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
“조, 조선의 왕이 나타났다!”
“잡아라! 조선의 왕을 잡으면 최소가 10억 엔이야!”
하지만 규슈 동맹군의 지휘부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할 때, 호영이 그들의 진지를 찾아왔다.
마치 도발이라도 하는 것처럼 단기필마로 진지 주변을 얼쩡거린 것이다.
지휘부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아니, 고민할 수가 없었다.
이미 병사들 전체가 눈이 돌아갈 대로 돌아간 상황이었다.
병사들에게 작전이 어떻고 저렇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호영의 목!
대한국의 국왕이자 일본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 호영의 목만이 중요할 따름이었다.
성삼 그룹의 회장이었던 이재후가 호영의 목에 걸어 놓은 현상금만 수백 억이었다.
그리고 대한국과의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한 일본 유저들도 호영의 목에 현상금을 걸어 놓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센추리에서든 현실에서든 호영을 죽이기만 한다면 로또 따위는 우스울 정도의 현상금을 벌게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명예도 무시할 수 없었다.
호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패배한 적도, 죽어 본 적도 없는 전설적인 인물!
전설을 죽이면 그만큼 명예를 드높일 수 있었다.
그야말로 평생을 우려먹을 수 있는 영웅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본인들로선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휘부의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그들은 호영을 쫓아 나섰다.
“도망치고 있다!”
“쫓아라! 놓치면 안 된다!”
규슈 동맹군이 추격을 시작하자 호영은 상대하지 않고 물러났다.
아무리 그가 만부부당의 무인이라 해도 수만 명을 상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냥 도망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만용을 부리다가 본대와 거리가 벌어진 무리를 섬멸하거나 활로 지휘관을 저격하는 식으로 적을 상대하였다.
일본 유저들은 그런 호영의 모습에 더욱 악을 쓰며 쫓았지만 말을 세 필이나 데리고 다니는 호영을 쫓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나마 방법이 있다면 천라지망을 펼치는 것이는데 대규모 포위 작전에는 부대 간의 긴밀한 협동이 필요하였다.
규슈 동맹군에서는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는 협동심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협동심이 부족했던 규슈 동맹군은 결국 호영을 놓치고 말았다.
“또다시 나타났어! 저 미친 새끼!”
“우리가 한 명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거야!”
“칙쇼!”
다음 날이 되자 호영이 다시 한 번 규슈 동맹군을 도발하였다. 이번에는 더욱 대담하게 진지 안으로까지 들어왔다.
서걱, 서걱!
순식간에 수십의 일본군을 베고는 그대로 도망쳤는데 규슈 동맹군으로선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추격은 실패로 끝났다. 기천의 별동대가 재빠르게 움직여 호영의 도주로를 결사적으로 막고 있을 동안 본대가 뒤늦게 포위망을 완성하였으나 호영의 말만 죽였을 뿐, 죽이기는커녕 부상을 입히는 것에도 실패하였다.
말이 죽자 경공으로 포위를 빠져나온 것이다.
“저 새끼는 마나가 무한인가? 어떻게 경공을 저리 막 쓸 수가 있어!”
“처음부터 경공을 사용하였다면 포위를 할 수도 없었을 텐데······. 설마 포위당한 것도 일부로 우리를 농락하기 위함이었던 거 아니야?”
그 뒤로도 비슷한 형태의 전투가 계속 이어졌다.
6만의 군대가 단 한 명의 무인에게 쫓고 쫓기는 전쟁이었다.
그동안 규슈 동맹군은 온갖 수를 써 호영을 잡으려 하였다.
절벽으로 몰았던 적도 있었고, 화공이나 수공을 사용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아쉬웠던 작전은 포위망을 넓게 하여 빠져나갈 구멍을 완전히 차단하고는 소수의 부대로 끊임없이 공격하는 작전이었다.
그야말로 인해전술의 진수를 보여 주는 작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작전도 결국엔 실패하였다.
만약 호영 혼자라면 통했을 수도 있겠지만, 호영에게는 친위대가 있었다.
친위대는 호영이 포위망에 갇히고 사흘 뒤에 나타났는데, 그들이 외곽을 공격하자 포위망이 바로 무너졌다.
호영은 그 틈에 포위에서 벗어났고 말이다.
구사일생한 뒤로 호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였다.
여전히 단기필마로 규슈 동맹군을 농락한 것이다.
“이런 일은 오합지졸이 많은 중국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도 중국과 다를 게 없네.”
군대 VS 무인.
무공을 익힌 유저들이라면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소재였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은 군대와 무인이 싸운다면 군대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개인이 아무리 강해도 전장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처럼 군대가 징집병 수준이라면 개인이 군대를 농락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일본이나 한국은 군대도 무공을 익혔다.
규슈 동맹군 역시 장수들이라면 최소 이류 이상의 무공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두 나라의 군대를 일개 개인이 상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 바로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오합지졸이라서 그런 게 아니야. 상대가 무신이라서 그런 거지.”
“무신이라······.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신적인 무력을 가졌군. 어떻게 봐도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아.”
“야규 쥬베라고 해도 무신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그 사람도 분명 대단하다고 들었지만, 신으로 불릴 정도는 아닐걸.”
“어찌 되었건 이번 전쟁은 진 거나 마찬가지야. 무신이 있는데 어떻게 이겨?”
악착같이 호영의 목을 노리던 일본 유저들은 더 이상 없었다.
호영이 나타나고 열흘 정도가 지났을 때, 일본 유저들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였다.
실질적인 피해는 기천에 불과하였지만 정신적인 타격이 엄청났다.
수만의 군대가 단 한 명을 어쩌지 못하여 열흘을 허비하였으니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항복이나 할까? 어차피 진화군도 오래 못 버틸 것 같은데.”
“항복한다고 우리를 살려 줄까?”
“굳이 죽이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지만 쪽팔리잖아, 6만이 한 명에게 항복하다니.”
“쪽팔리기는.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야. 그리고 상대는 무신인데 쪽팔릴 게 뭐 있어? 오히려 나는 이번 기회에 무신의 깃발 아래에서 싸워 보고 싶은데. 혼슈의 귀족들처럼 말이야.”
일본 유저들은 패잔병처럼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였다.
“바, 반란이 일어났다! 영지에서 농민들이 봉기했다!”
남부에서 전해진 소식을 듣자 지휘부부터 말단 병사까지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다.
규슈에서는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던 농민 봉기가 하필 지금 시점에 일어났다는 소식이었다.
“감히 농민 주제에 반란을 일으켜? 후방에 배치된 병사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규슈에서 봉기가 일어났다니! 망조가 든 게 확실하군.”
“외세의 군대가 쳐들어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규슈 동맹군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호영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친위대까지 대동한 채 치고 빠지는 전술을 사용한 것이다.
전의를 상실한 규슈 동맹군은 후퇴하듯 밀려났다.
겉으로는 ‘반란 진압을 위해 회군한다.’라고 하였지만 실상 패퇴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 * *
36일.
규슈에 상륙하고 규슈 동맹군을 와해시키기까지 36일이 걸렸다.
물론 아직 진화군이나 기백의 병력으로 수성에 집중하고 있는 영주들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이 제거되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였다.
길어 봐야 열흘이면 저항군을 모조리 정리할 수 있으리라.
“우리에게 항복하는 이유가 뭐지? 병력도 너희가 많고 무엇보다 우리는 외세의 군대인데.”
호영은 도주하는 규슈 동맹군의 뒤를 쫓아 전멸시키고는 남하를 계속하였다.
그의 목적은 규슈 동맹군을 전멸시키는 것이 아닌, 규슈를 정복하는 것이다.
이제 북부는 완전히 정복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 남은 것은 남부뿐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은 호영이었기에 강행군을 펼쳐 남진하였고, 마침내 규슈 동맹군을 와해시키는 데 일조한 농민 반란군과 마주할 수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호영은 농민 반란군을 마주한 순간, 친위대에게 전투를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려 두었다.
어쩌다 대한국의 승리에 일조하였던 농민 반란군이었으나 그렇다고 그들이 대한국의 아군인 것은 아니었다.
대한국은 외세의 침략군이었고 농민 반란군이 봉기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공한 나라이기도 하였다.
적대적으로 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조선만이, 오직 조선만이 이 지옥 같은 난세를 바로잡아 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거뿐인가?”
“저희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답게! 사람답게만 살고 싶습니다. 조선의 왕이시여, 부디 저희를 조선의 백성으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하지만 농민 반란군의 반응은 예상 외였다.
대한국에 적대감을 표출하기는커녕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백성으로 받아 준다면 군대는 바로 해산할 것인가?”
“물론입니다! 저희는 그저 죽기 싫어서 죽창을 들었던 것이지, 통치자에게 반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른 이들도 같은 생각인가?”
“저희는 조선의 백성이 되고 싶습니다! 부디 백성이 되게 해 주십시오!”
철썩.
호영의 질문에 반란군은 난데없이 무릎을 꿇고선 그렇게 외쳤다.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순진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음모가 있는 건지 모르겠군.”
“전하, 일단 투항을 받아 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김성근이 하는 말에 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의 항복을 받아 주겠다.”
“그 말씀은 전하의 백성으로 받아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우와아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도 이제 조선의 백성이다! 만세! 만만세!”
호영은 세상 다 가진 듯 환호하는 농민 반란군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것도 준다는 약속을 하지 않고 그저 백성으로 받아들였을 뿐인데 이렇게나 기뻐하다니. 저들은 우리 대한국에 어떠한 환상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환상까지야 필요하겠습니까? 규슈 북부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처럼 상식적으로만 행동해도 일본 백성들은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자신들이 직접 영주가 되거나 나라를 만들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게 나을 텐데?”
“원래 쪽바리 새끼들이 윗사람에게 복종적이지 않습니까? 아마 이번에 반란을 일으키고서 걱정이 많았을 겁니다. 행정이나 정치는 어찌해야 할지, 우리의 공격은 어떻게 막아야 할지 등등.”
의외로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는 김성근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서야 호영은 농민 반란군이 왜 복종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마지막까지 방심하지는 않았다.
당장이야 무장 해제를 하고서 복종하는 척을 해도 대한국이 군을 물리거나 줄이면 다시 들고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민 반란군을 해체시키고 열흘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농민 반란구의 지도자 몇몇을 은연중에 감시하기도 해 봤는데, 그들은 그저 생업에 열심히 종사하기만 할 뿐이었다.
‘가끔 모임 같은 게 있을 때도 우리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찬양하기 바쁘다고? 하, 우리가 도대체 뭘 해 주었다고 찬양까지 하는 걸까.’
산지옥과 같은 세상에서도 여전히 윗사람이라면 껌뻑 죽는 일본 백성들. 호영으로선 그들이 낯설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