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39화 (239/345)

# 239

‘사실 일본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킬 확률보다, 규슈를 담당하게 될 총독이나 도지사가 반란을 일으킬 확률이 높으니 그걸 더 경계해야겠지.’

그렇다면 규슈의 통치를 누구에게 맡기면 좋을까?

무장이면서 행정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이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그런 능력자들은 이미 혼슈의 귀족이 된 상태였다.

아무리 충신이라 해도 영지를 보유한 귀족에게 규슈를 맡길 수는 없는 일.

결국 문관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아무래도 경이 계속 규슈를 맡아야겠어.”

“예?”

“규슈를 담당할 적임자는 경밖에 없다. 그러니 경이 총독으로 4회 차가 끝날 때까지 이곳을 통치해 줬으면 해.”

“왜 소신입니까?”

“군부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행정에 일가견이 있고, 나에 대한 충성심까지 뚜렷한 인물.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경밖에 없더군.”

“다른 것은 그렇다 쳐도, 충성심은 전하의 측근이라면 전부 갖고 있는 거 아닙니까?”

“유저로서야 모두 나의 말을 잘 따른다지만 아바타는 다르잖아? 경의 이씨 가문은 대한국의 건국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 가문이니 말이야.”

“그렇군요.”

충구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현자의 일족이라 불리는 이씨 가문.

본국에서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표적인 충신 가문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이씨 일족의 충성심은 유명하여, 암군이든 폭군이든 절대 군주를 배신하지 않았다.

물론 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소신이 없어도 괜찮겠습니까? 이런 말을 직접 하기는 쑥스럽지만 소신이 없으면 전쟁하기가 어려울 텐데.”

지나친 자신감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비록 대한국과 로열 그룹이 지성 시스템을 갖추어 놓은 상황이라고는 해도 그 지성 시스템을 총괄하는 충구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4회 차에는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거다. 그러니 경이 없어도 곤란한 일은 크게 없을 거야.”

“우리가 원하지 않더라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게 아무리 국지전에 불과하다고 해도 말입니다.”

“타국이랑 마찰이 생길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호영이 물으니 충구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정보부에서 듣기로 용병들의 반란에 제나라가 관여했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맞다. 증거는 없지만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겠지.”

“제나라가 용병들을 이용한 것은 우리나라를 견제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견제하려는 것은 제나라뿐만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말에 호영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50만의 대군을 보유한 일본이 해군까지 포함해서 10만도 채 동원하지 않은 대한국에 멸망을 당하였다.

육군으로만 따지면 고작해야 5만에 불과한 대한국의 병사들에게 50만을 가진 일본이 패배한 것이다.

물론 세 나라의 용병이 있었고 일본 내부에서도 동맹 세력이 존재하였지만, 어찌 되었건 결과적으로 대한국은 어떤 나라의 도움도 받지 않고 일본을 점령하였다.

주변국 입장에서는 대한국이 경계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상 북조선과 후금을 제외하면 전부 적이라고 봐도 되겠지. 아니, 후금도 안심할 수 없으려나?’

현재 대한국과 우호적인 국가는 후금과 북조선, 제나라 그리고 요령성의 세 나라였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관계였고 실질적으로 동맹이라 할 수 있는 나라는 북조선뿐이었다.

용병들에게 수작을 부린 제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쉬도 때도 없이 군사훈련을 하고 있는 후금이나 NPC로 이루어진 요령성의 세 나라도 믿을 게 못 되었다.

그나마 북조선만이 속국처럼 대한국을 떠받들었는데, 솔직하게 말해서 국력의 차이가 너무 월등한지라 북조선과의 동맹이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혹시 모를 후금의 침략이 있을 때만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 회 차에 우리를 공격할 나라는 없을 거야.”

호영이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충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강하니까.”

“예? 강하니 견제하는 건데 강해서 공격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의아애하는 충구에게 호영이 설명해 주었다.

“일단 연해주에 있는 러시아의 경우는 힘을 합친다고 해도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해. 그쪽은 마피아니 군부니 온갖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애초에 군사력부터가 그리 대단한 수준이 아니니까.”

“하기야, 연해주에 있는 러시아 정규병은 모든 세력을 다 합해도 10만 정도에 불과하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그쪽은 마적이나 마피아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이 많아 정규병만 보고 폄훼할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연해주의 러시아 세력은 분명 대한국의 팽창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당장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할린에 있는 러시아 세력의 경우는 오히려 홋카이도에서 충돌이 벌어질까, 바다로 나서는 것조차 조심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중국도 마찬가지일 거다. 중국의 모든 나라가 우리를 노린다면 그들의 침략을 걱정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겨우 일본을 점령한 거 가지고 단 한 번도 통일된 적이 없는 중국이 합심할 일은 없어. 작년에 혼슈를 정복했을 때처럼 한두 나라가 여론을 선동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걸로 끝날 것이야.”

“너무 방심하는 게 아닐까요? 인터넷의 반응을 보면 중국에서 우리나라의 팽창을 무척이나 경계하는 분위기 같던데.”

그의 우려에 호영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알고 있어. 확실히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는 아니어도 중국인들은 우리를 무척이나 경계하고 있지. 하지만 나도 방심하고 있는 것은 아니야. 단지 그들이 지금 시점에 우리를 노릴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할 뿐.”

“4회 차가 끝나 가기 때문입니까?”

“맞아. 이제 센추리 시간으로도 1년 정도밖에 안 남았어. 곧 겨울이 온다고 치면 사실상 주어진 시간은 1년이 채 안 된다고 볼 수 있지. 어느 나라든 간에 마지막 1년을 우리나라 같은 대국과의 전쟁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을 거야.”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겠군요. 소신이 중국의 군주라고 해도 대한국의 팽창을 경계할지언정 무력 충돌은 자제할 것 같습니다. 대한국을 견제하겠다고 백년대계를 포기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뭐, 대신 해상에서의 견제가 많아질 거야. 제나라부터가 교역량을 조금씩 줄이고 있을 정도니까.”

대한국을 견제하는 방법이 꼭 전쟁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인들로 이루어진 소수의 특수부대를 보내 요인 암살이나 테러 같은 행위를 할 수도 있었고 정치적인 공작을 하여 정부를 혼란케 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현실에서 강대국이 무역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처럼, 교역을 막는 것도 나름 훌륭한 견제책이었다.

실제로 제나라에서는 대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교역량을 줄이고 관세를 높이는 등 무역으로 압박을 가해 오고 있었다.

“그래서 경의 역할이 중요해. 규슈의 해상 전력도 써야 할 때가 있을 거거든.”

“해적들을 이용하실 생각입니까?”

“쓸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사용해야 하지 않겠어?”

지금까지 호영이 보아온 규슈 백성들은 전부 순종적이고 착하게만 보였지만 사실 규슈는 왜구의 본거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해적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물론 작년에 있었던 후쿠오카 해전과 1년 가까이 지속된 해상 압박으로 왜구의 수가 많이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규슈 북부에는 적지 않은 왜구가 존재하였다.

만약에 함선만 있었다면 일반 백성으로 보이는 규슈 사람이 아주 훌륭한 해적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영국처럼 국가에서 해적을 운영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19세기에도 그랬는데 지금 같은 야만의 시대에서 못 할 게 뭐 있겠어?’

해적은 누가 봐도 악이지만 대한국에 피해를 주지 않고 이익을 준다면 악이 아닌 선이 될 수 있었다.

호영 역시 대한국에 이익이 된다면 해적이나 마적을 이용하는 것 정도는 마다할 생각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규슈를 통치하면서 해적들을 이용할 방법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학교까지 세워야 되니 조금 바쁘겠지만 말입니다.”

은근히 자신의 노고를 드러내는 충구의 모습에 호영은 작게 웃다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 제국을 선언하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제국 선언이라······. 이 시점에 제국 선언을 하면 아무래도 주변국에서는 도발로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개나 소나 제국이라고 선언하는 시대잖아.”

“그렇기는 한데, 주변국에서 우리를 더욱 경계하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게 문제야.”

“꼭 제국을 표방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외왕내제라는 것도 있고 애초에 제국을 선언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은데.”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백성들이나 유저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가 않더라고. 일본도 정복하였으니 우리도 이제 제국 선언을 하는 게 좋겠다고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아.”

딱히 유저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긍심이 한창 고취되고 있는 상황에서 찬물을 끼얹는 것은 별로 좋은 행동이 아니었다.

이럴 때는 적절히 여론에 호응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큰 실익이 된다는 걸 호영은 지난 경험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충구는 잠시 고민하더니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아예 공식적으로 제국 선언을 하는 것은 어떨 것 같습니까? 주변국의 사절단을 불러서 말입니다.”

“대놓고 도발하자는 건가?”

“예, 우리를 경계하고 있는 그들에게 아예 두려움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두려움이라······. 더 경계하게 되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대한국을 강자로 인정하고 친해지려 할 수도 있겠지요. 현실에서 세계 여러 나라들이 미국을 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름 괜찮은 의견이었다.

어차피 적이라면 적에게 두려움이나 경외감을 심어 줄 수 있어서 좋고, 적아가 불분명하다면 이참에 아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서 좋으니까.

‘다만 주변국의 견제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문제가 있겠군. 어쩌면 제국을 선포하는 날에 테러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야.’

호영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잠시 하였지만 그래도 결국 충구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하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제국 선포였다.

국가의 위신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떠들썩하게 개최하는 것이 좋았다.

유저들이야 대한국의 국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지만 NPC들은 여전히 대한국을 듣보잡 취급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1년 3개월 정도만 지나도 NPC들의 세상이 올 것인데 대한국의 국력이 우습게 보이면 곤란했다.

이참에 제국 선포를 통해 대한국의 위엄을 보이는 것도 나쁜 선택이 아니리라.

“경뿐만 아니라, 나도 바빠지겠군. 세계만방에 국력을 과시해야 하니 말이야.”

“뭐, 전하는 워커홀릭이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잘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나도 경을 믿겠다.”

호영은 그렇게 충구와 이야기를 나누고는 규슈를 뜰 준비를 하였다.

벌써 본국을 떠난 지도 1년이 훌쩍 넘은 상황.

충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대로 제국 선언까지 하려면 하루빨리 본국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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