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
#영주, 대혼
대한 제국의 황제, 대균이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하하하하!”
갑작스러운 황제의 광소에 신하들은 두려운 얼굴을 한 채 고개를 조아렸다.
그가 제위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대신들은 황제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한 제국이 건국된 이후, 황제와 대신들은 서로를 적절하게 견제하며 나라를 이끌었다.
어쩔 때는 신권이 황권을 능가할 때가 있었을 정도로, 황제의 권력은 막강하다고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황제, 대균이 제위에 오르고 나자 이 나라는 100년 전, 연왕이 통치했을 때처럼 절대군주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대균 그는, 30년이 넘는 제위 기간 동안 자신의 권력과 영향력을 교묘하게 키워 나갔다.
신하들을 이간시키며 힘이 센 대신들부터 하나하나씩 제거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는데, 오늘이 되면서 그의 권력은 완성되었다.
연왕 못지않은 전제적인 권력을 갖게 된 것이다.
“마법사들의 마법이 통했다! 으하하하. 악령을 막아 냈어!”
악령을 막아 냈다? 국정을 논하는 대전에서, 그것도 이 나라의 지존인 황제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자리의 누구도 그런 황제를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황제 폐하의 홍복이옵니다.’라고 외칠 뿐이었다.
“황실 정보부장.”
한차례 광소를 터뜨리던 황제는 웃음기를 거두고 황실 정보부의 수장 원견을 불렀다.
“예, 폐하.”
“조사 결과는 어떻게 되었느냐?”
“내무 장관은 악령에 씐 게 확실합니다.”
이번에도 악령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는데, 무려 내무부의 수장인 내무 장관을 대상으로 악령에 씌었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제국 전체가 들썩거렸을 일이었다.
내무 장관은 관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자였다.
인망이 워낙 두터워 백성들도 내무 장관에게 열렬한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내무 장관은 장관들 중에 유일하게 황제를 견제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황제 역시 내무 장관만큼은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악령’이라는 것이 생겨나자 상황이 달라졌다.
누구든지 간에 ‘악령’이 씌었다는 이유를 든다면 최소 4년은 정계에서 배제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증거는 있겠지.”
“예, 평소와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인다는 게 증거입니다. 내무 장관은 본래 채식주의자였는데 나흘 전부터 편식을 하더니 사흘 전부터는 고기를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악령이라 배가 많이 고팠나 보구나!”
“또한 어제는 악령에 씐 것으로 추측되는 야인들이 내무 장관의 저택으로 찾아오기도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확실한 증거로군! 역시 짐이 예상했던 대로 내무 장관은 악령에 씐 것이 맞았어!”
황제는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법무 장관, 김지태에게 명했다.
“흐흐흐, 법무 장관. 내무 장관을 지금 즉시 소환해라. 짐이 직접 심문을 해야겠노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때 외무 장관 최성훈이 입을 열었다.
“폐하! 그 정도의 증좌로 내무 장관을 심문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이옵니다! 부디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외무 장관도 평소와 다르게 짐의 명령에 반대하는 것을 보니 악령에 씐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외무 장관의 최씨 가문이 100년 전에 외무 장관이었던 최인준 장관의 가문이었지?”
“······!”
“으하하하하하! 농담이다! 농담.”
입으로는 농이라고 하였지만 눈은 싸늘하였다.
만약 여기서 또다시 이견을 내세운다면 황제의 농담은 진담이 될 것이다.
외무 장관 최성훈도 내무 장관처럼 ‘악령에 씐 자’가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결국 최성훈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노신으로서 가장 권위가 높은 최성훈이 입을 다무니 다른 신하들도 당연히 침묵하였다.
그렇게 평소 황제와 대립각을 세우던 내무 장관은 ‘악령에 씐 자’라는 이유로 실각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국방 장관.”
법무 장관 김지태에게 내무 장관을 소환하라는 명령을 내린 황제는 이번엔 50대 중년의 국방 장관을 불렀다.
국방 장관 나병관은 떨떠름한 기색을 애써 감춘 채 답했다.
“말씀하십시오, 폐하.”
“군부에도 악령에 씐 장교들이 많다고 들었다.”
황제의 물음에 나병관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황제가 무슨 말을 할지 대충이나마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아직 밝혀진 자들은 몇 명 없사옵니다. 그리고 밝혀진 자들은 그 즉시 감금해 둔 상태입니다.”
“조사는 제대로 한 것이 맞나? 아니, 제대로 조사했다면 겨우 몇 명일 리가 없지. 악령들에게 있어 군부는 필히 장악해야 할 곳이니 말이야.”
“······.”
“군부는 자체적으로 조사를 계속해라. 짐이 다른 정보기관을 동원하여 더욱 엄중하게 조사할 것이니.”
“폐하, 북방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장교들을 심문하고 가두어 두는 행위를 반복한다면 군사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질 것이옵니다.”
“외적보다 내적이 더 중요한 일인데, 어찌 그 같은 말을 하는가? 악령들이 갑자기 반란을 일으킨다면 어쩌려고?”
“······청나라에서 언제 쳐들어올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이 각 부족의 군사들을 집결하기 시작했다는 첩보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
“국방 장관은 무엇이 중요한지 정녕 모르는 것인가?”
“······.”
“북방 야만족이 쳐들어오는 것 따위는 중요한 일이 아니야. 악령을 멸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지.”
“하오나 폐하.”
“시끄럽다. 국방 장관도 악령이 씐 것이 아니라면 짐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황명을 따르겠습니다.”
국방 장관은 결국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황제는 군부의 정적들과 반골들을 ‘악령에 씐 자’라는 명목으로 숙청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황제는 득의의 미소를 짓고는 마지막으로 비서원장, 남해송에게 말했다.
“비서원장, 경은 지금 즉시 공왕에게 이 말을 전하라.”
“말씀하십시오.”
“만약 망령에 씐 것으로 판단되는 황자가 있다면······ 즉시 참하라고.”
그 말에 장관들이 기겁한 얼굴을 하였다.
황제는 지금 고관대작과 군부의 장교들에 이어 자신의 자식인 황자들까지 숙청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권력욕의 화신다운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참고로 황자들의 경우 악령에 씔 것을 우려하여 일본 본섬으로 보내 버린 상황이었다.
거의 유배당하듯 일본의 영주가 된 것인데, 자식까지 견제하고 의심하는 황제에 의해 이제는 일본에서조차 불편하게 지내야 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불온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황제의 지시를 받은 교토의 공왕이 일체의 망설임 없이 황자를 처리하리라.
“황명을 따르겠습니다.”
모두가 기겁하며 신음을 토해 낼 때, 비서원장 남해송은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조아리며 황제의 명을 받들었다.
* * *
로열 그룹에는 중앙 지휘 본부라고 불리는 조직이 있었다.
휘하에 전략 팀과 분석 팀, 운용 팀, 정보 팀을 둔 조직인데 일종의 컨트롤 타워와도 같았다.
제국의 법률을 만드는 것부터 제도 등을 만들고 외교, 군사작전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그야말로 로열 그룹의 중추와도 같은 핵심 조직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중앙 지휘 본부는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 항상 활기가 넘쳤다.
그룹에서 워낙 중요한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어 그만큼 해야 할 것이 많았기에 에너지가 넘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5회 차인 지금은 기이할 정도로 침체된 분위기였다. 시즌이 막 시작되었는데도 그랬다.
이렇게 중앙 지휘 본부의 분위기가 엉망인 이유는 단순했다.
대한 제국의 황제 대균이 NPC라는 것.
즉, 로열 그룹의 회장 송호영이 황제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분위기가 침체된 것이다.
“5군단의 장교들이 대거 숙청당하였습니다. 이제 5군단에 대한 장악력은 완전히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1 기마군단 역시 장교, 부사관 가릴 것 없이 숙청당했습니다.”
“지방행정을 장악하겠다는 계획도 폐기해야 될 것 같습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들 역시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운용 팀에서 연이어 보고하였다.
본래라면 군부와 지방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는 그런 보고여야 하는데 하나같이 실패를 입에 담고 있었다.
대한 제국의 황제, 대균.
그가 대대적인 숙청에 나섰던 것이다.
‘역대 그 어떤 때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지휘 본부를 책임지는 본부장, 조경호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호영과 군 생활을 같이한 인연으로 3회 차부터 대한 길드의 간부로 활동하던 조경호였다.
지난 회 차부터 본격적으로 지휘 본부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가 경험했던 3회 차나 4회 차뿐만이 아니라 1회 차, 2회 차까지 통틀더라도 지금이 최악의 시즌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적이 대한 제국의 절대자로서 군림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군부나 지방을 장악하지 못한 것보다, 북방의 상황이 더욱 심각한 것 같아요.”
경호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정보 팀을 담당하는 이지혜 부장이 그에게 말했다.
“부장도 청나라가 남진할 것이라 판단하는 것인가?”
“예, 청나라는 지금 중국의 지배를 꿈꾸고 있어요. 하지만 중국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후방의 안정이 필요하죠. 그래서 남진을 하여 후방을 정리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타협은 불가능한가?”
“청나라도 대한 제국의 상황을 알고 있어요. 황제와 유저들의 대립으로 나라 전체가 어수선하다는 사실을 말이죠.”
이지혜 부장의 말에 경호의 표정은 더욱 안 좋아졌다.
안 그래도 심각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는데 여기서 전쟁까지 벌어지면 나라 전체가 거덜 날 수도 있었다.
청나라의 국력도 국력이지만 거의 내전 상태와도 다를 게 없는 대한 제국의 국내 상황이 그만큼 심각했던 것이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쉰 경호가 모두를 향해 말했다.
“여기서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은 최악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아직 장악을 시도도 하지 못한 상황이고, 군부나 지방행정의 경우는 장악을 시도하려다가 황실 정보부 때문에 오히려 인재들만 잃게 되었다. 더군다나 북방의 청나라는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야. 회장님께서는 아직 일본에 계시고 말이지.”
“······.”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든 대책을 구상해야 해. 이전 회 차처럼 회장님에게만 맡겨 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러니 누구든 좋다. 의견이 있으면 신입이건 부장이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해라.”
경호가 그리 말하니 이지혜 부장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일단 청나라의 공격을 대비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어떻게 대비하게? 우리는 지금 대한 제국의 정부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인데.”
“황제와 협력을 해야겠죠. 아직 모험가 조합은 멀쩡하잖아요. 마법사들도 우리 편이고요.”
“용병이 되어 대한 제국을 지원하자는 소린가?”
“예, 솔직히 저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한데, 전쟁을 막거나 피해를 줄이는 게 우선이잖아요. 그러니 용병으로라도 싸워야죠.”
그녀의 말에 경호가 고개를 끄덕일 때, 분석 팀의 팀장이 이견을 내놓았다.
“저는 오히려 청나라의 공격을 이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식으로 이용하자는 거야?”
“청나라의 공격을 방관하여 황제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