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73화 (273/345)

# 273

“······최대한 빨리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군중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전하!”

호영을 부르며 달려오는 사내의 정체는 정보 팀에서 활동하는 로열패밀리의 간부였다.

“무슨 일이냐?”

“참모들과 중앙군 장교 일부, 그리고 의병 지휘관 일부가 역모를 계획하였습니다!”

“역모라니? 나를 죽이려 했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황제의 명령을 받고 황자 전하를 암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참모들과 장교들은 유저가 아니었던가? 유저들이 황제의 명령에 따르다니?”

“지금 파악한 정보로는 황제가 굉장한 무언가를 약속한 것 같습니다.”

“권력이나 부, 명예 따위를 약속한 모양이군. 어쩌면 수뇌부는 이미 작위를 받았을지도 모르고 말이야.”

“로열패밀리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차별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여 황제의 말을 따르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어.”

간부가 들고 온 소식은 꽤나 놀라운 것이다.

군사 쿠데타, 즉 역모를 사전에 발각했다는 소식이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이길 것 같으니 이딴 개수작을 부리는 건가. 황제라는 자가 실로 치졸하기 짝이 없구나.”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직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토사구팽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호영의 목을 노리는 황제였다.

그것도 NPC들을 통해서가 아닌 호영이 예상치 못했던 유저들을 통해 호영의 목을 노렸다.

실로 치졸하고 간악한 양반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의 목을 노렸으니 자신의 목도 노려질 수 있음을 알게 해 줘야지. 황제가 자고 있을 때 옆에다 단검이라도 하나 놔두도록. 아니면 애첩의 침실에 고양이 사체 같은 것을 놔두든가. 무엇이 됐건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면 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

황제가 호영의 목을 노린다면 호영 또한 황제의 목을 노리면 된다.

물론 진짜로 황제를 죽이면 호영에게도 곤란한 일이 벌어지겠지만, 위협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당당하게 행동할 만큼 황제의 심장이 강심장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호영은 자칫하다간 내전으로 비화될 수 있었던 역모 사건을 순조롭게 처리해 나갔다.

하필 수준 높은 장교들과 참모들이 역모에 가담하여 귀한 인재를 다수 잃게 되었지만 꼭 보면 나쁘게 볼 일은 아니었다.

언젠가 배신할 자들을 유리한 전황일 때 정리한 셈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청나라군을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져, 아군의 기세가 주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황이야 유리하기 그지없다지만 여전히 청나라군은 결사 항전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래서 호영은 더욱 거세게 몰아붙여 청나라군을 완전히 몰살시키려 하였는데, 지휘관 일부가 숙청당하자 병사들의 사기가 엉망이 되고 말았다.

병사들이 다시 사기를 회복하기까지는 아마 며칠의 시간이 더 필요할 터.

호영의 입장에서는 절로 한숨이 흘러나오는 상황이었다.

군의 사기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청나라군을 몰살시키는 게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서걱!

하지만 호영은 점점 조급해져 가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적군을 베어 나갔다.

괜히 지휘부에서 답답하게 있는 것보다 직접 적군을 베어 조금이라도 아군의 사기를 끌어 올리려는 의도였다.

“전하! 뒤로 물러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적지 한복판에서 고강한 무공을 뽐내며 적을 베어 나가던 호영에게 로열패밀리의 간부가 말을 타고 달려와서는 급하게 외쳤다.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적의 지원군이 오고 있습니다!”

그 한마디에 호영은 지체 없이 아군 진영으로 물러났다.

아직 정보가 확인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그로선 괜한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적이 지원군이 올 것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고 말이다.

“어느 곳에서 온 지원군인지 파악했느냐?”

“5만에 달하는 이들은 팔기군 중에 양람기와 정람기에 소속되어 있는 정병인 것 같습니다만, 나머지의 경우는 깃발을 보고 판단하건대 몽골의 지원군이 분명해 보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몽골이라니. 일전에 우리가 보낸 사신이 한 이야기로는 몽골은 대한 제국과 원만한 관계를 희망하고 있다 하였는데 말이야.”

호영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더 많은 자본과 인재를 가지고도 외교력에서 밀렸다는 뜻인가.’

몽골을 지배하는 이들이 유저인 이상 외교 협상하는 데 있어 현실의 자금력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닌 말로, 외교 상대가 빈곤한 측에 속한 유저라면 1억이 안 되는 돈으로 회유하는 게 가능할 것이니 말이다.

솔직히 호영의 자금력이라면 설령 상대가 부유한 자라도 돈으로 회유하는 게 가능할 수 있었다.

북한의 김 위원장 역시 어떻게 보면 돈으로 회유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던가.

하지만 아쉽게도 몽골의 지배자를 회유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난 것 같았다.

성공했다면 몽골의 병력이 지금 이 시점에 한반도로 진입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적의 지원군이 도착한 이상, 전쟁을 단축시키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지휘부에 도착하자 충구가 침울한 기색으로 그렇게 말했다.

호영은 그런 충구를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전쟁이 이 이상 길어지면 5회 차는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가 된다.”

“소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공세를 취하기도 버거운 상황이지 않습니까?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장기전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방법이 없나?”

“······송구합니다.”

충구가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지만 사실 이번 건은 그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만약 황제가 암계를 꾸미지만 않았다면······ 아니 몽골을 어떻게든 동맹으로 회유하는 데 성공했다면 이미 누르하치는 패배를 인정했거나 포로로 잡혔을 터.

그러니 결국 충구의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만주에서 내려온 적의 지원군이 모두 합해서 10만 정도라고 했던가?”

“예, 그렇습니다.”

“저들을 전멸시킨다면 전쟁을 단축시킬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의 지원군이야 10만에 불과하지만, 머지않아 국경에 배치되어 있는 군사가 내려올 것입니다. 몽골과 동맹함으로써 더 이상 몽골의 공격을 방비할 필요가 없어졌을 것이니 말입니다.”

“후우, 방법이 없군.”

실로 난감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단순히 몽골의 지원군만 위협적인 것이 아니었다.

물론 5만에 달하는 몽골의 병력도 충분히 위협적이지만 그보다는 청나라의 후속 병력이 문제였다.

두 나라가 동맹함으로써 국경 방비에 여력이 생겼으니 더 많은 군사를 끌고 남진할 터.

남진하는 청나라군을 막다 보면 결국 전쟁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동맹을 구하는 수밖에 없나?”

“동맹이라 하면, 중국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애초에 동맹할 대상이 중국밖에 없지 않나. 뭐, 같은 중국이라 해도 제나라와 동맹할지, 오나라와 동맹할지 아니면 순나라, 양나라처럼 멀리 있는 나라들과 동맹할지를 결정해야겠지만 말이야.”

동방의 러시아는 솔직히 말해서 있으나 마나였고, 미국 같은 경우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도움을 얻기가 곤란했다.

7회 차나 8회 차쯤 되어 문명의 한계가 높아진다면 그때쯤 두 나라의 거리가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아무튼 러시아와 미국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나라는 중국밖에 없었다.

대만이나 필리핀도 있었지만 그들은 내부 문제만으로도 정신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중국과의 동맹도 썩 마음에 드는 선택은 아니지만, 지금으로썬 방도가 없다.’

4회 차가 끝날 무렵, 5회 차의 가상 적국을 중국으로 반쯤 확정지었던 호영이었다.

5회 차에는 어떻게든 중국으로 진출하겠다는 포부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니만큼 호영으로선 중국과의 동맹에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몽골과 청나라의 동맹이 기정사실화된 이상, 대한 제국으로서도 동맹을 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중국 역시 몽골과 청나라의 동맹을 경계하고 있을 것이니 지금까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해도 동맹이 성사될 가능성은 꽤나 높을 것이라 판단되었다.

“제나라와 동맹한다면 순나라와도 자연스럽게 우호 관계가 될 것입니다. 현재 두 나라는 혼인 동맹을 할 정도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쁘지 않은 일이로군. 순나라라면 몽골이나 청나라의 위협을 가장 경계하고 있을 것이니, 어쩌면 두 나라의 뒤를 쳐 줄 수도 있겠어.”

“예. 동맹만 맺을 수 있다면 저희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어 줄 것입니다.”

강북의 세 나라 중에 제나라는 산둥 지역의 쯔보시라는 곳에 도읍을 둔 나라였고 순나라는 장성 이남, 즉 북경 부근에 도읍을 둔 나라였다.

두 나라와 동맹을 맺을 수만 있다면 이번 전쟁은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이후가 문제겠지만, 일단 그 문제는 전쟁이 끝난 이후에나 고민하는 게 맞겠지?’

* * *

청나라 진영에 10만이라는 지원군이 도착한 이후로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적극적인 대공세를 펼쳤던 한국군이지만, 두 나라의 동맹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소모전을 이어 나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공격을 멈추고 수비에 집중하려는 모양새를 취했다.

반대로 청나라군 역시 반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기병의 숫자가 크게 늘어서인지 소극적이었던 기병들이 적극적으로 바뀌기는 하였지만 끝끝내 공세를 취하지는 않았다.

오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누르하치가 오고 있습니다!”

“옆에는 몽골의 대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해가 저물고 어둠이 찾아오는 그때, 청나라군의 진영에서 일단의 무리가 하얀색 깃발을 들고 한국군 측으로 넘어왔다.

눈이 좋은 병사의 보고대로라면 그 일단의 무리 안에는 청나라 황제 누르하치와 몽골의 대칸 테무르가 포함되어 있어 있었다.

두 나라의 지배자가 모두 한국군의 진영을 찾아왔다는 뜻이었다.

“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사신이라고 절대 죽이지 않으리라 판단한 것인가?”

호영은 멀리서 다가오는 100여 명의 기병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대칸 테무르 같은 경우야 얼굴을 알지 못해 깃발만 테무르의 것인지, 아니면 진짜 테무르가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누르하치는 확실하였다.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지 황제의 몸으로 적지 한복판에 찾아온 것이다.

“장수들에게 지시를 내려놓는 게 어떻겠습니까? 기회가 되면 테무르든 누르하치든 제거하라고 말입니다.”

“일단 한자리에 불러 모으도록.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충구가 물러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B랭크와 A랭크의 무위를 지닌 장수들이 호영의 곁으로 다가왔다.

“누르하치가 온 게 사실입니까?”

“테무르도 왔다던데······. 설마 저기 돼지같이 생긴 놈이 테무르인가?”

“그럴 리가. 몽골도 청나라처럼 전사를 추종하는 나라일 텐데, 저렇게 비대한 자가 어떻게 황제가 될 수 있겠어?”

일본 출신의 장수들이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그러던 중에 신라의 화랑처럼 수려한 외모를 가진 장수가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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