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42화 (242/345)

# 242

신료들은 고무된 얼굴로 그와 같은 발언들을 하였다.

마치 현실의 미군이 느끼는 자부심처럼 대한국의 팽창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맞는 말이야. 이제 두려워해야 할 쪽은 우리가 아닌 다른 나라들이지.”

호영은 신료들의 반응에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이 지나치면 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 수준의 자신감은 괜찮았다.

진정한 실력에서 비롯되는 자신감이기 때문이다.

50만에 달하는 군사력을 보유하였던 일본을 단숨에 짓밟은 대한국!

고만고만한 국가들밖에 없는 센추리에 한해서는 초강대국이라 칭해도 하등 모자람이 없는 나라였다.

전쟁에서 손해를 본 적도 없었으니 내년이 되어 유저들이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국력이 급격히 쇠퇴하게 될 일도 없으리라.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내 아바타가 연왕이라는 점이지.’

가장 두려운 적은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이 같은 상황에서 쓰기에는 다소 어색한 말일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호영은 자기 자신, 즉 역사상 최악의 폭군이라 불리는 연왕을 가장 경계했고 또 난감하게 여겼다.

그가 4회 차에 이룩한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연왕이었기 때문이다.

호영이 사라진 이후, 연왕이 이전처럼 폭정을 일삼는다면?

짧은 시간에 급격한 성장을 이룬 대한국이기에 무너지는 것도 순식간이 될 수도 있었다.

원래 창업보다 수성이 어려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호영으로선 연왕이라는 존재가 목에 박힌 가시처럼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연왕의 폭정을 막아 낼 만한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한데······.’

보고가 모두 끝나고 신료들이 물러나자 옥좌에 홀로 남아 있던 호영은 턱을 괜 채 상념에 잠겼다.

이제 4회 차가 끝나기까지, 센추리 시간으로 1년이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다고 볼 수 없었다.

백년대계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했고, 백년대계의 시작점은 바로 그의 아바타, 연왕을 대비하는 것이다.

솔직히 죽이는 것이 가장 편했지만 그럴듯한 전장이 아니라면 죽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대한국의 국왕이자 무신이라 불리는 이로서 체면이 안 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영은 다른 방법을 생각하였다.

“전하.”

“왔는가.”

“왕실 정보부장이 전하의 부름을 받고 이렇게 달려왔사옵니다.”

때마침 호영이 기다리던 사람이 찾아왔다.

호영이 제시한 방도를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강구한 인물.

그는 바로 대한국의 정보를 책임지고 있는 왕실 정보부장, 우원재였다.

원재의 등장에 호영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지만 우선 질문부터 하였다.

“배후는 찾았는가?”

제물포에서 수도로 향하던 도중에 갑자기 일어났던 암습.

연왕에 관한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이 암습에 대한 배후를 찾는 것도 만만찮게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호영은 가장 먼저 암살자의 배후부터 물어보았다.

“전하께서 예상했던 대로 전 감사원장이 이번 암습의 배후였습니다.”

“증거는 확실한가?”

“예, NPC들과 유저들을 교차 점검까지 해 봤는데 100퍼센트 확실합니다. 정황, 증거, 동기 모든 것이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역시 그렇군.”

암살자의 배후가 밝혀지자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친척이 역모에 가담했지만 본인만큼은 연왕에 대한 충성심이 확고해 보였기에 삭탈관직시키는 것으로 좋게 마무리하였다.

나름 관대함을 보인 것이는데 결국엔 이리되었다.

‘뭐, 예상은 했지만.’

쓴웃음을 지었지만 크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연왕의 충신이었지 자신의 충신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낱 NPC의 배신에 충격을 받기에는 호영의 경험이 너무나 풍부하였다.

“원칙대로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호영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고는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바로 그가 궁금해하고 있던 정보에 대한 질문이었다.

“연왕을 견제할 만한 인물들을 선정하는 것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느냐?”

그가 연왕의 폭정을 대비하기 위해 생각해 둔 방안 중 하나는 바로 연왕을 견제할 수 있는 인물들을 대거 기용하는 것이다.

즉, 국왕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 정부에 ‘반국왕 세력’에 가담할 신료들을 집어넣는다는 뜻이었다.

“예, 분석 팀에서 가리고 가려낸 인원들로 선정하였습니다.”

“분석 팀에서는 인원들을 어떤 식으로 선정하였지?”

“유저들이 알려 준 아바타의 성향을 분석하여 소신 있고 강단 있으며 왕실이나 국왕보다는 대한국이라는 나라에 더 충성하는 이들을 뽑았습니다.”

타인의 속마음을 알아내는 것은 제아무리 대한국의 절대자라고 불리는 호영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저들이 있어 그는 타인의 속마음을 100퍼센트까지는 아니어도 절반 이상은 간파할 수 있었다.

유저는 자신의 아바타가 어떤 과거를 가졌고 어떤 성향을 가졌으며 어떤 야망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 게임에서만 10만을 넘어 20만, 간접적으로는 40만에 가까운 유저를 통제하고 있다. 스텟이랑 스킬로 아바타들의 재능과 자질까지 분석할 수 있으니 원하는 인재를 뽑아내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야.’

연왕이 폭정을 일삼았던 것은 그가 패악한 성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연왕의 권력을 견제할 만한 신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러니 호영이 뽑아낸 관료들이 적절하게 연왕을 견제해 준다면 연왕은 더 이상 폭정을 일삼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전하, 정말 황제의 권한에 제한을 두실 생각입니까?”

호영은 단순히 사람을 뽑아 연왕을 견제하게 만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대한국이 대한 제국으로 바뀔 때, 법도 바꿔서 아예 황제의 권한에 제한을 둘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전에도 말했듯,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굳이 연왕이 아니더라도 100년 사이에 언제 또다시 폭군이 나타나게 될지 몰라. 그렇다고 현명한 황제가 계속 나와 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너무 무모한 발상이고 말이야.”

“하나 지금까지는 잘 버텨 왔지 않습니까? 설령 폭군이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다 해도 전하께서 어떻게든 수습하셨고 말입니다.”

“이전까지야 외국과의 교류가 적고, 나라의 규모도 작아 4년 사이에 어떻게든 커버할 수가 있었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렇지 않잖아? 자칫하다가는 대한 제국 전체가 멸망을 당하거나 아니면 반란으로 인해 황가가 몰살당할 수도 있어. 무공도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일반 백성들에게도 풀었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해.”

다음 회 차부터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와의 충돌이 예견되는 상황이라, 마치 현대의 교육제도처럼 신분을 가리지 않고 무공을 가르쳐 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본토에도 아직 신분제의 잔재가 남아 있었고 변방이나 시골 같은 곳에는 도저히 행정력이 미치지 않아 전 백성에게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어찌 되었건 ‘평민’이라 할 수 있는 이들도 이제는 무공을 배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다르게 말하자면 피지배 계급이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예전의 정부나 왕실은 민심을 우습게 여겼지만 백성들이 무공이라는 힘을 갖게 된 이상 민심을 우습게 볼 수는 없을 터.

그렇기에 황제의 권한을 제어하는 장치를 만들어 폭군이 등장해도 적당히 견제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어야만 하였다.

정신 나간 황제가 나타나 민중에게 ‘응징’당하지 않도록 제어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음 회 차부터 전하의 권력이 약해질 것입니다.”

“감수해야 할 일이다. 제국이 되어 가는 이 거대한 나라를 이전처럼 황제가 일일이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습니까?”

원재는 아쉬워하였지만 호영이 말했듯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황제가 이전의 국왕처럼 전제적인 권력을 행사한다면 5회 차가 되었을 때 무척이나 편하기는 하겠지만 10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왕의 권한’이라는 스킬이 존재하는 센추리 세계에선 왕정이 몰락하게 될 가능성은 무척이나 적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연왕 같은 폭군이 연이어 등장한다면 반정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걸로 연왕을 견제할 수 있는 방도를 모두 마련하였다. 이제 황태자만 잘 뽑으면 돼.’

다행히 연왕의 자식이 많아서 후계자는 어떻게든 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십 명 중에 한 명쯤은 현군의 자질을 갖춘 이가 존재할 것이니 말이다.

“모든 걸 뜯어고쳐야 하니 하루도 쉴 틈이 없겠어. 뭐, 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언제나 그랬지만 말이야.”

호영은 그렇게 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바쁘게 움직였다.

4회 차가 끝나기까지 불과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시간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는 만큼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나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센추리 시간으로 반년이 지나 대한 제국 선포식 날이 된 것이다.

* * *

끝없이 비상하는 대한국의 모습을 보고 경계하는 나라는 수도 없이 많았다.

중화권을 대표하는 여러 나라들이 가장 경계하고 있었지만 만주나 연해주, 대만 등 대한국과 인접해 있는 나라들도 경계심이 부쩍 높아져 있었다.

하지만 중화권을 대표하는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대한국의 제국 선포식에는 참가 의사를 밝혔다.

대한국을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만주의 중부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후금 같은 경우는 왕위 계승자가 직접 대한국을 찾아왔다.

“대단하군. 실로 제국의 위엄을 가지고 있는 나라야.”

아이신가오로 다이샨.

한일 전쟁에서 용병 부대의 책임자로 참전한 적이 있는 그가 바로 후금의 왕위 계승자였는데, 다이샨은 시종일관 감탄의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3만 명의 장병들을 동원한 대한국의 열병식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냥 쓸데없이 의장에 힘준 것 같은데요. 이 정도의 행사를 개최할 돈이라면 병력을 최소 2만은 늘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쓸데없지는 않아. 대한국, 아니 대한 제국의 군사력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니까. 저기, 귀빈들의 표정을 보라고. 국력이 약한 나라들은 이 열병식만으로 대한국에 두려움을 느끼게 됐어.”

소배성이라는 한족 출신의 수하가 퉁명스럽게 말하니, 다이샨이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혹자들이 ‘친한파’라고 부르는 다이샨답게 대한국을 무척이나 좋게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의 경계심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득보다 실이 크지 않을까요.”

“유저들의 경계심은 올라가겠지. 그런데 NPC들도 과연 그럴까?”

“예?”

“NPC들은 일본이 정확히 어느 정도의 국력을 가졌던 나라인지 몰라. 그래서 일본이 멸망한 것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지. 아마 이번 열병식을 지켜본 NPC들은 대한 제국을 절대 공격하지 말아야 될 나라라고만 생각할걸.”

“일본을 침략했으니 자신들도 침략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대한 제국에게는 중국이라는 적이 존재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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