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76화 (276/345)

# 276

#삼국 동맹

삼국 동맹이 결성된 그날부터 평화가 시작되었다.

길었던 전쟁이 마침내 끝난 것이다.

수십만에 달했던 청나라군이 썰물처럼 한반도에서 빠져나갔고 누르하치 역시 이 말만을 남기고 자신의 본국으로 돌아갔다.

“대한국의 황제께서는 언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실 의향입니까? 다음에는 황제 대 황제로 만나고 싶습니다.”

테무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남아서 호영과 대작을 하고는 본국으로 돌아갔다. 다음에는 중국에서 만나자는 말을 하고 말이다.

그렇게 몽골군까지 물러나자 제국 곳곳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우와아아아아!”

“대혼 황자 전하 천세! 천천세!”

모든 백성들과 군사들이 호영의 이름을 연호하였다.

그들의 눈으로 봤을 때 이번 전쟁은 승리한 전쟁이었다.

몽골과 청나라는 기세 좋게 쳐들어왔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호영은 연전연승을 거듭하여 청나라에게 큰 피해를 안겨 주었다.

삼국 동맹이 결성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번 전쟁이 한국의 승리로 끝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청나라로 끌려갔던 포로들이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100만이 넘는 전쟁 포로들이 한국으로 되돌아오자 한국의 승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그에 따라 호영을 탐탁지 않게 보았던 중앙군 장수들이나 고관대작들까지 호영을 지지하기 시작하였다.

불리했던 전쟁을 역전시킨 것은 호영의 공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얼마 뒤에 새로운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군. 그때는 나를 반대하려나.’

호영은 민심의 변화를 지켜보며 그 같은 생각을 하였다.

표면적으로야 청나라의 항복을 받아 내서 평화를 되찾아 냈지만 실제로는 청나라와 동맹을 맺은 상태였다.

그리고 청나라와 동맹한 이유는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곧 중국이라는 강적과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에 기뻐하고 있는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이 전쟁이 달갑지 않은 일일 터.

그를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병사들이나 백성들도 전쟁이 시작되기 무섭게 지지를 철회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중국과의 전쟁은 본국에서 치르지 않아 다행인 것 같습니다.”

충구의 그 말에 호영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모르는 일이지. 몽골과 청나라의 군대가 박살 난다면 그다음은 바로 우리니까.”

“설마 그들이 그렇게 쉽게 당할까요? 청나라도 청나라지만 몽골의 힘도 만만치 않아 보이던데.”

“중국은? 중국은 과연 만만할까?”

그 물음에 충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충구 역시 중국이 무시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센추리에서만큼은 중국이 세계 제일이다. 인구와 땅 그리고 무공까지 갖춘 나라니까.’

호영은 적어도 지금 시기의 중국은 세계 제일로 평가하였다. 회귀 전, 중국의 힘을 들어 본 적이 있는 호영으로선 당연한 평가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삼국 동맹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중국이 통일되었다는 가정하의 하나 된 중국이었다.

지금처럼 분열된 중국은 크게 두렵지 않다는 뜻이었다.

“우리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 제나라와 순나라의 동맹이 곧 이루어질 터. 순나라는 우리가 어찌할 방도가 없다지만 제나라만큼은 전쟁에서 배제시켜야 돼. 즉, 우리가 제나라의 후방을 괴롭혀 줘야 한다는 뜻이지.”

“구주의 사략 함대를 동원해야겠군요.”

“사략 함대뿐만 아니라 동원할 수 있는 함대는 모조리 동원해야 한다. 만주를 얻기 위해서는 적어도 강북을 점령해야 하니 말이야.”

한국은 해군으로 제나라의 후방을 괴롭히기로 이미 약조된 상태였다.

그러니 한국은 마음 놓고 약탈전을 벌이기만 하면 된다.

승리는 두 나라가 알아서 가져다줄 것이니 말이다.

“만에 하나 두 나라가 중국의 나라들을 압도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때는 당연히 발을 빼야겠지. 지금이야 동맹이라지만 그들이 우리의 적이었던 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아무리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기도 하는 것이 국제 외교라지만 호영은 지난 과거를 잊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기회만 온다면 청나라든 몽골이든 군사를 보내 병탄할 생각이었다.

“아무튼 전쟁 계획은 지금으로썬 이게 최선일 거다. 어차피 적이 누가 될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니 말이야. 지금 우리가 결정해야 될 것은 따로 있다.”

“어떤 것입니까?”

“황위. 즉, 내가 언제쯤 양위를 받는 게 좋을지를 결정해야 한다.”

“······!”

양위!

전쟁이 잠시 멈춘 지금 호영에게 양위만큼 중요한 것은 또 없었다.

누르하치가 했던 말처럼 이제 황위를 차지할 시점이 된 것이다.

* * *

수도로 금의환향하는 황자 대혼의 친위군을 향해 수만에 달하는 백성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황제가 환궁하였을 때도 보여 주지 않았던 환대였다.

그만큼 황자 대혼은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상태였다.

비록 전쟁에서 완전히 이기지는 못하였지만 우위에 둔 상태에서 강화 협상을 하였고 전쟁 포로도 돌려받기로 했으며 배상금까지 얻어 냈으니 민심이 지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으드득!

황자 대혼을 향해 함성을 보내는 백성들을 보며 고다 진은 이를 갈았다.

‘나 또한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군공을 세웠다. 그런데 어째서 민심의 차이가 이렇게나 크단 말인가!’

동부 전선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던 고다 진이었다.

그의 손에 죽어 나간 여진족의 숫자만 수천 명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 같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성은 동부 전선에만 국한될 따름이었다.

그가 지지하는 황자, 대방 또한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상태였고 말이다.

반면에 황자 대혼은 일본을 넘어 제국 전체에다 이름을 알렸다. 이제 누구도 대혼이 황태자가 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고다 진으로선 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와 상관도 없는 전쟁을 고다 가문의 사병이 반절 이상 죽어 나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속했던 것일까?

“민심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황태자를 책봉하는 것은 황제! 결국 황제의 마음만 사로잡으면 이기는 싸움이다!”

고다 진은 이를 갈며 그렇게 외쳤다.

실제로 그의 말처럼 황태자를 결정하는 것은 민심이 아닌, 황제였다.

황제의 지지만 얻어 낸다면 민심이 누구에게 향하든 간에 대방을 황태자로 추대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사건으로 대혼을 향한 분노가 절정에 닿았을 거다. 민심까지 대혼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면 황제를 설득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터!’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한 고다 진은 곧바로 황궁으로 향하였다.

본래였다면 일본인이 황궁을 오가는 것이 불가능했겠지만 그는 그냥 일본인이 아닌 황자 대방의 최측근이었다.

작위도 무려 자작이나 되었고 말이다.

어렵지 않게 황궁에 들어선 그는 황제에게 알현 신청을 하였고,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황제와의 독대 자리가 마련되었다.

‘황제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군!’

고다 진은 쾌재를 부르고는 한국의 예법대로 황제에게 절을 올렸다.

“왜별기장, 고다 진이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짐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황제는 평소와 다르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왔다.

고다 진은 그런 황제의 모습에 오히려 반색하고는 무릎을 꿇은 채 답하였다.

“소장의 활약으로 대방 전하께서는 이 나라의 전쟁 영웅이 되셨습니다.”

“······한데?”

“대방 전하를 황태자로 책봉한다고 반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 속히 대방 전하를······.”

“그만!”

갑작스러운 호통에 고다 진은 눈을 크게 떴다.

“······폐하?”

“지금 경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 대방을 황태자로 만들라니! 대혼이 있는데 어찌 대방을 황태자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냐!”

“하지만 폐하, 대혼 황자는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야망이 크고 손 속이 잔혹하며······.”

“어허! 네놈이 감히 짐을 능멸하려는 것이냐?”

“느, 능멸이라니,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짐이 인정한 황자를 모욕하고 있는데 그게 짐을 능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더냐!”

“소장은 그저······.”

“시끄럽다! 그따위 말을 하려거든 당장 꺼지거라!”

“······.”

예상치 못한 황제의 축객령에 고다 진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서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국에 자신을 내치려 하다니?

고다 진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황제는 이미 축객령을 내렸고, 지금의 그는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이미 황제는 대혼에게 굴복하기로 결정한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황제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고다 진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황궁을 나섰다.

“어이, 고다.”

그때였다.

황문을 나가려던 그를 누군가가 불러 세웠다.

“네놈들이 왜 여기에······?”

그를 불러 세운 사람은 슌지, 타로 형제였다.

일본 출신의 무장으로서 동부 전선은 물론이요, 서부 전선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운 바로 그 쌍둥이 형제 말이다.

“우리가 왜 황궁에 왔냐고?”

“그야, 너 때문이지.”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죽이 척척 잘 맞았다.

“나 때문이라고?”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개수작을 부리려 하잖아?”

“그러니 우리가 손봐 줄 수밖에.”

두 사람의 말을 들은 고다 진은 순간 움찔하고 말았다.

손봐 준다는 두 사람의 말에 섬뜩함을 느낀 것이다.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내가 황제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아낸 것인가? 허, 대혼의 정보력이 이 정도나 되었다니.’

황제가 왜 그렇게 대혼을 위하는 척 행동했는지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이미 황궁은 대혼에게 장악당한 지 오래였던 것이다.

그러니 황제도 대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

“나는 대방 황자의 수하다.”

“그래서?”

“네놈들이 아무리 대혼 황자에게 총애를 받는 장수들이라 해도, 나를 어찌할 수는 없을 텐데?”

“한국에 왔더니 샌님이 되었나 봐? 그 고다가 명분을 찾고 있다니 말이야.”

“뭣이?”

“네놈이 대방의 수하이든 황제의 수하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단지, 너에게 힘이 있는가 없는가뿐이야. 그리고 지금 너에게는 힘이 없지.”

“설마 나를 죽이기라도 하려는 생각인가?”

쌍둥이 형제는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섬뜩함을 넘어 소름 끼치는 미소였다.

“역할이 다했으니 죽어야지.”

“사냥개가 결국에 삶아지는 것처럼 말이야.”

고다 진은 다급히 보법을 전개하였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였으니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챙!

보법을 극성으로 전개하고는 그대로 타로에게 검을 휘두른 고다 진.

하지만 타로는 첫수에 당할 만큼 호락호락한 인사가 아니었다.

타로는 고다 진과 마찬가지로 A급 랭크의 초고수였던 것이다.

“나도 있다고!”

무엇보다 타로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와 동등한 실력을 가진 슌지가 그의 곁에 있었다.

“이 빌어먹을 것들이!”

선수를 쳤던 고다 진이지만 전황은 순식간에 불리하게 변해 갔다.

애초에 일대일이라면 모를까, 이 대 일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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