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
“아!”
“중국 쪽에서 초대를 거부한 것인지 아니면 대한 제국이 아예 초대를 안 한 것인지는 몰라도, 중국의 여러 제국들은 이번 선포식에 참가하지 않았어. 미국이나 태국조차 사신을 보내는 상황에서 말이야. 이게 무슨 의미인지 대충 알겠지?”
“외교를 할 가치도 없다는 뜻인가요?”
“맞아. 중국을 대놓고 적대하겠다는 의미야. 거의 전쟁 선포와 다를 게 없지.”
“의도한 거라면 엄청 머리 쓴 거네요. 어쩌면 소련과 미국의 냉전 구도처럼 흘러갈 수도 있겠는데요?”
중화권 국가들 VS 비중화권 국가들
너무 지나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선포식에 사신을 보낸 나라들은 대부분이 중화권의 나라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국력도 그리 약하지 않은 나라들이었다.
만약 이들이 대한 제국을 중심으로 힘을 합친다면 중화권의 국가들과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의도한 게 맞을 거다. 그래서 대한 제국이 대단한 거고.”
“휴, 5회 차도 무척이나 치열하겠군요. 역시, 대한 제국은 여러모로 만만치 않은 상대인 것 같습니다.”
소배성이 질린 기색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이야 우호적인 관계였지만 언제 적이 될지 알 수 없는 사이였다.
상대가 강할수록 후금의 입장에서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만만치 않은 상대라서 더 꺾고 싶은데?”
그런 소배성을 보고 다이샨이 그렇게 말했다. 아주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대한 제국은 분명 대단한 나라야. 대한 제국의 황제 역시 위대한 정복자이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기에 꺾을 가치가 있다.’
친한파로 알려진 다이샨이었지만 그는 북조선처럼 대한 제국의 속국이 될 생각을 티끌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속국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대한 제국을 능가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그였다.
만주족이 세운 제국, 청나라!
그는 애신각라의 후손을 자칭하는 이로서 청나라 같은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5회 차가 시작되면 아마 전 세계가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던 후금이 거대한 제국으로 변해 있을 테니까!’
후금은 4회 차 내내 소극적인 행보로 일관하였다.
강력한 군사력을 가졌음에도 조선족이 만든 부족을 몇 번 침략한 것과 한일 전쟁에 참전한 것 외에는 쥐 죽은 듯 조용하게 지냈던 것이다.
하지만 후금은 결코 야욕이라는 것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잠시 미루어 두었을 뿐이었다.
내년이 되어 NPC들의 세상이 오면 그때야말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후금의 비약이 시작될 것이다.
* * *
제국 선포식은 무척이나 중요한 행사였다.
당연히 내지, 즉 한반도의 지역 유지 및 고관대작들은 모두 행사에 참여하였고 외지의 귀족이나 관리들 역시 거의 대부분이 참여하였다.
전 대군사이자 현 규슈 총독도 금의환향하여 행사에 참여하였고, 영지전이 한창이던 혼슈의 귀족들 또한 처음으로 대한 제국의 수도, 현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혼슈의 귀족들 중에 유일하게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인물이 있었다.
그 귀족의 신분은 무려 세 명밖에 없는 백작 중에 한 명으로 황제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
이자의 불참 소식에 유저들은 물론이요, NPC들까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충신으로 알려진 그가 선포식에 참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불화설이나 와병설 같은 온갖 뜬소문이 돌고 있는 상태였다.
‘드디어 벽을 넘었다.’
그러나 정작 뜬소문의 주인공, 준기는 수도승처럼 무념무상의 얼굴로 정좌하고 있었다.
평소 수련하는 모습과 똑같아 보였고, 실제로도 그는 무공을 수련하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내공, 즉 심법을 수련하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준기의 몸에서 오로라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중국의 전설에서나 간혹 전해지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때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최초로 마나를 다루는 기술의 랭크가 S등급이 되었습니다. 계승 특전 ‘대가심법 숙련도 S등급’를 드립니다!
-스킬 ‘마나 친화력’의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S등급!
준기의 시야에 최초로 S등급에 도달했다는 문구가 나타났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유저들 중에서는 유일무이한 S랭크의 무인이 된 것이다.
‘다음은 창법이다.’
하지만 준기는 그토록 고대하던 경지에 도달했음에도 기뻐하는 기색을 티끌만큼도 내비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창을 들어 올렸다.
“핫!”
부우웅! 부우웅!
대가창법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지극히 실전적인 창법이었다.
처음 준기가 펼친 대가창법도 기존의 대가창법과 다를 게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변화무쌍한 검법 또는 창법과는 다르게, 단조롭다고 느껴지는 움직임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의 움직임은 조금씩 변해 갔다.
강맹하고 빠르기만 하였던 그의 창이 점점 유려하고 부드럽게 휘둘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강맹함이 약해졌다거나 속도가 줄어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졌고 더 빨라졌다.
분명 대가창법이면서도 대가창법을 초월한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았다.
‘기존의 대가창법은 분명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이론적으로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완벽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범인의 기준일 뿐이다. 초인은 범인이 만든 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이제 준기의 창법은 빠르고 화려하다는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산을 가르고 바다를 뒤엎는 게 가능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그야말로 신이 사용하는 창법을 보는 것 같았다.
-최초로 마나를 사용하는 무기술의 랭크가 S등급이 되었습니다. 계승 특전 ‘대가창법 숙련도 S등급’를 드립니다!
불과 1시간.
심법이 S랭크에 도달한 지 불과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창법까지 S랭크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전후무후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지막은 보법이다.’
하지만 준기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기뻐하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은 채 다음 과정을 진행하였다. 이번에는 보법이었다.
-스킬 ‘풍운보’의 등급이 향상되었습니다.
대가창법 때와는 다르게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등급이 상승되었다.
풍운보 역시 S랭크가 된 것이다.
‘결국 심법만 경지를 넘어서면 다른 것도 자연스럽게 경지를 넘어설 수 있다는 건가. 뭐, 어찌 되었건 마침내 원하던 경지에 도달했군.’
드디어 준기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심법, 창법, 보법.
이 세 가지 모두가 S랭크에 도달하였다.
호영이 지시했던 임무를 100퍼센트 완수한 셈이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 회 차에서도 형님을 어찌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야.”
그렇게 중얼거린 준기는 다시금 창을 들어 올렸다.
이왕 S랭크에 도달했으니 완벽해질 때까지 가다듬을 생각이었다.
보다 완벽해져야 호영에게 가르치는 것도 수월할 것이니 말이다.
* * *
12월 말이 되자 호영은 여느 때와 같이 ‘로열패밀리’ 멤버들을 모아 놓고 송년회를 개최하였다.
한 해 동안 고생했던 로열패밀리 멤버들을 치하하고 격려할 뿐만 아니라 5회 차를 대비하여 새로운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자리였다.
다만 이전까지 있었던 송년회와는 여러모로 다른 분위기였는데, 특히 그 호화로움이 비교 불가 수준이었다.
일단은 장소부터가 고깃집이나 회사 내부가 아닌, 무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28만 톤의 크루즈선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호화롭게만 변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인원수.
지금까지는 송년회에 참석하는 멤버의 숫자는 기껏해 봐야 수백 정도에 불과하였는데 이번 크루즈에 동행한 로열패밀리의 숫자는 무려 6천 명이 넘었다.
전체 로열패밀리는 만 단위였고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호영은 어느덧 한국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된 상황.
당연히 호영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로열패밀리의 멤버들도 그럴듯한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
로열 그룹이라는 거대 기업에서 각자 한자리씩 차지하게 된 것이다.
새로 가입한 멤버들의 신분 역시 비범하기 그지없었다. 재벌 3세부터 국회의원 아들과 현직 판검사까지.
이전이라면 로열 그룹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상류층 자제들이 대거 로열패밀리의 멤버가 되었다.
크루즈선 초대에 열정적으로 응하기도 하였고 말이다.
아무튼 올해의 송년회는 기존의 송년회와는 여러모로 달랐다. 분위기부터, 장소나 참가 멤버까지.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모두들 올 한 해, 고생 많았다.”
흔히 로열패밀리의 최고 간부들이라 불리는 7인회.
호영은 바로 그 7인회와 여느 때처럼 함께하고 있었다.
“올 한 해, 수고하셨습니다, 회장님!”
일곱 명의 사내가 허리를 숙이며 답례하였다. 마치 조직 보스를 향해 인사를 하는 조직원들을 보는 것 같았다.
참고로 7인회는 본래 호영까지 포함해서 일곱 명이었지만 이제는 호영이 제외되고 허영만이 추가되었다.
지금 호영의 눈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인사하는 일곱 명이 바로 그 7인회에 소속되어 있는 간부들이었다.
‘관록이 붙은 게 한눈에 보이는군. 다들 많이 성장했어. 국회의원 이상 가는 권력가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말이야.’
호영과 함께하며 7인회는 그동안 놀라운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였다.
일개 대학생이었던 충구부터, 실패한 사업가였던 허영만과 폭력 사태로 영구 제명당한 전 운동선수 김성근, 그리고 무술가를 꿈꾸던 준기와 갓 전역하여 일거리를 찾아 헤매던 원재, 은수저 출신으로 집에서 허송세월 지내던 건우, 대기업에서 근무했으나 평사원에 불과하였던 안지호, 보안 업계에서 일하던 윤원목까지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권력이라는 것에 어울리는 사람이 없었다.
요식업에 종사하였던 호영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권력자라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센추리에서처럼 오로라나 위압감 따위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진중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서 카리스마라는 것이 느껴졌다.
입고 있는 복장들도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아 만든 슈트라 그런지 작년이나 재작년처럼 조폭으로 보인다거나, 게임 폐인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한눈에 봐도 크게 성공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물론 호영의 성장은 그들 이상으로, 20대와 30대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은 사람답게 카리스마를 넘어 그만의 독특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 같았고 말이다.
“흠흠.”
호영은 7인회의 멤버들을 보며 속으로 흐뭇해하다가 충구의 기침 소리를 듣고서야 말문을 열었다.
“윤 대표, 새로운 멤버들은 어떤 것 같나?”
말문을 열자마자 난데없이 질문을 던지는 호영.
하지만 그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원목은 당황하지 않은 얼굴로 답하였다.
“다른 조직의 스파이나 첩자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계속 조사해 보고 나오는 즉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걸 물었던 것은 아닌데.”
“능력이나 신분에 관한 질문이었습니까?”
“자질에 관한 것도 있고, 로열패밀리에 어느 정도 적응했는지, 또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