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69화 (269/345)

# 269

그로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자리를 사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전하! 소장이 왔습니다!”

각오를 다지며 삼형제의 공격을 막아 내던 호영에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친위 대장, 무휼의 목소리였다.

무휼의 등장에 잠시 싸움이 멈추자 호영이 무휼에게 물었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동문은?”

현재 남문과 서문은 위태롭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가끔 성 위가 적군으로 뒤덮인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황보훈이 이끄는 예비 병력은 주로 서문과 남문에 투입되었는데, 사실 동문이나 북문도 병력의 질 자체는 서문, 남문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숫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문, 북문이 다른 두 문에 비해 수월하게 적을 막아 내는 이유는 오직 하나, 절대 고수가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즉, 호영과 무휼의 존재로 그나마 팽팽한 공성전이 치러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호영과 무휼 둘 중에서 한 명이 자신의 자리를 이탈한다면 전황은 압도적으로 불리해진다.

당장에 동문이 함락되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이다.

“동문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2군단에서 보낸 지원군이 도착했습니다.”

“타로 사단장이 온 것인가!”

지원군이 왔다는 소식에 호영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비록 1만에 불과하고 그 병력이 수성전에 크게 도움이 안 되는 기병이라고 해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지원군의 존재가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만 해도 무휼이 호영을 도와주러 오지 않았는가.

“삼 대 일에서 삼 대 이가 되었군.”

그의 말에 삼형제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들 역시 무휼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 것이다.

하지만 기세가 주춤하였던 것도 잠시, 누르하치가 자신의 동생에게 명령을 내렸다.

“수르하치, 저자를 상대해라.”

“형님, 둘이서 괜찮겠습니까? 셋이서도 힘들었는데.”

“해 봐야지, 어떻게든.”

“알겠습니다.”

호영은 그런 누르하치를 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만주어로 이야기하는 터라, 대화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는 있었다.

누르하치가 단 두 명으로 자신을 상대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 명과 두 명의 차이는 무척이나 클 거다!’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호영이 보법을 전개하였다.

파바박!

순식간에 누르하치 앞에 다가가서는 공격을 재개하였는데 역시 수르하치가 없었기 때문인지 압박감이 아까만 못했다.

이 정도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후의 싸움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누르하치의 전신에 상처를 입히는 것에는 성공하였지만 끝끝내 치명타를 입히는 것에는 실패한 것이다.

‘이게 천재의 재능인가. 정말 엄청나군.’

나흘 뒤, 호영은 질린 기색으로 누르하치를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엄청난 혈전을 버리며 간신히 호영의 공격을 막아 내던 누르하치가 이제는 간간이 반격까지 가해 오고 있었다.

여유가 생겼다는 증거였다.

내공부터 시작해서 보법의 수준, 근력과 체력, 그리고 창법의 실력까지 모든 게 밀리는 상황에서도 팽팽하게 호영과 맞서 싸우는 누르하치.

물론 그의 곁에 무르하치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어찌 되었건 그의 실력 상승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호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된 이상 황제의 지원군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군······. 아니면 아예 종전을 맺든가.’

이제 호영도 단기간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였다.

그로서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도저히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하여 그는 동부 전선에 있는 노부카쓰가 전쟁의 흐름을 바꿔주든가, 아니면 후방의 남방군이 지원을 와 주기만을 기다렸다.

뭐, 마음 같아서는 일본에 있는 병력을 더 데려오고 싶었지만 그건 빌어먹을 일본 해방 전선이라는 단체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 * *

지지부진하기 그지없는 전쟁.

호영은 썩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정부에서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였다.

“보좌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요즘 전쟁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홍보 기획 보좌관, 정성원이 그의 악수를 받으며 그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회장님, 그런데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 겁니까? 이야기를 들어 봐서는 청나라가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만.”

“······.”

정성원의 질문에 호영은 표정을 굳혔다. 정부가 대한 제국에 간섭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전쟁이 조금 길어졌을 뿐, 결국에는 우리가 이길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강조하며 자신감을 표출하였다.

그러자 정성원이 흔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입니다. 역시 회장님과 로열 그룹의 힘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에 대한 제국이 청나라에게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한 제국이 곧 패망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회장님이 일본에서 대활약을 하여 대군을 이끌고 대한 제국을 위기에서부터 구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크게 감탄했습니다. 왜 인터넷에서 신 취급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는 저도 이해가 가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일본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던데, 아마 곧 있으면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성원은 마치 누군가에게 설명이라도 하는 것 같은 특유의 화법을 사용하며 호영을 칭찬하였다.

그의 얼굴은 여느 때와 같이 무표정하였지만 목소리는 미묘하게 높았다. 조금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호영은 그런 정성원의 모습을 보고 잠시 무안한 표정을 짓다가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런데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 중대한 일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어떤 일입니까?”

“북한과 관련된 일입니다. 북한이 회장님께 제안을 하나 해 왔습니다. 우리 정부를 통해서 말이죠.”

그 말에 호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뜬금없이 북한의 제안이라니?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안이라니, 그게 뭡니까?”

“지금 청나라군에 북조선 용병들이 많이 가담해 있지 않습니까? 북한의 김 위원장이 그 용병들을 대한 제국의 동맹으로 전향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을 전해 왔습니다.”

“······!”

호영은 눈을 부릅떴다.

모든 전장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것이 북조선 용병들이었다.

그들의 숫자는 10만이 넘었고, 보유하고 있는 장비 수준은 웬만한 국가의 정규군 못지않았다.

평주성에서도 북조선 용병들 때문에 많은 피해를 보고 있었는데, 청나라군이 사용하는 공성 병기와 대포는 모두 북조선 용병들의 것이다.

즉, 북조선 용병들은 대한 제국이나 청나라에도 얼마 보유하지 못한 대포를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만약 북조선 용병들이 우리 편이 된다면 이 전쟁, 무조건 이긴다!’

강력한 적이 강력한 아군으로 탈바꿈한다면 당연히 전쟁은 이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정성원에게 물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우리 편이 된답니까?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원한다고 했습니까?”

“날짜는 조금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직 쿠데타 준비가 끝나지 않아서······.”

“쿠데타요?”

정성원의 말에 호영은 눈썹을 찌푸렸다.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는 말은 용병 부대를 아직 장악하지 못했다는 뜻이잖아?’

순간,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잡자고 먼저 제안을 했으면서 정작 준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보인 이상, 북조선 용병 부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북한은 어떻게 쿠데타를 할 생각이랍니까? 저의 도움이 필요한 겁니까?”

“현재 북조선 용병 부대는 NPC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청나라의 지휘부와 흡사하게 말입니다. 그래서 유저들을 중심으로 쿠데타를 일으킬 계획인데, 회장님께서는 명분만 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명분요? 제가 어떤 명분을 주면 됩니까?”

“북조선 유민들을 위한 자치주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땅을 달라는 것이군요.”

“예. 그것이 북한의 요구이자, 쿠데타를 위해 필요한 명분입니다.”

호영은 고심했다.

쉽지 않은 요구를 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충격이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고민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일본의 큐슈 지역이 현재 이대 세습을 하며 독립국이나 다를 게 없어졌고, 본섬 역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고 있었지만 어쨌든 법적으로는 대한 제국의 영토였다.

황제에게 힘이 있다면 언제든지 지배를 강제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자치령이나 독립국으로 인정해 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는 호영이 황제가 되어 권력을 행사하더라도 지배권을 행사하는 게 쉽지 않았다.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호영으로선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지금은 전쟁에서 이길 생각만 하자.’

제법 길게 고민의 시간을 가졌던 호영은 이내 결단을 내렸다.

북조선에게 자치주를 주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물론 그 전에 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치주의 크기였다.

“만약 북한의 제안을 들어준다면 자치주의 크기는 어느 정도여야 북한에서 만족할 것 같습니까?”

“김 위원장은 한반도 북부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즉, 현실에서 북한이 차지하고 있는 영토 그대로를 갖길 원하고 있습니다.”

“······한강 이북 전체를 말입니까?”

정성원의 말에 호영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강 이북 전체라니. 그게 말이 되는가?

“북한에서도 무리한 요구인 것을 알았는지, 대신 로열 그룹이 북한에 진출하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확언하였습니다.”

호영으로선 그리 끌리는 제안이 아니었다.

현실에서 입은 손해를 센추리에서 만회해 준다면 모를까, 그 반대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기업가라면 생각이 달랐을 것이다.

북한은 자원이 많은 나라였고 회귀 전에는 이맘때쯤부터 중국에 의해 급속도로 발전하는 나라이기도 하였다.

만약 로열 그룹이 북한의 최고 권력자에게 비호를 받으며 사업을 할 수 있다면 엄청난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호영은 기업가가 아니었다.

로열 그룹의 회장직을 가졌지만 이 회장이라는 자리조차 그에게는 도구에 불과하였다.

센추리를 보다 원활하게 플레이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 말이다.

그렇다 보니 현실의 이권을 위해 센추리에서의 손해를 감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김 위원장도 앞으로 북한을 발전시키려면 현금이 필요할 텐데, 제가 그 돈을 지원해 주는 겁니다. 투자 형식으로 말입니다.”

“투자금이라······.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김 위원장은 자치주를 주지 않는다면 협상은 절대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호영은 인상을 찡그렸다.

회귀 전에도 3회 차인가 4회 차부터 센추리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던 북한이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어떻게 해서든 영토를 갖겠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그러면 이 방법밖에 없겠군요.”

“오, 방법이 있습니까? 어떤 방법입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