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27화 (227/345)

# 227

“송 회장님, 재벌들이란 일반적인 논리로 평가할 수 없는 인간들입니다. 아마 로열 그룹을 공격한 것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논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로열 그룹이 잘나가는 것이 꼴 보기 싫어서라든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넘보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같은 이유들 말이죠.”

“고작 그런 이유들로 우리를 공격했단 말입니까?”

호영은 황당하다는 양, 헛웃음을 지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정성원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였다.

SJ 그룹이나 대현 그룹과 있었던 일만 떠올려 봐도 재벌들의 사고방식이 일반인과 얼마나 다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삼이 주동자라는 사실을 알려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답하기에 앞서 제가 먼저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송 회장님은 아까 주동자에게 반격에 나설 것이라 하셨는데, 상대가 성삼 그룹인 것을 알면서도 반격에 나설 의향입니까?”

꽤나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어떤 식으로 대답하느냐에 따라 적아가 나뉠 수도 있는 그런 질문이었으니까.

‘성삼 그룹의 힘은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 알려진 정성원 비서관도 성삼 그룹의 사람일 수도 있어. 만약 이 자리에서 성삼 그룹을 공격하겠다고 발언하면 성삼 그룹과의 전면전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거지. 하지만 설령 성삼 그룹에 선전포고하는 격이 된다 해도······ 나 역시 피할 생각이 없다. 이젠 성삼도 두렵지 않으니까.’

호영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다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가 성삼 그룹이라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를 공격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줄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정부도 공조하겠습니다.”

“공조라면?”

“우리 정부도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한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습니다. 성삼 그룹에 다시 한 번 정부의 힘을 보여 줄 생각입니다.”

그 말에 호영은 눈을 빛냈다.

정부가 공조해 준다면 성삼 그룹도 두렵지 않다.

몇 년 전까지야 ‘성삼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나라에서 성삼 그룹의 힘이 절대적으로 느껴졌지만, 이제는 정부의 힘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대한 길드의 활약 덕분에 대통령의 지지율은 정점을 찍고 있는 상황이었다.

센추리에서 어마어마한 이권을 얻어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점에 달하는 지지율을 가진 대통령의 권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재계 1위의 대기업조차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말이다.

호영으로선 무척이나 듬직한 아군이 아닐 수 없었다.

‘성삼, 네놈들이 무슨 이유로 나를 공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힘도 제대로 모른 채 공격한 것을 곧 있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작년에 공격했으면 위험했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성삼은 로열 그룹이 충분한 힘을 갖추고 정부와의 관계도 돈독히 한 이후가 되어서야 공격을 가해 왔다.

아마 이것은 성삼의 90년이 넘는 역사에서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다.

* * *

“주동자가 성삼 그룹이라더군.”

“성삼 말씀이십니까? 예상은 했지만 정말 황당한 일이군요.”

“예상을 했나?”

“음, 사실 그동안 성삼가에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어떤 이야기?”

“대한 길드가 팽창할수록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나돌았습니다. 한 번쯤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말입니다.”

“그렇군.”

호영은 인상을 찡그렸다.

결국 성삼 그룹과의 전쟁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라는 뜻이었다.

“정부와 공조하여 성삼 그룹을 공격하기로 하였다. 어떤 방식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나?”

“일단 성삼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는 언론부터 조용히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언론을? 하지만 언론들이 과연 나의 말을 따라 줄까? 그들은 전부 재벌가와 혼인으로 얽혀 있는 관계잖아?”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으로 안 될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야 대기업들의 눈치를 보느라 시도하지 못했지만 전면전이 시작된 이상 돈지랄이 뭔지 제대로 보여 주면 됩니다. 성삼이 한 해에 쓰는 광고 비용이 5천억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하니 그의 3배, 아니 4배를 쓰면 언론은 우리 편이 될 것입니다.”

“5천억의 4배라면 2조? 언론에다 2조나 쓰라는 건가?”

“언론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 연 2조라면 그리 나쁘지 않은 지출이지 않겠습니까?”

2조라는 말에 호영도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허영만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조물주보다 위대한 건물주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천문학적인 현금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임대업만으로 중견 기업을 넘어 대기업 매출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었기에 어떤 식으로든 소비를 해야 했고, 광고 지출이라면 홍보도 하고 이미지도 높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었다.

“좋아. 언론은 허 이사의 말대로 하는 걸로 하고, 다른 방법은?”

“대한 길드를 이용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즉, 초보자의 섬에 진출한 성삼 그룹 전체와 계약을 해지하는 것입니다.”

“건물주로서 갑질을 하라는 건가?”

“성삼이 먼저 공격했으니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다.”

“손해 보는 이들이 적지 않을 거야. 그리고 손해 입은 자들은 나와 대한 길드를 욕하게 될 것이고.”

“우리가 약하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욕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삼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사람들은 성삼을 욕하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먼저 공격한 것은 성삼 쪽이니 말입니다.”

“맞는 말이군.”

호영은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영만의 말처럼 전면전이 시작된 이상,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이기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진짜 전쟁처럼 말이다.

‘진짜 전쟁처럼이 아니라, 이 또한 전쟁이다.’

마음을 강하게 먹은 호영은 허영만에게 말했다.

“신서울에서 쫓아내는 것도 좋지만, 보다 직접적인 타격을 줘야겠어.”

“어떻게 타격을 주실 생각입니까?”

“성삼은 결국 기업이다. 매출이 줄어들면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거지. 그러니 우리의 통제에 따르는 유저들을 총동원하여 불매운동을 하게 만든다.”

4회 차가 되면서 센추리의 유저 숫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유저 수가 늘어난 만큼 대한 길드의 통제에 따르는 인구도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는데, 어느덧 대한 길드의 통제에 따르는 유저들의 숫자가 300만이 넘었다.

다단계로 이루어진 대한 길드의 길드원 숫자가 300만이 넘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 300만이 넘는 유저가 호영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은 아니었다.

길드원의 숫자가 많아진 만큼 통제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말이 길드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만약 호영이 ‘성삼 불매운동’을 주장한다면 적어도 절반 가까이는 성삼 불매운동에 가담할 것이다.

그의 말은 그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성삼은 50만도 안 되는 직원 숫자로 정부에게 협박을 해 왔지? 우리는 그보다 6배가 많다. 과연 이 차이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한번 보자고.’

호영은 싸늘하게 웃으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불매운동이라······.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성삼 그룹의 매출에 타격을 주는 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말해 봐라, 어떤 방법이지?”

“성삼 그룹의 최고 캐시 카우는 사실 전자 제품보다는 성삼 생명, 성삼 화재, 성삼 카드 등 보험과 카드 계열사입니다. 그러니 성삼의 제품들을 불매운동 하는 것보다 성삼 관련 보험과 자동차보험, 성삼 카드만 끊거나 다른 회사로 변경하는 것이 성삼 그룹의 매출에 더 큰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호영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보험이랑 카드를 노리자는 건가? 하지만 내가 듣기로 보험 쪽은 성삼보다 좋은 곳이 없어서 불매운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데?”

그가 그렇게 물으니 허영만이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하였다.

“없으면 회장님께서 만드시면 되지 않습니까?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단순한 답변이었지만 호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맞는 말이었다. 성삼 그룹의 경쟁자가 부족하다면 자신이 직접 경쟁에 나서면 되는 일이었다.

‘재계 1위의 대기업을 상대로 돈지랄을 하는 셈이 되겠군. 아주 재미있겠어.’

성삼보다 2배, 3배의 혜택을 준다면 성삼의 충성 고객들도 동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런 식으로 했다간 손해를 볼 수밖에 없겠지만 성삼 그룹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손해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돈을 벌고 못 벌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의 지배권이 달려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좋아. 한번 해 보자고.”

“맹세하건데, 성삼 그룹은 한 달도 채 버티지 못하고 백기를 들 것입니다.”

허영만이 그답지 않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호영은 그런 허영만을 보고서 피식 웃으며 물었다.

“SJ 그룹이나 대현 그룹은?”

“그들이야 보름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사업 전체를 대한 길드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보름? 설마 그 정도일까?”

“솔직히 보름도 최대한으로 잡은 것입니다.”

자신감을 넘어 오만하다고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그래도 한때 재계 순위 10등 안에 들었던 대기업들을 열흘 만에 굴복시킬 수 있다 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호영은 허영만의 자신감을 한번 믿어 보기로 하였다.

어찌 되었든 간에 지금껏 허영만의 판단이 틀렸던 적은 없으니까.

#다시 센추리로

로열 그룹이 가상과 현실을 가리지 않고 성삼 그룹을 전 방위적으로 압박할 때, 정부에서도 성삼 그룹과의 전쟁을 개시하였다.

다시 시작된 성삼 때리기?

대통령, “성삼 개혁이 공정한 사회의 출발점”

‘성삼 저격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 “사이다 인사”

특검, 이재후 구속하려 ‘성삼 저격수’ 보고서 “열공”

정부는 반성삼 인사를 대거 영입하고 특검을 구성하였으며 여론으로 성삼을 압박하였다.

그야말로 성삼 그룹을 향해 총공세를 펼친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성삼 그룹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사업 철수’ 카드를 사용하여 정부의 압박에 대응하였으며 언론이라는 나팔수를 동원하여 반대 여론을 조성하였다.

또한 조 단위를 들여서 로비하였던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을 움직였고, 성삼 장학생을 끌어모아 특검에 대항할 준비를 갖추었다.

재벌들 중에서도 오로지 성삼 그룹만이 할 수 있는 완벽한 방어 태세였다.

‘만약 내가 없었다면 이번에도 유야무야 넘어갔겠지. 사람들은 여전히 대통령보다 성삼 그룹의 회장을 더 두려워하니 말이야.’

대통령조차 방어 태세를 갖춘 성삼 그룹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임기가 정해져 있는 대통령으로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공세는 성삼 그룹에 큰 피해를 입힐 순 있겠지만 결정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못할 것이다.

이전 정권에서도 결국 ‘성삼 개혁’은 흐지부지 끝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대통령만 성삼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