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22화 (222/345)

# 222

애초에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말이다.

호영은 그런 가모를 보고는 희미한 미소를 짓다가 살벌한 표정을 하고서 물었다.

“너희들은 괜한 저항을 하여 이놈처럼 피를 볼 것인가?”

바닥에 엎어진 채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 고다 진을 가리키며 그리 물으니 두 사람은 어두운 표정을 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저항하지 않겠다는 의사겠지?”

“마음대로 하시오. 가두든지, 죽이든지. 다만, 한 가지를 명심해야 될 것이오. 우리는 이 일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가모가 복수를 다짐하는 눈으로 그리 말하니 호영이 가소롭다는 얼굴을 하며 태연하게 대꾸하였다.

“알아서 잊지 않아 준다니 다행이군. 잊는다면 내가 다시 손써야 했을 텐데 말이야.”

그 말을 한 호영은 김성근에게 눈짓을 하였다.

그러자 김성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사람을 후방으로 끌고 갔다.

“이 녀석도 대충 치료해 둬라.”

“충.”

마지막으로 바닥에서 꿈틀거리던 고다 진까지 후방으로 치워지자 이제 남은 것은 세 사람이 끌고 온 삼백 명의 무사들이었다.

“저항하는 이들은 죽여라.”

호영이 그 같은 명령을 내리니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삼백 명의 무사들은 무릎을 꿇은 채로 포로가 되었다.

* * *

“전하께서는 쉽게 가시는 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사들을 정리하고 돌아온 황보관이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지?”

“낭인 조직의 항복을 그냥 받아 주었으면 앞으로의 정복 전쟁이 한결 쉬워졌을 건데, 거부하셨지 않습니까?”

“내가 거부했다고 생각하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셨으니, 그게 투항을 거부한 거 아니에요?”

황보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호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오늘만 보고 사는 이들에겐 말도 안 되는 요구일 수 있겠지. 하지만 저들은 장사치와 크게 다를 게 없는 이들이야. 즉, 오늘보다 내일을 보는 자들이라는 뜻이지.”

“음,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냥 이것만 알아 둬라. 저들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자들이라서 강하게 나가는 것이 오히려 최선이라는 사실을.”

그 말에 황보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면 여전히 이해를 못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차피 크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황보관보다는 일본 유저들이 문제야.’

사실 황보관의 불만은 약과에 불과하였다. 호영의 앞에서 작게 투덜거리는 것에 불과하였으니 말이다.

동북부 연합에 속한 일본 유저들의 경우는 호영이 낭인 조직의 수장들과 했던 협상을 두고 말이 많았다.

일본인이다 보니 낭인 조직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적으로 돌린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만 지나면 일본 유저들도 알게 될 거다,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호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낭인 조직들이 자신의 조건을 수락한 채 투항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흘이 지나자 호영이 확신했던 대로 신선조의 국장, 가모가 찾아왔다. 지휘권을 넘기겠다는 조건을 수락한 채로 말이다.

“대한국이 일본을 정복하는 데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어떤 명령이든 내려 주십시오!”

이전의 건방진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가모는 마치 주군을 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극진한 태도를 취하였다.

상하 관계를 분명하게 상정한 것이다.

‘드디어 약자다운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군. 6회 차 때 일본 제국에 굴욕적인 항복을 했던 것처럼 말이야.’

신선조는 워낙 유명한 조직이었기에 호영도 알 만큼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신선조가 일본 제국의 조정에 굴복하게 되는 역사적인 사실도 알고 있었는데, 그가 낭인 조직들에게 무리한 조건을 내건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대한국이 강자라는 사실만 확실하게 알려 준다면 신선조의 무조건적인 항복도 충분히 받아 낼 수 있다고 확신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신선조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었다.

“용병 연합은 이제부터 국왕 전하의 명만을 따를 것이옵니다.”

강자에게는 특히나 약한 면모를 보이는 용병 연합의 미치이 히사유키가 무릎을 꿇은 채 그렇게 말했다.

하시유키 역시 가모처럼 명확하게 복속을 표명한 것이다.

‘마침내 얻어야 할 것을 모두 얻었군.’

호영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때, 그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투항하겠소.”

“동성회의 지휘권을 넘기겠다는 말인가?”

“그렇소.”

오른팔이 절단된 고다 진이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설마 이놈까지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택할 줄이야. 동성회는 끝까지 저항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말이야.’

호전적이고 자존심이 강하다고 알려진 고다 진이었으니 죽으면 죽었지 투항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동성회를 어떻게 공략할지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 정도로 적이 될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호영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기에 웃는 얼굴로 고다 진의 투항을 받아 주었다.

“지휘권을 넘기겠다는 것은 완전히 항복하겠다는 것인데, 말투는 고쳐야 하지 않을까?”

물론 태도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한마디 하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일본의 삼대 낭인 조직이 하나도 빠짐없이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택하자, 호영은 세 사람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너희들에게 시킬 일이 있다.”

“어떤 명령이든 내려 주십시오.”

호영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여니 가장 먼저 가모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였다.

그러자 히사유키와 고다 진도 질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충성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국왕 전하, 용병 연합에게 가장 먼저 명령을 받들 수 있는 영광을 내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 저희 동성회의 낭인들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를 써 주십시오.”

세 사람의 모습에 호영은 겉으로는 미소를 지었지만 내심으로는 상대를 경계하였다.

수백 년간 이어진 내전에서 지금껏 명맥을 유지하였던 삼대 낭인 조직이었다. 단순히 용병들의 무공이 강해서 명맥을 유지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무력보다는 교묘한 처세술로 권력을 유지하고 조직의 힘을 보존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러니만큼 호영은 세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현혹되지 않았다.

외형만 보면 단순 무식한 용장처럼 보이는 고다 진조차 뜻밖의 결단을 내렸을 정도니 호영으로선 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 않다. 우리가 불리해질 때나 5회 차 이후를 노리고 있겠지. 하지만 너희들의 노림수는 통하지 않을 거다. 너희들은 나의 손바닥 위에 있으니까.’

호영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다가 고다 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동성회는 아군의 야마토 점령을 도와라. 아군이 도쿄를 칠 때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키면 될 것이다.”

현재 친위대와 동북부 연합군의 군대는 야마토 제국의 영토로 진출한 상황이었다.

정확한 위치는 도쿄 인근인 사이타마였는데 지금까지는 단 한 번의 전투도 없었을 정도로 정복이 수월하였다.

아무래도 제국의 황제가 포로로 잡힌 상황이라 저항 의지가 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도치기와 치바, 군마까지는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야마토 제국의 수도, 도쿄부터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도쿄 정부는 오다 노부히데의 후계자를 황제로 내세워 저항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물론 그래 봤자 병력의 숫자가 2만이 채 안 되었지만, 수성의 달인들이니만큼 도쿄를 정복하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호영은 동성회에게 협조를 요구하였다.

야마토 제국과 공생 관계였던 동성회를 아직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동성회의 참전을 요구해야 했다.

동성회가 어느 정도 따라 줄지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공성전이 시작될 때, 저희가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성벽까지 열어 드리겠습니다.”

“성벽이라······. 쉽지 않을 텐데, 가능하겠나?”

아무리 몰락해 가는 나라라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수도였다. 성벽을 점령하는 게 쉬울 순 없었다.

“가능합니다.”

그러나 고다 진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가능하다고 말이다.

‘동성회의 저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인가.’

호영은 속으로 경계심을 더욱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이 대단하니, 성벽을 여는 것은 동성회에게 맡기겠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고다 진한테 임무를 부여한 호영은 고개를 돌려 가운데에 있는 노인, 세리자와 가모에게 말했다.

“신선조는 나가노 왕국을 치는 데 협조하면 될 것이다.”

“어떤 협조를 원하십니까?”

“너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하면 된다.”

“그렇다면 나가노 왕국의 국왕을 암살하겠습니다.”

“국왕을 암살한다고?”

경악까지는 아니어도 조금 놀란 얼굴로 그리 물으니 가모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왕이시여, 나가노 왕국의 국왕을 암살함으로써 신선조의 저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호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가노 왕국의 국왕을 암살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을 가졌으면서도 무조건적인 항복을 했다는 것인가. 역시, 영악한 늙은이로군.’

신선조가 일본 군주 측에 붙어서 결사 항전을 하였다면 대한국도 상대하기가 꽤나 버거웠을 것이다.

그들이 가진 전력은 대한국으로서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신선조는 대한국과 제대로 붙어 보기도 전에 복속을 표명하였다.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우리 편에 선다는 게 중요하다. 물론 완벽하게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야.’

잠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미치이 히사유키에게 말했다.

“용병 연합에게는 쿄토를 맡기겠다.”

“교토를 맡긴다는 말씀은?”

“쇼군이 동영과 나가노를 돕지 못하게 만들어라.”

“천황을 도와 내전을 질질 끌게 만들겠습니다.”

“좋다.”

히사유키의 답변에 호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쇼군이 조금씩 승기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용병 연합이 천황을 도와준다면 내전은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교토 정부가 내전에 발이 묶인 사이 대한국은 나가노 왕국과 동영 왕국 그리고 야마토 제국을 완전히 끝장낼 것이고 말이다.

‘동성회가 도와준다면 야마토 제국은 보름이 아니라 일주일 안에 점령할 수 있을 것이고, 신선조가 도와준다면 나가노 왕국과 동영 왕국은 세 달이 아니라 한 달 안에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

불끈.

호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혼슈의 절반에 달하는 영토를 차지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 * *

신선조는 약속을 지켰다. 나가노 국왕을 암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덕분에 도야마를 지키던 대한국의 군대는 역습에 나설 수 있었고, 무려 1만이 넘는 적군을 살상할 수 있었다.

용병 연합 역시 호영과의 약속을 지켰다. 2만의 용병을 이끌고 천황의 군세에 가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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