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82화 (282/345)

# 282

확실히 그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만약에 로열패밀리 멤버들의 능력이 이처럼 뛰어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나라 전체가 혼란에, 아니 어쩌면 내전 상태에 빠졌을지도 모를 정도로 호영은 강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호영으로선 불가피한 일이었다.

5회 차가 끝나기까지 3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만약 그가 지금 개혁을 미루면 이 나라는 100년 동안 정체하게 될 터.

그렇게 된다면 이 나라는 또다시 암군이 나타나 국정을 문란해지거나 구주처럼 독립국이 생기게 될 수 있었다.

그러니 호영으로선 급격한 개혁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강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0년 뒤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 * *

개혁은 결코 순조롭게 진행되지만은 않았다.

다행히도 군부 개혁 같은 경우는 개혁에 반대할 인사들을 미리 숙청하여 생각했던 것보다 반발이 적었다.

애초에 군부 개혁의 경우는 비대하게 늘어난 장성의 숫자를 줄이고 만인대장을 사단장으로, 천인대장을 대대장으로 명칭을 현대식으로 변경하는 정도라서 반발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 외, 일본에서 데려온 군대를 국군으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다행히 잡음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출신과 신분, 성별에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행정 개혁의 방침은 특권 계급으로 하여금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대한 제국의 경우, 외지를 제외하면 법으로 명문화된 신분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황족이라는 계급만 존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명문화된 신분제가 없을 뿐이지, 특권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조선의 양반들처럼 고관대작을 배출한 가문들이 귀족 행세를 하였고 그 아래로 지주와 호족, 거상 등이 중간 계급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신분 하나로 관직에 올랐고 능력과 관계없이 오직 신분만으로 출세를 거듭하였다.

그렇다 보니 이번 행정 개혁에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고시’란 것을 봐야지만 관직에 오를 수 있고 출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상도에서 불온한 움직임을 포착하였습니다. 아무래도 마산 일대에서 봉기가 일어날 것 같습니다.”

“개성에서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되었습니다.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유저들이 봉기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호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수십만에 달하는 군사력을 보고 불만을 억누르고 있었으나 명분만 있다면 언제든 반란을 일으킬 자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나 제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병력을 한 곳으로 집결시키는 상황이니, 지방에 있는 세력가들로선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전쟁 때문에 반란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증좌만 있다면 굳이 반란을 일으킬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아도 괜찮아. 증거가 확실한 이들은 지금 당장 잡아들이도록.”

“충!”

착각을 하고 있다면 현실을 일깨워 주면 그만이었다.

호영은 수하들에게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들을 모두 사로잡으라고 말이다.

그러자 또다시 내지 곳곳으로 유저들이 파견되었다.

이번에는 지난 숙청 때처럼 은밀하지도, 전격적이지도 않았다.

드러내 놓고 여유롭게 움직였다.

하지만 결과만큼은 숙청 때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반란을 계획했거나 가담하려던 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구금당하였다.

중간에 도주를 시도한 자들도 있었지만 내지 곳곳에 유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도망치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이번에 사로잡은 이들에게 어떤 처벌을 내리면 되겠습니까?”

부관이 물었지만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역모를 계획하였거나 실행에 옮긴 자는 모조리 참하라.”

일체의 망설임 없이 내려지는 단호한 명령.

그렇게 또다시 수백 명의 죄수들이 처형당하였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오직 하나. 호영을 적대했다는 사실뿐이었다.

“단순 가담자는 새롭게 아국의 영토가 된 북변으로 보낸다.”

수백 명을 죽인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호영은 단순 가담자에게조차 중벌을 내리게 하였다.

그 중벌이란 다름 아닌, ‘강제 이주’였다.

삼국 동맹이 순나라의 영토를 차지하게 된 이후로, 청나라는 대한 제국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주 일부를 할양하였다.

요령성 전체와 길림성 일부를 할양하였는데 길림성 일부, 즉 동간도에 해당하는 영토야 북조선 유민들의 자치령으로 내준다고 해도 요령성은 대한 제국이 직할령으로서 직접 다스려야 했다.

하지만 한족의 국가들이 지역을 지배하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청나라가 요령성을 차지한 이후로 요령성은 크게 쇠퇴하였다.

물론 지금도 한족의 인구만 수백만에, 농업이나 상업이 굉장히 발달한 지역이었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여전히 ‘변방’이나 야만족의 땅으로 인식되는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벌써부터 요령성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여론이 일고 있었다.

과연 한국인의 인구도 얼마 없는 요령성을 제대로 지배할 수 있을지를 우려하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호영으로선 제아무리 거저 얻은 영토라 해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 지금 당장은 죄수들을 보내서라도 요령성의 한국인 숫자를 늘릴 계획이었다.

인구가 힘인 세상에서 인구만 앞선다면 요령성의 한족들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제나라나 양나라까지 정복하면 만주 전체가 제국의 것이 될 텐데, 그때는 어떻게 통치해야 하려나?’

호영은 그 생각을 하니 쓴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일단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개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

그리고 개혁은 또 한 번의 숙청이 끝난 이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제 조용해졌군.”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유배당할 상황에서 호영에게 이를 드러낼 사람은 없었다.

불만은 여전히 남아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대놓고 불만을 표출할 이는 더 이상 없으리라.

그렇게 전략 분석 팀에서 계획하고 호영이 실행한 개혁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적어도 국가 시스템만큼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한 것이다.

‘이걸로 4회 차 때 만들었던 학교들이 제대로 활성화되겠군. 6회 차부터는 유능한 인재들이 훨씬 많아지겠지?’

5회 차가 시작되자마자 청나라에게 탈탈 털리는 한국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황당했던가?

만약에 4회 차 때 그가 만들었던 학교나 강무관이 제대로 활성화되었다면 제아무리 황제가 무능하다 해도 그렇게까지 털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황제뿐만이 아니라 일선의 장수들부터 중앙정부의 고관대작들까지 전부 무능했기에 청나라한테 털렸다는 말이다.

호영이 능력 우선주의로 개혁하려는 게 괜한 행동이 아니었다.

이번 개혁의 결과로 6회 차의 한국은 적어도 5회 차의 한국보다 훨씬 강대국의 면모를 보여 줄 것이다.

‘다만 걱정인 것은 평민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져 공화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사상이 태동할 수 있다는 것인데…….’

호영은 잠시 그런 생각도 해 봤지만 이내 피식 웃어 넘겼다.

공화국이 주류를 이루었던 북미에서조차 공화정이 속속 군주정에 의해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무공과 마법이 있고 ‘왕의 권한’이란 스킬이 있는데 대한 제국의 황실이 그리 쉽게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뭐, 무너진다면 그만큼 폭정을 펼쳤다는 의미이니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말이다.

“전하.”

“무슨 일이지?”

“몽골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독촉을 하려는 거군.”

최민환의 보고에 호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마침 내부 정리가 끝나고 있었는데 몽골의 사신이 찾아왔다.

그에게 새로운 일거리가 찾아왔다는 의미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일거리는 이제까지와 비교할 것도 없이 그를 바쁘게 만들 것이다.

‘제나라라……. 이기는 것이야 문제없지만 과연 그들을 5회 차가 끝나기 전까지 멸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군.’

황제와 황태자 간의 분란으로 국론이 분열되었던 순나라와 다르게 제나라는 국론이 완전하게 하나 된 상황이었다.

물론 그들 역시 오만함을 버리지 않아 관과 무림이 아직도 힘을 합치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제나라는 만만치 않은 강적이었다.

최소한 50만, 아니 80만 이상의 군사를 동원해야 제나라를 멸하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 * *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몽골 사신, 저고여의 말에 호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저고여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 굳이 청나라와 힘을 합쳐서 제나라를 공격할 필요가 없습니다. 청나라가 제나라를 치는 동안 우리 몽골은, 양나라를 칠 것입니다.”

“방심은 중국인들만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저고여의 대답에 호영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몽골과 청나라의 동맹이 무척이나 끈끈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몽골의 대칸인 테무르와 청나라 황제인 누르하치가 무척이나 친밀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이상이 같고 친분이 두텁다 해도 야망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갈라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곧잘 협력하던 두 나라가 각자도생하기로 결정한 것을 보면 말이다.

“두 나라는 완전히 갈라서기로 결심한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아직 초원에서 했던 신성한 동맹은 여전합니다.”

“그런데 왜?”

“단지 사소한 의견 다툼이 있었고, 지금에 와서는 굳이 제나라를 함께 쳐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제나라와 양나라는 강국이다. 만약 최대로 동원한다면 100만이 넘는 병력도 동원할 수 있어.”

하나로 통일된 중국도 아니고 사분오열 찢어진 중국의 일개 국가가 100만이 넘는 병력을 동원한다는 것은 터무니없게 들릴 수 있겠지만 호영은 결코 과장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제나라의 생산력이나 인구로는 100만이 넘는 병력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유저가 존재하는 상황에선 충분히 가능하였다.

중국의 유저 수는 세계 제일.

제나라에만 족히 수백만의 중국 유저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림의 종주국이라 불리는 중국답게 이 중국 유저들 중에 적지 않은 수가 무공을 익힌 상태였다.

중국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비록 군인으로서 잘 훈련된 병력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무인으로서 제법 단련된 병력을 언제든 수십만씩 동원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삼국 동맹이 순나라를 그렇게 쉽게 멸망시킨 것은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순나라의 황제는 NPC고 황태자는 유저라서 NPC와 유저가 제대로 융화되지 못했기에 쉽게 멸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양나라가 아무리 강국이라 해도 우리 몽골보다는 못할 것입니다. 뭐, 제나라 같은 경우야 한국과 청나라가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

호영은 혀를 찼다.

마음 같아서는 누르하치와 테무르를 불러 어떻게든 화해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발언권은 두 사람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애초에 삼국 동맹에서 한국의 발언권은 작은 편이었고 말이다.

‘그러니 한국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결과만 이렇게 통보하는 것이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두 나라의 행보가 한심하면서도 불쾌하게만 느껴졌다.

그가 그리 느끼고 있어서일까?

호영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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