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
회귀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패를 겪어 본 적이 없었던 호영이지만, 더 이상 미래를 알 수 없었기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공 경지가 계속 A+에 머물러 있는 것도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데 한몫을 하였고 말이다.
호영이 대한국의 절대자가 됐으면서도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일본 공격을 진행했던 것도 어쩌면 이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몰랐다.
5회 차나 6회 차 때도 계속해서 대한국의 국왕으로 군림할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4회 차 때 최대한의 성과를 보려고 했던 것이고 말이다.
아무튼 호영은 센추리에서 실패를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줄곧 불안감을 느꼈었지만 이번 SJ 전자 인수로 조금이나마 불안감을 덜 수 있었다.
SJ 전자는 미래가 아주 유망한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인수로 인해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SJ 전자의 로봇 기술력을 생각하면 결코 손해는 아니다.’
호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설령 미래가 바뀐다고 해도 이제 더는 두렵지 않았다.
그는 이제 돈만 많은 졸부가 아니라, 재벌 이상의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덤으로 SJ 전자나 대현 계열사 같은 건실한 기업체도 다수 보유하였고 말이다.
“이제 성삼의 항복만 받아 내면 되는 건가?”
갑작스러운 성삼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
처음에는 어느 정도 손해를 봤지만 시간이 갈수록 잃는 것은 없고 얻는 것만 많은 전쟁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간에 끝은 존재하는 법이었다.
이번 전쟁도 슬슬 끝날 때가 된 것 같았다.
‘길어야 보름 정도이려나.’
허영만처럼 무언가를 예측하는 실력이 엄청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곧 있으면 성삼이 백기를 들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가 느끼기에도 성삼에게 승산이란 없었던 것이다.
* * *
‘검찰 수사 무풍지대’ 성삼 압수 수색! 7천억 원대 탈루 정황
성삼의 마왕 이재후, 드디어 구속되나?
전면전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지나자 성삼 그룹의 입지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성삼 그룹의 주가는 폭락을 거듭했고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부회장이 검찰의 수사를 받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회장님, 성삼 그룹에서 이번 사태를 주도하였던 비서실장, 윤수혁을 해고시켰다고 전해 왔습니다.”
“비서실장이 이번 사태를 주도했다고? 아직도 옛날처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무튼 비서실장을 해고시킨 것을 왜 우리한테 전한 거지?”
“책임자를 처리하였으니 이제 용서해 달라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호영은 코웃음을 쳤다.
“진짜 책임자는 사과도 하지 않았는데 용서해 달라고? 도마뱀 꼬리를 잘랐다고 정말 우리가 용서해 줄 것이라 생각한 것인가?”
재계 서열 1위에 해당하는 그룹이니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는 사실 정도는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은 자신의 계열사를 바치면서까지 용서를 구했는데 고작 비서실장을 해고시키는 것으로 용서해 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쯤에서 휴전 제의를 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재후 회장이 워낙 자존심이 강해서 그렇지, 지금쯤 휴전만을 간신히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군. 성삼 그룹이 시작한 전쟁인데 우리가 먼저 휴전을 제의하라는 건가?”
“우리 그룹은 이미 많은 것을 얻었고 위상까지 크게 높였습니다. 얻어야 할 것은 다 얻었으니 지금부터는 되도록 전쟁을 빠르게 끝낼수록 좋습니다. 이 이상 전쟁이 길어지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질 것이니 말입니다.”
그의 말처럼 전쟁이 길어지면 좋을 것은 없었다.
금전적 손해도 손해지만 여론이 돌아설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성삼 전자의 주가 하락으로 국민연금이 큰 손실을 봤고, 지수 변동이 극심해지는 터라 정부에서도 조금씩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성삼 그룹의 직원과 직원의 가족, 주주 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이번 사태에서 사실상 가장 큰 피해를 입었기에 로열 그룹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전쟁이 길어지면 여론이 안 좋게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허 이사는 분명 성삼 그룹이 한 달 이내에 백기를 들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아직 허 이사가 말한 날짜에서 절반도 안 지났는데 왜 그렇게 성급히 움직이려고 하지?”
“제가 깜빡 잊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성삼 그룹 총수의 자존심입니다. 원래라면 SJ 그룹과 대현 그룹이 항복한 시점에서 성삼 그룹과의 협상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지 않습니까?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이재후가 계속 뻐기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재후는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잃은 것은 없고 얻은 것만 많은 지금 시점에서 협상을 하는 게 우리에게 이득입니다. 앞서 말했듯, 전쟁이 길어지면 우리 쪽도 잃는 것이 많아질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호영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로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결국 상대가 성삼 그룹이기 때문에 타협하라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이대로 전쟁을 계속한다면 로열 그룹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항복을 받아 내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어쩌면 그때는 정부도 우리 편을 들지 않을 수도 있지. 그러니 이참에 성삼 그룹과 이재후를 완전히 굴복시켜야 돼. 굴복시킬 수 없다면 아예 몰락시켜야 할 것이고 말이야.’
잠시 고민하던 호영이지만 결국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무엇을 잃든, 지금은 단호함을 보여 주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 다시는 누구도 우리에게 덤비지 못할 것이니까. 그리고 전쟁이 길어진다 해도 우리가 잃는 것보다 성삼이 잃는 게 더 많을 것이야.”
“쥐도 궁지에 물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성삼 그룹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허영만이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이 되었는데도 그는 성삼 그룹의 저력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도 아닌데 쥐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나?”
하지만 호영은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삼 따위는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말이다.
그러자 허영만이 어두운 기색으로 우려의 뜻을 전했다.
“모든 걸 잃을 처지가 되었으니 무슨 짓이든 할 것입니다. 어쩌면······ 회장님에 대한 암살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허 이사, 이것은 전쟁이야. 암살쯤은 처음부터 가정했어야 하지 않나? 나는 이미 대비하고 있었는데.”
“······.”
호영의 무덤덤한 목소리에 허영만은 잠시 움찔하였다.
현실에서는 살기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는 호영에게서 오싹한 무언가를 느낀 듯한 기분이었다.
“쥐새끼의 발악 같은 것은 걱정하지 말도록. 우리는 고양이 따위가 아니니까. 허 이사, 알아들었나?”
“예, 알겠습니다.”
허영만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하였다. 평소보다 조금 더 겸손하게 느껴지는 태도로 말이다.
똑똑.
“회장님, 저 민건우입니다.”
그때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보자의 섬에서 길드장 자리를 맡고 있는 민건우였다.
“들어와라.”
호영이 대답하니 집무실의 문이 활짝 열리며 20대 중후반의 민건우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리숙한 표정을 지었는데 집무실처럼 딱딱한 공간이 아직 낯선 것처럼 보였다.
“본사에는 어쩐 일이지?”
“저도 딱히 올 생각은 없었는데요. 길드로 성삼 그룹의 사람이 찾아왔어요. 갑자기 저에게 화해 좀 하자면서.”
민건우의 말에 호영은 조소를 지었다.
허영만이 장담했던 대로 성삼 그룹은 휴전을 절실히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그들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릎을 꿇을 생각이라면 제대로 꿇어야지, 어정쩡하게 찔러보기나 하고 있군. 아직도 내가 우스워 보이나?’
속으로 혀를 차고는 건우에게 말했다.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지?”
“저야 뭐 할 말이 있나요. 그냥 회장님 찾아가라고 했지. 근데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회장님께 중재를 요청해 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안 도와주면 자신들이 죽는다나?”
“애꿎은 사람만 귀찮게 만들었군.”
“회장님 만나고 이따 문자라도 달라던데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항복하고 싶으면 회장이 직접 찾아오라고 전해. 대가를 치를 준비를 철저히 하고서 말이야.”
“과연 그쪽 회장이 올까요? 그 이재후인데.”
“안 오면 어쩔 수 없지. 전쟁을 계속하는 수밖에.”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니 민건우가 눈을 크게 뜨며 감탄하였다.
재계 순위 1등인 대기업을 상대로 당당하게 말하는 호영의 모습이 새삼 멋있게 보인 모양이었다.
‘이런 걸로 감탄하다니. 자기가 대한 길드의 길드장이라는 자각이 없는 것인가?’
호영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건우를 보며 고개를 가로젓다가 허영만에게 말했다.
“허 이사, 준비하도록. 이제 곧 성삼 그룹이 무조건적인 항복을 하거나 아니면 최후의 발악을 할 것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성삼 그룹의 입장에서는 민건우를 통해 휴전을 제안하였는데도 로열 그룹 측에서 단호하게 거부한 상황이니 둘 중 한 가지의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싸우거나 완전히 항복하거나.
‘상대가 이성적이라면 무조건적인 항복을 하는 게 맞겠지만······ 왠지 이재후는 그럴 것 같지가 않군.’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애초에 로열 그룹을 공격하지도 말았어야 했다.
그러니 상대는 이번에도 합리적으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무의미한 저항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 * *
성삼의 휴전 제안을 거부하고 이틀이 지나자 윤원목이 새로운 정보를 물고 왔다.
“나에게 현상금을 걸었다고?”
“예, 국내의 조선족이나 동남아 마피아 그리고 삼합회 같은 외국의 조직에까지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다행히 국정원이 적극 협조해 줘서 막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어처구니없는 놈이로군.”
결국 성삼 회장 이재후는 무조건적인 항복과 최후의 발악 사이에서 최후의 발악을 선택하였다.
그야말로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다.
“재벌들에게는 제2의 반로열 동맹을 만들자고 권하였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허영만이 자신이 물고 온 정보를 호영에게 전달해 주었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쳤던 성삼 회장이 재벌들에게 그런 권유를 했다고?”
“본인도 지금이 최악의 상황인 것은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 주제에 나에게는 만나자는 연락 한 번 안 하다니.”
“······말했지 않습니까, 이재후는 합리적인 인간이 아니라고.”
“쯧.”
호영은 혀를 찼다.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성삼을 강제로 무릎 꿇리려면 시간이 제법 걸리겠군.’
이래서야 언제쯤 마음 편히 센추리에 접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회장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인터폰이 울리며 스피커에서 여비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손님?”
-예,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정성원이 찾아왔다는 말에 호영은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