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23화 (223/345)

# 223

대부분이 수준 낮은 용병들이라지만 2만이라는 숫자는 결코 작지 않았다.

아마 천황과 쇼군의 전쟁은 적어도 몇 달은 지속될 것이다.

그렇게 신선조와 용병 연합이 차례로 약속을 지키고 나자, 마침내 동성회가 약속을 지켜야 할 차례가 되었다.

“동성회는 언제 내응한다고 했지?”

“3시간 뒤에 군사를 일으키기로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슬슬 공격 준비를 해야겠군.”

“미사요시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김성근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나자 호영은 준기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경이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동성회가 만약 약속을 지키지 못할 시, 경이 성문을 열어야 한다. 할 수 있겠나?”

“예, 할 수 있습니다.”

담백하기 그지없는 준기의 답변에 호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사여구를 늘어놓지는 않았지만 준기는 자신이 한 말을 꼭 지킬 것이다.

그는 그런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동성회가 배신한다고 해도 준기가 나선다면, 우리 군의 타격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호영은 고다 진을 믿지 않았다.

신선조나 용병 연합의 경우 같은 일본인을 공격함으로써 신뢰를 어느 정도 쌓았지만 동성회는 아니었다.

야마토 제국과 함께 이미 몇 번의 충돌이 있기도 하였고 동성회의 수장, 고다 진은 호영에게 오른팔을 잃기까지 하였다.

복속을 표명했다가 갑자기 배신을 한다고 해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호영은 수련하기 바쁜 준기를 불러서까지 동성회의 배신을 경계하였다.

“전하, 오다 노부히데가 전하를 찾고 있습니다.”

그때 포로를 관리하는 장교가 호영에게 다가와서는 그와 같은 보고를 하였다.

“오다가 나를 찾는다고?”

“예, 급하게 찾고 있습니다.”

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북부에서 완패를 겪고서 대한국의 포로가 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호영을 찾은 적이 없던 오다 노부히데였다.

워낙에 자존심이 센 편이다 보니 충격을 이겨 내기가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호영을 만나는 것을 굴욕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서 호영도 지금껏 오다 노부히데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였다. 야마토 제국을 점령하기 전까지는 죽일 수 없겠지만 그래도 가모나 히사유키 그리고 고다 진처럼 아군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영문을 모르겠군. 일단 만나 보는 게 좋겠어.’

아무래도 야마토 제국의 수도가 점령되기 직전이라서 심리적 변화가 생긴 것 같은데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 봐야 알 것 같았다.

“데려와라.”

호영이 그와 같은 명령을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장한 체격에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사내가 호영을 찾아왔다.

이 사내가 바로 야마토 제국의 황제였던 오다 노부히데였다.

“경지가 올랐군?”

“역시······. 한 번에 알아보시는군요.”

갑작스러운 호영의 말에 노부히데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경지가 올라간 것을 단번에 알아내는 호영을 보고서 실력 차이를 제대로 실감한 것 같았다.

‘그새 A-라,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었나? 아니, 그보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공손한데?’

오다 노부히데는 호영의 아바타, ‘연왕’을 쏙 빼닮은 인물이었다.

잔악하고 포악하며 매우 오만한 성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포로의 신분이 되었으면서도 자신의 패배를 승복하거나 호영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았다.

포로로 잡힌 첫날에는 결박을 풀거나 간수들을 공격하는 등, 난폭한 행동을 일삼았을 정도였다.

그래도 며칠이 지나니 어느 정도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하였지만 공격적인 태도는 여전했다.

무려 황제로서 군림하던 인물이니 어쩌면 당연한 태도였다.

하지만 지금, 노부히데가 보여 주는 행동은 이전에 보여 주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반말을 하는지 존대를 하는지는 통역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터라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표정이나 목소리만 들어도 공손하게 느껴지는 태도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경지가 오른 것을 자랑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은 아닐 테고, 급하게 나를 찾은 이유가 무엇이지?”

“곧 도쿄를 치신다고 들었습니다.”

“설마 도쿄를 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건가?”

냉소를 지으며 그리 물으니 노부히데가 고개를 내저었다.

“들어주지 않을 걸 뻔히 아는데 그런 부탁을 하겠습니까?”

“그럼?”

“대한국의 편에 서서 싸우고 싶습니다. 도쿄를 공격할 때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무슨 뜻이지?”

“대한국의 장수가 되고 싶다는 말입니다.”

노부히데의 그 같은 말에 호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만큼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야마토 제국의 황제였던 네가 나의 장수가 되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왜지?”

“천하가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

천하가 바뀌었다는 노부히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낭인 조직이 복속된 이상, 대한국이 최종 승리자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본 정복이 기정사실화되었다고 해도 야마토 제국의 황제였던 이가 항장이 되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아무리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남다르다고 해도, 황제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이가 적국이었던 나라에 항복한다는 것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다른 건 넘어가더라도 일단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일본 군주들의 경우 싸워서 죽으면 죽었지 투항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신선조 같은 낭인 조직들과는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다.

“친한파니, 매국노니 그런 소리를 듣게 될 텐데 이유가 고작 그것뿐인가?”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뭐지?”

“위기감입니다.”

호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니 노부히데가 담담한 어조로 설명했다.

“저는 제 스스로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유저들 중에서는 저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전하에게 패배를 당한 이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최강인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에 한해서라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오만한 발언이었지만 말하는 이가 오다 노부히데다 보니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노부히데 정도라면 이 정도의 생각을 가졌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호영도 노부히데를 인정하고 있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세리자와와 미치이가 전하의 수하로 들어가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다 진도 이번 전투에서 크나큰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소식도 들었고 말입니다. 저는 이들의 활약을 듣고 경각심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그 낭인 것들에게 최고의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었습니다.”

“즉, 일본에서만큼은 최고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싶다는 건가?”

“예, 저는 적어도 일본인을 상대로는 아무에게도 지고 싶지 않습니다.”

“허.”

오만함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노부히데가 복속을 표명하기에 어떤 사연이 있었나 했더니 고작 이런 것이다니.

너무 황당해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나의 입장에서는 나쁘게 볼 일이 아니야. 귀화한 일본인들을 서로 경쟁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지만 일단 오다 노부히데가 가진 능력 자체가 꽤나 쓸 만해.’

왕을 넘어 황제라 불렸던 사내다. 결코 평범한 인물일 리는 없었다.

더군다나 노부히데의 무공 실력은 무려 A-였다. 초절정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A-는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흔치 않은 경지였는데, 노부히데를 얻으면 그야말로 야마토 제국의 민심에다가 뛰어난 무장까지 얻게 되는 셈이었다.

‘황보관이랑 김성근도 경지가 올랐고 대한 길드에서도 A-에 오른 무인이 몇 명 있다고는 하지만 A- 경지의 무인을 얻을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호영은 흔쾌히 웃으며 말했다.

“좋다. 너를 아군의 장수로 받아들여 주겠다.”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군주가 아닌 신하로서 격식을 갖추면서도 결코 비굴해 보이지는 않은 태도였다.

호영은 그런 노부히데의 태도를 눈여겨보고는 말문을 열었다.

“너는 일본인 중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고 했지?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공을 세우는 것! 누구보다 큰 공을 세운다면 일본인 중에서 유일한 백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황제로 군림하던 노부히데에게 백작이라는 작위가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더 이상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었다.

우물 안에서야 야마토 제국이 세상 그 자체로 보였겠지만 이미 우물에서 벗어난 그는 열도를 넘어 반도, 그리고 대륙이라는 세상을 보게 되었다.

조그만 제국의 황제로 군림하는 것보다 거대한 왕국의 백작이 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부히데는 반가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제가 바라던 일입니다. 전하께서는 그저 공을 세울 기회만 주시면 됩니다.”

노부히데의 말에 호영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A-급 고수라면 그 역시 얼마든지 기회를 제공할 생각이었다. 그것이 대한국에 이익이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한때는 야마토 제국의 황제로 군림했던 오다가 대한국의 편에 서서 일본을 공격한다라······. 일본인들로선 황당한 심정이겠군.’

물론 한 달 정도만 지나면 황당함으로 끝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때는 절망감에 허덕이게 될 것이니 말이다.

* * *

귀순한 일본 유저들 덕분에 안 그래도 유리했던 승기는 이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기울었다.

대한국이 절대적으로 유리해진 것이다.

혼슈 동부는 이미 완전히 대한국의 것이 되어 버린 상태.

야마토 제국은 오다 노부히데가 전향하자 이틀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고, 나가노 왕국 역시 국왕이 죽은 이후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제는 중부 지역의 동영 왕국만이 홀로 남아 대한국과 맞서 싸우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대한국이 추가적으로 지원군을 파견한다면 그대로 무너지고 마리라.

“시간을 끌 필요 없겠지. 바로 공격해라.”

그리고 오늘, 마침내 대한국의 지원군이 도착하였다.

호영이 직접 지휘하는 5만의 정예군이었다.

“이, 이걸 어떻게 막아······.”

“동영도 끝이구나······.”

동영 왕국의 수도, 나고야를 지키던 일본 유저들이 사방에서 몰려오는 10만에 달하는 대한국의 군대를 보고 탄식하였다.

수비가 공격에 비해 유리하다지만 5배가 넘는 군대를 상대로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대한군의 전투력은 일선 병력이 전멸한 동영 왕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기에 더욱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바, 반란이다!”

“칙쇼! 신선조 놈들이다!”

“안 그래도 절망스러운데 안에서는 신선조까지 날뛰다니!”

호영은 혼란에 빠진 나고야 성의 모습을 보며 담담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동영도 이제 끝났군.”

“이제부터는 서부와 규슈를 공략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후발대 2만 명을 따라서 일본에 상륙한 대군사, 충구가 호영의 중얼거림을 듣고서 그렇게 말했다.

“아직은 용병들이 활약해 주고 있으니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금은 점령지를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일 것 같은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