였다.

아무튼 호영이 통치자로서 사치를 금하고 여색을 멀리하니, 대한 제국은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서도 계속 부강해졌다.

이제 원정을 떠났던 수십만에 달하는 병력까지 되돌아오면 대한 제국은 5회 차가 시작되기 이전보다 훨씬 강대한 나라가 될 것이다.

새로운 영토인 만주가 안정을 되찾는다면 더더욱 강대해질 것이고 말이다.

‘이제 진짜 무공의 랭크만 올리면 되는데.’

이 이상 좋을 수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5회 차에서 거둔 성과는 만족스럽기 그지없었다.

만주를 차지해 영토를 넓혔고 걱정거리였던 일본을 완전하게 장악하였으며 주적인 중국의 힘을 약화시켰다.

아마 5회 차를 다시 한다고 해도 결과가 이보다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호영은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음에도 기뻐할 수가 없었다.

무공 수준이 아직도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감이라고 해야 될지, 깨달음이라 해야 될지. 무언가가 손에 잡히는 기분이긴 해. 역시 장인어른의 말대로 휴식을 취한 게 정답이었을까?’

호영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릴 때 갑자기 침소 밖이 소란해졌다.

“적이다!”

“너는 어서 폐하를 피신시켜라!”

자세히는 알 수 없어도 심상치 않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는 소란이었다.

표정을 굳힌 호영은 침소를 나서 소란의 원인을 파악하였다.

“습격자라고?”

“예! 경계 근무자들이 현실에서 다급하게 알려 왔습니다! 의문의 무리가 지금으로부터 5분 정도 전에 습격을 가했다고 합니다!”

“황궁을 습격할 만한 자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을 줄이야. 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제 국내에서는 더 이상 그의 권위에 도전할 세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자만이었던 모양이다.

무려 황궁을 습격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폐하!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왜, 도망이라도 가라는 말이냐?”

황궁을 습격한 그 용기는 기상해도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비록 최고 수준의 무인들이 제나라로 원정을 가 있기는 하나 황궁은 여전히 용담호혈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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