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
‘서양에는 기이할 정도로 무공에 재능을 가진 사람이 적은 편이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 다만, 역사가 너무 틀어진다는 게 걱정이기는 한데······. 그것도 솔직히 지금에 와서는 의미가 없는 이야기지.’
이미 역사는 틀어질 대로 틀어진 상태였다.
여기서 더 변해 봤자 크게 의미는 없으리라.
“호호호, 양해를 해 주셔서 고마워요.”
“대신 우리들에게 미국의 최신 아티팩트들을 보여 주십시오.”
“아, 아티팩트요?”
“우리가 무공을 가르쳐 주니 미국에서는 마법을 가르쳐 줘야 하지 않습니까?”
“······협상을 참 잘하시네요. 왠지 우리,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슈아의 말에 호영이 그렇게 대답하니 패트릭이 갑자기 악수를 건넸다.
“패트릭이 송호영 씨보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하네요.”
“저도 잘 부탁합니다.”
“그러면 이제 협상도 원만하게 끝냈겠다, 식사나 하러 가죠?”
“예, 제가 맛있는 식당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호영은 그렇게 슈워제네거 가문과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 * *
전용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가던 중, 조슈아가 패트릭에게 물었다.
“정말 대한국이 일본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의문이었다.
대한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제법 이름을 떨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미국인의 시선에서 봤을 때 영토라고는 조그만 반도밖에 없는 그저 그런 국가에 불과하였다.
새롭게 점령했다는 일본의 영토도 적은 인구에 척박한 자연환경을 가진 조그만 섬이었고 말이다.
물론 조슈아가 보기에도 대한국의 군사력 수준은 제법 놀랍기는 하였다. 정규병만 10만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었으니까.
미국에 존재하는 무수한 나라 중에 정규병으로 10만 이상을 가진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화정 국가는 공화정 국가대로, 왕정 국가는 왕정 국가대로 힘이 하나로 단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대한국의 군사력과 외부 원정이 가능할 정도로 내정이 안정된 것은 눈여겨볼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을 정복할 수 있을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내전 상황이라지만 그래도 일본에는 40만, 어쩌면 50만이 넘는 대군이 존재하는 까닭이었다.
‘더군다나 일본인들이 곧 동맹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어. 만약 일본의 군주들이 동맹한다면 대한국은 오히려 역공을 우려해야 될 거야.’
대한국이 일본 군주들에게 패배한다면?
오늘의 협상은 머지않은 미래에 불이익이 되어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일본 군주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슈워제네거 가문과 캘리포니아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는 않겠지만 추후 일본과 협상을 할 때 손해를 보게 될 터.
조슈아로선 오늘의 협상이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표정을 보니 알겠더라.”
“예?”
“대한국이 머지않아 아시아의 맹주가 될 것이라는 걸.”
“······?”
패트릭의 영문 모를 소리에 조슈아가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패트릭은 그녀의 표정을 봤는지 못 봤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그저 은은하게 웃으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모습만 보여 줄 뿐이었다.
* * *
힐튼 도쿄 호텔의 1층 마블 라운지에는 센추리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일본 군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국이나 왕국, 다이묘, 용병 조직의 우두머리들이었다.
“홋카이도와 동북부에서 일어난 소란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일입니다. 단순히 외세의 침략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정부의자, 공화주의자, 자유주의자 같은 사상을 무기로 한 사상 공세이기 때문입니다.”
야마토 제국의 이인자라 불리는 마스다 도시오의 말이 듣기 거북하였는지 여기저기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도시오는 개의치 않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실제로 이 사상 공세에 의해 피해를 보고 있는 군주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규슈에서는 노예들이 봉기를 일으켰고 혼슈에서도 여기저기서 낭인이나 하급 병사 따위가 반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내 땅에서는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소. 지금까지 내 땅에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오!”
“저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순종적이기 그지없던 NPC들이 유저들의 선동에 놀아나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오의 말에 몇 명이 공감했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나머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지만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였다.
비록 이곳에 모인 일본 군주들은 서로 적대 관계이거나 아예 전쟁 관계에 놓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서로에게 동질감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고귀한 혈통’을 가졌다는 동질감이었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신분제도가 빠르게 자리를 잡은 나라로 손꼽힌다.
2회 차, 아니 거의 1회 차 끝날 무렵부터 신분제도가 생겨났을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마치 중세 유럽의 귀족들처럼 서로 반목하면서도 공통의 곤란이나 이해에 관해서는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특히, 신분제도에 관해서는 절대적으로 협력하였다.
“여러분의 말처럼 현재, 일본 전역에서는 신분제도가 무너질 기미가 보이고 있습니다. 바로 저 조선 놈들 때문에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동북부에서 일어난 소란을 가볍게 여기고 서로 협력하지 않았다.
경쟁자를 신경 쓰기도 바쁜 판국에 자신들의 영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북부나 북해도를 신경 쓸 여력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야마토 제국의 이인자, 도시오가 모임을 개최하면서까지 협력을 주장하니 그들로서도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신분제도는 흔들리고 있었고 대한국의 위협은 조금씩 가시화되어 가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맞는 말이오! 결국 저 조선 놈들 때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이 아니요? 그러니 우리의 주적은 조선이오!”
“그렇습니다. 조선이 일본에서 설치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이제 뭉칩시다!”
순식간에 의견이 모아졌다. 마치 처음부터 뜻을 함께하기로 한 사람들처럼 의견이 빠르게 통일된 것이다.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일인데, 그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부터가 애초에 내전을 멈추고 대한국에게 공동으로 대항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잠깐 사이에 의견이 통일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서로에 대한 동질감도 가지고 있었고 말이다.
“동북부를 방치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두가 동감하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 봅시다.”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오?”
“누군가는 전투를 담당해야 될 것이고, 누군가는 보급을 담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비전투 부문을 담당해야 할 것이고 말입니다.”
“······.”
도시오의 말이 끝나자 소란스러웠던 분위기는 급격히 싸늘하게 변해 갔다.
아무리 ‘대의’를 위해 뭉치자는 약속을 했다지만 그들은 여전히 서로 견제하고 반목하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언제 배신자가 나올지 알 수 없었기에 병력을 동북부로 움직이는 것에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전력을 외세와의 싸움에 낭비하고 싶지 않아 하였다.
그러자 도시오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야마토 제국은 동북부 지역의 오국과 접경하고 있는 만큼 실질적인 군사력을 담당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기피하는 것이 바로 전투를 담당하는 것이다.
대한국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고, 전쟁이 길어지다 보면 병력의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병력을 동북부로 보내고 나면 후방이 걱정되기 마련이었다.
전국시대가 한창인 일본에서는 누가 갑자기 빈집털이를 시도해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도시오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자신들이 전투를 담당하겠다는 말을 하였다.
이것은 군사력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절대 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야마토 제국이 전투를 담당한다는 뜻입니까?”
“예, 야마토 제국이 전쟁의 주역이 되겠습니다.”
“허어, 역시 야마토 제국은 일본의 희망이군요.”
“야마토 제국이 나선다면 조선 따위야 순식간에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시오의 결단에 사람들은 탄성을 내지르며 야마토 제국을 칭송하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시늉하는 뿐, 속으로는 시샘하거나 질투하는 이들이 많았다.
대의가 어떻건, 서로에 대한 견제를 낮출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 너희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다. 잘난 척한다고 비웃거나 우리의 강력한 힘에 질투하고 있겠지. 하지만 만약 이번 전쟁에서 우리가 활약하게 된다면 너희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의 진정한 주인은 우리 야마토 제국이라는 사실을!’
외부에 강력한 적이 존재할 때, 내부는 단결할 수밖에 없었다.
야마토 제국, 그들이 희생을 자처하는 역할을 떠맡은 것은 바로 일본이 내전을 종식하고 단결할 때 단결의 구심점이 되기 위함이었다.
단결의 구심점이 된다는 것은 한마디로 ‘수장’이 된다는 뜻.
야마토 제국은 일본의 수장 자리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야마토 제국이 전투를 담당하겠다니 이거, 우리 나가노 왕국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겠습니다. 우리는 그럼 최대 3만의 병력을 동북부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동영도 2만 5천 정도를 보내겠소.”
도시오가 포문을 여니 간토 지방, 간사이 지방을 대표하는 왕국들이 연이어 군사 파견에 관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나머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앞다투어 말했다.
“우리는 암살을 담당하겠소. 전면전이 시작되기 전에 동북부의 친한파들을 쓸어버리면 일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오.”
“그렇다면 우리 규슈의 다이묘들은 해군을 담당하겠습니다.”
“나는 그럼 보급을 담당해야겠군.”
순식간에 각자의 역할이 정해졌다.
효율을 추구하는 일본인답게 뭐가 이득이고 뭐가 손해인지를 파악하자 빠르게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 * *
“이건 마정석을 동력으로 작동하는 열기구입니다.”
“열기구라니! 미국에서는 벌써 하늘도 개척했습니까?”
노마법사가 미국에서 건너온 무역품을 소개하니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직 중세를 벗어나지 못한 센추리에서 근대에서나 나올 법한 열기구를 보았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놀람은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하였다.
“이 장갑은 거미줄처럼 끈적이는 줄을 생성해 내는 아티팩트입니다. 이른바 ‘스파이더맨 장갑’이라 불리는 장갑이죠.”
마법사가 시험으로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고는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뻗으니 정말 거미줄을 닮은 실이 정면으로 뻗어 나갔다.
“와! 진짜 스파이더맨 같네요?”
“어떻게 저런 것을 만들 생각을 하냐. 우리나라 아티팩트는 보면 죄다 RPG에서 흔히 나오는 아이템들 같은데.”
여기저기서 감탄이 쏟아졌다.
기능이나 가성비가 어떤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참신함에 감탄한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 나왔던 것처럼 벽을 오르거나 적을 살상하는, 그런 능력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적을 잠시 묶어 두는 정도가 한계입니다.”
“아쉽네요. 스파이더맨처럼 날아다니고 싶었는데.”
몇몇이 아쉬워하였지만 적을 최대 1분 가까이 묶어 두는 게 가능하다는 점에서 스파이더맨 장갑의 효용은 결코 작다고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