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30화 (230/345)

# 230

“들어오시라고 해라.”

여비서에게 그리 답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정치인치고 꽤나 젊어 보이는 사내가 들어왔다.

바로 정성원이었다.

“송 회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제가 찾아뵀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이렇게 송 회장님의 집무실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은데요, 뭘.”

“이리로 앉으시지요.”

“감사합니다.”

그를 테이블로 안내하니 지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정성원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요즘 로열 그룹의 활약이 놀랍습니다. 성삼 그룹조차 맥을 못 추리지 않았습니까?”

“과찬이십니다.”

“아니요. 과찬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로열 그룹 덕분에 우리 정부도 성삼을 제대로 압박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조금이라니요. 우리나라를 불공정 사회로 만들었던 악의 축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요.”

항상 표정 없이 덤덤하였던 정성원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열변하였다.

어지간히 성삼 그룹을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호영은 그런 정성원을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런데 이곳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지금 한창 바쁘신 걸로 아는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저는 대통령님의 지시를 받고 왔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어떤 지시를?”

“로열 그룹과 성삼 그룹 간의 분쟁을 해결하라 하셨습니다.”

“······예?”

예상치 못한 정성원의 말에 호영은 동요를 숨기지 못하였다.

설마 대통령이 중재에 나서려 할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이제 와서 성삼 그룹과 화해하라는 뜻입니까?”

“이 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언제까지 분쟁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성삼 그룹을 치자고 제안했던 것은 정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싸움을 멈추라니요? 아직 저희는 성삼 그룹의 회장에게서 사과를 받아 내지도 못했습니다.”

“송 회장님, 일단 진정해 주십시오.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슨 의미로 그런 소리를 하신 겁니까?”

“이제 곧 성삼 그룹에 큰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그건 또 뭔 소리입니까?”

호영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니 정성원이 지체하지 않고 설명해 주었다.

“현재 성삼 그룹의 주주들은 단단히 뿔이 난 상태입니다. 로열 그룹의 맹공격에 주가가 폭락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요?”

“성삼의 오너 일가는 주주들을 장악하는 능력이 무척이나 대단하여 분노의 방향을 절대 자신들에게 향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너가 잘못하여 문제가 생겨도 다른 방향에다 분노를 표출하게끔 여론을 선동했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주주들은 송 회장님을 비난하는 것으로 분노를 가라앉히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전처럼 단순하게 분노를 가라앉히기에는 주주들의 손해가 너무 컸습니다. 성삼 그룹 계열사들의 주식가격이 IMF 때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빠르게 하락했으니 말입니다.”

거기까지 들으니 호영도 성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임총이 열리겠군요.”

“그렇습니다. 성삼의 100년에 가까운 역사에서 최초로 오너 일가가 주주들에 의해 퇴출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까 성삼 그룹과 화해하라는 것도······?”

“예, 지금 당장은 어려워도 회장이 바뀐다면 화해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성삼 그룹의 총수가 바뀐다?

호영은 내심 흡족해하였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으로 인해 ‘그 성삼 그룹’의 총수가 바뀌는 것이다.

로열 그룹과 자신의 힘을 보여 주기에 이보다 적합한 일은 없을 터.

“총수가 바뀐다면 화해를 못 할 것도 없다고 봅니다. 물론 성삼 쪽에서 적당한 보상을 제시해 줘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역시 말이 잘 통하는군요. 사실 정부에서 로열 그룹을 걱정하는 인사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로열 그룹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경각심 때문이었죠.”

“그렇습니까?”

정성원의 말에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정부가 로열 그룹을 경계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 같았다.

성삼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강대했던 성삼을 힘으로 찍어 누른 그룹이니 말이다.

‘나는 딱히 성삼처럼 법을 무시할 생각도, 정부를 무시할 생각도 없는데 말이지.’

호영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미래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는 정부를 무시하지 않아도 그의 자식이나 손자는 또 어떻게 할지 확신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로열 그룹은 우리나라에서 필수 부가결한 기업이고, 무엇보다 그룹의 총수이신 송 회장님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분이라 다른 재벌들과 달리 걱정이 안 됩니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괜한 의심을 한 정부 측이 잘못한 것이지. 아무튼 송 회장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성원이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건네자 호영도 웃으며 악수를 받아 주었다.

* * *

그렇게 대통령이 보낸 사자, 정성원과 서로 협력적 관계를 약속한 다음 날이 되자 희소식이 전해졌다.

탈세 혐의를 받던 이재후 회장, 해외 도피!

이재후 회장, ‘여론 몰이 수사와 정치적 수사에 염증을 느꼈다’

성삼 그룹의 총수, 이재후. 그가 해외 도피를 한 것이다.

“설마 해외로 도망칠 줄이야. 해외 도피를 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나?”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주주들의 반란이 일어난다 해도 이재후의 힘이라면 어떻게든 버텨 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단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존심?”

“황제로서 살아왔던 인간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대역죄인 취급을 받으며 적이었던 우리 로열 그룹에 투항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참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호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가업까지 포기하면서 자존심을 지키려 하다니. 정말 자존심 하나는 대단한 양반인 것 같았다.

“어쨌든 해외로 도피한 이상 경계할 필요가 없어졌군. 이재후가 경계 대상이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성삼 그룹의 총수였기 때문이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이재후는 그저 돈 많은 부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단순한 부자라고 부르기에는 돈이 지나치게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돈만 많은 부자라, 우리와 완전히 정반대가 된 상황이네?”

전쟁이 시작되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위치가 역전되었다.

이제 성삼 그룹의 총수가 가지고 있던 사회적 영향력이나 지배력은 호영의 것이 되었고, 그저 돈만 많은 졸부 포지션은 이재후의 것이 된 것이다.

‘물론 그래 봤자 우리처럼 역전을 시도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야.’

관계가 역전되었다고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재후가 가진 부는 호영이 가진 부에 못 미치고 성삼 그룹이 가지고 있던 사회적 영향력은 로열 그룹이 가지게 된 영향력에 못 미치니 말이다.

“더 이상 이재후를 신경 쓸 필요는 없게 되었으니 이제 센추리에 집중해야겠어. 슬슬 규슈 점령을 끝내야 하니 말이야.”

“그러십시오. 혹시 모르니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겠지만 회장님께서 신경 쓰실 필요는 더 이상 없을 것 같습니다.”

허영만의 대답에 호영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센추리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으니 만족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제나라 용병들과 규슈의 해적들을 상대해 볼까?’

그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센추리에 접속하였다.

* * *

오래간만에 센추리에 접속한 호영은 곧장 충구에게 물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전황도 그대로고 군세의 변화도 없으니 말입니다. 다만, 일본인들의 민심이 좋아진 것과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었다는 게 변화라면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호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뭐, 군부의 분위기가 어수선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거야 센추리 시간으로 50일 넘도록 전투가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민심이 좋아졌다는 것도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아직 규슈는 그대로겠지만, 혼슈나 시코쿠의 경우 수백 년간 이어졌던 전란이 마침내 끝난 셈이었다.

무사들은 몰라도 일반 백성들은 기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대한국처럼 교육이 발달했거나 중국처럼 민족의식이 강하지 않는 이상, 통치자가 누구인지는 일반 백성에게 있어 아무런 상관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규슈도 그대로이겠군.”

“예, 겉으로 봐서는 달라진 게 없습니다. 다만 식량 사정이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습니다.”

“하기야, 규슈에만 20만에 가까운 군대가 있으니 아무리 전쟁이 잠시 멈추었다고 해도 식량 소모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겠지. 애초에 10만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던 지역이었으니 말이야.”

“더군다나 제해권이 장악당해 해적질도 못 하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지금 규슈는 그야말로 인세의 지옥과 다를 게 없을 것입니다.”

규슈는 식량 생산량이 그리 높다고 볼 수 없는 지역이면서도 군사력은 지나칠 정도로 비대하였다.

영주들이 워낙 많아서 그런 것인데, 영주들의 군세를 모두 합치면 10만에 달하였다.

거의 대한국과 비슷한 수준인 것이다.

당연히 규슈의 식량 생산량으로는 10만의 군사력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교역이 더해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규슈는 중국을 약탈함으로써 식량난을 해결해 왔다. 마치 실제 역사의 왜구처럼 해적 노릇을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대한국과 전쟁이 시작되고 후쿠오카 해전에서 해군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게 되자 규슈는 더 이상 해적질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거기에다 제나라 용병들까지 쳐들어와 전쟁을 해 대니 식량 소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나마 지금은 제나라 용병들이 갑자기 대한국을 배신하고 규슈의 일본군과 정전협정을 맺어 식량 소모가 줄어든 상황이었지만 규슈의 자체적인 식량 생산량으로 20만에 달하는 군사들을 먹여 살릴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전 지역이 아사 직전의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병력들은 지금 뭘 하고 있지?”

“전하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주둔지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항장들이 거느린 병력들도 대기하고 있나?”

“그렇습니다.”

“계속 대기 상태로 놔둔다면 사고만 벌어질 거야. 군대는 이제 슬슬 해산시키는 게 좋겠어.”

“예? 전하,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원정군 5만을 제외하고 나머지 군대를 해산시켜야 할 것 같다고.”

호영의 뜬금없는 말에 충구가 기겁한 얼굴로 물었다.

“군대를 해산시킨다니요. 규슈에는 20만에 가까운 적군이 존재합니다. 5만으로는 정복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니면 설마 규슈 정복을 이대로 포기하실 생각입니까?”

“원정군만으로도 충분히 규슈를 정복할 수 있어. 그리고 그래야지만 규슈를 직할령으로 둘 수 있는 명분이 생길 것이고.”

“······물론 전하께서 이끄는 군대라면 4배가 넘는 적군을 상대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승산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전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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