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55화 (255/345)

# 255

하지만 애초에 조총은 일반 병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였기 때문에 C급 이하의 무인들을 잡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한계가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뭐 그건 어쩔 수 없겠지.”

“솔직하게 말해서 저는 조총에 한계가 있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총이 현대 무기처럼 강했다면 우리 무인들의 입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니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군.”

호영은 쓰게 웃었다.

회귀 전에는 7회 차쯤 되어서야 열병기를 사용했던 일본과 한국이, 회귀 이후에는 5회 차부터 열병기를 사용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양국의 무공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즉, 무인들의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조총을 감당할 수 있게 되어 열병기를 수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영주들의 경제력이 회귀 전의 일본 영주들보다 훨씬 여유로워졌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말이다.

‘무기는 계속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S랭크만 된다면 무기가 아무리 발전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터.’

S랭크가 된다면······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텐데.

호영은 새삼 자신의 부족한 재능에 환멸을 느꼈다.

“그런데 전하, 이제 슬슬 돌격 명령을 내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노부카쓰의 말에 호영은 시선을 정면에다 두었다.

정면에는 도야마와 이시카와를 다스리는 영주들, 아니 황자들의 연합군이 보였다.

3만이 조금 넘는 군사였는데, 이미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던 기병 부대는 총병들에 의해 전멸당한 상태였다.

남은 것이라고는 궁수 약간이 포함된 보병 전력뿐.

심지어 적군에게는 총병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총병만으로 기병을 전멸시킬 줄이야. 장창병은 애초에 필요도 없었군.”

“적군이 생각했던 것보다 약했습니다. 테르시오 방진을 사용하지 않을 거라면 한국군의 전술이라도 사용했어야 했는데, 이도 저도 아닌 전술을 사용했으니 말입니다.”

테르시오 전술.

그것은 현재 일본군이 주로 사용하는 전술이었다.

“뭐, 어쨌든 좋아, 쉽게 이긴다고 손해 볼 것은 없으니까.”

“그런데 전하, 돌격 명령은?”

“돌격 명령? 내가 앞장서겠다. 그러면 기병들이 알아서 따라오겠지.”

“전하가 선봉을 서신다는 말씀입니까?”

“이번 전투는 중요해. 모든 일본인들이 보고 있으니까. 그러니 나의 위엄을 보여 줄 필요가 있어.”

“그렇군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노부카쓰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노부카쓰를 보며 호영이 말했다.

“지휘는 경이 맡도록. 나는 지금 당장 적의 측면을 타격하겠다.”

“알겠습니다.”

압도적인 모습을 보일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무모하게 적의 정면으로 뛰어들 수는 없었다.

적군의 병종 대다수는 무려 4미터나 되는 장창을 사용하는 장창 부대였다.

마치 스위스의 장창 부대를 연상시키는 적의 보병 부대와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아무리 기병이 대단하다고 해도 피해가 클 수밖에 없을 터.

그래서 호영은 망치와 모루라는 작전을 사용하여 노부카쓰가 적을 붙잡는 사이, 적의 측면을 타격할 계획이었다.

만약 적군이 오다 백작의 병사들처럼 테르시오 방진을 사용하였다면 기병대로 공략하는 게 어려웠겠지만 황자들이 지휘하는 병사들이라 그런지 보병을 그저 기병들을 보조하기 위한 병과로 취급하였다.

하지만 기병은 이미 전멸하였으니 호영의 기병 돌격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돌격하라!”

콰아아앙!

그리고 이런 호영의 생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조총 부대와 궁수 부대 그리고 같은 병종인 장창 부대를 상대로 혈전을 버리던 적군은 측면에서 나타난 기병 부대의 공격을 무력하게 허용하였다.

그 결과, 호영은 순식간에 적군의 우군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이대로 적의 중앙을 타격한다!”

“우와아아아아아!”

하지만 호영은 적의 우익을 전멸시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미 적군의 기병 부대는 총병들을 상대로 무모한 돌격 작전을 벌여 완전히 전멸한 상태였기에 호영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쟁의 달인인 호영이 이 같은 호재를 놓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는 과감하게 적의 중앙을 향해 돌격하였다.

“막아! 막으란 말이다!”

장수로 보이는 이가 호영을 가리키며 다급하게 말했지만 최정예 기병 부대를 막을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이번에도 적군은 무력하게 측면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서걱, 서걱!

호영은 적진 한복판에서 엄청난 기세로 맹위를 떨쳤다. 적군이 긴 창을 이용하여 사방에서 공격을 가해 왔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일반 병사들의 공격으로는 그에게 상처 입히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쯤 되니 역시 도주를 하는군. 쯧. 그래도 황자들이라면 다를 줄 알았는데 말이야.’

적 중앙을 분쇄하며 종횡무진 하던 호영은 저 멀리 일단의 무리가 깃발을 버리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았다.

보나마나 할 것 없이 적군의 지휘부일 것이다.

“너희들의 우두머리가 도망치고 있다! 모두 항복하라!”

호영이 그리 외치자 기병들이 일본어로 외쳤다.

“적장이 도주했다!”

“투항해라!”

기병들의 외침에 적군의 기세가 크게 줄어들었다.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라고는 애초에 쥐뿔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적군이었다.

같은 일본인이라면 몰라도, 외지인에 불과한 한국의 황자들을 진심으로 지지하는 병사들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 보니 황자들이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듣자 기다렸다는 듯, 하나둘 무기를 내던지기 시작했다.

호영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병사들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주제에 무슨 황태자가 되겠다고 이 난리를 피운 것인지. 쯧쯧.’

감히 자신을 향해 군사를 동원한 황자들이 새삼 한심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항복하였다면 목숨은 살려 주었을 텐데······.”

다음 날이 되자 호영은 기병들만 이끌고 적을 뒤쫓았다. 보병은 뒤에서 노부카쓰의 지휘하에 천천히 따라오는 형태였다.

“적군을 발견했습니다!”

황자들은 어디서 군사를 끌어모았는지 그가 거느린 기병보다 조금 숫자가 많은 5천의 병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겉모습만 봐도 경계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한눈에 봐도 형편없는 오합지졸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급하게 근처의 백성들을 징집한 것이 아닐까.

“적이 혼란에 빠진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혼란에 빠졌다?”

“겁을 먹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호영은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기병 장교들에게 명했다.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장창병이 아닌, 단창을 든 오합지졸이다. 시간 끌 것 없이 지금 당장 돌격해라!”

“추웅!”

로열패밀리 멤버들과 노부카쓰가 보내 준 정예 기병들을 한 곳으로 모아 구성한 호영의 기병 부대.

훗날 황제의 친위대로 쓰일 기병 부대다 보니 정예함과 기세가 남달랐다. 별다른 작전이 없어도 저런 오합지졸 따위는 단숨에 쓸어버리리라.

콰아앙!

그리고 전투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다.

적은 단 한 번의 돌격으로 수백 명이 넘게 죽었고, 진열은 반쯤 붕괴되었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전멸 위기에 놓인 것이다.

‘마지막 발악이라 나름 기대했더니, 겨우 이 정도인가.’

솔직하게 말해서 함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상대는 함정을 펼칠 정도로 능력 있는 황자들이 아니었다.

그저 능력도 없는 주제에 남을 시기할 줄만 아는 무능력한 황자들이었다.

“이럇!”

호영은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이제 끝이었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이 전투를 끝내리라.

그가 전투에 나서자 적군은 더 이상 버텨 내지 못했다.

안 그래도 압도적으로 불리했던 전투였다. 여기에 호영까지 나섰으니 승산이 있을 턱이 없었다.

“적의 지휘부가 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도 그랬지만 줄행랑 하나는 잘하는군.”

호영은 입가를 비틀었다. 보면 볼수록 한심하게 느껴지는 자들이었다.

‘이번에도 내가 놓아줄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적도 이제 절망감을 충분하게 느꼈을 터.

그러니 그들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었다.

“쫓아라!”

추격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도주하는 적은 고작해야 수십 명.

반대로 추격에 나선 아군은 수천 명이나 되었다.

제아무리 도주의 달인들이라 할지라도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대국, 대보, 대부.”

마침내 적의 앞에 선 호영이 낮은 목소리로 세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세 사람이 크게 몸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미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달았는지 세 사람은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혼 형님이 아니십니까? 헤헤. 이렇게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흠흠, 아우야. 포위를 풀어 주지 않겠느냐? 그리고 대국이라니. 아무리 상황이 이렇다 해도 형님에게 반말해서는 안 되지.”

“소제는 형님에게 감탄하였습니다. 언제 이런 부대를 양성하였습니까? 역시, 황제가 될 능력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건네는 대보부터 이 와중에 형 행세하려는 대국, 그리고 아부를 떠는 대부까지.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듯,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는 군상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저놈들을 아바타로 선택하지 않아서 다행이군.’

호영은 새삼스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눈앞에 있는 황자들을 아바타로 선택하였다면 5회 차가 끝날 때 저들이 무슨 짓을 했겠는가?

어쩌면 4회 차의 대영이 양반으로 느껴질 정도로 망나니짓을 할 수도 있었다.

애초에 대영은 정치력이든 무력이든 간에 능력 하나는 대단했던 인물이라, 저런 한심한 인간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분명 너희들에게 항복을 요구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이나 말이야.”

“······.”

“그리고 이 말도 세 번 했지. 항복하지 않는다면 죽이겠다고.”

그 말에 대국이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아우가 형님을 죽인다니! 아무리 상황이 이렇다 해도, 네게 우리를 죽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호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까지도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상대의 모습이 그저 한심할 따름이었다.

“권리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나는 황제가 될 것이고 황제가 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될 것이니까.”

“······무엄한 놈! 황제 폐하께서 살아 계시거늘, 어찌 그런 불경한 말을 한단 말인가!”

“황태자가 되겠다고 아우를 기습 공격했던 자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이익!”

“더 할 말이 없으면 이제 그만 죽어라.”

“정말 나를 죽이겠다고? 나를 죽인다면 황제 폐하께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황제가 나를 공격한다면 나 역시 황제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미친놈!”

서걱!

“히익!”

“진짜 죽였어!”

호영은 자신의 말을 지켰다. 형제인 대국의 목을 벤 것이다.

그러자 대보가 다급하게 외쳤다.

“형님, 대혼 형님! 이럴 수는 없습니다!”

“뭐가 이럴 수 없다는 거지?”

“형님께서는 황태자가 되려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저희를 죽이면 아무도 형님을 지지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지지자가 없으면 황태자가 될 수도 없을 것이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인간 망종처럼 한심하기 그지없는 자들이라 해도 그들은 고귀한 황자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