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
저벅저벅.
그때 노부카쓰가 말에서 내리고는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조금씩 오가키성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노부카쓰가 멈추어 선 곳은 오가키성에서 불과 50미터 떨어진 공터. 활과 조총을 쏘면 노부카쓰를 죽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 거리였다.
하지만 장수들과 병사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코앞으로 다가온 노부카쓰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 누구도 호영에게 공격하자고 조언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노부카쓰에게 완전히 압도당한 분위기였다.
호영은 그런 장수들의 모습을 보고 조소를 짓고는 돌연, 성 위에서 뛰어내렸다.
“저, 전하!”
“아니, 이게 무슨?”
병사고 장수고 가릴 것 없이 기겁할 때, 성 아래에 착지한 호영이 성큼성큼 노부카쓰에게 다가갔다.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둘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오다 백작 가문의 차남 오다 노부카쓰가 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쿵!
그 순간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공격이라도 할 것처럼 기세등등하던 노부카쓰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오랜만이군.”
“100년 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성 위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와 다를 게 없었지만 두 사람은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였다.
오다 노부카쓰.
지금까지 호영과 로열패밀리 일부를 제외하면 아무도 몰랐던 사실이지만 그는 사실 유저였다.
그것도 100년 전에 야마토 제국의 황제로 군림하였던, 일본 유저들의 전설 오다 노부히데였다.
지금 노부카쓰가 호영에게 무릎을 꿇고 주군을 대하듯 행동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오다 노부히데는 4회 차 때 이미 호영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니 말이다.
“병력의 장악은 다 끝났나?”
“어제부로 완벽하게 장악하였습니다.”
노부히데, 아니 노부카쓰는 오가키성으로 진격하기 이전부터 이미 호영과 함께 행동 방침을 정해 둔 상태였다.
호영이 오가키성의 내정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 바로 그 행동 방침 중 하나였는데 노부카쓰의 행동 방침은 자신이 지휘하는 원정군을 장악하는 것이다.
즉, 지금 노부카쓰가 이끌고 있는 1만 2천의 군세를 오다 백작이 아닌, 그의 명령을 따르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뜻이다.
“반대하는 이들은 어떻게 했지?”
“죽였습니다.”
“현명한 선택을 했군.”
노부카쓰의 대답에 호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들어 보니 노부카쓰 역시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한 것 같았다.
“나 역시 오가키성을 완벽히 장악했다.”
“그렇다면 북쪽은 더 이상 경계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그래. 이제 백작이 바뀌어도 우리를 도발할 수 있는 세력은 없을 거야.”
“있어도 우리를 감히 어찌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저와 전하가 힘을 합쳤으니 말입니다.”
4회 차 때도 두 사람의 시너지는 무시무시하였지만, 5회 차에서도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특히나 두 사람의 계획이 성공하여 노부카쓰가 오다 백작 가문의 주인이 된다면 명분과 실질적인 힘을 동시에 갖게 된다.
그야말로 본섬 제일의 세력이 된다는 뜻이었다.
“이제 슬슬 움직이도록 하지. 오다 백작이 눈치채면 골치 아파질 것이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회군 명령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도 출정 명령을 내리겠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잠깐의 대화를 끝마치고 자신들의 진영으로 되돌아갔다.
“황자 전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오다 노부카쓰와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것입니까?”
“출정 준비를 해라.”
“예?”
“출정 준비를 하라고 했다.”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고서 강압적으로 지시만 내리는 호영을 보며 정탁이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하지만 오다 노부카쓰조차 호영을 따르는 상황에서 그가 호영의 지시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정탁은 일그러진 얼굴로 호영의 명령을 받들었다.
그렇게 정탁에게 출정 명령을 내린 호영이 이번에는 무휼에게 지시를 내렸다.
“경은 이곳, 오가키성을 지키도록.”
“친위대장으로서 전하의 곁을 비울 수 없습니다.”
“내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경밖에 없다. 그러니 경이 이곳을 지켜야 해. 이곳은 나의 근거지니까.”
“······어떤 이유로든 전하의 곁을 비울 수 없습니다.”
“명령이다.”
“······.”
잠시 주저하던 무휼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명을 받들었다.
“전하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호영은 그런 무휼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에게 했던 말처럼 호영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무휼뿐이었다.
유일하게 신뢰하는 사람이기에 역설적으로 오가키성에 남겨 두어야 했다.
북쪽의 영주들과 황자들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나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무휼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그리 말한 호영은 병사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출정하라!”
“충!”
성문이 열리며 오가키성의 총병력 5천 중, 절반 이상인 3천의 병사들이 문밖으로 튀어나왔다.
최선두에는 호영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고귀한 황자가 선두에 섰기 때문인지 오합지졸이었던 병사들이 꽤나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물론 그 당당한 기세도 오다군이 접근하자 급격하게 사그라졌지만 말이다.
어쨌든 오가키성에서 마주한 두 세력의 군대는 동맹군이라도 되는 것처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최선두는 호영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며칠 걸렸지?”
“군권을 장악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여 오륙일 정도 걸렸습니다.”
“그렇다면 돌아갈 때는 이틀이면 충분하겠군. 내일 오후에는 당도할 수 있겠어.”
“······저희 오다 백작의 군대는 괜찮겠지만 전하의 군대는 조금 힘들지 않겠습니까?”
노부카쓰가 뒤를 힐끔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민감한 문제였기에 나름 조심스럽게 말한 것이다.
하지만 호영은 자신의 병사들이 오합지졸 취급받는 것이 개의치 않는지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뒤처지는 자들은 버리면 된다.”
“전하의 뜻이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속보를 명하겠습니다.”
그렇게 호영의 명령으로 강행군이 시작되자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낙오자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이 오가키성의 병력들이었다.
하지만 호영은 노부카쓰에게 말했던 대로, 낙오자가 나오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진군할 따름이었다.
다음 날이 되자 십 단위를 넘어 백 단위의 낙오자가 생겼다. 그의 병력은 3천에서 2,500으로 확 줄어들었는데, 그는 여전히 태연자약하였다.
어떻게 보면 적지 한복판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에도 두려움이 없는 것 같았다.
‘노부카쓰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이곳에서 나를 배신할 이유는 없다. 뭐, 배신한다 해도 A-의 실력으로는 나를 어찌할 수 없을 것이고 말이야.’
자기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기에 당당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청주성이다!”
낙오자가 500을 넘어 800이 되어서야 마침내 오다 가문의 본성, 청주성에 도착하였다.
오가키성에서 출발한 지 불과 하루하고 6시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공격하라!”
“공성 병기는 필요 없다! 성문이 저절로 열릴 것이다!”
청주성에 도착한 두 사람은 지체할 것 없이 병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청주성에서 반응이 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성문이 열린 것이다.
“우와아아아아아!”
자동으로 열린 성문을 보고 병사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갔다. 벌써 승리했다는 생각에 기세가 등등하였다.
하지만 청주성 내부는 아직 저항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노부카쓰가 장악해 놓았던 성문은 청주성 북문뿐.
나머지는 전부 오다 백작이나 오다 백작의 장남을 지지하는 이들이 지키고 있었다. 물론 내성도 마찬가지였다.
“공성전은 건너뛰었지만 시가전이 만만치 않군.”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날 것입니다.”
“우리가 나선다면 더 빨리 끝나겠지.”
호영이 그리 말하자 노부카쓰가 씩 웃었다.
“가자.”
“예.”
두 사람은 그렇게 창과 검을 손에 쥔 채 적지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팽팽하던 싸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오다 백작의 군세가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다 노부카쓰! 지금 뭐 하고 있는 것이냐!”
“왕위를 계승 중입니다, 아버님.”
“뭣이?”
노부카쓰가 어디에서 본 듯한 대사로 장난스럽게 대꾸하니 오다 백작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노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화를 내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오다 백작 가문의 친위 기사들이 잠시 활약하기도 하였지만 그들은 어디선가 나타난 칼잡이, 아니 창잡이들에게 순식간에 격퇴당하였다.
병사들은 아예 창을 거꾸로 잡고 노부카쓰의 편에 서기 시작했고 말이다.
“멍청한 것! 가만히 있어도 너에게 후계를 이어 주었을 텐데, 어찌 이 같은 만행을 저지른 것이냐!”
“아버님은 너무 건강하십니다. 만약 저에게 후계를 이어 주신다 해도 4년 안에 이어 주지는 않았을 것이지 않습니까?”
“······!”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아버님, 이만 항복하세요. 편안한 노후는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오다 백작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그런 오다 백작을 보며 노부카쓰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 승리하였다. 본섬 중부의 패자, 오다 백작 가문의 주인이 된 것이다.
“축하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백작 가문의 일개 차남에서 백작 가문의 주인으로 변신한 노부카쓰에게 호영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노부카쓰가 변심할 것을 조금도 우려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만에 하나 노부카쓰가 변심한다면 호영의 신변도 위태롭기 짝이 없을 것인데 말이다.
‘오다라면 겨우 백작가를 집어삼킨 것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대륙 정도는 되어야 만족을 할 터. 그러니 나를 배신하지는 않을 거다.’
일주일 뒤, 노부카쓰는 오다 백작 가문의 가신들과 내빈들을 불러 모으고는 이 같은 선언을 하였다.
“나, 오다 백작은 앞으로 대혼 황자 전하에게 충성을 바칠 것이다!”
노부카쓰는 그렇게 공식선상에서 호영을 지지하겠노라 선언하였다. 호영이 기대했던 대로 대한 제국의 이인자가 되어 대륙으로 진출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 * *
일본 중심지에서 오다 노부카쓰가 호영에게 지지 선언을 하였다는 소식에 야심가들의 엉덩이가 크게 들썩거렸다.
단순히 영지전에서 승리한다면 상대의 영지나 금화를 빼앗을 뿐이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황자를 황태자로 만든다면 제국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것도 가능하였다.
대한 제국의 실력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 귀족들은 노부카쓰를 따라 하려는 생각으로 자신과 뜻이 맞거나 허수아비로 세울 만한 황자들을 찾기 시작하였다.
물론 반대로, 황자 본인이 지지자를 찾아내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에 있는 황자들이 모두 대혼처럼 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의 황자들은 영지의 기반이 탄탄하였고, 또 몇몇의 황자들은 내지의 실력자들이 금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지원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은 황제의 견제를 우려하여 쥐 죽은 듯, 조용하게 영주 생활을 하였지만 황위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더 이상 가만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