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거대한 대도를 앞으로 내밀며 돌격 명령을 내리는 김성근의 모습은 과연 명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느껴졌다.
한국 유저들이 뽑은 열 명의 명장 중 한 명다운 모습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가장 먼저 삼백 명의 친위 기사단이 적군을 향해 돌격하였다.
작년에 있었던 반란 진압에서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쳤던 바로 그 친위 기사단이었다.
그리고 3천 명의 보병들 역시 친위 기사단의 뒤를 따라 맹렬하게 돌격하였다.
저마다 무공을 익힌 것인지 달리는 폼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적군의 규모는 수만에 이르렀지만 기이하게도 3천밖에 안 되는 친위대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처럼 느껴졌다.
기세.
친위대의 기세가 그만큼 엄청났던 것이다.
‘나도 슬슬 움직여 볼까?’
호영은 자신의 친위대를 보며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자신도 전투에 가담하기 위해 말을 움직였다.
굳이 호영이 나서지 않아도 이길 게 분명한 전투였지만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그가 나서면 전투는 더욱 빠르게 끝날 것이니 말이다.
콰앙!
호영이 뒤따라 달려가고 있을 때 선두에서는 벌써 일본군과 충돌한 상태였다.
말을 탄 친위 기사단이 일본군의 선두 대형과 부딪친 것이다.
고작해야 삼백 명에 불과한 친위 기사단.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결과는 놀라웠다.
순식간에 선두 대형을 무너뜨리고 중심 대형까지 도미노처럼 붕괴시킨 것이다.
마치 오합지졸을 상대하는 모습 같았다.
‘그만큼 황보관의 수공에 큰 타격을 입었다는 건가.’
갑작스러운 수공으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일본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위대의 습격까지 받았으니 오합지졸처럼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완전히 몰살시키는 것도 가능하겠어.”
처음 목적은 혼란에 빠진 일본군에 최대한의 피해를 강요시키는 것이다.
숫자로 따지면 5만의 일본군 중 3만 정도를 살상하는 것이 목표였다.
만약 처음 계획했던 대로 3만에 달하는 병력을 살상하면 그것만으로도 적군은 전멸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겠지만, 완전히 몰살시킬 기회가 있다면 기회를 이용하는 것이 당연히 더 좋았다.
5만에 달하는 일본군.
이들을 완전히 몰살시킬 수만 있다면 전세는 그대로 역전되고도 남으리라.
‘그렇다면 가장 먼저 적장을 죽여 줘야겠지?’
호영은 눈을 빛내며 적장을 찾았다.
“저기 있군.”
적장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혼란이 빠르게 수습되고 있는 대형의 중심부를 바라보니 그곳에 떡하니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은 장수가 보였던 것이다.
“이랴!”
히이이잉!
목표를 찾아내자 호영은 곧장 말머리를 돌렸다.
시간 끌 것 없이 적장을 베어 내기 위함이었다.
“막아라! 각하를 지켜야 한다!”
“죽어!”
그가 찾아낸 장수가 상당히 높은 직위를 가진 인물이었는지, 일본군이 필사적으로 방어하였다.
무슨 결사대를 보는 것 같았다.
‘설마, 총사령관인가?’
호영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는 말에서 뛰어내렸다.
밀집된 보병 부대가 정면을 가로막고 있었으니 신묘한 보법으로 뚫어 내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뭐 하는 거야! 빠져나가잖아!”
“미친. 발이 뭐 이렇게 빨라?”
“뚫린다! 어서 막아!”
두 발을 사용하면 지금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지나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으니 말이다.
부우웅! 부우웅!
물론 보법만으로 대형 전체를 꿰뚫는 것은 무리여서, 적당히 창을 쓰기도 하였다.
창풍을 몇 번 날려 주니 적장이 있는 곳까지 시원하게 열렸다.
“감히 혼자서 나를 노려? 가만두지 않겠다!”
마침내 적장을 마주하니 적장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육체파 무장인지 무공 실력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일류는 넘어섰군.’
일류, 즉 C+는 확실히 넘어선 것 같았다.
푹.
“컥.”
하지만 B- 수준이라고 해도 호영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호영은 A+라는 지고한 경지에 오른 초고수였으니 말이다.
“적장이 죽었다!”
이름 모를 적장의 수급을 높이 들어 올리고서 그렇게 외치니 주변에 있던 일본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히익! 무카이 총사령관 님이 당하셨다!”
“마, 말도 안 돼!”
호영은 도주하는 일본인들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카이 총사령관? 설마 나가노군의 총사령관이었나? 정말 운이 좋았군.’
수공작전이 성공했다는 사실도 무척이나 운이 좋았지만 처음으로 노렸던 적장이 하필 적군의 총사령관이었다는 사실도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 * *
“모두 수고했다.”
전투가 끝난 이후 호영이 장수들을 불러 놓고 그렇게 말하니 저마다 특색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흐흐흐, 별로 수고랄 것도 없었습니다. 쪽바리 새끼들을 학살할 수 있어서 오히려 재미있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김성근은 유쾌하게 웃었고 순현은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하였다.
그리고 황보관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이런 질문을 하였다.
“이 정도의 공이면 일등 공신이 분명할 텐데, 논공행상은 언제 엽니까?”
그 다양한 반응에 호영은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황보관의 물음에 답해 주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니 논공행상이 언제 열릴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경의 공이 일등 공신이 되기에 충분함은 나도 인정한다. 다만······.”
“다만 뭐죠? 뜸 들이지 말고 말해 주시죠?”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계속 활약해 주었으면 한다.”
“으으, 절 얼마나 부려 먹으시려는 거예요? 솔직히 지금까지 세운 공만으로도 제가 할 일은 다 한 거 아닌가요?”
황보관이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투덜대자 김성근이 황보관의 뒤통수를 때리며 말했다.
“이놈이. 장수라는 놈이 전하에게 어리광을 부려?”
“악! 형님은 왜 때리고 그러세요?”
“형님은 무슨! 친위대장이라 부르라고 했지?”
형님?
호영은 순간 의아해하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면 호형호제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김성근이 태도를 보고 지적하는 날이 올 줄이야. 한때는 트러블 메이커로 유명했던 유저였는데······.’
지난날을 떠올려보면 김성근이 확실히 많이 바뀐 것 같기는 하였다.
물론 호영의 입장에선 긍정적인 변화였지만 말이다.
“경이 대단한 일을 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기에 계속 전장에 나서 줘야 돼. 왜냐하면 경은 이제 이 나라의 전쟁 영웅이 되었으니까.”
“전쟁 영웅이라고요?”
“이번 수공작전은 대첩으로 남게 될 거야. 그리고 경은 대첩의 영웅으로 불리게 될 것이고 말이야.”
“······영웅이라······. 나쁘지는 않네요.”
“그러니 조금 더 활약해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것은 명령이 아닌, 부탁이다.”
호영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황보관은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전하께서 그렇게 말하시니······. 알겠습니다. 조금 더 싸워 보죠, 뭐. 어차피 동료들도 다시 전장에 나설 생각인 것 같으니까.”
“고맙다.”
“설마 말로 끝나는 것은 아니죠?”
황보관이 발칙스러운 태도로 그리 말하자 김성근이 흉악한 얼굴을 하고서는 다시금 주먹을 들었다.
아까처럼 뒤통수를 때리려는 것이다.
그런 김성근을 보며 호영은 손으로 말리고는 황보관에게 물었다.
“뭘 원하지?”
“영주요! 영주가 되고 싶습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영주가 되고 싶다고 대답하는 황보관을 보고서 호영은 실소를 지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자신의 수하들과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너무 솔직한 성격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싸가지 없다고 해야 할까?
하여튼 호영한테 깍듯하게 행동하는 다른 수하들과 비교하면 건방져 보이기도, 버릇없이 보이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뒷말이 안 나온다는 말이지. 외국인이라서 이해해 주는 것일까? 아니, 그럴 리는 없지. 외국인이라면 외국인이라서 오히려 뒷말이 나와야 정상인데······.’
정말 희한한 일이었다. 외국인이고 호영에게 총애를 받기까지 한다면 텃세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기이할 정도로 텃세가 적었다.
김성근이 울타리가 되어 준 것도 이유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기이하다면 기이하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호영이 생각했을 때 텃세가 적고 뒷말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황보관의 친화력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인터넷에 벌써부터 두터운 팬덤이 생긴 것만 봐도 황보관의 매력이 범상치 않다는 사실을 의미하였으니 말이다.
“귀족이 되고 싶은가 보군.”
“네! 귀족이 되는 게 꿈입니다.”
“경의 공이라면 그 정도는 어렵지 않다. 일단 지금은 남작 위를 약속해 주지. 전쟁이 끝나는 즉시 상당한 크기의 영토도 하사해 주겠다.”
그는 호기롭게 약속하였다.
상당한 크기의 영토와, 남작의 작위를 하사해 주겠다고 말이다.
“상당한 크기라면 어느 정도죠?”
“남작이라면 강화도만 한 면적의 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에 황보관이 크게 놀란 얼굴을 하였다.
놀란 것은 황보관뿐만이 아니었다.
김성근과 순현도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봉토나 작위를 하사할 것이라는 사실을 듣기는 하였지만 설마 그렇게 넓은 크기의 땅을 하사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넓은 땅을 하사하려면 일본 전체를 점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작의 영토는 훨씬 클 것이니 말입니다.”
순현의 물음에 호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는 이야기다. 남작이 강화도만 한 면적을 얻는다면 자작은 적어도 제주도만 한 면적을 얻어야겠지. 그리고 일본 정복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왕의 권한 스킬도 등급이 올라 백작 위도 하사할 수 있게 될 거다.”
“백작은 더 큰 영토를 하사해야겠군요.”
“그렇겠지. 해서 일본 전체를 점령할 생각이다. 공신들에게 넉넉한 영토를 하사하려면 열도 전체를 차지하는 수밖에 없으니 말이야.”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일본 정복을 운운하는 호영의 모습에 순현이 우려를 표하였다.
“너무 무리하게 움직이는 것은 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수공작전으로 동영과 나가노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불리한 상황인데······.”
이번 살수대첩, 아니 모가미 대첩으로 적군 5만을 제거하였다고는 하나, 나가노 왕국과 동영 왕국에는 여전히 5만에 달하는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다른 나라들도 인터넷이나 방송으로 대한국에게 선전포고를 하여 전쟁 준비에 나선 상태였다.
야마토 제국이야 동북부의 친한 세력이 대신 상대해 준다고 해도 규슈나 츄고쿠, 시코쿠, 간사이의 일본군은 대한국이 직접 상대해야 했다.
이 중에 간사이 같은 경우는 도야마와 거리도 가까운 터라 10만 이상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는데, 병력이라고는 고작해야 3만에 불과한 아군으로선 절대적으로 열세인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 순현은 속으로 일본을 욕심낼 것이 아니라 전쟁을 질질 끌어 동북부나 북해도를 지키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몰랐다.
그만큼 아군의 상황은 불리하기 그지없었다.
“황보관이 아니었다면 경의 말대로 우리가 불리했겠지만 적군의 5만을 제거한 이상 전세는 역전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순현이 눈을 크게 뜨며 의아해하자 호영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설명에 나섰다.
“경은 계속 열도에 있느라고 우리의 계획을 듣지 못했겠지만 아군은 이미 일본 정복을 위한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 둔 상태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