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일본에서는 B+급 수준만 돼도 무신이라는 소리를 듣는데 A+급의 무인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국왕이라면 가능하겠지. 알려진 바로는 세계 제일의 무인이라고 하니까. 그래도 국왕은 아닐 거다. 국왕의 체격은 저거보다 훨씬 더 작은 걸로 알려져 있으니. 그렇다면······ 다른 반도의 수호신인가?’
반도의 수호신!
그 거창한 칭호의 주인공은 3회 차 때 일본을 상대로 전설적인 활약을 펼쳤던 두 명의 무인이었다.
오니의 왕과 오니의 전사장이라 불리는 바로 두 사람 말이다.
미사요시가 보기에 그리핀을 타고 날아온 사내의 정체는 바로 그 반도의 수호신이 분명해 보였다.
국왕은 아닐 것이니 오니의 전사장이라 불리는 그 초운이란 자이리라.
“만약 반도의 수호신이 맞다면······.”
꿀꺽!
“이 전쟁, 이길 수도 있다.”
마른침을 삼킨 미사요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절망하고 탄식하던 그가 희망이라는 것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번 전쟁을 역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기세는 변하고 있었다. 고작해야 한 명, 단 한 명의 무인이었지만 그의 존재감은 전율적이었다.
마치 장판파의 장비처럼 혼자서 무너진 성벽 전체를 봉쇄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그의 모습만 보면 천 명, 아니 만 명도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부부당!
그야말로 만부부당이 아닐 수 없었다.
* * *
‘조금만 더 있었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준기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꽤나 긴 시간을 들여 초운의 행적을 찾아다녔었다.
지리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초운의 폐관 수련장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반년 정도가 지나자 마침내 초운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폐관 수련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무협지에서 기연 장소로 자주 나올 법한, 절벽 한가운데에 위치한 동굴이었다.
호영에게 곧장 초운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한 준기는 수도로 복귀하지 않고 동굴을 탐색하였다.
초운이 남긴 유산을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대략 열흘 정도의 시간을 들여 동굴 전체를 탐색하니 초운의 유산을 전부 찾아낼 수 있었다.
유산이란 당연히 무공이었다.
대가창법과 대가심법. 그리고 그동안 준기나 다른 유저들이 만들어 낸 보법, 경공, 검법 등등의 온갖 무공들까지.
동굴에는 초운의 손을 탄 온갖 무공들이 있었다.
여기서 준기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창법과 심법, 그리고 보법이었다.
A랭크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무공이 절실하게 필요하였다.
다행히 초운은 보통 천재가 아니었다. 예상했던 대로, S랭크의 개념을 창조할 수 있는 수준의 천재였다.
그는 80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완벽하다고만 느껴졌던 세 가지 무공에 큰 변화를 꾀하였다.
초식이나 축기, 운기 따위가 크게 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초운은 무공에 철학이라는 것을 집어넣었다.
동양의 철학에 자주 나오는 음양오행이나 소우주가 바로 그 철학이라는 것인데, 이전의 무공이 직관적이고 과학적이라면 초운이 진화시킨 무공들은 관념론적이고 추상적이었다.
초식 하나하나에 은유법과 비유법이 들어갈 정도였다.
당연히 준기로서는 난해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천재 중의 천재라고 불리는 준기지만, 글로써 새로운 개념의 무공을 익히는 게 쉬울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중국에서 비슷한 형식의 무공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준기는 센추리와 현실을 오가며 초운의 유산을 탐구하였다. 북해도와 전쟁할 때도, 일본의 반격이 시작되었을 때도 그는 초운이 세상에 남긴 무공들을 연구하는 데 주력하였다.
호영 역시 그가 무공 수련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말이다.
하지만 동북부의 동맹 세력이 전멸할 위기에 처하게 되니 준기로서도 무공 수련에만 집중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그는 호영의 명을 받아 일본으로 빠르게 넘어갔다.
지금 그가 동일본 왕국의 수도, 하치노헤를 지키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하루빨리 전쟁을 종결시키는 것밖에 방법이 없나.”
준기는 작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창을 들어 올렸다.
“히, 히익!”
“괴물!”
창을 들어 올리는 간단한 행위였지만 사방을 포위하고 있던 일본 병사들은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났다.
1주일 간 보여 주었던 준기의 엄청난 활약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준기는 무표정한 얼굴로 두려움에 질린 병사들을 바라보고는 창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순식간에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수십 명의 일본 병사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검이나 방패를 들어 막으려고도 해 봤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병사의 힘으로는 A+ 고수가 내뿜는 검기를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끝이 없군.’
수호신이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닐 정도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준기였지만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규모가 작은 전장이었으면 그 하나만으로도 이미 압승을 거두었을 것이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그는 만 명도 상대할 수 있는 강자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장의 규모가 지나칠 정도로 거대하였다.
동일본의 수도에만 5만 명이 넘는 적군이 집결해 있었고 언제든 충당될 수 있는 병력이 또 5만에 가까웠다.
일주일 동안 준기가 살상한 적군의 숫자는 기천에 이르렀지만 전장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불리하였다.
예비 병력이 계속해서 충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과부적.
그야말로 중과부적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다시 이동해야겠어.”
주변을 정리하였지만 다시 수백의 일본군이 그 하나를 잡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저 수백의 일본군을 죽여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죽이고 또 죽여도 계속 몰려오리라.
그러다가 결국 300이 넘는 마력과 60에 달하는 체력 수치를 가지고 있는 준기도 한계를 느끼게 될 것이다.
수호신이라 불리지만 그는 결국 한 명의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준기는 자리를 뜨기로 하였다.
“휘이익!”
준기는 휘파람을 불렀다.
끼아아악! 끼아악!
그러자 하늘에서 마물의 울음소리가 화답하듯 들려왔다.
그리핀의 울음소리였다.
잠시 하늘을 배회하던 그리핀은 준기를 발견하였는지 빠르게 하강하였다.
준기를 태우려는 것이다.
“마물을 죽여라!”
“당장 활을 쏴! 지금이 기회다!”
적군은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활을 쏘거나 마법을 날려서 그리핀을 죽이려 들었다.
준기가 전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끔 막으려는 것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수천 명에게 포위를 당했음에도 준기가 계속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저 그리핀 때문이었으니 일본군으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준기 역시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노, 놈이 온다!”
“막아라!”
“도망치지 마! 바보 같은 것들!”
활을 쏘는 궁수들과 마법을 날리는 마법사들을 향해 그대로 달려간 것이다.
부우웅, 부우웅!
이번에는 제법 실력 있는 자들이 앞으로 나섰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단 10초도 견뎌 내지 못하였다.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하고 마력이 담긴 바람에 의해 죽어 나갔다.
검풍, 아니 창풍의 위력이었다.
일본군을 무참히 학살하며 주변을 공터로 만든 준기는 다시 그리핀을 불러들였다.
그리핀은 여유롭게 공터에 하강하였다.
하지만 일본군은 그런 그리핀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수백 명의 일본군이 악을 쓰며 달려들고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던 것이다.
“막아! 막으라고!”
“젠장 할! 한 사람을 막지 못해서 이게 무슨 낭패야!”
그리핀은 준기를 등에 태운 채 다시 날아올랐고 일본군은 그런 그리핀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멍하게 바라보았다.
“오늘도 어떻게 버텨 냈군.”
준기는 그런 일본군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그는 그리핀을 타고 날아다니며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였다.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가장 위험한 성벽 쪽을 지원하거나 적군의 뒤를 치는 식으로 정신없는 활약을 펼쳤던 것이다.
혼자서 만 명, 아니 5만 명의 군사도 해내지 못하는 엄청난 활약을 하였지만 전황은 여전히 어두웠다.
하루하루가 위태로울 정도였다.
오늘은 가까스로 버텼지만 과연 내일도 버틸 수 있을까?
모레는?
‘일주일. 딱 일주일만 더 버티자.’
막막함을 느끼던 준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제 곧 지원군이 도착할 것이다.
5만에 달하는 대한국의 정규군. 육군은 3만이었지만 그 정도만 증원되어도 전쟁의 분위기를 바꾸기에 충분하였다.
무엇보다 지원군 안에는 호영이 있었다.
야마토 제국의 공세를 거의 준기 혼자서 막아 내고 있듯이, 준기와 비등한 실력을 가진 호영이 도착한다면 엄청난 활약을 펼칠 것이 불 보듯 뻔하였다.
그러니 준기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7일을 버텨야 했다.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동북부를 빼앗기면 앞으로의 전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니 말이다.
* * *
일본 동북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그 시각, 대한국에서는 출정식이 한창 진행 중에 있었다.
“왜 우리가 일본을 침공하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북해도를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
호영의 말에 병사들은 차렷 자세를 취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의 긍정을 표하는 것 같았다.
‘병사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겠지.’
어떠한 명분도, 이득도 없어 보이는 전쟁.
북해도를 차지했을 때도 여러 말이 나왔지만 그래도 그때는 원정군이 3천 명에 불과하여 뒷말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선발대만 무려 3만, 해군까지 포함하면 5만이 동원되는 전쟁이었다.
대한국의 역사상 이만한 대군을 타국으로 원정 보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엄청난 병력이었다.
예산만 해도 2년 치를 모조리 가져다 썼고, 내년까지 긴축재정을 펼쳐야 했다.
이것도 원정에 성공했을 때의 일이고, 실패한다면 피해를 복구하는 데 족히 10년은 써야 했다.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크게 이득도 없는 전쟁에 이만한 투자를 하는 게 이해가 안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밖에 할 수가 없다. 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집결된 일본의 힘을 무찔러 일본 전역을 지배해야 한다. 만약 지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든 전장을 열도로 국한시켜야 한다. 그게 우리가 출정하는 이유다!”
“······!”
표정들이 확 변했다.
원정 목적을 조금이나마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걸로는 부족하지.’
호영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은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만약 일본에게 동북부와 북해도를 빼앗긴다면 그들은 그걸로 만족하지 않고 10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국을 침공하려 들 것이다! 그것도 그때처럼 작은 규모의 침략이 아닌, 최소 10만 이상을 동원해서 말이다. 해적과 다를 게 없을 정도로 잔혹하고 난폭한 그들이 침략에 나선다면 우리는 설령 막아 낸다 해도 엄청난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우리가 왜 출정해야 하는지 이제 알겠느냐!”
“예!”
병사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이제 그들도 이번 전쟁이 단순히 정복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즉,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호영은 병사들의 대답 소리에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이제는 명분이 아닌, 과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