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08화 (208/345)

# 208

‘어찌 되었건 일본이 아닌 한국을 선택했다는 뜻이니 나쁘게 볼 일은 아니네.’

속으로 그런 생각들을 하며 곧장 자신의 집무실로 향하였다.

“오, 안녕하세요.”

집무실에 도착하니 훤칠한 체격에 잘생긴 백인 청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친과는 조금 다른 인상이군.’

그의 아버지,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거대한 근육질 몸을 가졌는데 패트릭 슈워제네거는 다소 마른 인상이었다.

패션모델이었다고 하더니, 우락부락하게 몸을 키우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호영은 어눌한 한국어로 인사해 오는 백인 청년의 악수를 받아 주며 말했다.

“패트릭 슈워제네거 씨, 반갑습니다. 그런데 한국어를 할 줄 아십니까?”

“통역은 제가 할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쪽은?”

“반가워요. 조슈아 캐럿이라고 해요.”

이번에 호영에게 악수를 건넨 여성은 금빛 머리칼을 가진 동양인이었다.

외모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여성이었는데 통역이 아니라 패트릭처럼 모델이나 배우로 보였다.

“반갑습니다.”

호영은 조슈아라는 이름의 통역관과도 악수를 하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런데 할리우드의 유명한 배우께서 우리 회사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우리 엔터테인먼트를 찾아오신 것은 아닐 텐데.”

“호호, 엔터테인먼트도 가지고 계셨나요?”

“······.”

“미안해요, 제가 무례했죠? 사실 패트릭은 당신의 회사에 볼일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 아니에요. 회사가 아닌 당신에게 볼일이 있어서 찾아온 거죠.”

“센추리 때문입니까?”

“잘 알고 계시네요, 호호.”

그녀는 가볍게 웃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송호영 씨, 당신에게 미국 귀화를 제안하고자 해요.”

“귀화 제안입니까?”

갑작스러운 귀화 제안에도 호영은 태연하게 고개만 끄덕거렸다.

“놀라지 않네요? 예상했나요?”

“아닙니다. 정부의 사람도 아닌데 귀화를 제안해서 놀라기는 했습니다.”

귀화 제안이야 워낙 많이 받아 봤으니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패트릭처럼 민간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귀화를 제안하는 것은 호영으로서도 뜻밖의 일이었다.

센추리와 관련된 것을 제안하리라 예상했는데 말이다.

“그럼 원래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분이신가 보네요.”

“네. 그보다, 저에게 할 이야기는 그거뿐입니까?”

“표정을 보니 어떤 혜택을 줘도 귀화는 안 하실 것 같네요. 정말 아쉬워요. 귀화를 선택하였다면 좋은 일이 많았을 텐데 말이죠.”

마치 유혹하듯 혀를 내밀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 조슈아의 모습은 호영이 보기에도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가진 사내였다.

“귀화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호영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조슈아는 패트릭을 바라보았고, 패트릭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더 제안해 봤자 의미가 없다는 뜻 같았다.

“송호영 씨가 그렇게 단호하시니, 우리도 다른 제안을 하겠어요.”

“말씀하십시오.”

“아실지 모르겠지만 슈워제네거 가문은 센추리에서 알아주는 해상 전력을 갖춘 세력이에요. 적어도 태평양에서는 절대적인 위치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갖추었다지요.”

“호호호, 알고 계시다니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우리의 제안은 간단해요. 다음 주쯤 되면 우리 슈워제네거 가문의 상선이 동아시아에 도착할 거예요. 미국이 자부하는 마법 아티팩트와 특산품을 가득 실은 상선이죠.”

“벌써부터 태평양을 건너다니 대단하군요.”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새삼스레 생각해 보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한국의 해군력은 세계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꿀릴 게 없었지만 1천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북해도를 항해하는 것조차 버거워하였다.

함선이 전부 평저선이라 먼 거리를 항해하는 것에 제한이 따랐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의 경우는 바다에 힘을 쏟지 못하는 상황이라 1천킬로미터는커녕 연안을 항해하는 것조차 어려워하고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동남아의 태국, 중국의 오나라, 일본의 사쓰마 정도만이 먼 거리를 항해하는 것이 가능하였는데, 그조차도 3천에서 5천 킬로미터가 한계였다.

단순히 함선의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해상 마물과 해적이 존재하지 않는 안정적인 해로를 찾거나 유지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슈워제네거 가문의 저력이 놀라운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8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먼 거리를 항해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무역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 실로 놀랍게만 느껴졌다.

그 기나긴 거리의 해로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캘리포니아에서 독보적인 세력을 가졌다더니, 사실이었나 보군.’

호영이 속으로 슈워제네거 가문의 저력에 대해 감탄하고 있을 때, 조슈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상선이 도착하면 정식으로 수교를 맺고 교역을 하고자 하는데, 송호영 씨는 수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개 가문이 대한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상대로 수교를 제안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이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슈워제네거 가문은 캘리포니아 공화국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자랑하는 가문으로서, 다른 나라들처럼 영주나 왕을 자처하지는 못하지만 민간 군사 기업을 소유하여 1만에 가까운 사병을 보유하고 정부의 요직을 40퍼센트 이상 독점한 가문이었다.

지금 시대에서 사실상 왕국을 자처해도 이상할 게 없는 가문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만큼 호영으로선 슈워제네거 가문의 수교 제안을 가볍게 판단할 수 없었다.

단순히 슈워제네거 가문과 수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캘리포니아 공화국, 어쩌면 미국 전체와 수교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수교라면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호호호, 그렇다면 찬성이라는 뜻이겠네요. 양국의 교역은 서로에게 이득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김칫국을 마시는 조슈아를 향해 호영이 찬물을 끼얹었다.

“다만, 조건이 중요할 것입니다.”

“조건요? 어떤 것을 말하는 거죠? 예를 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마약, 노예 같은 일부 품목에 대해 거래를 금지하는 조건입니다. 물론 그 외에도 유저들에게 무기를 판매할 수 없다는 조항과, 개항장 외에 불개항장에 입항할 경우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 할지도 정해야 할 것이고 말입니다.”

“······음.”

호영의 말이 끝나자 조슈아가 말문을 닫고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조건들인데도 이렇게 고심하는 것이, ‘마약 거래 금지’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는 마약 거래가 합법이었으니 말이다.

“불개항장에 입항하는 범법자들을 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야, 우리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유저들에게 무기를 판매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마약이나 노예의 수입을 꼭 금지하셔야 하나요?”

“미국은 어떨지 몰라도 대한국에서는 마약 거래를 철저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가상현실이잖아요. 꼭 마약이나 노예 거래를 금지할 필요가 있을까요? 유저들 입장에서는 마약이나 노예를 수입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일 텐데요. 아무런 후유증 없이 마약을 경험할 수 있고, 백마들을 성 노예로 둘 수 있는 기회잖아요.”

너무 노골적인 말에 호영은 잠시 황망함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고서 정색하는 얼굴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것은 아국의 사정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마약과 노예의 수입을 금지하겠다는 건가요?”

“예.”

단호하게 대답하니 조슈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약 거래라는, 천문학적인 이문을 남기는 장사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너무 단호하신 거 아니에요? 그러다 우리가 일본을 선택하시면 어쩌려고요? 일본의 국내 사정이 불안정하여 한국을 선택한 것이지, 일본과 교역을 하자면 못 할 것도 없다고요.”

“일본을 선택하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왜죠?”

“곧 있으면 우리가 일본을 정복할 것이니 말입니다.”

“······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조슈아가 황당한 얼굴로 반문하자 호영이 자신감 어린 표정으로 재차 말했다.

“4회 차가 끝나기 전에 대한국이 일본을 복속할 것이라 했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신가요?”

“예, 진심입니다.”

“······황당하네요.”

“이미 우리는 북해도를 점령하였습니다. 혼슈의 동북부도 우리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상황이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일본 전체를 점령하는 것은 힘들 것인데요? 일본의 군사력은 세계적으로 따져도 결코 약한 수준이 아니에요.”

“믿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한국이 머지않아 일본을 점령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고, 만약 슈워제네거 가문이 일본과 수교를 맺는다면 이후 대한국과 교역을 하는데 큰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협박인가요.”

“일본과 적대하고 있는 대한국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달라는 의미였습니다.”

“······.”

다시금 말문을 잃은 조슈아가 고개를 돌려 패트릭을 바라보았다. 어찌해야 될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일개 통역사가 협상을 주도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결정은 패트릭이 하는 것 같네.’

비록 회화는 못하지만 통역기를 통해 호영의 말을 알아들은 패트릭은 호영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는 얼굴을 하였다.

조각같이 잘생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민하던 패트릭은 이내 조슈아에게 간단한 지시를 내렸다.

아쉽게도 통역기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호영으로서는 패트릭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을 봐도 대충 어떤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호영의 예상대로 조슈아의 입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흘러나왔다.

“좋아요. 송호영 씨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겠어요.”

“감사합니다.”

“대신 무공에 대해서 조금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떤 부탁입니까?”

“초보자의 섬에 있는 대한 길드가 송호영 씨의 소유라고 들었어요.”

“예, 맞습니다.”

“슈워제네거 가문에서 몇 명을 보낼 테니 그 사람들을 길드원으로 받아 주세요.”

“길드원이라면?”

“무공을 가르쳐 달라는 말이에요. 대한 길드는 문파가 아니라서 길드원을 상대로만 무공을 가르치잖아요.”

이번에는 호영이 고민할 차례였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솔직히 우리가 무공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들이 무공을 배우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기는 한데.’

호영이 고민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10초 정도 고민하고는 흔쾌히 대답하였다.

“알겠습니다. B급 이상의 무공은 불가능하겠지만 C급까지는 가르쳐 주도록 하겠습니다.”

“심법도요?”

“예.”

심법까지 가르쳐 줄 것이냐는 조슈아의 물음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번에도 흔쾌히 대답해 주었다.

어차피 4회 차부터는 서양에도 본격적으로 무공의 시대가 열린다.

서양에서는 포스니 오러니 동양과는 다르게 구분하겠지만 어찌 되었건 무공과 비슷한 형식으로 힘을 쌓는 이들이 등장하게 되니 꽁꽁 숨겨 봤자 의미가 없었다.

그러니만큼 동맹이라 할 수 있는 슈워제네거 가문에게 C급 이하의 무공을 풀면 괜찮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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