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85화 (285/345)

# 285

작년에 있었던 청나라와의 전쟁에서도 그 한 명을 막기 위해 청나라에서는 누르하치 삼형제를 제외한 거의 모든 A랭크의 고수들을 투입해야 했을 정도였다.

제나라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무림에서 나름대로 알아주던 고수들조차 준기 한 명을 막지 못해 죽임을 당하거나 큰 부상을 입어야 했다.

그만큼 준기, 아니 S랭크의 무인은 엄청난 전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승기를 잡은 것은 분명하지만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불분명하였다.

제나라에 있는 무림 세력은 순나라에 있던 무림 세력보다 훨씬 컸고 훨씬 끈질겼으며 훨씬 애국심이 강했다.

솔직히 제나라의 군대를 전멸시킨다 한들, 제나라를 지배하는 게 가능할지가 의문일 정도였다.

“장기전이 되겠군. 예상했던 대로 말이야.”

호영은 원정군 병력들로 하여금 진격 속도를 늦추어 의용군 세력을 철저하게 색출한 뒤에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리고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

전쟁이야 원정군의 장수들이 알아서 잘 지휘해 줄 것이다.

김성근이 조금 걱정이기는 해도 그 역시 비범한 능력을 가진 장수였다.

호승심이나 만용 때문에 지게 되는 경우는 웬만해선 없을 터.

그러니 호영은 전쟁에 대해서는 제때 보고만 들으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나라와의 협상으로 막대한 강남미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더욱더 그러해졌다.

유일한 걱정거리였던 식량 문제도 해결된 이상 전쟁에 신경 쓸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지금 호영의 주된 관심사는 오직 하나, 곧 있으면 획득하게 될 만주를 완벽하게 한국의 땅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만주에 있는 한족들을 다 합하면 1천만 가까이는 될 것이다.”

요령성의 한족만 해도 수백만이 넘었다.

청나라가 한족의 인구를 정확하게 집계하지를 않아 확신할 수는 없어도 만주의 한족이 천만에 가까울 것이란 사실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2천만에 달하는 한족은 한국의 골칫거리로 남았다.

안 그래도 전후 피해를 복구하느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천만에 달하는 인구를 통치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청나라가 만주의 한족을 데려가지 않겠습니까? 인구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나라인데.”

“인구야 이미 순나라 영토를 획득하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여진족은 데려가도 한족을 데려가지는 않을 것이야. 물론 기술을 가졌거나 특별한 능력을 가진 한족이라면 모르겠지만.”

그 말에 장차관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인구가 국력인 시대에서 인구가 천만 이상 늘어나는 것은 기꺼워했으면 기꺼워했지 싫어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늘어날 인구가 한국의 지배를 거부하고 민족주의 사상을 가진 인구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실 천만의 인구 따위는 한국에게 있어 그리 가치가 높은 편도 아니었다.

어차피 한국은 6회 차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이야 소수의 인구로 만주를 개발하는 게 무척이나 어렵고 험난하게 느껴지지만 100년의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개발이 완료될 터였다.

그러니만큼 청나라가 버리고 간 한족들은 한국에게 결코 달갑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만주를 통치하는 데 있어 엄청난 방해가 될 것이 분명하였다.

‘이미 방해가 되고 있기도 하고.’

요령성의 한족들은 청나라가 물러난 것을 한족의 시대가 왔다는 식으로 착각한 것인지, 온갖 사건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치안이 마비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단순히 범죄를 저지르는 것뿐만이 아니라, 반란군을 조직하여 한국을 타도하기 위해 봉기할 것이다.

병력을 보내면 어떻게든 반란이야 막을 수 있겠지만, 머지않아 5회 차의 구주처럼 반쯤 독립국 행세를 하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바로 근처에 북조선 자치령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더 자치를 기대하게 될 터.

한국의 입장에서는 만주의 한족이 골칫거리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싹 다 죽이고 싶기는 한데······.”

그 말에 몇몇 신료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빈말인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지만 그래도 천만에 달하는 인구를 제거하겠다는 호영의 발언에 섬뜩함을 느낀 것이다.

“전하, 만주의 한족이 골칫거리라면 만주의 한족을 없애면 되지 않겠습니까?”

“내무 장관, 나는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충구의 말에 이번에는 호영이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그가 했던 말 그대로, 한족을 제거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충구의 성격이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호영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권모술수에 능해진 충구였기에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한족을 학살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만 있다면 충구는 얼마든지 한족을 학살할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그 머리만 좋았던 대학생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소신은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만주의 한족은 전하의 우려대로 아국에 큰 위협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종 청소를 하듯 학살을 할 수는 없는 일이야.”

“학살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저 한족이 한족으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만들자는 뜻이었습니다.”

“한족이 한족으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만든다고?”

호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니 충구가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스로를 한족이라 생각하는 이들에겐 그대로 한족으로 분류하되, 대신 세금이나 부역에서 불이익을 주는 겁니다. 그러면 평범한 한족들은 어떻게 해서든 한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한족이 아니게 된 이들은 무엇이 되지?”

“당연히 한민족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국의 한족이 아닌, 삼한 할 때의 그 한민족 말입니다.”

그 말에 몇몇이 반대하였다.

“아니 어떻게 한족을 한민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한족은 중국인들이고 우리와 전혀 다른 민족입니다.”

“그보다, 중화사상으로 뼛속까지 물든 한족들이 한민족이 되려고 하겠습니까?”

“피지배계급인 한족들을 지배계급인 한민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하는 이들 대부분은 민족이 다른 한족을 한민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게임에서 민족을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비웃을 수 있겠지만 센추리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중국만 봐도 외세의 침공에 민족주의로 똘똘 뭉친 한족들이 대거 저항하고 있지 않은가?

일본이나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근대로 접어들지도 않은 시대였지만 대부분의 나라들, 특히 아시아 국가에서는 민족주의가 대단히 강했던 것이다.

“한족들이 나중에 사고 칠 것이 우려된다면 한족들을 모조리 노예로 만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극단적이고 강경한 구석이 있는 신동일의 경우는 이와 같은 말을 할 정도였다.

그만큼 센추리에서는 민족에 대한 구분이 뚜렷한 편이었다.

물론 호영 같은 경우는 구주의 일본인들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인 예가 있듯, 민족보다는 나라를 우선하는 쪽이었다.

충구의 의견처럼 한족을 받아들이는 게 국가적으로 이익이 된다면 그로선 굳이 반대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호영은 손을 들어 좌중의 소란을 가라앉히고는 충구에게 물었다.

“만약에 경의 말대로 한민족이 되겠다는 한족을 한민족으로 받아들인다면 만주를 통치하는 게 한결 쉬워지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말처럼 과연 한족이 자신의 민족을 버리고 한민족이 되고자 할까?”

“최소 절반 이상은 한민족이 되고자 할 것입니다.”

“절반이나? 한족의 자긍심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이미 만주의 한족은 청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 순간부터 자긍심을 잃은 상태입니다. 자긍심이 강한 이들은 이미 청나라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한족으로 남아 차별받는 것을 선택할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지금이야 치안을 엉망으로 만들며 횡포를 보이는 만주의 한족이지만 청나라가 지배할 때는 의외로 순응하였던 자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경의 말대로 된다 해도 아무나 한민족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한족만 자신의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물론입니다. 최소한의 자격, 예를 들면 한국어와 한글을 어느 정도 사용할 줄 아는 자들만 한민족으로 받아들일 계획입니다.”

그 말까지 듣고 나자 호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딱히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지 않은 그다 보니, 충구의 의견에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지금으로썬 만주의 불안 요소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책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충구의 말대로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한민족이 된다면 무려 500만의 인구가 새로 생기는 셈이다.’

이 시대에 500만이란 인구는 웬만한 중소 국가보다 많은 수준이었다.

만주의 한족을 한민족으로 만드는 것만으로 한국은 엄청난 힘을 얻게 되는 셈이었다.

호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충구에게 말했다.

“전략 분석 팀과 행정가들을 붙여 줄 테니, 한번 해 보도록.”

“감사합니다!”

그렇게 만주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자 호영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그가 신경 써야 할 것은 개혁의 마무리와 황제에게 양위를 받는 것뿐.

물론 일본을 확실하게 장악하는 것도 꽤나 중요한 문제였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 일본 해방 전선이 붕괴된 이후,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호영에게 적대하는 무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거론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규모가 축소된 상태였다.

솔직히 이제는 일본 해방 전선 같은 반란군 무리를 신경 쓸 게 아니라 호영을 지지하는 영주들에게 관심을 둘 때였다.

왜냐하면 일본은 현재 호영의 직할령과 호영에게 충성하는 영주들의 영토로 이분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일본 영주들의 영지를 회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음 같아서는 일본을 내지처럼 제국의 직할령으로 삼고 싶었다.

일본을 중앙정부가 직접 통치한다면 더 많은 재원과 군사력을 얻는 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나라와 전쟁을 하고 있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일본 영주들을 적으로 삼는 행위는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좋았다.

무엇보다 지금 한국군의 절반 이상은 일본 영주와 그들의 사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만약 일본에 있는 영주들의 영지를 중앙정부의 것으로 만든다면 당장 내전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

‘그럼 일본에 대해서는 처음 계획했던 대로 황위 쟁탈전이 일어나는 장소로 만드는 것이 최선이겠군.’

일본을 확실하게 장악하려면 영주들을 전부 없애는 게 가장 단순하면서 확실한 해답이었지만 그건 할 수 없으니 다른 방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방도란 일본 영주들과 황자들을 혈연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즉, 호영이 스무 명의 영주와 혼인 동맹을 맺었듯이 앞으로도 제국의 후계자를 일본 영주들과 혼인 동맹을 하게 만들어 일본에서의 황실과 제국의 영향력을 높일 생각이었다.

만약 그가 세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100년 뒤의 일본 영주들은 전부 황실과 혈연관계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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