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그리고 일본군의 경우 병사 한 명 한 명이, 심법은 몰라도 검법이나 창법 또는 부법을 반드시 익히고 있었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내전으로 너 나 할 것 없이 정예화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징집병을 30만이나 동원한다고 해 봤자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애초에 30만을 수송할 수 있는 능력조차 없었고 말이다.
“전하, 만약 3만의 지원군을 보냈는데 패배한다면 손해는 이번 회 차 안에 복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무 장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냐?”
“소신이 생각하기에 애매한 숫자는 차라리 보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니 말입니다.”
내무 장관, 신용우의 말에 호영은 미간을 좁혔다. 상인 출신답게 지나칠 정도로 이해 타산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만에 하나 일본과의 전쟁에서 3만의 정규병을 잃게 된다면 이번 회 차의 정복 전쟁은 그걸로 끝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외부 확장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시간이 3년이나 남았다지만 병력을 다시 징집해서 정규군 수준으로 훈련시키고 원정에 필요한 식량이나 군자금을 모으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동북부를 포기한다면 북해도까지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북해도를 잃으면 일본 정복은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 거야.’
미련일까?
호영은 동북부를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승패를 확신할 수 없으면서도 어떻게든 도박이라도 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동북부를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지원은 무조건 보내야 합니다.”
아무래도 미련을 가진 것은 호영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충구의 갑작스러운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국왕 폐하, 친위대를 보내십시오. 그러면 승리할 확률이 훨씬 올라갈 것입니다.”
“안 됩니다! 친위대라니요! 그러다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어찌한다는 말입니까?”
신용우가 인상을 찡그리며 반대하였다.
정규군이 몰살당하는 것만으로도 손해가 엄청날 것인데 친위대까지 전멸당한다면 후유증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러니 이기기 위해 친위대를 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전쟁에서 변수가 얼마나 많은데요. 절대 안 될 일입니다. 애초에 지키기 위한 전쟁도 아니지 않습니까?”
“지키기 위한 전쟁이 맞습니다. 동북부의 친한파도 어찌 되었건 대한국을 따르기로 결정한 자들이지 않습니까? 만약 우리가 그들을 포기한다면 앞으로 외국인 중에 친한파를 자처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 같은 말에 간부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지원을 보낼 수밖에 없는 명분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충구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 군주들이 힘을 합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동북부를 무기력하게 빼앗긴다면? 일본인들은 어쩌면 북해도를 넘어 대한국까지 노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3회 차처럼 세력 하나하나가 따로 침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본이 힘을 합쳐서 말입니다.”
“······!”
실로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간부들 대부분이 일본 땅에서 펼쳐지는 전쟁이라고 생각했는데 충구의 말대로 자칫하다가는 대한국으로까지 확장될 여지가 있었다.
이미 3회 차에 두 번이나 한반도를 침공한 일본이었고, 만약 대한국이 이번 전쟁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임진왜란처럼 일본 군주 연합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언제나 대륙이나 반도로 진출할 야욕을 가지는 것이 일본인들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일본 진출을 하는 바람에 일본의 역사가 크게 달라졌다. 원래라면 지긋지긋한 내전을 이어 가다가 6회 차쯤 되어야 세 개의 제국으로 나뉘어야 하는데 달라진 역사에서는 4회 차에 일본이 통일될 수도 있어.’
일본 군주들은 이제 더 이상 내전을 이어 가지 않을 것이다. 대한국이라는 공공의 적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한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충구의 주장처럼 혼슈 동북부로 지원군을 보내 일본 군주들의 병력을 정면으로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대군사의 말이 맞다. 중앙군과 친위대를 동북부로 보내겠다.”
“전하, 만에 하나 친위대를 잃게 된다면······.”
신용우가 재차 우려의 뜻을 표했지만 호영이 그의 말을 끊으며 외쳤다.
“이긴다. 반드시 이길 것이다. 승리할 자신감이 없었다면 애초에 일본으로 진출하지도 않았을 것이니!”
사실 일본 군주들의 대대적인 반격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기는 했다.
일본에서 치열한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지만 대한국은 외국의 군대였고 북해도는 엄연한 일본의 땅이었다.
누군가 애국심을 자극하여 선동한다면 뜻이 하나로 모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호영은 일본 진출을 감행하였다.
일본 군주들의 대대적인 반격을 이겨 낼 자신이 있었던 까닭이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일본은 우리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반격은 일본이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쥐어짠 결과이니.’
호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진다면 많은 것을 잃겠지만 이기면 일본 전체를 얻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최후의 전쟁.
4회 차의 목표를 일본 정복으로 정한 그이니만큼,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전하의 뜻이 그러하다면, 알겠습니다. 소신도 혼슈 동북부를 지원하는 것에 더 이상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신용우가 허리를 숙이며 그리 말하니 다른 간부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을 표했다.
혼슈 동북부에 지원군을 보내는 것에 대해 모두가 동의한 것이다.
“다만,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군을 보내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조건을 말하는 것이냐?”
“왕위를 폐하고 작위를 하사하십시오.”
“속국이 아니라, 아예 봉신으로 삼으라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작위를 하사해야 배신할 확률이 낮아지고 명분이 확실해지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처럼 작위를 하사하면 배신할 확률이 극도로 줄어든다.
배신자 일족은 최소 30년에서 최대 200년 동안 왕이나 귀족이 될 수 없기 때문인데 이게 바로 스킬, ‘왕의 권한’의 능력이었다.
무공이나 마법처럼 무력으로는 도움이 안 되어도 지배력이나 통치력을 높이는 데 크나큰 위력을 발휘하는 스킬이었던 것이다.
“경의 말이 옳다. 다섯 나라의 국왕들에게 남작이나 자작 위를 하사하겠다.”
어차피 대한국은 중앙집권 체제라서 작위가 남아도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호영은 흔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할 말이 있느냐?”
“북해도의 아이누 세력에게도 작위를 하사하여 참전을 유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누 세력? 그들이 과연 도움이 될까?”
“한 손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아이누인들은 일본인에 대한 적대감이 상당하다고 하니, 적잖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알았다. 경의 말대로 하지.”
이번에도 딱히 손해 볼 것이 없는 제안이었기에 신용우의 말에 따라 주었다.
그러자 다른 간부들도 앞다투어 의견을 제시하였다.
어떤 이는 해군의 우월함을 앞세워 적의 후방을 괴롭히자고 말하였고, 어떤 이는 미국의 지원을 얻어 내자고 말하였다.
또 어떤 이는 후금이나 북방 기마민족을 용병으로서 일본 곳곳을 약탈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온갖 기상천외한 전략이 다 나오고 있었다.
호영은 간부들의 의견 중에 참신하면서도 현실적인 제안들을 수용해 나갔다.
1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어느 정도 작전 구성이 완성되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동북부가 일본군의 공세를 버텨야 하는데······ 과연 버틸 수 있을지가 의문이군.”
아무리 빨리 지원군을 보낸다고 해도 한 달 이상은 걸릴 수밖에 없었다.
무려 바다를 건너 원정에 나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슈 동북부의 다섯 나라가 한 달 동안 일본군의 공세를 막아 낼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적었다.
최소 10만 이상의 군사력이 동북부를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해도에 있는 원정군을 믿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충구의 말에 호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지금으로썬 S랭크의 자질을 가진 그들을 믿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만약 그리핀을 탈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최정예 멤버들이라도 일본으로 이동시켰겠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그리핀을 탈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침착하게 아군을 믿어 보기로 하였다.
#일본의 반격
일본의 반격이 현실화되자, 북해도에서 주둔하고 있던 대한국의 무인들은 빠르게 혼슈로 넘어갔다.
혼슈 동북부를 지원하기 위함이었는데, 북해도에서 했던 것처럼 대회전이나 수성전보다는 유격전에 집중하였다.
우월한 기동력을 살려 적의 후방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지금 가는 곳은 또 어딥니까?”
“후쿠시마 인근에 있는 다테 성이다. 다테 성 인근에 적의 보급 창고가 있다고 하니 그곳을 치려고 한다.”
“헐, 그럼 우리가 300킬로미터 넘게 이동한 거 아닙니까? 진짜,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저를 너무 부려 먹는 거 아닙니까?”
황보관은 인상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한창 미국에서 넘어온 무역품이나 이종족을 구경하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던 그다.
가끔씩 B+ 초절정 무인들과 대결을 하기도 하였는데 그야말로 황보관이 꿈에도 그리던 나날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보름 전부터 시작된 일본 군주들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황보관은 전장으로 끌려오고 말았다.
대련하는 것은 좋아해도 전쟁하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그로선 무척이나 고달픈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번 전쟁은 유난히 더 힘들다는 것이다.
적군의 전투력도 전투력이지만 수백 킬로미터를 행군하고 유격전을 펼치는 게 결코 쉬울 리가 없었다.
식사를 여유롭게 하거나 잠을 마음껏 잔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 정도였다.
“너만 힘든 거 아니다. 우리 모두가 힘들다.”
“힘들면 좀 쉽시다. 이미 많은 공을 세웠지 않습니까?”
“공을 세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는 거다. 우리가 쉬면 동북부는 일본에게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동북부가 넘어가면 우리나라도 위험할 수 있다. 나는 결코 그 상황을 가만 볼 수가 없다.”
“쳇, 애국심이 도대체 뭐라고.”
순현의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답변을 들으며 황보관은 작게 투덜거렸다.
외국인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황보관은 애국심이라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그는 나라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죄 없이 큰 고초를 겪었다.
현실의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그랬고 센추리의 제나라에서 그랬다. 물론 그의 가문이었던 황보 세가에서도 그러했고 말이다.
그 같은 경험이 있는 황보관이었기에 애국심을 불필요한 종교처럼 취급하였다.
‘뭐, 그래도 대한국이라면 나라를 위하는 척은 해야겠지, 쳇. 어찌 되었건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면 엄청난 보상이 따르니 말이야.’
투덜거리면서도 황보관은 착실히 걸음을 옮겼다.
“도착했다. 저기가 적의 보급기지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적의 보급기지에 도착한 것이다.
“바로 전투를 준비해라.”
“충.”
대원들은 순원의 명에 작게 충을 외치고는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황보관 역시 자신의 옷을 매만지며 나름대로의 전투준비를 하고 있었다.
“적이다! 적이다!”
“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