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53화 (253/345)

# 253

기운 없이 말하는 황보관의 모습을 보며 호영은 쓰게 웃었다.

‘실의에 빠질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고작해야 B+ 정도에 불과했던 황보관이 5회 차가 되기 무섭게 A급의 실력을 보여 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호영의 경우는 황보관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4회 차 때의 실력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마치 A+가 한계라는 듯, 그의 실력은 정체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호영은 황보관이 느끼는 절망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찌 되었건 성장을 하고 있는데 무슨 절망감을 느낀단 말인가.

호영은 잠시 정체하고 있는 자신의 무공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젓고는 황보관에게 말했다.

“너라면 머지않아 A+급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S급이라, 가능할까요?”

“너의 재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흐흐흐, 전하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 이거 정말 기분이 좋은데요?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느껴집니다.”

“그러니 절망스럽다느니, 자존심을 잃었다느니 그런 헛소리는 그만둬라.”

“헛소리는 아니었는데······. 쩝, 알겠습니다.”

“지금 신분이 공왕의 호위 무사라고 했지?”

“예, 뭐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

“공왕을 죽여라.”

“······!”

그 말에 황보관이 눈을 크게 떴다.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특유의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공왕을 죽이는 것은 저도 리스크가 작지 않은 일인데······ 죽이면 저에게 뭐가 떨어지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다른 멤버들은 속으로 보상을 바랄지언정 결코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저 지시를 충실하게 따를 뿐이었다.

그러나 황보관은 달랐다. 솔직한 성격이라 그런지, 요구할 사항이 있다면 대놓고 요구했다. 지금처럼 말이다.

“영지와 작위를 주겠다.”

“흠, 지금 저의 처지를 보면 그렇게 끌리는 제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럼 뭘 원하지?”

호영이 인상을 쓰며 말하니, 황보관도 찔끔하였는지 살짝 목을 움츠리고는 말했다.

“일단은, 저를 좀 중하게 써 주셨으면 합니다. 공왕의 일개 호위 무사로 있다 보니 조금 답답한 점이 많았거든요.”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군.”

“그리고 만약 청나라와 붙고 청나라의 땅을 갖게 된다면 그곳의 영지 좀 나누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영지와 작위는 필요 없다면서?”

“일본에서는 그렇습니다만, 만주나 중국에서는 또 다르지 않겠습니까, 흐흐.”

그 대답에 호영은 픽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네가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어떤 활약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에도 전쟁 영웅이 되라는 말씀이시군요. 뭐, 알겠습니다. 저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뭔가 믿음직스럽지는 않은 얼굴이지만, 호영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신의 무력과 지력을 겸비한 그라면 믿어도 좋을 터였다.

“아, 그런데 전하, 저 이번 회 차에서는 황보훈입니다. 앞으로 황보훈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전하.”

황보관, 아니 황보훈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공왕을 암살하러 떠나려는 것이다.

‘나는 모리야마 남작이나 죽이러 가야겠군.’

#청나라의 침공

공왕 암살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황보훈이 나흘도 채 지나지 않아 공왕을 죽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공왕의 죽음이 일본 전역에 알려지자, 본격적인 난세가 시작되었다.

황제의 명으로 영주들과 황자들을 견제하던 공왕이 죽었으니 영지를 가진 세력가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하나······.’

바라던 대로 난세가 시작되었으나 호영은 기뻐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한반도의 상황이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다급하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열 그룹의 대회의실.

호영은 작전 회의가 진행되는 대회의실에 와 있었다.

그의 정면에는 전광판이 있었는데 실시간으로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함흥에서도 북조선 유민들이 대거 반란을 일으킴!

덕천, 20,000의 청나라 기병과 5,000의 북조선 유민들에 의해 함락!

청나라 기병들이 평양을 포위 중! 위기 상황!

전광판에서 올라오고 있는 글들은 센추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즉, 덕천이 함락되고 평양이 위기에 처했다는 저 글들이 지금 센추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내가 돌아가기 전까지, 대한 제국이 버틸 수 있을까?”

호영의 물음에 대회의실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전황이 그만큼 절망스럽다는 뜻이었다.

불과 일주일.

전쟁이 발발하고 고작해야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대한 제국은 국가 멸망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 상태에 빠졌다.

아직 남아 있는 군사 수가 적지 않았지만 무능한 황제로 인해 유능한 장교들이 대거 숙청당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황제는 아직까지도 정신을 못 차린 채 청나라와의 화의를 논하고 있었다.

그것도 부산으로 몽진한 상태에서 말이다.

무능한 황제, 주력군의 패배, 북조선 유민들의 반란까지 이어지자 상황은 지독하리만치 절망스럽게 바뀌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내지로 돌아갈까? 비록 황태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전쟁을 잘 이용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일을 너무 벌인 상태야. 지금 돌아가면 일본이 위험해져.’

난세가 시작되어 전국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일본이었다.

이전의 영지전처럼 형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전쟁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갖거나 모든 것을 잃는, 진짜 전쟁이었다.

제아무리 호영이라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방심했다가는 통일 일본을 보게 될 수도 있었다.

영웅이 난세를 만들기도 하지만 난세가 영웅을 만들기도 하는 법이니 말이다.

그리고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한반도를 되찾는다 해도 아래에서는 일본, 위에서는 청나라라는 두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된다는 뜻이다.

“다행히 제국의 황제가 부산으로 몽진을 가서 최소 한 달 이상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충구의 위로에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걸 다행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그건 그렇습니다만. 제국의 황제가 포로로 붙잡히거나 전사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호영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위엄은 땅에 떨어지고 신망도 잃겠지만 어쨌든 적의 손에 붙잡히는 상황보단 백 배 천 배 나았다.

호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한 제국이 이렇게 무력한 나라로 바뀔 줄이야. 인구도 늘어나고 경제력도 크게 향상해서 강국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황제의 영향이 크지 않습니까? 전시에 지휘관들을 바꾸고 유저들을 탄압하며 몽진을 하여 사기를 떨어뜨렸으니. 뭐, 해군의 비율이 늘고 육군의 비율이 줄어든 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북조선 유민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북조선 유민들이 대거 반란에 가담하니 병력의 숫자에서도 오히려 밀리게 되지 않았습니까? 더군다나 북조선 유민들 중에는 포수의 비율이 높아 화력에서도 밀렸습니다.”

충구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원재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북조선이 무너진 이후 줄곧 대한 제국의 백성으로 살아왔던 북조선 유민들이 갑자기 청나라에 동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에 가담한 북조선 유민들의 숫자는 무려 10만.

이 중에서 조총을 사용할 줄 아는 총병의 숫자는 2만, 무공을 사용할 줄 아는 무인의 숫자는 1만이었다.

심지어 북조선 유민들은 대포를 보유했고 전문적인 포병 부대가 존재하기도 하였다.

아무리 대한 제국의 국력이 강성해졌다지만 총병 2만과 무인 1만 여기에 포병 부대까지 포함된 10만에 달하는 반란군은 결코 만만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하물며 청나라의 침공까지 받았으니 더욱 막아 내기 어려웠을 터.

“애초에 청나라 자체의 국력도 대단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이번 사태는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회 차까지만 해도 자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잘 훈련된 다수의 궁기병밖에 없었던 청나라지만 5회 차의 청나라는 잘 훈련된 궁기병을 포함하여 오크 중장 부대, 무인들로 이루어진 특수부대와 다수의 중기병까지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인구도 결코 작지 않아 다 합해서 1,500만이 넘었는데, 몽골과 러시아와의 교역으로 경제성장까지 거두었다.

대한 제국의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하더라도 청나라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때 김성근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끼어들며 말했다.

“그런 말들을 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적은 이미 쳐들어왔고 우리는 밀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과거 이야기는 그만두고 대책이나 세웁시다.”

그러자 회의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침울했던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밝아진 것이다.

간부들은 다시 열띤 어조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일단 준비하고 있던 의병 부대를 출정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후방을 괴롭혀 주면 청나라도 남진하기가 까다로워질 것입니다.”

“예전에 요동국을 상대로 했던 전략처럼 소수의 특수부대를 적의 수도에 보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동맹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국의 전력이 압도적인 것은 마법이 유일하니 보다 적극적으로 마법을 사용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간부들의 모습을 보고 호영도 기운을 되찾았다.

절망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었지만 아직 희망은 있었다.

북방군이 전멸하였고 중앙군도 절반 이상이 날아갔지만 아직 그에게는 로열패밀리라는 패가 남아 있었다.

“강 이사, 로열패밀리의 전력을 총동원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지금 대한 제국의 군사력으로도 최소 한 달은 버틸 것이니, 로열패밀리를 동원한다면 반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년이라······.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

솔직히 그렇게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다. 무려 본섬 전체를 장악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본섬을 장악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황태자로 인정받고 또 청나라를 상대할 군사력도 만들어야 했다.

그러니 반년이라는 시간은 부족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하지만 호영은 한다고 말했으면 꼭 하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공왕이 사라졌으니 더 이상 나를 방해할 요소는 없다. 김성근이나 준기처럼 일본에 있는 유저들을 총동원하여 최대한 빨리 혼슈를 통일시켜야겠어.’

지금까지는 어그로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세력을 확장하였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대놓고 세력을 확장해도 그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일본에 있는 로열패밀리들에게 전해라. 지금 바로 움직이라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세력을 키우기 위해 황자라는 명분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용할 수 있는 건 모든지 이용해라. 다른 황자를 지지한다고 선언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나중에는 나 혼자 남게 될 것이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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