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
#연이은 투항
동북부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서 야마토 제국으로 향하는 친위대 장병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8만의, 아니 모가미 대첩까지 포함하면 종합 13만의 적군을 무너뜨리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사기가 높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일본에서 가장 경계되는 나라인, 야마토 제국의 황제까지 포로로 사로잡았으니 더욱 기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일본인, 그러니까 동북부 연합군에 소속되어 친위대를 따라 도야마로 향하는 일본인들도 사기가 높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절망스럽게만 느껴졌던 전황이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이제 그들은 수비가 아닌 공격을 하게 된 상황.
후방이 안정되니 마음도 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동북부 연합군의 병력이 4만, 도야마에 있는 원정군이 3만. 종합 7만의 병력이라면 사기를 잃은 나가노 왕국과 동영 왕국을 세 달 안에 멸망시킬 수 있을 것 같군. 물론 이미 황제가 포로로 잡힌 야마토 제국의 경우 보름도 안 걸릴 것이고 말이야.’
그렇게 모두가 기뻐하고 있을 때 오직 호영만은 냉철한 이성으로 다음에 할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전하!”
“무슨 일이냐?”
“낭인 조직의 수장들이 전하를 찾아왔습니다.”
그때였다. 선봉을 맡았던 친위대원이 다급하게 뛰어와서는 그 같은 보고를 하였다.
“신선조 같은 낭인 조직들이 찾아왔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호영은 눈을 빛내며 말을 앞으로 몰았다.
선봉군이 있는 곳에 도착하여 정면을 바라보니 화려한 깃발을 든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신선조, 용병 연합, 그리고 동성회까지 모였군.’
숫자는 각각 100여 명 정도였는데 일본의 최정예가 소속되어 있는 집단이라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었는지 무인들의 경지가 최소 C+급으로 보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가 눈을 빛내며 세 집단을 바라보고 있을 때 선봉을 맡은 순현이 다가와서는 그렇게 물었다.
“나를 찾아왔다면 한번 만나 줘야지.”
“저, 전하.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순현의 물음에 호영이 무심한 목소리로 대꾸하자 통역 겸 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와 미사요시가 우려의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위험하다는 것이지?”
“세 조직은 겉으로 봐서는 평범한 용병 집단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실상은 용병 일보다 테러나 암살을 더 잘하는 조직들입니다.”
“나를 암살할 수도 있다는 것이로군.”
“예, 그리고 일본 군주들이 전하에게 천문학적인 현상금을 걸었다는 소문이 있으니 더욱 주의하셔야 할 것입니다.”
“현상금이라······. 과연 얼마나 걸려 있는지 궁금한데.”
호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물론 그렇다고 미사요시의 충고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도박하는 인물이 아니었기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로 하였다.
“나를 보기를 원한다면 수장들만 오라고 해라.”
아무리 암살 능력이 뛰어나도 세 명이라면 만약의 사태는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다.
그러자 미사요시가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전하, 그들이 왔습니다.”
그가 정면을 바라보니 전혀 다른 특색을 가진 세 사람이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호영은 속으로 감탄하며 세 사람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낭인 집단의 수장들인가?”
“하이!”
미사요시가 통역을 하여 대신 물어 주니 세 사람이 간단하게 ‘하이.’라고만 대답하였다.
왕을 대하는 주제에 제법 건방진 태도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전력을 생각하면 그다지 이상하게 볼 일은 아니었다.
이들 한 명 한 명이, 일본 군주들 못지않은 전력을 가졌으니 말이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지?”
준기나 순현처럼 왕의 권위를 무겁게 여기는 수하들이 세 사람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지만 정작 국왕인 호영은 태연하게 물었다.
그러자 세 사람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처럼 보이는 사내가 말했다.
“저희들은 대한국에 항복을 하러 왔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투항 의사를 밝히는 노인을 보며 장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웅성거리는 쪽은 동북부 연합을 이끄는 일본 장수들이었는데, 친위대 장수들은 세 낭인 조직을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았기에 무덤덤한 얼굴들이었다.
“투항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한다.”
“감사합니다, 전하.”
호영이 흔쾌히 환영의 뜻을 전하니 노인이 당연하다는 듯, 태연하게 대꾸하였다.
“오오! 낭인 조직들이 투항을 하다니! 엄청난 일이 벌어졌군!”
“저들도 아군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렇겠지! 우리가 이길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면 항복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일본 장수들은 쾌재를 부르며 그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호영이 손을 들어 올리고는 위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이 항복하겠다는 것은 용병들의 지휘권을 대한국에 완전히 위임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하이?”
“항장들은 자신의 군대를 바치고 투항하며 영주나 군주들도 자신의 영토를 바치고 투항하는데 너희들도 당연히 용병 조직을 바쳐야 하지 않겠느냐?”
“······.”
호영의 말에 세 사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답만 하지 않았을 뿐, 그들의 표정만 봐도 그들이 어떤 심정인지를 알 수 있었다.
세 사람 모두 황당해하거나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전하. 저들에게는 너무 무리한 요구일 것 같습니다.”
일본 유저들 중 절정에 해당하는 경지를 가진 마치이 이사오라는 사람이 침묵을 깨고서 그 같은 말을 하였다.
“왜지?”
“저들은 어떤 군주에게도 항복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자신의 용병을 바친 일도 없었고 말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관대하게 받아들여 주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저들이 우리 편이 되는 것만으로 아군은 상당히 유리해질 것입니다.”
“예외를 둘 수는 없다.”
“하, 하지만 그런 요구를 했다간 저들이 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습니다.”
“통제가 안 되는 아군으로 두느니, 차라리 적으로 상대하는 것이 낫다.”
“······.”
그 단호한 대답에 이사오 역시 말문을 잃고 말았다.
호영은 다시 고개를 돌려 세 사람을 바라보고는 물었다.
“아직도 대답하지 않는군. 투항하겠다면서 지휘권은 넘기지 않겠다는 것인가?”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럼, 내가 농이라도 한다는 건가?”
세 사람의 표정이 더욱 딱딱해졌다.
우측에 선 우락부락한 외형의 사내는 당장이라도 전쟁 선포를 할 것처럼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가운데에 있는 60~70대로 보이는 노인은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그 목소리에는 불편한 감정이 여실하게 드러나 있었다.
“대한국이 항복하는 자들에게 관대하다고 하여 투항 의사를 밝혔습니다만, 저희들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는다면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우리의 적이 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만약 전하께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계속하신다면 결국 그리되겠지요. 저희도, 대한국도 원치 않은 결과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군. 친위대장.”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린 호영은 김성근을 불렀다.
“충.”
“적이 제 발로 나를 찾아왔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모조리 잡아들여 감금시키도록 해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친위대원들이 움직이자 자신을 신선조의 국장, 세리자와 가모라고 소개한 노인이 얼굴을 구기며 분노를 토해 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설마 우리를 공격하겠다는 것입니까!”
“네 입으로 말했지 않느냐, 대한국의 적이 되겠다고.”
“설령 적이 된다고 해도 우리는 사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신을 공격하다니요! 일본의 그 어느 군주도 사신을 이렇게 대하지는 않습니다!”
“일본의 군주들이 그러지 않았다고 나까지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는 마라, 나는 적에게 관용을 베푸는 사람이 아니니.”
호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리 말하자 동성회의 회장이라는 고다 진이라는 사내가 자신의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대며 외쳤다.
“웃기는 소리! 우리가 얌전히 잡혀 줄 것 같으냐!”
“검을 뽑겠다는 건가?”
“다가오면 뽑겠다! 그러니 꺼져! 누구든 다가오면 죽이겠다!”
얼굴만큼이나 살벌하기 그지없는 기세를 내뿜는 고다 진을 보고 친위대원들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친위대 장병들의 무공 수준은 상당하였지만 일신의 무위로 삼대 낭인 조직 중 하나인 동성회의 수장이 된 고다 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얌전히 잡혀 주면 좋겠지만, 정 피를 보겠다면 어쩔 수 없지. 검을 뽑아라.”
“뭣이?”
“저항하겠다며? 그러니 어서 검을 뽑으라고.”
“감히,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채앵!
하지만 호영은 고다 진의 위협에도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마치 도발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고다 진이 분기를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 들었다.
대한국의 국왕인 호영의 면전에서 검을 뽑아 든 것이다.
“일본에서는 상대방의 면전에서 검을 뽑아도 그저 기세 싸움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아니야.”
호영은 충고하듯 한마디 하고는 고다 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으윽.”
고다 진은 호영이 다가오자 기세에 눌린 것인지 침음을 삼켰다.
하지만 동성회의 수장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억지로 자세를 취했다.
결단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더 다가오면 공격하겠다.”
“공격해. 대신, 뒷감당은 알아서 하고.”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더 이상 참지 못한 고다 진은 그렇게 외치며 호영을 향해 검을 내찔렀다.
일본 유저들이 비명을 내지를 때 호영은 좌측으로 반보 움직였다.
그러자 고다 진의 검이 허공을 갈랐는데, 그때 호영이 마치 묘기를 부리듯 고다 진이 쥐고 있던 검을 낚아챘다.
검사로서 이름을 떨치던 고다 진은 미처 반응도 하지 못하고 검을 빼앗겼다.
“내, 내가 검을 빼앗겼다고?”
고다 진이 충격을 먹고서 멍한 표정을 지을 때, 호영의 팔이 움직였다.
서걱!
“아악!”
호영의 검이 고다 진의 오른팔을 잘랐고 고다 진은 비명을 내질렀다.
“미, 미친!”
“이럴 수가!”
눈앞에서 동료의 팔이 절단되는 광경을 본 미치이 히사유키와 세리자와 가모는 경악에 휩싸인 표정을 하고 뒷걸음을 쳤다.
수백 년간 이어진 난세에서 온갖 경험을 했던 두 사람이지만 초절정의 고수가 이 정도로 무력하게 당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들도 초절정의 고수로서 초절정이라는 경지가 얼마나 지고한 경지인지를 알고 있었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국의 왕이라는 자가 어찌 이리 무도하단 말이오! 실수 한 번 했다고 팔을 자르다니!”
하지만 경악에 휩싸인 것은 잠시, 신선조의 국장 세리자와 가모는 적개심으로 가득한 눈으로 호영을 향해 외쳤다.
“실수? 나에게 검을 휘둘렀는데 그게 실수인가?”
“······어차피 당신 같은 고수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은 공격이었지 않소?”
“위협이 되건 되지 않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 나를 공격한 자를 가만히 놔두면 나의 권위가 손상된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
“······.”
가모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도 고다 진의 실수를 인정하고 있었기에 더 이상의 이견을 내세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