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4
“그렇습니다. 두 나라의 관계는 전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안 좋습니다. NPC든 유저든 간에 상대국을 향해 엄청난 원한을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오나라를 쳐 준다면 월나라는 주저하지 않고 오나라의 뒤를 칠 것입니다.”
“······.”
충구의 확언에 호영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오나라와 월나라의 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회귀 전에도 오나라와 월나라가 힘을 합쳤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만 알 뿐이었다.
‘명나라가 건국되어 세력을 팽창했을 때도 두 나라는 동맹을 하지 않았지. 결국엔 명나라에 의해 두 나라 모두 멸망하였고 말이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충구의 주장도 완전히 무시하기는 곤란할 것 같았다.
오나라를 공격하여 오나라와 월나라를 전쟁에서 배제시키겠다는 주장 말이다.
하지만 강남에는 오나라와 월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강북에는 세 개의 나라가, 강남에는 네 개의 나라가 존재하였다.
오나라, 월나라 말고도 두 개의 나라가 더 있다는 뜻이었다.
“초나라와 대리국은?”
“두 나라도 오월과 비슷하게 처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원한 관계를 이용하자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물론 초나라와 대리국은 오월 관계만큼이나 심각한 관계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손잡고 강북으로 진출할 정도는 아닐 겁니다. 강북과 육로로 이어지지 않은 대리국의 입장에서는 초나라가 강북으로 진출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길 것이니 말입니다.”
“모르는 일이야. 그들이 몽골의 위협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면 힘을 합쳐서 양나라를 지원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뭐, 소신의 생각이 틀렸다 해도, 아국으로선 크게 상관없습니다. 두 나라가 손잡고 강북으로 진출한다 한들, 곤란한 것은 몽골뿐이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초나라와 대리국 모두 한국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였다.
양나라라면 모를까, 제나라나 순나라 영토까지 치고 올라올 일은 없었다.
즉, 피해를 보더라도 몽골만 본다는 뜻이었다.
“소신도 북조선 용병 부대를 몽골군에게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재무 장관, 신동일이 충구의 주장에 동조하며 그와 같은 말을 하였다.
“경도 같은 이유인가?”
“비슷합니다만 소신은 경제적인 이유로 찬성하였습니다.”
“경제?”
“예. 현재 아국은 전시 상태지만 경제는 이전보다 호황이지 않습니까?”
“몽골과 청나라에게 이것저것 많이 팔고 있고 제나라를 주기적으로 약탈해서 경제 자체는 이전보다 나아지긴 했지.”
한국은 지금 일종의 전쟁 특수를 누리는 상황이었다.
식량이나 무기들을 동맹국들에게 비싸게 팔고 있었고, 교역국이라는 이유로 약탈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제나라를 사략 함대가 마음껏 약탈하고 있었다.
전쟁 특수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전후 복구가 거의 끝나 가고 있을 정도였다.
“맞습니다. 경제는 계속 좋아지고 있습니다. 바로 전쟁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니 아국으로선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득입니다.”
돈을 더 벌겠다고 전쟁을 장기화시키겠다니. 만약 평범한 전쟁이었다면 들어줄 가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여러모로 평범함과 거리가 멀었다.
마치 세계대전처럼 여러 국가들이 두 세력으로 나뉘었다는 사실도 특별했지만 이 전쟁에서 한국의 입장도 특별하기 그지없었다.
삼국 동맹의 일원으로 본래라면 전쟁 당사자가 되어야 할 한국은 전쟁에서 한발 비켜선 채 중립국 행세를 하고 있었다.
물론 삼국 동맹의 일원인 것은 분명하였지만 정규군을 동원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경제적 손실이나 인적 손실을 제로에 가까울 정도였다.
더군다나 강북보다는 질이 떨어질지 몰라도 만주라는 거대한 영토까지 얻어 내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전쟁으로 득을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득이라······. 하긴, 틀린 말은 아니군.”
호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회의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몽골의 독단적인 행동을 어찌 대비해야 할지를 고민하였지만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충구나 신동일이 했던 말처럼 몽골의 독단을 말리는 게 아니라 이용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도 중국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 아닐까? 자칫하다간 삼국 동맹이 중국에게 완전히 발릴 수도 있는데.’
잠시 그런 생각도 하였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은 결코 중국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도 아닌, 있는 그대로를 평가했을 뿐이었다.
“경들의 의견이 그렇다면 몽골군을 지원하겠다. 그들이 양나라에서 독단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끔 말이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호영의 결정에 신료들은 고개를 숙이며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 * *
북조선 용병 부대를 몽골군에게 보내겠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청나라는 불쾌함을 드러냈었다.
용병 부대를 빼앗겼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한국이 몽골의 손을 들어 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몽골과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청나라는 한국에게 절대 을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제나라와의 전쟁에서 한국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전쟁이 무척이나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나라 측은 불만 표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한국이 알아서 하라는 뜻을 전해 왔다.
대신 제나라와의 전쟁에서 최대한 많은 원정군을 요청하였는데 이때 한국은 제나라를 치기에 앞서 오나라부터 공격하겠다고 말했다.
당연하겠지만 뜬금없이 오나라를 공격하겠다는 한국의 주장에 청나라는 황당함을 금치 못하였다.
호영이 처음 충구의 말을 들었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 괜히 적 하나를 늘리는 행동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호영은 청나라를 계속 설득하였다.
오나라를 공격해야지만 그들이 강북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청나라는 ‘네 꼴리는 대로 해라. 대신 약속된 날짜에 병력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라고 답신하였다.
청나라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자, 호영은 곧바로 원정군을 조직하였다. 제나라가 아닌, 오나라를 치기 위한 원정군이었다.
다섯 개의 군단, 즉 15만에 달하는 원정군이 조직되자 호영은 지체하지 않고 출정 명령을 내렸다.
목표는 저장성이었다.
6월 말에 출진한 한국의 원정군은 7월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에 오나라의 강역인 저장성에 도착하였다.
당연하겠지만 한국의 공격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오나라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다급하게 저장성의 군사들로 막아 보려 하였지만, 한국군은 구주 지역의 왜구들처럼 치고 빠지는 전술에만 능한 것이 아니었다.
전투력 역시 그 어떤 나라의 군대보다 강성하였다.
결국 저장성의 군대는 패퇴하였고 오나라는 강북으로 진출하기 위해 집결시켜 놓았던 대군을 다급하게 저장성으로 이동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 마침, 월나라 군대가 움직였다.
두 나라 간에 매년 있었던 국지전 때처럼 1~2만 규모가 아닌, 무려 20만에 달하는 병력이 오나라의 후방을 공격하였다.
오나라는 동과 서로 양면 전쟁을 치르게 되자, 곧바로 한국에게 사신을 보냈다. 그들이 사신을 보낸 이유야 단순했다.
휴전을 제의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오나라의 사신은 공격한 것을 용서해 줄 테니, 휴전하자는 뜻을 전해 왔다.
호영은 사신의 요구에 며칠간 뜸을 들였다.
거만함을 버리지 못한 오나라 사신에게 현실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었다.
이틀이 지날 동안 거만한 태도를 보이던 오나라 사신은 사흘째가 되자 저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오나라를 멸망시킬 기회라고 생각하였는지 월나라가 10만의 병력을 추가로 출정시킨 것이다.
결국 오나라는 패자의 신분으로 평화협정을 구걸하는 처지로 전락하였다.
당연히 평화협정의 조건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호영은 조건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아지자,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오나라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원정군에게 회군을 명하라.”
평화협정이 맺어졌는데 저장성에 계속 원정군을 주둔시킬 이유가 없었다.
이미 원정군의 목적을 달성한 상황.
월나라가 대군을 동원하여 오나라를 침공하였으니 한국은 오나라가 만전을 기할 수 있게 군대를 빼 줘야 했다.
그렇게 원정군을 철수시킨 호영은 황실 정보부장, 원재에게 물었다.
“대리국은 우리와 약속했던 대로 움직이고 있나?”
“예. 곧 있으면 초나라를 침공할 것입니다.”
호영은 원재의 말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1천억으로 두 나라를 싸우게 만들었으면 싸게 먹힌 것이겠지?”
“아마 100배 이상의 이득을 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100배라······. 하하하. 과장스럽지만 나는 왠지 그 이상 이득을 본 것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앞으로 중국은 하나로 통일될 가능성이 더욱 줄어들 것이니 말이야.”
교묘하게 오나라와 월나라를 싸우게 만들었던 호영은 대리국의 유저들에게 돈을 줘서 초나라를 공격하게끔 만들었다.
오월뿐만이 아니라 대리국과 초나라 또한 강북에서 일어나게 될 전쟁에 끼어들지 못하게 만들려는 외도였다.
그리고 이 같은 시도는 단돈 1천억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돈에 눈이 먼 대리국의 유저들은 원교근공의 원리를 내세워 멀리 있는 삼국 동맹보다 가까이에 있는 초나라가 더 위협적이라고 여론을 선동하였다.
대리국의 황제 또한 이 같은 여론에 선동당하였는데, 결국 양나라를 지원하기 위해 집결시켰던 병력을 초나라를 치는 데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 * *
7월 말.
갑작스러운 대리국의 침공으로 초나라 또한 강북의 일에 관여할 수 없게 되자, 호영은 마침내 제나라를 향해 공격을 시도하였다.
참고로 청나라는 이미 제나라를 침공한 상황이었다.
몽골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예상했던 대로 두 전선 모두 지지부진하기 그지없었다.
양나라와 제나라는 순나라처럼 쉽게 상대할 나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참전한 이상 전쟁의 흐름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몽골이야 그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겠지만 청나라만큼은 승기를 잡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그렇다 한들, 제나라를 단숨에 멸망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호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전쟁을 지켜보았다.
아쉽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이번 전쟁에서만큼은 친정하지 못하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바다 건너의 원정, 그것도 제나라라는 강국을 상대로 한 원정에서 황태자인 그가 친정을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제아무리 무력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말이다.
아무튼 국내에서도 그가 할 일은 작지 않았기에 내정을 좌지우지하며 전쟁에 대해서는 그저 보고로만 들었다.
다행히도 전쟁은 그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제나라는 이제 청나라와 한국이 무시할 수 없는 상대임을 깨달았는지 의용군 세력, 즉 무림과 힘을 합치기로 결정을 내렸지만 그래도 두 나라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한국에 두 명의 S랭크 무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제나라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뼈아팠다.
호영의 장인어른인 박선후 같은 경우는 아쉽게도 개인으로서 참전한 것이라 일기토에서만 유용할 뿐, 전장에서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준기는 달랐다.
비록 육체의 스펙이 그리 좋지 않고 마력도 A랭크 수준에 불과하였지만 어찌 되었건 S랭크 무인인 그는 등장만으로 전장을 넘어 전쟁 자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