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63화 (263/345)

# 263

“그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곧 있으면 구주의 지원군이 더 올 것이니.”

“······구주의 지원군이라고?”

“소자가 2만의 지원군을 불렀습니다.”

“어떻게 구주의 지원군을······?”

“나라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간절하게 설득하니 구주 총독이 직접 군사 지원을 약조하였습니다. 이 모든 게 우국충정의 발로가 아니겠습니까?”

“······.”

황제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설마 구주의 지원군까지 끌어들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4회 차까지만 해도 대한 제국의 직할령이었던 구주는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자치령 수준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심지어 구주의 총독은 이대째 세습되고 있었는데 외교권만 없을 뿐, 하나의 독립된 나라와 다를 게 없었다.

청나라와의 전쟁이 발발하고 지금껏 물자만 보내고 군사를 보내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구주는 대한 제국과 같은 민족이라는 소속감은 가지고 있어도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나 나라에 대한 애국심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운이 좋았지. 순현이 구주의 총독이 되다니.’

황제에 대한 충성심도 나라에 대한 애국심도 가지고 있지 않은 구주 총독이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군사 지원을 보내려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였다.

구주 총독 순신.

그가 로열패밀리의 일원인 순현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구주 총독의 지원군이 도착한다면, 소자에게 2만 명을 지원해 주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알겠다.”

“감사합니다, 폐하.”

호영은 결국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황제에게서 2만의 병력을 빼앗은 것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빼앗아서 결국엔 황위까지 빼앗으리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호영은 황제에게 말했다.

“그럼 출정은 이틀 뒤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일찍 출정한다는 말이냐?”

“적괴가 다시 전장으로 복귀하였는데 어찌 시간을 지체할 수 있겠습니까?”

“······너의 뜻이 그렇다면, 뭐 알겠다.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는 기운 빠진 목소리로 대꾸하더니 국방 장관 나병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짐은 머리가 아파서 이만 쉬어야 할 것 같으니 보급이나 작전에 관해서는 국방 장관과 상의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폐하.”

호영 때문에 여러모로 충격이 컸던 것인지, 황제는 파리한 얼굴을 하고는 대전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황제가 사라지고 나자 호영은 마치 대리청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황제의 역할을 대신하였는데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의 모습에 대소 신료 전체가 놀란 얼굴을 하였다.

제아무리 일본에서 영지를 다스리는 통치자로 몇 년을 살아왔다 해도 노회한 대소 신료들을 상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호영은 황제보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조정 회의를 주관하였던 것이다.

호영에게 적대적이었던 장차관들도 그런 호영의 모습을 보며 앞으로의 행보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일본 영주들한테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호영은 거느리고 있는 군사 수만 벌써 10만이 넘었다.

여기에 구주 총독까지 호영의 뒤를 받쳐 주고 있으니 호영이 황태자가 되는 것은 이제 명약관화해진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전시 상황에서 황태자가 황제보다 강력한 힘을 가졌다면 실권을 장악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즉, 그는 단순한 차기 황제가 아니라 언제라도 황제로 등극할 수 있는 이 나라 최고 권력자라는 뜻이었다.

권력의 흐름에 민감한 장차관들로선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같은 장차관들의 분위기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군부 전체로 확산되었다.

군부 장성들조차 호영이 대세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호영은 내지에서의 첫 데뷔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청나라를 무찌르는 것뿐이다.’

호영은 본격적으로 누르하치와의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청나라 황제, 누르하치

누르하치는 쓴웃음을 지었다.

“빈자리가 많아졌어. 전부 죽은 것인가?”

“······.”

“피해가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군.”

“송구하옵니다! 폐하!”

“죽여 주시옵소서!”

청나라의 장수들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였다.

한강 이남에서 패배를 거듭하던 청나라군. 보름 동안의 병력 피해만 무려 5만이 넘어섰다.

전쟁에 동원했던 총병력의 13퍼센트에서 14퍼센트 정도가 불과 보름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수르하치, 너도 패했다고 들었다.”

“혀, 형님.”

“너 때문에 죽은 병력만 1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지금 형님이라는 말이 나오느냐?”

“······송구합니다.”

평소 남다른 형제애를 과시하며 황제인 누르하치한테도 격 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수르하치지만 지금은 다른 장수들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자신도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말이다.

“후우, 이유가 무엇이냐? 이기고 있던 전쟁에서 갑자기 이렇게까지 밀리게 된 이유가 무엇이냔 말이다.”

“적군의 병력이 대규모로 증원되었습니다. 거의 15만 가까이 증원되어서······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인해전술로 밀렸다는 말이냐? 하지만 숫자는 아직 우리가 더 많은 것으로 아는데?”

누르하치도 전투의 결과가 어땠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전장으로 복귀하자마자 전투 결과부터 살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로써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다면, 적군의 숫자가 조금 증원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청나라군의 규모가 우위에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압도적으로 패배했냐는 것이다.

청나라가 이번 전쟁에 동원한 정예병의 숫자가 무려 30만이었다.

여기에 오크족으로 이루어진 오크 중장 부대가 10만이었고 북조선 용병 부대의 숫자가 10만이었다.

반면 대한 제국의 군사 수는 비정규군이 10만에서 15만 정도이고, 정규군이 10만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증원된 병력이 정규군 5만에 황자 대혼의 사병이 12만가량이었다.

즉, 전선에 나와 있는 대한 제국의 군사 수는 총합 40만 정도.

숫자로만 따지면 50만을 지휘하는 청나라 쪽이 압도적이었다.

결국, 인해전술로 인해 패배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는 뜻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일본에서 온 놈들이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무슨 이상한 방진을 쓰는데 보병이고 기병이고 놈들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한 방진?”

“총병들이랑 장창병들이 한 부대처럼 움직이는데 말을 타고 활을 쏘려 하면 조총으로 응사하고 기병으로 돌격하려 하면 장창 부대가 막아섭니다. 그렇다고 같은 보병으로 상대하려니 오크 부대는 너무 무식해서 안 되고, 북조선 용병들은 너무 질이 낮아서 안 됩니다. 우리 보병들도 그들에게 밀리는 것은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테르시오 방진인가 보군.”

“무슨 방진요?”

일본에서 넘어온, 그러니까 흔히들 황자의 친위군이라 부르는 일본 병사들은 청나라가 지금껏 상대했던 적들과 여러모로 달랐다.

특히 총병을 적극 활용한 전술을 사용한다는 것부터가 큰 차이였는데, 보병은 기병의 밥이라는 통설을 깨고 동등까지는 아니지만 크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전술이란 다름 아닌 15세기부터 유럽을 호령하던 스페인군의 테르시오 전술이라는 것이다.

이 전술은, 같은 보병을 상대로는 압도적이면서 기병 돌격에서도 상당한 저항력을 보여 주었다.

단순히 기병 돌격에만 저항력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었다.

청나라 특유의 스웜 전술에도 안정적인 대응이 가능하였다.

수르하치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말을 탄 채 활을 날리면 조총으로 응사했고 그렇다고 기병 돌격을 하면 장창병들이 문제였다.

훈련이 잘되어 있는 총병들은 기병들이 돌격하는 순간 당황하지 않고 파이크의 방벽 뒤로 숨었다.

결국 기병들은 4미터가 넘는 파이크의 방벽으로 달려들든가, 아니면 총탄에 두들겨 맞으면서 활을 쏘는 수밖에 없었다.

황자의 친위군이 전장에 등장하고 청나라군이 계속 밀렸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패배한 이유는 그것뿐인가?”

지금의 청나라는 100년 전처럼 스웜 전술에 완전히 의존하는 나라는 아니었다.

보병도 꽤나 많아졌고 병종도 훨씬 다양해졌다.

기병 활용이 제한된다면 보병을 활용하여 이겨 내면 된다는 뜻이었다.

“적의 무공 솜씨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공이라······.”

“원래 의병이라는 놈들도 무공 실력이 엄청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황자의 친위군에는 의병들보다 훨씬 대단한 실력을 가진 이들이 존재하였습니다.”

“고수들 몇 명 때문에 대회전에서 패배했다는 것이냐?”

“그냥 고수들이 아닙니다. 지고 있던 전투를 역전시키는 것도 가능할 정도의 고수들이었습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하기야 그 자신도 대단한 경지의 무인이었으니 한 명의 고수가 전장에서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책은? 몇 번이나 졌으니 대책을 마련했을 것이 아니냐?”

“뭐, 특별한 전략은 없습니다. 그래도 이제 형님, 아니 폐하께서 오셨으니 이긴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

“이놈이!”

퍽!

결국 참지 못하고 수르하치의 뒤통수를 때리는 누르하치였다.

하지만 수르하치의 말이 꼭 틀린 것은 아니었다.

누르하치는 청나라군의 병사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의 존재만으로 전군의 사기가 크게 오를 정도였다.

더군다나 누르하치의 친위군 역시 청나라의 최정예로서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수르하치의 말처럼 전략이나 전술을 바꾸지 않아도 승산은 충분해 보였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책이나 전략이 있기는 한데, 로열 그룹의 정보력을 생각해 보면 사용해 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군. 상대가 NPC라면 문제 될 게 없었을 텐데 말이야.’

센추리에서는 기책이라는 것을 성공시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1, 2만이 아닌 10만이 넘는 규모의 거대 전쟁이 치러질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단순히 무공이나 마법이 존재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유저들의 존재로 서로의 정보가 공유되기 때문에 기책을 세우기가 어려운 것이다.

보통 기책이라는 것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상대가 예상하지 못하는 꾀가 바로 기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센추리에서는 유저들이 존재하여 정보를 감추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지휘관부터 일반 병사, 백성들까지.

세상 곳곳에 유저들이 존재하였고 이들은 적의 잠재적 첩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보니 유저를 파악해 내는 스킬이 있지 않고서는 적의 이목을 차단시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게 기책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폐하, 폐하!”

누르하치가 앞으로의 전략에 대해 고심하던 그때 전령이 다급하게 뛰어들어 왔다.

“무슨 일이냐?”

“황자가 도착했답니다!”

“대혼? 그 대혼 황자가 왔다는 소리냐?”

“예! 3만의 병력을 이끌고 어제 부산진에 도착했습니다!”

“결국엔 그가 왔군.”

전령의 보고에 누르하치는 눈을 빛냈다.

그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상대가 마침내 전장에 섰다.

대한 제국의 정복자, 호영이 전장으로 온 것이다.

‘늦을 줄 알았는데, 그리 늦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이번 기회에 한번 겨뤄 봅시다. 누가 정복왕으로서 더 어울리는 사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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