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북조선과 후금 그리고 제나라에서 불러온 용병들은 여전히 츄고쿠나 시코쿠, 규슈 등에서 일본 군주들을 상대로 큰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그중에서 시코쿠를 담당한 북조선의 경우, 고치와 에히메를 점령함으로써 시코쿠의 영토 절반 이상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다.
규슈와 츄고쿠에서 활동하고 있는 두 나라 역시 상당한 크기의 영토를 차지한 상태였고 말이다.
“용병들 때문에라도 오히려 급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왜지?”
“그들이 아예 눌러앉으려 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정착한다는 말인가?”
호영이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
그러자 충구가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춥고 척박한 북방에서 살던 용병들이 남방의 풍요로움을 보았으니 다른 마음을 품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일본 못지않게 풍요로운 제나라에서 나고 자란 용병들이라면 다를 수 있겠지만 북조선이나 후금의 용병들 같은 경우 남방의 따뜻한 기후와 기름진 농토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북방에서는 그만큼 식량이 귀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돌려보내는 게 좋을까?”
호영이 그리 물으니 충구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은 그들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있어야지만 일본 군주들이 끝까지 합심하지 못할 것이니 말입니다.”
그 말에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결론은 지금껏 고생했던 대한국의 원정군이 또다시 고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건가?”
“그래도 적절한 시점에 동영 왕국을 무너뜨렸으니, 규슈든 츄고쿠든 병력을 보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충구가 불타오르고 있는 나고야 성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전투는 끝나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전투의 결과는 대한국의 압승이었다.
“후속 정리가 끝나는 즉시 강 제독을 불러야겠어. 곧바로 수송 작전을 준비해야 하니 말이야.”
전투는 끝났어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영 왕국의 영토를 차지함으로써 국경을 맞대기 시작한 간사이 지방의 일본 제국부터 츄고쿠와 시코쿠 그리고 규슈까지.
네 지역의 점령이 끝나야지만 비로소 전쟁이 끝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왕 이재후
“정말 놀랍네요. 불과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일본의 절반을 차지하다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미국에서도 거의 생중계로 전해지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공화국에 소속되어 있는 남녀가 대한국과 일본의 전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은 절반이지만 곧 있으면 영토 전체를 뺏기게 될 거야. 일본은 대한국의 공세를 막아 낼 힘이 없으니까.”
“사장님은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셨나요?”
조슈아의 물음에 패트릭은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대한국이 이 정도로 강력한 나라일 줄은 예상치 못했어. 그저, 송호영이라는 인물이 비범하다고만 느꼈을 뿐.”
“그래도 사장님의 안목은 역시 대단하네요. 저는 솔직히 송호영이라는 사람이 입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그 말에 패트릭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내 추측은 완전히 틀렸는데 안목이 대단하다고?’
안목이 좋다는 말은 어려서부터 자주 들었다.
마치 동양의 신비를 거론할 때 자주 등장하는 ‘관상’처럼 패트릭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많은 것을 파악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패트릭도 일본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려 50만에 가까운 군사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일본이었다. 반면 대한국의 군사력은 10만에서 15만에 불과하였다.
두 나라의 군사력 차이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한데 전쟁의 결과는 정반대였다.
일본이 군사력도 훨씬 많고 수비하는 입장인 만큼 절대적으로 유리해야 정상인데 전쟁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시종일관 밀리기만 하였다.
지금껏 발생한 사상자 숫자만 20만이 넘었고 영토도 절반 이상 빼앗겼다.
아직 확신하기는 어려운 시점이지만 일본의 패배는 기정사실화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 홋카이도라는 섬을 지키는 것이 최선일 줄 알았어. 내가 봤을 때 송호영이라는 자의 능력으로는 그게 한계였으니까. 하지만 대한국은 홋카이도를 지키는 것을 넘어 일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였지.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어.’
패트릭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대한국의 국왕, 송호영이라는 자에 대한 평가를 수정하였다.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인물’에서 ‘머지않은 미래에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를 수정한 것이다.
“사장님! 사장님!”
“응?”
“왜 또 멍하게 있으세요?”
“아니, 잠시 생각 좀 하느라고.”
생각에 잠겨 있던 패트릭은 조슈아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송호영이라는 자를 위험인물로 규정하였지만 그것은 머나먼 미래 이야기였다.
최소 5회 차는 되어야 동북아시아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패트릭은 화제를 전환하였다.
“사병들의 무공은 어때?”
“순조로워요. 대한 길드가 꽤나 좋은 무공을 가르쳐 준 것 같더라고요. 뭐, 가르치는 실력도 대단하고요.”
“다행이네. 대한국이 가진 무공이라는 힘을 보며 질투가 나려고 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아직 C급에 도달한 사람은 없다고 했지?”
“호호호, C급이 쉽나요? 달인보다 더 창을 잘 써야 되는 경지인데. 아마 C급의 무인은 다음 회 차까지 기다려야 할 거예요.”
“C급이 없다니 아쉽군. 그래도 어차피 캘리포니아 정부라면 D급으로도 충분하니 지금 당장은 C급의 무인이 급하지는 않겠어.”
지난 협상으로 슈워제네거 가문은 대한 길드에게서 몇 가지 무공을 얻어 냈다.
그중 창법의 경우 최대 C급까지 도달할 수 있는 무공이었는데, 마법에 치중하였던 슈워제네거 가문에게 있어 C급의 무공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미국에서는 기껏해 봐야 D급 수준의 무공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병기가 아닌, 격투술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말이다.
아무튼 C급의 무공을 얻어 낸 이상 슈워제네거 가문의 전투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거사를 일으키실 생각인가요?”
전투력이 강해지면 당연히 자신감도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슈워제네거 가문,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캘리포니아 공화국에서 가장 거대한 재벌 가문이자 정치 가문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슈워제네거 가문은 무공이라는 힘까지 얻게 되자 더 큰 권력을 바라게 되었다.
사실상 캘리포니아 정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그들에게 더 큰 권력이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독립하여 캘리포니아 공화국을 무너뜨리는 것!
즉, 다른 나라들처럼 공화국이 아닌 왕국을 건국하는 것이다.
패트릭은 지금 왕국을 건국하기 위해 거사를 계획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하니까.”
“5회 차를 노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때쯤이면 C급 무인도 적지 않게 생길 것 같은데.”
“변수가 너무 많아. 어쩌면 100년 뒤에는 다른 세력들도 우리 수준의 무공을 갖게 될 수도 있으니.”
그 말에 조슈아도 동감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다음 회 차를 기약하는 것은 너무 운에 의존하는 일이었다.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져도 결코 이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거사는 올해 안에 일으켜야 돼. 나는, 아니 우리 가문은 캘리포니아 공화국을 가지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니까.”
“호호! 역시 사장님은 대단하시네요. 캘리포니아만으로도 결코 작지 않은데 더 큰 것을 노리다니······. 그럼 저도 바쁘게 움직여야겠네요. 왕의 아내가 되려면 말이죠. 호호호!”
조슈아의 말에 패트릭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자신보고 야망가라 말하는 조슈아지만 그녀 역시 자신 못지않게 커다란 야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 * *
성삼 그룹의 회장, 이재후는 언제나 그렇듯,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그린 채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중년 사내에게 물었다.
“비서실장, 신서울에서 사옥을 매입하는 것은 어떻게 되었나요?”
이재후의 물음에 비서실장, 윤수혁이 표정 없는 얼굴로 답했다.
“실패하였습니다.”
“왜죠?”
“신서울에서는 토지를 임대하기만 할 뿐, 매매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무슨 야구장만한 땅을 갖겠다는 것도 아니고, 사옥을 매입하는 게 안 된다는 건가요? 우리 성삼 그룹의 사옥인데도?”
“예.”
“최근 들어, 우리 성삼 그룹의 이름으로 할 수 없는 게 정말 많아졌네요. 내 아버지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말이죠. 내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걸까요?”
“······.”
웃으며 말했지만, 분위기는 꽁꽁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
이재후.
그는 겉으로 온화한 듯 보였지만 속은 여느 재벌 회장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오만하고 냉혹하며 선민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이제 곧 대한 길드와의 전쟁이 시작되겠군.’
20년 넘게 이재후를 모셨던 윤수혁이었기에 이재후의 복심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이재후는 지금 대한 길드에 대한 응징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대한 길드의 등장으로 성삼 그룹의 지배력과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생각이었다.
“대한국과 일본의 전쟁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죠?”
그때 이재후의 입에서 전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윤수혁은 흠칫하고 말았다. 자신의 속내가 들켰다고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서 말했다.
“규슈를 제외한, 일본 전역을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일본까지 장악했으니 더욱 기세가 등등해지겠군요.”
“그들의 영향력이 더 강해지기는 할 겁니다.”
센추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일 전쟁.
한국인이라면 직업과 성별, 연령대를 막론하고 엄청난 관심을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 센추리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그랬다.
분명 가상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었지만 이 전쟁이 그저 가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재벌들 역시 관심을 갖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혜성처럼 등장해서는 어느덧 성삼 그룹 못지않은 영향력과 지배력을 갖게 된 로열 그룹.
바로 그 로열 그룹이 가진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재벌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곤란해졌어요. 로열 그룹이 이 정도로 커질 줄 알았다면 진즉에 제동을 걸었을 텐데 말이죠.”
“······송구합니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아니에요. 누가 알았을까요, 중소기업보다 작았던 회사의 영향력이 이렇게 커지게 될 줄? 저도 몰랐어요. 솔직히 저는 대한 길드 때문에 이득만 보았다고 생각했거든요.”
“······.”
“어찌 되었건 일이 이렇게 된 거, 지금부터라도 견제를 해야 되겠죠? 나의 시대에 대현 그룹처럼 추락할 수는 없으니 말이에요.”
뜬금없이 로열 그룹을 견제하겠다고 말하는 이재후를 보며 윤수혁은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평소처럼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이재후가 고개를 저었다.
“안 되죠. 안 될 일이에요. 평소처럼 했다가는 우리의 손해가 너무 크잖아요? 로열 그룹이 중견 기업이나 중소기업도 아니고 대기업보다 힘이 센 그룹인데 말이죠.”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재후는 손해 보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