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
하지만 그런 오크도 호영의 공격에는 단 1초도 버티지 못하였다. 단숨에 목이 날아간 것이다.
‘오크들 때문에 기를 제법 쓰게 되겠군.’
단숨에 오크 하나를 죽인 호영은 무덤덤한 기색으로 자리를 이동하였다.
그가 향하는 곳은 오크의 숫자가 유난히 많은 지역. 아군이 조금이라도 밀리는 곳에 어김없이 찾아갔다.
총사령관으로서 지휘보다 전투에 힘쓰는 모습이었지만 병사들은 그런 호영을 보며 더욱 힘을 냈다.
워낙에 독보적인 무력을 가진 호영이다 보니 뒤에서 지휘하는 것보다 직접 전투에 나서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번 수성전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누, 누르하치가 올라온다!”
“모두 막아!”
하지만 그때 병사들이 당황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청나라의 황제 누르하치가 직접 성곽 위로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자신감이지?”
“전쟁을 최대한 빠르게 끝내고 싶었습니다.”
“나를 죽여서 끝내겠다는 건가? 뭐, 어찌 되었건 나로선 고마운 일이군. 알아서 죽으러 와 주다니 말이야.”
“그 자신감, 곧 후회하게 될 겁니다.”
누르하치가 비틀린 미소를 짓더니 그대로 호영에게 달려들었다.
부우웅! 부우웅!
그 역시 호영과 마찬가지로 창을 사용하였는데, 만만치 않은 창술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A랭크의 실력자가 확실한 것 같았다.
‘분명 4회 차까지만 해도 B랭크 정도에 불과했는데, 언제 이렇게 실력을 키운 거지? 더군다나 사용하는 무공도 예사롭지가 않아.’
겉으로는 여유롭게 피해 내는 호영이지만, 그의 속마음은 달랐다. 누르하치의 실력을 보고 경각심을 가졌던 것이다.
“무슨 창법이지?”
잠시 공격이 멈춘 틈을 타 호영이 물었다.
그러자 누르하치가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무진창법입니다. 청나라 황실의 창법이지요.”
“대단한 창법이더군.”
회귀까지 경험한 호영이지만 무진창법이라는 무공은 처음 들었다.
하지만 누르하치가 사용한 무진창법이 그의 대가창법 못지않은 상승 무공임은 꿰뚫어 보았다.
어쩌면 S랭크의 고수가 사용해도 손색이 없는 무공일 것 같았다.
‘그래도 보법이나 심법은 평범한 수준이네.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호영은 그렇게 잠시 동안 적의 실력이나 무공을 파악하다가 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이 싸움을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는 네가 막아 봐라!”
그 말을 내뱉고서는 보법을 극성으로 전개하였다.
누르하치는 보법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잠깐 호영의 신형을 놓쳤다가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 냈다.
내공이 가득 실린 공격이라 충격이 작지 않았는지 누르하치의 팔이 가늘게 떨렸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누르하치는 호영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의 실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뛰어난 것 같았다.
“쯧.”
혀를 찬 호영은 공격을 이어 나갔다. 전심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그러자 누르하치는 속수무책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반격은 꿈도 꾸지 못하고 그저 방어에만 집중하였다.
하지만 실력 차이가 너무 컸기에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힘에서도 밀렸고, 노련함에서도 밀렸다.
그는 결국 호영의 발을 맞고 균형을 잃고 말았다.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기회다!’
누르하치를 죽이기만, 아니 죽이지 못하더라도 치명상을 입히기만 한다면 이 전쟁은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고 싶은 호영의 입장에선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형님, 함께 싸웁시다!”
“저 무르하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간발의 차이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누르하치를 쏙 빼닮은 두 명의 사내가 갑자기 끼어든 것이다.
‘B+급 이상의 무인이 두 명이라······.’
두 사내의 도와 검에는 기가 자연스럽게 응축되어 있었다. 흔히 검기라 부르는 힘이었는데, 보통 B+급부터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B+급의 무인이 사용하는 검기는 두 사내의 검기처럼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검기의 색이 지나치게 진하거나 옅었던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의 무공은 B+급을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호영은 잠시 머뭇거리며 두 사람의 실력을 파악하다가 이내 과감하게 누르하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놈이! 우리를 무시하는 거야!”
“수르하치 형님! 방심하지 마십시오! 저놈, 우리보다 몇 수 위의 고수입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아무리 몇 수 위라도······ 헉! 뭐가 저리 빨라!”
그의 엄청난 속도를 보고 두 사람이 당황하였다.
하지만 B+급을 넘어서는 고수들답게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서는 호영의 공세에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누르하치도 벌떡 일어나 가세하였는데 호영은 순식간에 세 명의 고수들과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이래서는 승부가 나질 않는데.’
호영은 오른발을 살짝 떼면서 누르하치의 공격을 피해 내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세 명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고 잘 싸우고 있는 호영이지만 그 역시 버거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심법과 보법의 수준이 압도적이었고 창법 역시 A+ 경지에 있다지만, 상승의 무공을 A급까지 익힌 세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밀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전투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이 자식, 뭐가 이렇게 강해?”
“수르하치 형님! 빨리 오십시오. 입 열 시간, 없습니다!”
물론 버거움을 느끼는 것은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세 명이었지만 호영의 압도적인 실력에 반격은 꿈도 못 꾸고 있었다.
서로 막아 주고 지켜 주며 수비에만 집중함으로써 가까스로 버텨 내고 있는 것이다.
네 사람의 전투는 그렇게 장기전이 되어 갔다.
‘이렇게 된 이상, 체력전으로 가는 수밖에.’
호영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며 움직임을 조금씩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지구전을 노리려는 것이다.
그러자 삼형제는 호영의 체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였는지 간간이 공격을 시도하였는데, 당연히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호영의 매서운 반격을 받고 뒤로 밀리거나 상처를 입어야 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 점점 내 공격을 읽어 가고 있다.’
내공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까닭에 지구전을 유도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 판단했던 호영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얼굴은 굳어져만 갔다.
세 사람의 체력은 분명 떨어져 가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호영의 창법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온 힘을 다해 간신히 막아 내던 공격도 이제는 딱 필요한 힘만 써서 막아 내고 있을 정도였다.
“하아, 하아. 이제 좀 눈에 익는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의외로 공격이 단순합니다.”
누르하치의 말에 호영은 이를 악물고 맹공격을 퍼부었다.
그 공격에 세 사람은 아연실색한 얼굴을 하였지만, 결국 치명타를 입히는 것에는 실패하였다.
‘답답하군. 창에 조금만 더 내기를 실을 수 있었다면······ 아니, 창이나 발이 조금만 더 빨랐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결국 네 사람의 대결은 해가 지기 무섭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또다시 똑같은 전투가 반복되었다. 이번에도 세 명이 호영에게 달려들었던 것이다.
챙, 챙!
몇 번의 공방이 오갔지만 어제와 똑같이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마치 데자뷔를 보는 것 같았다.
호영은 이를 악물고는 창날의 기를 응집시켰다.
우우웅······!
이제 기의 형상이 일반인의 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해졌다. 검기보다 압도적으로 강해 보이는 힘이었다.
“거, 검강?”
“설마!”
수르하치와 무르하치가 경악을 한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자 누르하치가 버럭 외치며 호영에게 달려들었다.
“적이 변신하는데 뭘 기다리고 있어! 더 강해지기 전에 막아!”
하지만 누르하치는 그 말을 외치자마자 호영의 공격을 맞고서 뒤로 거칠게 튕겨 나갔다.
분명 공격을 막았지만, 검강이라 추측되는 기의 발현에 힘에서 밀리고 말았던 것이다.
‘역시 어설퍼. 진짜 검강이었다면 단숨에 창을 깨부수고 누르하치까지 죽일 수 있었을 텐데.’
B+랭크의 무인이 검기를 흉내 낼 수 있듯이, A+랭크의 무인은 검강을 흉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흉내는 어디까지나 흉내일 뿐, 실제 위력은 검기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였다.
엄밀히 말하면 기의 소모에 비해 효과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다. 그리고 저거, 검강 아니다. 아마 무리해서 사용하는 것 같은데, 기의 소모가 엄청날 거다.”
“그러면 일단 피하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유리할 테니 말입니다.”
누르하치의 모습을 보며 호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전투가 길어질 것이라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영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네 사람의 전투는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점심이 되자마자 재개되었다.
호영은 도망치는 누르하치를 어떻게든 제거하려고 하였지만 세 사람을 상대하느라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 불가능하였다.
결국 점심이 되어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세 사람과 다시 맞붙었고 이번에도 역시 팽팽한 접전을 치렀다.
하지만 접전이 길어지자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
호영이 처음으로 수세에 몰렸던 것이다.
‘벌써부터 나의 창술에 적응했다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군.’
새삼 천재의 재능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만약에 자신이 천재였다면 그 역시 이미 삼형제가 사용하는 창법이나 도법, 검법에 익숙해졌을 터.
아니, 애초에 준기처럼 깨달음을 얻어 S랭크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재능이 부족한 그는 자신보다 경험이 훨씬 적을 게 분명한 삼형제에게 낭패를 보고 있었다.
호영으로선 부족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재능에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끝을 볼 수 있겠군요.”
“······.”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뭐가 고맙다는 거지?”
“당신에게 많은 것을 배웠거든요.”
누르하치에게 무언가를 가르친 적이 없는 호영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그의 것을 몰래 배웠다는 뜻이니 말이다.
하지만 다시 이어지는 전투에 그는 불만을 표출할 수도 없었다.
갑자기 삼형제의 맹공이 시작되었는데 누르하치의 마지막 말이 정말 최후의 인사처럼 느껴질 정도로 맹렬한 공격이었다.
호영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어느덧 그는 공성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곳까지 밀려났고 적군과 아군은 그의 등장에 기겁한 얼굴로 도망쳤다.
병사들에게 있어 네 사람의 전투는 재앙이나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소가 협소한 터라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수십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싸움에 휩쓸리고 말았는데,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였다.
의병이든 남방군이든 간에 어느 정도 무공을 익혔겠지만, 고작해야 C급도 안 되는 실력들이었다.
A랭크의 싸움에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 이상 물러나면 안 된다.’
병사들이 삼형제의 손에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호영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병사들이 죽었다고 연민이나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대로 밀리기만 한다면 병사들은 사기를 잃을 것이고, 안 그래도 불리하기 그지없었던 수성전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패배할 것이 분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