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3
“해서 한국을 찾아온 목적은 두 나라가 잠시 갈라졌음을 통보하기 위함인가?”
“아닙니다. 한국에게 원하는 것이 한 가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무엇이냐? 일단 동맹국이니, 이야기는 들어 주마. 그 이야기를 그저 듣고 마는 것으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은근하게, 아니 거의 대놓고 자신의 불쾌함을 드러내는 호영을 보며 저고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나 한국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 것은 분명하였는지 이내 조곤조곤한 말투로 몽골의 뜻을 전하였다.
“몽골은 단독으로 양나라를 치기로 결정했습니다. 청나라처럼 한국의 도움을 받지 않은 상태로 양나라를 치겠다는 것인데, 이래서야 삼국 동맹을 결성한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 생각한다면 당초의 계획대로 제나라부터 치고 그다음에 양나라를 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대칸께서는 시간을 부족하게 여기고 계십니다. 제나라를 멸망시킨 이후에 양나라를 멸망시키려면 적어도 3년 이상은 걸리지 않겠습니까? 나라를 안정시키기까지는 족히 5년 이상이 걸릴 것이고 말입니다.”
호영은 저고여의 말에 테무르의 의도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테무르는 어떻게 해서든 5회 차가 끝나기 전에 결판을 내려 하고 있었다.
아마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양나라와 제나라를 동시에 치려는 것이겠지.
‘내가 테무르였어도 비슷한 판단을 내렸겠지만 그래도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야.’
보다 가까운 길이 있는데 굳이 멀리 돌아가고 있는 셈이니 한심하게 여기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칸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아무도 그를 말릴 수 없을 것이니 말이야.”
“······아무튼 외신이 전하를 찾아뵌 이유는 동맹으로서의 지원을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맹으로서의 지원이라? 정확히 어떤 지원을 말하는 것이냐.”
만약에 양나라를 치는 데 협조해 달라는 지원이라면 절대 불가한 일이었다.
양나라는 내륙에 있는 나라였다.
제나라처럼 바다를 통해 공격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이 공격하려면 천문학적인 재원이 소모될 것이다.
“북조선 용병 부대를 지원해 주십시오.”
“흠······.”
북조선 용병 부대라면 지원해 주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작년이었다면 호영이 북조선 용병 부대를 제 병사들을 다루듯 다루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북조선 용병 부대가 은근히 한국에 대한 불만을 피력할 정도로 관계가 좋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청나라가 남만주에 해당하는 영역을 할양한 이후에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호영이 북조선 유민들과 했던 약속을 지키게 된 것이다.
동간도에 해당하는 지역을 북조선 유민들에게 자치령으로 내주었으니 북조선 용병들도 호영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호영은 명실상부한 그들의 지배자였기 때문이다.
“북조선 용병들을 지원해 달라는 것은 화포 때문인가?”
“예. 앞으로 양나라와의 전쟁에서 공성전이 자주 벌어질 것인데, 비록 기동력은 느리나 화포만큼 쓸모 있는 병기는 없습니다. 실제로 순나라와의 전쟁에서도 북조선 용병 부대의 활약이 제법이었지 않습니까?”
“제법인 수준을 넘었다고 들었는데.”
“아, 죄송합니다.”
“그건 그렇고 청나라와는 이야기가 된 것인가? 청나라는 북조선 용병 부대를 무척이나 신임하고 있는데 갑자기 몽골에게 빼 줄 수는 없잖아.”
“······.”
“설마 청나라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거냐?”
“북조선 용병 부대는 한국의 군대인데 굳이 청나라와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저고여의 대답에 호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두 나라 간의 골이 생각했던 것보다 심한 것 같았다.
5회 차가 끝나 가기까지 3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라 테무르든 누르하치든 초조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찌 되었건 호영으로선 민감한 문제에 괜히 나서고 싶지 않았다.
“몽골의 뜻은 알겠다. 하지만 지금 당장 답변을 해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전하!”
“기다려라. 신료들과 상의하고 나서 결과를 알려 주겠다.”
“······알겠습니다. 부디 현명한 결정을 내려 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남기고 저고여가 물러나자, 호영은 곧장 자신의 신료들을 불러 모았다.
“몽골 사신이 나와 독대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호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콧김을 일으키며 우렁차게 말했다.
“드디어 전쟁입니까!”
군제 개편으로 신설된 군단장 자리에 앉은, 김성근이었다.
참고로 현재의 한국군은 삼군, 즉 남방군과 중앙군, 북방군으로 나누었던 이전 편제와는 다르게 열 개의 군단으로 나뉜 상태였다.
친위 군단까지 포함하면 열한 개의 군단이 존재하였는데 김성근은 이 중에서 ‘제3 군단’의 군단장 자리를 맡고 있었다.
군단의 숫자가 앞 번호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경기도 권에 주둔하는 군단이었다. 당연히 3군단은 제나라 원정군에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은 전쟁이되, 기쁜 소식은 아니다. 물론 경이라면 충분히 기뻐할 소식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오호, 대체 어떤 소식입니까?”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청나라와 우리뿐이다.”
그 말에 모두가 의아한 얼굴을 하였다.
하지만 순발력이 좋은 충구는 의아함을 느끼기 전에 질문부터 던졌다.
“몽골은 그렇다면 어떻게 움직이기로 하였습니까?”
“양나라를 치겠다더군.”
몽골의 의도를 전하자 너 나 할 것 없이 성을 냈다.
“이제 와서 전쟁 계획을 뒤바꾼다는 것입니까?”
“허, 이러면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하는데······.”
“몽골한테 정식으로 항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명분으로 계획을 바꾼답니까?”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호영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분위기는 다시 차분해졌다.
물론 그들의 의문은 여전하기 때문에 호영은 설명을 덧붙였다.
“테무르가 꽤나 조급한 모양이야. 5회 차가 끝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양나라까지 집어삼킬 생각인 것 같더군. 경들도 알다시피 순나라는 절반씩 나누고 양나라는 몽골이, 제나라는 청나라가 가지기로 했으니 말이야.”
“아무리 그렇다 한들, 몽골의 행동은 지나치게 이기적입니다. 이럴 거였다면 동맹을 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습니까?”
다시금 소란해지려는 기색이 보였다.
호영이야 같은 통치자의 입장에서 테무르의 행동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의 수하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충구가 제때 나서 주었다.
“그렇다면 몽골이 사신을 보낸 이유는 무엇입니까? 양나라를 치겠다는 것을 통보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닌 것 같던데······.”
“북조선 용병 부대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용병 부대를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누군가는 혀를 찼고, 누군가는 ‘뻔뻔하기 그지없다’며 몽골의 행동을 비난했다.
외무 장관 최민환의 경우는 ‘들어주면 동맹의 결속이 더욱 약화될 것이니 무조건 반대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렇게 모두가 은연중 반대 의사를 표할 때였다.
충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들어주시지요.”
“청나라의 반발을 무릅쓰고 몽골을 지원하라는 것이냐?”
“어차피 청나라는 아국을 탓하기보다 몽골을 비난할 것입니다.”
“경의 말대로라면 청나라가 몽골을 더욱 싫어하게 된다는 건데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 있나?”
“사이가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미래를 생각하면 말입니다.”
그의 말처럼 청나라와 몽골의 사이가 좋은 것은 한국으로선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동맹이라지만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것이 외교 관계였다.
화북을 집어삼키고 더욱 힘을 키운 뒤에 두 나라가 동시에 한국을 친다면?
한국으로선 막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세 나라는 육로로 이어져 있고 몽골과 청나라는 기병 전력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현재다. 강남은 몰라도 제나라와 양나라만큼은 확실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곤란해.”
호영도 몽골과 청나라를 경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동맹을 맺었다 해도 이웃 국가의 국력이 강해지는 것은 충분히 우려스러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호영은 두 나라를 견제하는 것을 전쟁 이후로 미루었다.
그는 두 나라보다 중국을 더 경계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강남이 남아 있는 이상 두 나라가 한국을 노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나라와 양나라를 꼭 지금 당장 처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충구의 말에 호영은 눈가를 좁혔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누누이 말했을 텐데 중국의 국가들은 인구와 생산력이 높아 시간을 주면 불리해지는 것은 우리라고.”
한국이야 경제력과 생산력이 탄탄한 국가라 장기전이 두렵지 않았지만 몽골과 청나라는 달랐다.
유목 국가들은 단기전에 능할지 몰라도 장기전에는 취약한 편이었다.
아마 청나라와 몽골이 분쟁하게 된 원인도 식량이 일정 부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니만큼 장기전은 되도록 피해야 했다.
“두 나라는 순나라를 차지한 상태입니다. 반으로 나눠 가졌다 해도 장기전에 어느 정도 여력이 생겼을 겁니다.”
“경의 말대로 몽골과 청나라의 체력이 올라갔다 해도 문제는 남아 있다.”
“강남에 있는 나라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시간을 주면 강남에 있는 네 개의 나라가 전쟁에 끼어들 수 있다. 이미 한두 나라는 군비를 증강하고 있으니 그들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어.”
삼국 동맹이 지금껏 상대한 중국은 반으로 쪼개진 중국이었다.
즉, 강북의 중국만 상대했다는 말인데 강남의 나라들까지 전쟁에 끼어든다면 삼국 동맹은 그날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세 개의 나라가 힘을 합쳐도 하나 된 중국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강남의 나라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호영은 자신감 넘치는 충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자신이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원재에게 직접 보고를 받는 호영보다 정보력이 좋을 순 없었다.
하지만 믿음직스러운 충구가 쓸데없는 말을 하지는 않을 터.
마침 충구가 말문을 이었다.
“천 척. 딱 천 척의 함선만 동원하면 강남의 나라들을 외부에 신경 쓸 수 없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제나라를 공격했을 때처럼 오나라의 해안가를 공격하면 월나라에서 오나라를 공격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두 나라는 서로 죽고 죽이느라 강북을 신경 쓸 수가 없게 되겠지요.”
“이미 월나라와 이야기가 된 것인가?”
“아닙니다. 단지, 오나라와 월나라의 관계를 고려하여 말씀드린 겁니다.”
호영은 눈썹을 찡긋거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너무 막연한 계획인 것 같았다.
아무리 두 나라의 관계가 안 좋다지만 국가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다툴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오나라를 공격하면 오히려 무리해서라도 우리를 공격할 것 같은데? 특히 오나라는 중국에서 해군으로 알아주는 나라잖아?”
“그 강대한 해군을 가지고도 오나라는 왜 지금까지 외부로 원정을 간 적이 한 번도 없었겠습니까?”
“월나라 때문이라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