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16화 (216/345)

# 216

“그래도 만약을 대비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일본 전체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본진만 지키는 것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야. 지금은 과감하게 나서야 할 때다. 무리해서라도 두 나라를 공격하고 또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

장수들은 여전히 걱정을 저버리지 못했지만 노부히데의 뜻은 단호하였다.

결국 야마토 제국은 3만의 군사를 더 일으켜서 동북부를 완전히 정복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열도 함락

원정군이 도야마에 상륙했다는 소식에 게릴라를 담당하던 대한국의 유격 부대원들은 환호를 내질렀다.

“드디어 돌아갈 수 있다!”

“전하께서 오셨다!”

“대한국 만세!”

게릴라전은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였다.

유격 부대원들이 제아무리 무공을 익혔다고 하지만 체력의 소모가 없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이번 전쟁에서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였다.

적지 한복판에서 수천수만의 적군을 상대하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 정도면 전하께서도 만족하시겠군.”

순현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호영에 대한 충성심으로 강행군을 이어 갔지만 그 역시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하였다.

그러니만큼 대한국의 군대가 상륙했다는 소식에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장, 이대로 돌아갈 거예요?”

“음?”

황보관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전하께서 오셨는데 선물을 들고 가야죠.”

“선물이라니, 무엇을 말하는 거냐?”

영문 모를 소리에 순현이 눈매를 좁히니 황보관이 천연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초카이 왕국을 공격하던 나가노 왕국과 동영 왕국의 군대가 회군하고 있대요. 우리, 돌아가기 전에 그놈들 잡고 가죠.”

“······뭐?”

평소에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시피 했던 순현은 황보관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하였다.

항상 심드렁한 얼굴로 행군하기 싫다고 투덜대던 것이 황보관이었다.

외국인이다 보니 애국심이라는 것도 없었기에 설득하는 게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래서 원정군의 도착 소식에 가장 기뻐하리라고 생각하였다. 누구보다 쉬고 싶은 마음이 강했을 것이니 말이다.

한데 그 황보관이 공격에 나서자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순현으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뭐를 잘못 먹었나? 아니면 로그아웃 한 것인가?’

어찌나 믿기지 않았는지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 우리가 두 나라의 원정군을 잡는다면 전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이번 전쟁의 일등 공신은 무조건 우리가 될 수밖에 없을걸요.”

그 말에 순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설마 공신의 자리를 노리는 것이냐?”

“당연하죠! 그 이야기 들었잖아요. 이번 전쟁에서 공신이 되면 영주가 될 수 있다는 거. 저는 영주가 되고 싶다고요.”

“······.”

너무 노골적인 말에 순현은 다시 인상을 찡그렸다.

수상하다 했더니 설마 영주가 되기를 바라고 있을 줄이야.

중앙집권 체제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순현으로선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인상을 풀고서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 네가 어떤 생각으로 전투에 나서는지는 크게 상관하지 않겠다. 나도 꼰대들처럼 애국심을 위해 희생하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네 말에 따라 줄 수는 없다. 공을 세우겠다는 욕심 때문에 병사들을 무의미하게 희생시킬 수는 없어.”

“왜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세요?”

“해안가를 따라 남하하고 있는 두 나라의 군대가 5만에 가까워. 우리는 고작해야 천 명도 안되고 말이야.”

“5만이나 되니까 잡으면 더 가치 있는 거죠. 만약 우리가 이놈들 잡으면 남작은 당연하고 자작까지 될 수 있을걸요.”

“잡으면 그렇겠지, 잡으면. 하지만 어떻게 잡겠다는 거냐?”

유격대의 멤버들이 제아무리 정예 중의 정예라고 하지만 50배나 차이 나는 대군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이미 한 달 넘게 이어진 유격전으로 부대원들의 사기나 체력은 저하될 대로 저하된 상태였다.

피해도 제법 누적되어 1천 명이 넘었던 부대원이 이제는 팔백 명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말이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런 상태에서 5만이 넘는 대군을 상대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뭐, 정면으로 상대하면 당연히 안 되겠죠. 하지만 우리는 유격 부대잖아요? 당연히 치고 빠져야죠.”

“치고 빠지는 전술에도 한계가 있다. 적에게는 기병도 있을 것이고 우리처럼 무공을 익힌 병사들도 적잖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상대가 방심할 테니 어느 정도 타격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큰 피해를 주는 것은 불가능해. 오히려 치고 빠질 때 우리가 추격을 당해 전멸당할 수가 있어.”

“바로 그겁니다. 추격을 당해 전멸당하는 거.”

손뼉을 치며 호들갑을 떠는 황보관의 모습에 순현은 의문어린 표정을 지었다.

“뭔 소리냐, 그게? 아군을 전멸시키라는 말이냐?”

“전멸이라기보다는 정확히 말해서 희생시키자는 말이죠.”

“······네놈이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대장님, 우리, 살수대첩 한번 해 보죠?”

그 말에 순현이 눈을 빛냈다.

“살수대첩? 설마 강으로 유인하자는 거냐?”

“역시 대장님. 긴말이 필요 없네요!”

살수대첩이란 고구려와 수나라 간의 전쟁 때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군을 유인하여 살수에서 전멸시킨 대첩을 말한다.

실제로는 수공을 사용하지 않았다지만 어찌 되었건 수공작전의 대명사로 불리는 대첩이기에 순현은 황보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번에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황보관의 계획에 동참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 여기는 일본 땅이다. 지형에 대해서는 일본인들이 더 잘 안다는 것이야.”

“지금 두 나라의 군대는 강행군을 하고 있어요. 주변 지형 같은 것은 크게 신경 쓰지 못하는 상태죠. 지금 이 상태에서 우리의 유인에 걸린다면 수공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을걸요.”

“적군은 그렇게 무능하지 않아. 일본군은 전쟁에 단련되어 있어서 수공 정도는 어렵지 않게 간파할 거다.”

“그렇다면 처음 기습할 때 참모들 위주로 죽이면 되죠. 머리를 모두 죽여 놓으면 일본군 특유의 반자이 돌격을 하지 않을까요?”

“······.”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왠지 모르게 설득력 있게 들려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을 대표하던 것이 바로 그 무식한 반자이 돌격이었다.

그리고 센추리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선조들에게 안 좋은 것만 배웠는지 틈만 나면 반자이 돌격을 시도하였다.

실제로 순현도 일본의 반자이 돌격을 몇 번이고 보았다.

도주하거나 항복해야 될 상황에서도 무식하게 돌격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순현으로서는 황보관의 계획이 나름대로 현실성 있게 느껴졌다.

“지휘부를 죽이고 강으로 유인한다? 확실히 가능성은 있어 보여.”

“역시 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죠? 그럼 바로 해 봅시다!”

“하지만 문제는 너의 작전은 엄청난 희생을 각오해야 돼.”

“에이, 대장님 약한 소리 하지 마세요. 지난번에 그랬잖아요. 전쟁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어떤 희생이든 감수할 수 있다고. 지금이 바로 그때예요. 희생을 감수해야 할 때!”

“전하께서 도야마에 도착하셨다. 그리고 이제 곧 나에게 이동 명령을 내리실 테지. 평범한 작전이라면 몰라도, 이렇게 모험적인 작전을 내 멋대로 단행할 수는 없어.”

“대장님은 아깝지 않으세요? 이런 기회,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고요!”

“······.”

순현은 입술을 꾹 다물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로서는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황보관이 세운 작전이 성공한다면 군공도 군공이지만 일본으로 하여금 엄청난 피해를 강요시킬 수 있었다.

불리하다고 볼 수도 있는 이번 전쟁을 유리하게 바꿀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대한국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할 의지가 있는 순현으로선 고민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성공하면 영웅이 되겠지만, 반대로 실패하면 역적이 될 것이다.’

고민하던 그는 이내 결정을 내렸는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너의 말을 따라 줄 수가 없을 것 같다.”

“잃는 게 두려워 도전을 포기하다니요! 정말 실망입니다.”

“다만. 전하에게 물어보겠다. 너의 작전을 실행해도 되겠냐고.”

“오!”

순현의 결정에 황보관이 독촉했다.

“그럼 빨리 물어보세요! 시간이 없다고요!”

“······알았다.”

그는 곧바로 로그아웃을 하였고 지휘 통제실에 보고하였다.

10분.

보고한 지 딱 10분이 지나자 결과가 나왔다.

“한번 해 보란다.”

“으흐흐. 역시 전하이시네요.”

“성공해야 한다, 무조건.”

“저를 믿어 보세요. 제가 머리를 안 써서 그렇지, 머리 쓰면 장난 아니에요.”

두 사람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모가미강에서 수공작전을 준비하였다.

* * *

“무카이, 내일부터는 이동속도를 줄여야 한다.”

동영군의 총사령관, 모리 모토나리의 말에 나가노군을 지휘하는 무카이 도시아키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였다.

“조선 놈들이 쳐들어온 상황인데 속도를 어떻게 줄여? 너희 동영군은 잔말 말고 따라오기나 해. 우리가 이끄는 대로 말이야.”

“벌써 나흘째 강행군이다. 병사들이 지칠 대로 지쳤다.”

도시아키의 퉁명스러운 태도에도 불구하고 모토나리는 침착하게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도시아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정도의 행군에 지치다니! 내 휘하에 그딴 나약한 병졸은 없다. 우리 나가노의 전사들이 너희 동영군 같은 오합지졸인 줄 아나?”

“······말이 안 통하는군.”

“누가 할 소리! 초카이 놈들을 끝장내지 못했던 것이 누구 때문인데! 네놈들이 나의 말에 따라 주었다면 초카이는 이미 집어삼키고도 남았어!”

나가노 왕국과 동영 왕국은 이웃 국가였다.

그리고 전국시대에 이웃 국가 사이가 언제나 그렇듯, 양국의 관계는 최악에 가까웠다.

양국의 관계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철천지원수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두 나라의 지휘부 사이에서도 통용되었다.

저돌적이고 오만하며 거침없는 성격을 가진 무카이 도시아키와 냉철하고 계산적인 성격을 가진 모리 모토나리는 아무래도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뜻을 함께하고 있었지만 사사건건 충돌하며 서로 전쟁할 때와 버금갈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다.

만약 양국이 제대로 단결하였다면 초카이 왕국은 진즉에 점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무식한 놈, 병사들이 낙오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이래서야 본국에 도착하고서 곧바로 전장에 나설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군.’

‘입만 번지르르한 새끼, 고작 이 정도의 행군을 어려워하여 나약한 소리를 지껄이다니.’

그들은 속으로 그런 생각들을 하며 상대를 비방하였다.

그때였다.

“기습이다! 기습이다!”

“적이 쳐들어왔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병장기 소리와 비명이 울려 퍼졌다.

적의 기습이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이건 그냥 야간 습격도 아닌 야간 침입이잖아? 후방에서 재미 좀 봤다더니 아주 우리를 우습게 보나 봐.”

도시아키는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검을 찾았다.

“어디를 가려는 거지?”

“적이 왔잖아. 주인으로서 맞아 줘야지.”

아무렇지 않게 적군을 상대하겠다고 발언하는 도시아키를 보고서 모토나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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