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60화 (260/345)

# 260

서부는 전라도에서부터 밀고 올라가는 전선이었고 동부는 경상도에서부터 밀고 올라가는 전선이었다.

호영은 본래 후방에서 두 전선을 총괄할 생각이었지만, 그가 아무리 전쟁 경험이 많다고 해도 수십만이 격돌하는 전쟁을 원활하게 지휘할 자신은 없었다.

하여 서부나 동부 중 한 곳을 선택하여 친정하고 그가 선택하지 않은 전선은 세 백작 중 한 명에게 맡겨 역할을 분담하고자 하였다.

“아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전선으로 가든 간에 화합이 중요하다는 거다. 과거에 어떤 관계였건 지금은 같은 한국군이다. 내지에 있는 한국군 역시 같은 동료고 말이야. 그러니 사사로운 감정으로 화합을 해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 말에 장수들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호영은 장수들의 얼굴을 보면서도 안심하지 못했다.

같은 나라의 사람이라도 반목하고 분쟁을 일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아예 다른 나라 사람이라면?

대놓고 서로를 적대하는 일이 생겨날 수 있다. 심하면 주적을 앞에 두고 내전을 치르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사령관 자리가 중요하다. 나를 대신하여 전선을 담당하게 될 것인데, 출신이 다른 장수들도 노련하게 지휘할 수 있는 자로 임명해야 돼.’

과연 누구를 부사령관으로 임명해야 할까?

호영은 열띤 회의를 하고 있는 장수들을 바라보며 고심에 잠겼다.

#상륙하다

“의병장, 곽거병이 비상한 전술로 적병 수천을 죽였다고 합니다.”

한 대신의 말에 황제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곽거병이라······. 처음 듣는 이름인데 적병 수천을 죽이다니, 기특한 일이로구나.”

“······의병장, 곽거병은 한 달 전 적장 사이호달을 상대로 두 번 이기고 수백의 적을 죽인 공으로 관직까지 제수된 인물입니다.”

“짐이 전쟁으로 인해 정신이 혼망하여 미처 충신을 기억하지 못했구나. 그래, 다른 충의지사들은 모두 어떻게 하고 있느냐? 짐이 전국의 백성들로 하여금 분연히 청군과 맞서 싸우라고 선언하였는데.”

“적 수괴, 누르하치가 사라진 이후 전국에서 들려오고 있는 승전보의 대부분은 정규군이 아닌, 의병들과 백성들이 이루어 낸 승리이옵니다.”

“역시나 짐의 독려가 백성들에게 큰 힘이 되었구나.”

황제의 그 같은 발언에 대전에는 순간 기묘한 정적이 맴돌았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뻔뻔한 황제의 모습에 대소 신료 모두가 황당함을 느낀 것이다.

“다만 백성들의 피해가 날이 갈수록 커져 가고 있습니다. 부디 중앙군과 남방군을 파병하여 충청도의 의병들을 구원하시옵소서.”

“안 될 일이로다. 황실과 국가를 지켜야 할 병력을 어찌 충청도에 보낸다는 말이냐?”

“하나 청나라는 지금 후방에서 활약하는 충의지사들 덕분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기회가 없습니다, 폐하!”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경상도엔 남방군과 중앙군 일부가 집결해 있었다. 모두 합해서 10만이 조금 넘는 규모였다.

만약 이 병력이 의병들과 함께 청나라군과 맞서 싸웠다면 전쟁 양상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의병들 덕분에 전쟁을 유리하게 바꿀 수 있었던 기회가 적지 않게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황제는 자신의 목숨이 백성들보다 중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남방군과 중앙군을 경상도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 때문에 의병들은 정규군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청나라에 맞서 싸워야 했다.

당연히 결과는 좋을 수 없었고, 대한 제국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

“폐하, 어차피 부산은 곧 있으면 안전해질 것이옵니다. 일본에서 대혼 황자가 지원군을 거느리고 오시는 중이지 않습니까?”

“그렇사옵니다, 폐하, 이제 반격에 나서실 때입니다. 곽거병이 만들어 준 기회를 이렇게 놓칠 수는 없습니다.”

“적괴, 누르하치가 전장에서 사라진 지금이 바로 절호의 기회입니다! 부디 군사들에게 출정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폐하!”

대신들이 연이어 주장했다.

남방군과 중앙군을 동원하여 청나라를 치라고 말이다.

쾅!

하지만 대신들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던 황제는 옥좌의 팔걸이를 내려치며 외쳤다.

“기군망상 죄를 넘어 역적죄를 저지른 대혼의 병력이 무슨 지원군이란 말이냐! 짐은 역적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느니라!”

황자 대혼!

갑자기 공왕이 죽고 청나라와의 전쟁으로 정신없는 사이, 순식간에 일본을 장악하고서 마치 황태자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자였다.

당연하겠지만 황제의 입장에서는 대혼이라는 존재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비록 대혼이 거느리는 병력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보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혼은 황제가 거느린 군사력보다 많은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황자들 역시 그를 추종하고 있었고 말이다.

만약 대혼이 내지로 돌아온다면 그는 황제를 견제하는 것을 넘어 황위까지 위협할 수 있는 강력한 적수가 될 것이다.

황제로선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

그래서 그는 노성을 터뜨리며 대신들의 주장을 물리쳤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간에 대혼의 내지 진입만큼은 막아 낼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역적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제 폐하! 대혼 황자는 진실한 마음으로 일본 영주들을 설득하여 무려 15만의 군사를 끌어냈습니다. 충신이면 충신이지 역적이라 할 수는 없사옵니다!”

“맞습니다! 대혼 황자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대혼 황자는 그저 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컸을 뿐이옵니다!”

대신들이 앞다투어 이견을 내세운 것이다.

“짐의 함대를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게 반역이 아니라는 말이냐!”

대혼은 일본에서 끌어모은 군사들을 내지로 수송하기 위해 제국의 함대를 사용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제국의 함대를 사용하는데 황제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강정 사령관.

어째서인지, 황자 대혼의 지시를 따르게 된 강정이 자신의 함대를 이끌고 일본으로 이동하였다.

해군 사령관이라는 막중한 직책을 가진 자가 황제의 명령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황자의 군대를 수송하기 위해 이동한 것이다.

“설령 대혼 황자가 기군망상의 죄를 지은 게 사실이라 해도 결코 죄를 물어서는 안 됩니다. 대혼 황자는 15만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신도 그렇게 생각하옵니다. 마음이 급해서 폐하의 허락을 맡지 않고 함대를 사용한 것은 큰 죄가 맞지만, 그것보다 먼저 공을 생각해 주십시오.”

“이, 이놈들이 감히!”

만약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었다면 황제의 호통에 대신들은 겁을 집어먹고 고개를 조아리기 바빴을 것이다.

황제는 의심이 많은 절대 권력자였으니 말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반역’이 거론되는 살벌한 시기에는 더욱더 자중하며 황제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황제는 연이은 실정으로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더군다나 대혼이라는 강력한 계승 후보까지 존재하는 상황이었기에 그의 발언권은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황제는 고함만 지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신하들이나 황자 대혼에게 죄를 묻지 못한 것이다.

“황제 폐하.”

그때 대전에서 쥐 죽은 듯 숨죽이고 있던 이 황자, 대방이 황제를 불렀다.

“자중하라고 한 지가 언젠데 또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이냐?”

“소자, 전쟁에 나가고 싶습니다.”

“네놈이 지금 뭐라 했느냐? 전쟁에 나가고 싶다고?”

“예, 그렇습니다.”

대방은 며칠 전에 갑자기 일본에서 넘어왔다.

그것도 수천의 병력들과 함께 넘어왔는데 모두 일본 병사들이었다.

당연하겠지만 갑작스러운 일본식 군대의 등장에 황제는 물론이요, 대소 신료들 전부가 기겁하였다.

반란군이나 청나라군이 배를 타고 넘어온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군을 이끄는 사람은 이 황자 대방이었고, 대방은 ‘나라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급히 왔다.’라는 변명을 하였다.

결과적으로 봉금 명령을 어겼고 황제의 명을 어긴 셈이 되었지만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기특하다는 이유로 죄를 면해 주었다.

물론 그가 일본에서 데려온 병력은 모두 중앙군 소속으로 강제 편입되었고 말이다.

“미쳤구나. 감히 어전에서 헛소리를 하다니.”

“소자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폐하, 부디 소자를 한번 믿어 주시옵소서.”

황제는 인상을 찡그렸다.

안 그래도 충청도로 군사를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대신들과 대립하고 있었는데 대방 때문에 출정하는 것으로 의견이 완전히 넘어간 것 같았다.

그리고 중앙군과 남방군을 출정시키는 것은 대혼의 군대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황제를 호위해 줄 군대가 대혼의 병력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잠깐! 대방이 공을 세운다면 대혼을 견제할 수 있지 않을까?’

대방의 제안을 불쾌하게 여기던 황제는 이내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건 바로 대방을 대혼의 대항마로 만드는 것이다.

‘만약 대방이 청나라 놈들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우기만 한다면 황태자로 책봉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어.’

대혼이 제아무리 날고뛰어 봐야 이 나라의 황제는 그였다. 황태자를 책봉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뿐이라는 말이었다.

“자신 있느냐?”

“맡겨만 주십시오. 소자는 본섬에서 수많은 적을 베었습니다.”

“좋다. 너에게 그럼 1만의 병력을 주겠다. 물론 네가 일본에서 데리고 온 병력도 쓸 수 있게 해 주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아직 능력이 증명되지도 않은 대방에게 무려 1만에 달하는 병력의 지휘권을 준다고 하자, 국방 장관 나병관이 반대를 표명했다.

“폐하, 아니 될 말씀입니다. 강무관에서 수학하지도 않은 대방 전하가 어찌 1만의 병력을 지휘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부디 황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거두어 주시옵소서!”

나병관이 포문을 여니 대신들이 거들어 줬다.

그들 역시 대방을 믿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황제의 뜻은 단호하였다.

“이미 황명을 내렸거늘, 어찌 반대한다는 말이냐! 수천의 일본 병사를 수족처럼 다루던 대방이다. 1만을 통솔하는 것쯤은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나······.”

“시끄럽다! 대방이 안 된다면 대혼도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느냐?”

“······.”

황제의 억지에 대신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렇지만 억지를 쓰기 시작한 황제를 말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대혼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를 중심으로 반대를 표출했겠지만 아직 대신들 중에서는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마땅히 없었다.

“황제 폐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결국 대신들은 대혼의 군대가 내지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며 대방에게 1만의 군사를 내주는 것을 승인하였다.

대방은 득의의 미소를 지었고, 황제 역시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어떻게든 대방을 키워야겠어. 물론 너무 커지면 그건 또 곤란하겠지만 말이야.’

* * *

“오다 부사령관. 선발대는 준비가 끝났나?”

내지로 지원을 갈 병력은 무려 15만.

당연하겠지만 15만을 통솔하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특히나 이 15만의 병력 대부분은 일본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로열패밀리 안에서도 10만이 넘는 일본인을 통솔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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