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28화 (228/345)

# 228

호영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정부의 ‘성삼 때리기’가 주로 성삼 회장, 이재후에게 향했다면 호영의 ‘성삼 때리기’는 그야말로 성삼 전체를 향하였다.

즉, 성삼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모든 기업에 공격을 개시하였다는 것이다.

“언론은 어느 정도나 회유되었지?”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성삼의 나팔수 역할을 하던 언론들을 회유하는 일이었다.

신문사, 종편, 인터넷 포탈 등등 성삼의 입김이 닿는 언론들을 아군으로 만들었다.

“한경오 신문사가 더 이상 성삼 그룹의 광고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고려 신문은 중립하려는 것 같습니다.”

“종편들이 성삼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언론들을 회유하는 데 엄청난 자금이 소모되었다. 짧은 시간에 수천억이 소모된 것이다.

하지만 이 돈지랄의 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마치 개그 프로를 보는 것 같군. 어제까지만 해도 성삼을 옹호하던 신문사들이 하루 만에 성삼을 적극 비난하다니. 이게 바로 돈의 힘인가?’

언제나 재벌을 두둔하였던 보수 언론들조차 광고료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돈을 받게 되자 곧바로 성삼을 배신하였다.

그가 알기로 보수 언론은 재벌들과 혼인으로 얽혀 있어 웬만해서는 성삼에 반하는 기사를 실지 않는데 돈의 힘이 확실히 크긴 큰 것 같았다.

물론 단순히 돈의 힘만 보고 배신한 것은 아니고,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겠지만 말이다.

“로테 그룹에서 인수했던 손해보험사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언론을 장악한 이후에 한 것은 바로 보험 업계에 진출하는 것이다.

성삼 생명과 성삼 보험.

이 두 회사는 국내의 보험 업계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총 보험료 규모로 계산하면, 성삼 생명과 성삼 보험이 각각 생명보험 보험료의 33퍼센트, 손해보험 보험료의 3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보유 계약 수로 따지면 성삼 생명은 무려 인구의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한 개인이 여러 개의 계약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실제 인구는 40퍼센트에 못 미치겠지만 국민 상당수가 성삼 생명 또는 성삼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볼 수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240조가 넘는 규모를 가진 보험 업계에서 절대적인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성삼 생명과 성삼 보험의 매출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호영이 로테 손해를 인수하여 보험 업계에 진출하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성삼 그룹의 캐시 카우를 완전히 끊어 내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홍보를 무지막지하게 때려 줘서 그런지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성삼에서 이전한 가입자가 가장 많습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올해 안에 보험 업계의 톱이 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톱이 되어도 영업이익은 거의 제로에 가깝겠지만 말입니다.”

그 같은 보고들을 듣던 호영은 속으로 흡족하게 웃었다.

측근들이 하는 말처럼 순이익은 거의 제로, 아니 인수 비용이나 광고 비용을 생각하면 오히려 적자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만족스러웠다.

애초에 목적이 금전적인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성삼 그룹에 제대로 된 타격을 주었다고 볼 수 있겠군. 덤으로 로열 그룹의 사회적 영향력이 엄청나게 증가하였고 말이야.’

간혹 언론에서 ‘성삼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라는 주장을 할 때 항상 나오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주요 보험사의 도산이 경제에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한다.’였다.

즉, 성삼 그룹의 보험사들이 망하면 한국 경제에 엄청난 리스크가 유발된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호영으로서는 이 주장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경제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삼 그룹의 보험사들이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겠지만 자신이 성삼 그룹의 보험사만큼 거대한 보험사를 갖게 되면 엄청난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로열 손해보험사.

이 회사가 성삼 생명이나 성삼 보험처럼 보험 업계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면 로열 그룹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갖게 되리라.

지금의 성삼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말이다.

“신서울에서 성삼 그룹을 추방시키는 것도 잘되고 있다 하니, 성삼 그룹의 몰락도 머지않은 것 같네.”

호영이 그렇게 중얼거릴 때, 허영만이 갑자기 다가와서는 웃는 낯짝으로 말했다.

“방금 대현 그룹의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회장님을 뵙고 싶답니다.”

“나를? 그쪽에서는 누가 나온다고 했지?”

“회장이 직접 나온다고 했습니다.”

“노 회장이 나를 직접 만나려고 하다니. 지금까지는 고작해야 후계자를 보내는 게 전부였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확실하게 백기를 들려는 것 같습니다.”

“항복한다는 건가? 이렇게 빨리?”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성삼을 제외하면 열흘도 못 버틸 거라고.”

그 말에 호영은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SJ에서도 곧 투항을 하겠군. 허 이사가 장담한 일이었으니까.”

“분명 이틀 안에 그리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말이 틀렸다.

이틀이 아니라 반나절도 안 걸렸던 것이다.

* * *

“부디 용서해 주시오. 내가, 아니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SJ 그룹의 회장, 구자철.

재벌 회장에다, 나이가 무려 70세나 되는 그가 30대에 불과한 호영에게 허리를 숙이며 사과하였다.

봉건시대의 귀족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던 재벌 회장으로선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당연히 굴욕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구자철의 얼굴은 수모를 당한 분노보다,

어떻게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필사적인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야말로, 무릎을 꿇으라면 꿇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역시 회장들은 노회하군. 오히려 재벌 3세, 재벌 4세의 후계자들은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데 말이야.’

아까 만났던 대현 그룹의 회장도 그렇지만 확실히 재벌가의 수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나이가 서른 살 넘게 차이 나는데도 주저하지 않고 허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일어나십시오.”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그 말에 호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재벌가의 회장으로서 나름 큰 용기를 낸 것이겠지만 그는 허리 숙이는 정도로 상대를 용서해 줄 생각이 없었다.

“용서해 주시지 않는다면 계속 이러고 있겠습니다.”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이······!”

“협상하지 않으실 겁니까?”

“······!”

사과를 받아 줄 때까지 허리를 숙이고 빌려 했던 구자철이지만 ‘협상하지 않을 것이냐.’라는 호영의 말에 허리를 펼 수밖에 없었다.

“대현 그룹의 경우 대현 엘리베이터, 대현 무벡스, 대현 상선 등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구자철이 의자에 앉자 호영은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비슷한 신분이었던 대현 그룹이 어떻게 대가를 치렀는지 알려 준 것이다.

“그 말씀은······.”

“SJ 그룹에서는 제게 무엇을 주실 수 있습니까?”

호영의 말에 구자철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협상 테이블을 걷어차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계열사를 한 개도 아니고 최소 다섯 개는 바쳐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저 그런 계열사를 바쳐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대현 그룹이라는 예시를 보니 주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계열사를 바쳐야지만 협상이 성사될 것 같았다.

계열사를 자식처럼 여기는 구자철로선 불편한 감정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약자는 그였다.

이미 SJ 그룹은 초보자의 섬에서 가장 큰 도시로 손꼽히는 신서울에서 추방당했다는 이유로 주가가 연일 하락하고 있는 상태였다.

더군다나 로열 그룹이 무한에 가까운 현금으로 성삼 그룹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주주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만약 이번 협상이 결렬된다면 주주들은 로열 그룹이 아닌, SJ 그룹의 회장인 구자철에게 분노를 토해 낼 것이다.

당연히 그 분노는 주주총회에서 표출될 것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구자철은 어떤 요구든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회장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저희도 그럼 계열사를 드리겠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계열사를 원하십니까?”

“SJ 전자를 원합니다.”

“······예?”

“SJ 그룹은 오직 SJ 전자만 주시면 됩니다. 다른 계열사는 안 주셔도 된다는 말입니다.”

“하, 하지만 전자는······.”

SJ 그룹의 모태는 SJ 화학이었지만 매출은 전자가 가장 높았다. 즉, SJ 전자가 SJ 그룹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구자철로선 SJ 전자를 넘기고 싶은 생각이 없을 것이다.

“물론 공짜로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시가에 맞춰서 현금으로 드리겠습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거부하면 어떻게 됩니까?”

구자철이 굳어진 얼굴로 그리 묻자 호영은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SJ 전자가 아니라면 협상은 결렬될 것입니다.”

“크흠!”

그 단호한 대답에 구자철은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어떤 요구든 수용하려고 했지만 전자만큼은 절대 줄 수 없었다.

SJ 그룹은 전자가 없으면 거의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전자를 주시지 않는다면 강제로 빼앗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재벌이라면 누구든지 섬뜩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대부분이 공격적 인수 합병에 몹시 취약한 지분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SJ 그룹은 다른 그룹에 비해 경영권 방어력이 높은 편이었다. 오너 일가의 지분이 상당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SJ 그룹도 공격자가 호영이라면 방법이 없었다.

이미 호영은 성삼 그룹과의 전쟁을 통해 자신이 기업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즉, 기업가들처럼 이윤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였다는 것이다.

무한에 가까운 현금을 가진 사람이 손해를 생각하지 않고 인수 합병에 나선다면 어떤 기업이 버틸 수 있을까.

오너 일가의 지분이 50퍼센트를 넘기지 않는다면 그 어느 기업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교적 안정적인 지분 구조를 가진 SJ 그룹도 마찬가지였다.

“후우, 알겠습니다.”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SJ 전자를······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감정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던 구자철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체념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애초에 우리를 공격하지 말았어야지.’

호영은 그런 구자철을 보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지만 겉으로는 미소를 지은 채 악수를 건넸다.

화해의 표시였다.

“앞으로는 잘 지내 봅시다.”

“······예.”

구자철은 다시금 허리를 숙이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발걸음이 빠른 것이 한시라도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호영은 이미 협상이 끝난 구자철을 신경 쓰지 않고서 이번에 얻게 된 SJ 전자에 대해 생각하였다.

‘내가 기억하는 대로라면 SJ 전자는 내년부터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될 거다. 성삼 그룹처럼 전자 하나로 그룹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그는 가끔 ‘내가 센추리에서 몰락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을 가질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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