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78화 (278/345)

# 278

“소신도 그리 생각합니다. 물론 황자 전하의 장인이 되실 분이니 누가 태자비가 된다 해도 상관이 없겠지만 그래도 S랭크 무인의 심기를 어지럽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경선을 태자비로 삼으라는 말을 하였다.

원칙주의자인 최민환조차 그에 대해 찬성을 표할 정도였다.

‘이렇게 되면 나는 경선과 결혼을 두 번 하게 되는 셈인가?’

그 생각이 들자 호영은 순간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참모들에게 말했다.

“경들의 생각이 그렇다면 나 역시 반대할 이유가 없다. 장인이 S랭크의 무인인 것이 확실하다면 경선을 태자비로 맞이하겠다. 물론 그 전에 경선의 뜻을 물어야겠지만 말이야.”

워낙 자유분방한 여인이니 태자비가 되는 것을 오히려 족쇄로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니 태자비로 맞이하기 전에 경선에게 의견을 묻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날, 로그아웃하고 현실에서 만난 경선에게 태자비가 되는 게 어떨 것 같으냐고 물으니 다행히도 긍정을 표하였다.

그렇게 호영의 태자비는 경선으로 결정되었다.

* * *

가을 끝자락이 오자 예정했던 대로 황태자 책봉식이 열렸다.

2회 차에 있었던 대한국 건국식보다 훨씬 성대하게 느껴지는 황태자 책봉식이었다.

책봉식에 참여한 인파만 무려 20만이 넘었는데, 백성들만 많이 찾아온 것은 아니었고 외국 사신이나 외지 귀족들도 상당히 모여들었다.

그만큼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나 호영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당연하겠지만 두 나라, 즉 청나라와 몽골의 사신도 책봉식에 참가하였다.

청나라 같은 경우는 친왕, 그러니까 황제의 동생 수르하치가 참가하였고 몽골 같은 경우는 대칸이 직접 참가하였다.

“설마 직접 올 줄은 몰랐군.”

호영은 행사가 모두 끝나자 외국 사신들을 직접 응접하였다.

멀리서 찾아온 미국의 사신들은 물론이요, 대만과 필리핀 심지어 태국의 사신들까지 정성스럽게 상대해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몽골의 차례가 되었다.

몽골의 대칸, 테무르를 직접 상대해야 할 상황이 온 것이다.

“동맹의 칸이 주인공인 행사에서 내가 빠질 수는 없지.”

테무르는 이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유롭고 자신감으로 가득한 그 얼굴 말이다.

“내가 전쟁 준비를 잘하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함은 아니고?”

“흐흐흐, 뭐 그런 이유도 없지는 않아. 전쟁 준비뿐만이 아니라, 배신에 대해서도 걱정해야 되고 말이야.”

“솔직하군.”

“저놈들이 이곳에 와 있는데 어쩔 수 없지 않나.”

테무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중국 특유의 복장을 하고 있는 사내가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궁녀를 희롱하며 큰 목소리로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는데 누가 보면 자기 집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너도 걱정이란 것을 하는 모양이군. 내가 너희들을 배신하고 저자들의 편에 설 것을 걱정하는 건가?”

“하하하! 이래 봬도 내가 몽골의 대칸이야.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지.”

확실히 그의 말처럼 몽골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배신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아무리 기병 전력을 대규모로 운용하는 두 나라라지만 한국 같은 군사 강국을 침공하는 것엔 상당한 제한이 따랐다.

청나라가 처음 한국을 침공할 때 한 달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했듯, 재침하기 위해서도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한국의 배신은 치명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즉각 응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우리의 배신을 이미 철저하게 대비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시험해 보고 싶으면 시험해 봐도 좋아. 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으니, 그 사실은 알아 두고.”

호전적인 눈빛으로 그리 말하는 테무르를 보며 호영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였다.

영웅은 괜히 영웅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테무르의 눈빛에서 위압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심지가 약한 사람이라면 저 눈빛 하나만으로 테무르에게 굴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호영 또한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다.

원래는 범상했을지 몰라도 지금의 그는 누구보다 군주로서 어울리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호영은 테무르의 호전적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경전이라도 하듯 마주 노려봤다.

“꺅! 왜 이러세요!”

그러나 두 사람의 대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누군가가 지른 비명을 듣고 두 사람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이다.

“누가 중국 놈 아니랄까 봐, 타국까지 와서 저따위 행동을 하는군. 저놈들은 우리보고 오랑캐라 부르며 야만족 취급하지만 내가 보기에 진짜 야만족은 저놈들이야.”

“테무르.”

“음?”

“너는 우리가 배신할 것을 걱정하고 있지?”

“아까도 말했지만 몽골의 대칸으로서 한국의 배신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찌 되었건 우리의 배신을 걱정하였다면 내가 하늘에 대고 맹세하겠다. 우리가 먼저 배신할 일은 없을 거라고 말이야.”

호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궁녀의 몸을 주물럭거리고 있는 제나라 사신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만!”

“어, 이게 누구야. 대한국의 황태자 전하 아니십니까?”

“네놈은 예의란 것이 없는 것이냐! 감히 신성한 자리에서 이런 무도한 일을 저지르다니.”

“예의가 없다니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이십니까? 손님에게 여인을 내주는 것이 동이, 아니 동방의 예의 아니었습니까?”

제나라 사신은 호영의 질책에도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호영을 무시하는 게 분명해 보이는 태도였다.

“미쳤군.”

“허,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미친놈이랑은 길게 말을 섞을 필요가 없겠지. 제아무리 일국의 사신이라 해도 말이야.”

사신이 무슨 생각으로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는지 호영도 알지 못했다.

단지 지금의 그에게 제나라 사신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뿐이었다.

호영이 신호를 주자 두 명의 병사가 뛰어왔다.

“끌고 가라.”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감히 제나라의 사신인 나를 연행하려는 것입니까!”

그 말에 호영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두 병사들에게 빨리 끌고 가라는 의미가 담긴 눈빛을 보낼 따름이었다.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습니까! 안 그래도 북적들과 뜻을 같이하고 있다 의심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본국은 한국에게도 선전포고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 봐.”

“······!”

“어차피 네놈들이 하지 않아도 우리가 할 것이니 말이야.”

호영의 그 말에 제나라 사신은 충격을 받았는지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고 순순히 끌려갔다.

“웃기는 놈들이군. 삼국 동맹이 결성된 것을 알았다면 저자세를 취해서라도 회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지, 저런 태도를 보이다니.”

“원래 저런 놈들이야.”

4회 차까지 제나라와 나름대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중국인 특유의 오만한 태도는 아직까지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아마 이번에도 제나라는 호영을 추궁하는 식으로 압박함으로써 삼국 동맹에 내분을 일으키려 했을 것이다.

소국에 불과한 대한 제국이 감히 제나라와 적대하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하고 말이다.

“아무튼 이제는 알겠지? 우리가 박쥐처럼 간을 보려는 것이 아님을.”

“그래, 확실히 알았다. 한국이 우리와 뜻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아까 전, 신경전을 벌였다는 게 거짓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일 때문에 동맹이 더욱 공고해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청나라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인가.’

비록 삼국 동맹이 결성된 이후 지난 일을 잊기로 맹세한 두 나라지만 서로를 향한 감정이 아예 없을 수 없었다.

특히나 청나라의 경우 전쟁에서 얻은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더욱 감정이 안 좋을 터.

이제 삼국 동맹의 편에 서기로 결정을 내렸으니 청나라와의 관계도 청산해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청나라가 한국을 믿고 더욱 많은 군사력을 중국 전쟁에다 투입할 것이니 말이다.

“수르하치.”

“오랜만에 뵙습니다, 황태자 전하.”

호영은 곧바로 청나라의 사신, 수르하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수르하치는 억지로 지은 듯한 미소로 그에게 인사하였다.

“전쟁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나?”

“피해를 복구하는 게 제법 힘이 들어, 준비하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배상금이 조금만 줄어들었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이미 끝난 이야기를 또 하는군.”

“송구합니다, 황태자 전하.”

수르하치 역시 자신이 억지를 부렸음을 인정하는지 깔끔하게 사과하였다.

하지만 불만으로 가득해 보이는 얼굴은 여전하였다.

내심으로 한국과의 동맹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배상금을 줄이는 것은 절대 불가한 일이다.”

“······.”

“다만 동맹국으로서 군수물자를 지원해 주는 것은 가능할 것 같군.”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대신 북조선 용병 부대가 일선에서 활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북조선 용병 부대 말입니까? 저희야 오히려 좋으면 좋았지, 반대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데 북조선 용병 부대를 왜?”

“우리로선 통제하기가 쉽지 않은 군대라서 말이야.”

호영의 그 말에 수르하치가 반색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건 청나라 입장에서는 10만에 달하는 군사력을 얻는 셈이니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한 번 배신한 자들이 또다시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모양이군.’

하기야, 배신할 이유가 없기는 하였다. 한국과 청나라는 동맹 관계였으니 말이다.

물론 이 동맹 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한국이 이렇게 전향적으로 나올 줄이야. 황태자 전하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무뚝뚝한 반응만 보이던 수르하치가 크게 웃으며 그와 같은 말을 하였다.

그러자 호영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였다.

이 같은 호영의 태도에 수르하치가 더욱 반색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청나라와의 관계도 이제 어느 정도 회복했다고 봐도 괜찮겠군.’

수르하치는 친왕이면서 누르하치의 최측근이었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상 누르하치의 마음도 어느 정도 사로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호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나저나 아버님은 안 오시는군.’

박선후.

호영의 장인이자 경선의 부친인 그는 황태자 책봉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비록 게임이라고는 하나 딸의 결혼식인데도 그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아마 지금도 로열패밀리의 간부들과 대결을 하고 있지 않을까?

뭐, 사실 박선후가 참석하였다면 상황이 애매하기는 하였을 것이다.

그가 경선의 부친인 것은 사실이나 센추리에도 경선의 부친이 존재하였으니 말이다.

* * *

겨울이 되자 지금까지 없었던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삼국 동맹에서 동원한 병력의 수는 무려 80만.

그 어떤 나라도 동원할 수 없는 대규모 병력이 겨울이 되기 무섭게 순나라를 침공하였다.

순나라는 이미 삼국 동맹의 침공을 짐작하고 있었으나 예상보다 훨씬 많은 병력이 쳐들어오자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자 삼국 동맹군은 더욱 기세 좋게 남진하였고 순식간에 북경 주변이 초토화되었다.

물론 북경은 이중 삼중으로 포위되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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