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
“그런데 S랭크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윤곽이 조금 보이고 있나?”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고서 준기에게 물었다.
“조금씩 보이고 있습니다. 한동안 수련에 집중하면 깨달음이 올 것 같습니다.”
“하면 당분간은 전쟁에 나갈 수 없겠군?”
“아닙니다. 보내 주십시오. 제 개인의 성장보다 전쟁이 더 중요합니다.”
그 말에 호영은 손을 내저었다.
“어차피 이제 규슈밖에 남지 않았다. 굳이 경까지 갈 필요는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규슈와의 전쟁은 내년 초여름쯤은 되어야 시작될 거다.”
“올해는 이대로 전쟁을 멈추는 겁니까?”
“그래. 어차피 우리는 급할 게 없고, 반대로 규슈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는 상황이야. 지금 당장 공격하는 것보다 내년에 공격하는 것이 우리에게 훨씬 유리해.”
“그렇습니까?”
준기는 충구와 달리 이유를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어떤 작전이든 무심하게 지시에 복종할 뿐이었다.
‘3회 차까지는 그래도 한 명의 장수로서 병법에 관심이 많았는데······. 준기는 정말 매 회 차마다 달라지는 것 같군. 이제 더 이상 병법 같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호영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며 준기에게 말했다.
“전쟁을 멈추는 김에 논공행상을 할 셈이다. 이번에 공을 세웠던 모든 이들에게 큰 상을 내릴 생각이지. 당연히 이번 전쟁의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는 경에게도 마땅한 보상을 내릴 것이고 말이야.”
“저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을 받아야겠지.”
“······어떤 보상입니까?”
“백작 위.”
준기가 입을 떡 벌리며 물었다.
“자작보다 높은 그 백작을 말하는 겁니까?”
“시코쿠까지 점령하니 왕의 등급이 한 단계 높아졌다. 이제 백작 위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지.”
“하지만 저에게 백작 위를 내리는 것은 너무 과분한 보상입니다. 황보관이나 순현 같은 이들이 저보다 더 큰 공을 세웠습니다.”
“경이 아니라면 안 돼. 왜냐하면 단순히 공이 높기 때문에 주는 보상이 아니거든.”
그 말에 준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백작이 된 이후에 해야 할 일이 있는 겁니까?”
“그래.”
“어떤 명령이든 내려 주십시오. 무엇을 해야 합니까?”
“백작 위는 세 명에게 내려질 것이다. 항장 출신으로 한 명, 동북부 연합 출신으로 한 명, 그리고 한국 출신으로 한 명. 물론 이 한국 출신은 경이 될 것이지. 나는 경이 백작이 되어 이들을 견제했으면 한다.”
“견제라면?”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아. 그저 두 세력보다 밀리지만 않으면 돼.”
“그런 거라면 저보다 머리가 좋은 황보관이 좋지 않겠습니까?”
“경은 일본에서 신이라 칭송받는 무인이야. 실제로 무공의 경지도 그 누구보다 높고. 그러니 경은 이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두 백작과 다른 일본인들을 두려워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야.”
“알겠습니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준기는 잠시 고민하다가 흔쾌히 대답하였다.
충성스러운 그답게 호영의 지시라면 일단 따르고 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를 뛰어넘는 자가 준기라서 다행이군.’
호영은 그런 준기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최초로 S랭크에 도달할 것 같은 사람이 준기라서 다행이라고.
물론 준기가 아닌, 김성근이나 순현, 윤수 등이 최초의 S랭크가 된다고 해도 그들이 호영을 배신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호영의 권력은 무력이 아니라 재력과 명분, 정치적 영향력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준기가 아닌 다른 자들이 그를 넘어선다면 명예나 위상이 제법 타격을 입기는 할 것이다.
준기는 호영과 동등한 실력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마치 스승과 제자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재능이 가장 뛰어난다고 알려진 호영이 그들에게까지 뒤처진다면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을 터.
언론에서도 제법 시끄럽게 굴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 대한국의 주요 멤버들은 연예인 이상으로 인기가 많았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호영으로서는 최초의 S랭크 고수가 될 사람이 다른 이들이 아닌, 준기라서 다행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순현이나 김성근 등도 언제 S랭크가 될지 모른다. 그들의 재능은 무시무시한 수준이니 말이야. 그러니 나도 4회 차나 5회 차에는 S랭크에 도달해야 한다. 나의 명예와 대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꼭!’
호영은 주먹을 불끈 쥐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 * *
“갑자기 논공행상이라니. 설마 사냥개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
“규슈는 정복하지 않는 건가?”
“어찌 되었건 높은 작위를 받았으면 좋겠다.”
마치 냉전처럼 직접적인 무력 다툼은 일체 없이 긴장 상태만 이어지던 어느 날, 전군을 지휘하는 대한국의 지휘부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장수들은 모두 교토로 집결하라는 명령이었다.
당연하겠지만 대한국의 장수들과 동북부 연합군의 장수들 모두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체하지 않고 교토로 향했다.
항장 출신만이 눈치를 보다가 뒤늦게 교토로 이동하였다.
혼슈와 시코쿠를 정복한 주역들이 전부 교토에 모이자 일본 천황이 사용하던 황궁에서 갑자기 논공행상이 열렸다.
일전에 대한국의 국왕이 이야기했던 대로 작위와 영토 등을 하사하기 위해 치러지는 논공행상이었다.
대부분의 장수들은 규슈 정복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치러지는 논공행상에 의문을 드러냈고, 몇몇 장수들은 토사구팽을 의심하였으며, 몇몇 장수들은 자신이 받게 될 포상을 기대하였다.
그렇게 한국과 일본 출신의 장수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황궁의 정전에서 치러지는 논공행상에서 사회자를 맡은 친위대 장수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국왕 전하께서 입장하고 계십니다!”
악공들의 연주 소리와 함께 묵직한 기도를 풍기는 사내가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천황이 사용하던 옥좌로 향했다.
이자가 바로 대한국의 국왕이자 세계 제일의 고수라 불리는 연왕이었다.
“엄청난 기세로군. 이게 무신의 경지라는 것인가.”
“만 명의 병사로도 어쩔 수 없다지? 동북부에서는 1만 명을 넘어 5만 명을 상대했다던데.”
“조선 출신이지만 이 정도면 인정할 수밖에 없어.”
일본 유저들은 연왕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는데, 이 자리에 군주 출신도 적잖이 있었음에도 적대감이나 악의를 표출하는 이가 없었다.
대한국의 지배에 불만을 품은 자들은 이미 죽어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대한국의 국왕이 일본인들에게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부대 차렷!”
척!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소란을 피우던 일본 장수들은 친위대장 김성근이 기세를 피우자 입을 꾹 다물며 차렷 자세를 하였다.
“국왕 전하께, 경례!”
“충! 성!”
자세부터 어눌한 목소리까지, 모든 게 어색하였지만 그래도 연습한 티가 나는 모습이었다.
“바로!”
척!
김성근의 주도하에 국왕에 대한 경례를 마치자 사회자가 말했다.
“작위 수여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국기에 대한 경례가 있겠습니다. 단상에 계신 분들은 국기를 향해 일어서 주시길 바랍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
“국기에 대한 경례!”
“추······!”
군 출신이 많은 한국 유저들은 실수를 하지 않았지만 아직 모든 게 어색한 일본 유저들은 곧잘 실수하였다.
국기에 대한 경례에서 충성을 외치는 실수를 한 것이다.
일본 유저들의 실수에 여기저기서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사회자의 통제에 다시 정숙하였다.
그 이후 대한국이 건국될 때 만들었던 애국가 1절을 부르고 나서야 마침내 모두가 기다리던 ‘작위 수여식’이 시작되었다.
“다음은 작위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수여 대상자들은 앞으로!”
사회자의 부름에 대략 쉰 명 정도 되는 이들이 단상 앞으로 향하였다.
“저자가 바로 반도의 수호신인가?”
“들어 보니 무공 실력이 전하와 비슷한 수준이라던데.”
“가장 앞에 서 있는 이유는 작위가 가장 높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백작인가?”
“뭐, 후작이나 공작일 수도.”
“아무튼 부럽다. 나도 저 안에 끼었으면.”
논공행상에 참여하였지만 수여 대상자가 되지 못한 이들은 부러운 눈으로 수여 대상자들을 바라보았다.
수여 대상자는 단순히 돈 몇 푼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귀족이라는 특정 계급에 속하게 되고 여기에 자신만의 영토도 갖게 된다.
그야말로 권력과 명예, 부까지 얻게 되는 것이다.
수여 대상자가 되지 못한 이들로선 부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공화주의자나 공산주의자 같이 특정한 사상을 가진 이들을 제외하고는 수여 대상자들에게 질투하거나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반도 수호신, 초인부터 친위대장 김성근, 유격대장 순현, 모가미 대첩의 주인공 황보관까지.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들이 세운 군공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일본인으로서 수여 대상자가 된 이들의 명단도 하나같이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동북부 연합군에 소속되어 대한국을 처음부터 도왔던 일본인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대한국에 귀순한 항장들도 대단하기 그지없는 활약들을 하였다.
오다 노부히데처럼 이름값부터가 어마어마한 이들도 적지 않았고 말이다.
‘규슈 전쟁에서는 기필코 활약하고 만다!’
‘조선의 시대가 왔으니 조선어를 배워야겠어.’
‘나도 언젠가 귀족이 될 수 있겠지?’
일본인들이 속으로 그 같은 생각들을 할 때, 단상 위에서는 국왕에 대한 경례가 끝나고 본격적인 작위 수여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치노헤를 수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교토 대전에서 오백 명으로 결성된 기병으로 쇼군과 천황을 사로잡는 공을 세운 초인에게는 백작 작위와 함께 왕실 직할 도시가 될 도쿄를 제외한 간토 지역 전체를 하사한다.”
“충!”
초인이 간토 지역을 갖게 된다는 말에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었다.
“어어? 간토 지역이라면 야마토 제국의 영토였잖아. 당연히 오다에게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간토 지역 전체를 준다고? 일개 귀족이 갖기에는 너무 큰 땅 아니야?”
“그러게. 석고로만 따져도 150만 석이 넘을 텐데. 사병 제한이 없다면 5만 명을 징집하는 것도 가능하겠다.”
“근데 도쿄는 왜 왕실 직할 도시가 되는 거지?”
“뭐겠어. 견제하는 거겠지.”
“하긴, 수하를 의심하는 것은 조선이라고 다를 게 없겠지. 그래도 우리 일본에서는 잘 쓰지 않는 방법인데 신선하네.”
“부럽다. 나도 공을 세웠어야 했는데!”
“다음 전쟁에서는 나도 모든 걸 걸고 싸워야겠어. 죽은 자들에게도 후한 상을 내려 주는데 가릴 게 뭐 있겠어.”
간토 지역 전체를 하사한다는 말에 일본인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소국을 칭해도 부족할 것이 없는 영지를 상으로 하사하니 작위 수여 대상자들을 그저 부러워하기만 하던 일본인들로선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심정이든 간에 작위 수여는 계속 이어졌다.
“동북부 연합군을 결성하여 적군의 공세를 막고······ 적군과의 교섭에 큰 공을 세운 미와 미사요시에게 백작 작위와 함께 오카야마를 제외한 츄코쿠 지역 전체를 하사한다.”
“항장으로서 야마토 제국의 수도를 함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교토 대전에서 수천의 적군을 무찌른 오다 노부히데에게는 백작 작위와 함께 주쿄 지역에 시가와 나라를 더해 하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