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06화 (206/345)

# 206

회귀 전, 이맘때의 한국은 미래의 먹거리 산업을 완전히 놓친 상태로서 사회 동력을 급격히 잃어 가던 시기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호영에 의해 한국의 미래는 크게 달라졌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외면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사라진 것이다.

“이런, 제가 말을 너무 길게 했나요?”

“아닙니다.”

잠시 딴생각을 하던 도중 대통령이 호영을 보고 미안하다는 듯 그렇게 말하니 호영은 무안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대통령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정치인인데도 말을 잘 못해서요.”

“원래부터 행동으로 보여 주던 분이 아니십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군요.”

호영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대통령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통령은 진지한 얼굴을 하더니 갑자기 참석자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참석자들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였다.

탈권위 시대라고는 하지만 일국의 수장이 대뜸 고개를 숙이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영 역시 눈에 이채를 띠며 대통령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제가 말을 길게 하였는데,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의 주권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권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누군가가 의아한 목소리로 묻자 대통령은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를 비롯한 정부는 센추리에 진출하신 여러분께 어떠한 도움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께서는 센추리에서 종횡무진 활약하여 이웃 나라인 중국 정부나 일본 정부가 세운 길드보다 훨씬 큰 세력을 일구어 내셨습니다. 센추리는 미래의 성장 동력이자 먹거리 산업이 될 것이니, 여러분이 바로 대한민국의 주권을 지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 저는 당연한 일을 한 것일 뿐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하.”

진심을 다해 감사 인사를 전하는 대통령을 보고 20, 30대의 참석자들은 크게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참석자들 역시 대통령을 존경과 흠모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대통령이 직접 자신들의 공로를 인정해 주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낀 것이다.

확실히 말은 잘 못할지 몰라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은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기야 대통령인데 그런 매력이 없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되겠지만 말이다.

“특히 송호영 사장님에게는, 이 나라를 대표하여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대한 길드가 대한민국의 국권을 지키는 데 독보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저도 들어서 알고 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예.”

호영은 부담스러운 얼굴로 대통령의 감사 인사를 받아 주었다.

그렇게 대통령은 참석자들 전체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센추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이 대통령은 가장 먼저 길드장들에게 기업들과의 협력과 소통을 부탁하였다.

대한 길드를 예로 들면서 토지의 일부를 임대해 주는 형식으로 협력과 소통을 부탁하였는데, 참석자들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대한 길드뿐만이 아니라 간담회에 참석한 길드장들 대부분이 토지를 널찍하게 가지고 있었다.

길드에서 활용하고 있는 토지나 극소수가 갖고 있는 던전이나 영산 같은 특수한 토지를 제외하면 임대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뜻이었다.

“저희 길드는 자체적으로 앱을 만들어 초보자의 섬에 있는 부동산들을 쉽게 매매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저도 나중에 은퇴할 때쯤에 매매하고 싶군요. 물론 그때쯤에 부동산의 가격이 얼마나 상승해 있을지 부담스럽긴 하지만 말입니다.”

대통령이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참석자들이 크게 웃었다.

분위기는 그렇게 시종일관 화기애애하였다.

“요즘 토지 소유자들의 갑질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여러분께서는 그것만 조금 조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예!”

마지막으로 덧붙이듯이 임대료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앞으로 과도한 폭리는 자제해 달라는 주문을 하였다.

“생각보다 무난한데. 엄청난 요구를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러게.”

최진수가 귓속말로 그렇게 말하자 호영도 동감한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확실히, 상정했던 최악의 경우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았다.

그의 측근들은 정부가 대한 길드의 토지 일부를 국유화 시킬 수도 있다고 추측하였다.

아무래도 기간산업이나 공공시설의 경우는 명분상 국가가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 맞는 일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대통령은 합리적이었고 무리한 요구는 일체 하지 않았다.

그저 몇 가지 당부하듯 말한 것이 전부였다.

‘처음으로 열린 간담회라 그런가? 지나칠 정도로 무난하군.’

호영이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할 때, 마무리 인사말을 끝마친 대통령이 그를 불렀다.

“송호영 사장님께서는 귀가하지 말고 잠시 자리를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대통령의 말에 호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쩐지. 간담회가 예상했던 것보다 실속이 없어 이상하다 했더니, 어차피 나와 독대할 예정이라서 그랬나 보구나.’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길드들은 대한 길드와 비교하면 바다와 우물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가 난다.

일종의 병풍으로 초대한 것이니만큼 실질적인 이야기를 나누려면 호영과 독대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기는 하였다.

“오, 대통령과 독대하는 거냐?”

“원하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됐네.”

최진수가 친한 척 말을 거니 호영은 조금 어색함을 느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하였다.

그러자 최진수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잘해 봐. 괜히 대통령이라고 기죽지 말고. 아니, 네가 기죽을 리는 없으려나?”

호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장들이 앞에 있다고 더 친한 척하는군.’

예전이었으면 최진수의 행동에 기분이 상했을 텐데 이제는 그저 웃음만 나올 따름이었다.

* * *

“앉으세요.”

“예.”

대통령은 165센티미터의 단신에, 강직하고 고집이 셀 것 같은 외모, 구한말의 ‘흥선대원군’와 쏙 빼닮은 인상을 가졌다.

‘실제로도 고집이 어마어마하다지? 벌써부터 독불장군이라는 말을 듣고 있기도 하고.’

회귀 전처럼 ‘독재자’라는 소리까지 듣지는 않고 있지만 어쨌든 언론에서 좋은 말을 듣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지지율은 아직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갑자기 남으라고 해서 놀라셨나요? 부담이 되었다면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별로 부담스럽지는 않으니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통령님.”

“그렇습니까? 하하하, 제가 괜한 소리를 했나 보군요.”

대통령은 그렇게 웃더니 다시금 말문을 열었다.

“송 사장의 무공 실력이 세계 제일이라는 말도 있는데, 현실에서는 어때요? 저도 예전에 복싱을 잠깐 했는데 현실의 프로 선수들보다 월등히 강하나요?”

“아닙니다. 만약 현실에 마나가 있었다면 프로 선수들보다 월등히 강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마나가 없으니 프로 선수들과 비슷한 수준일 겁니다.”

“그래요? 근데 말이에요, 무공만으로 대한국 같은 거대한 나라를 세우기는 힘들었을 텐데, 혹시 다른 요인으로 뭐가 있을까요?”

“저를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나라를 경영하는 데 꼭 필요한 재능을 갖춘 인재들인데, 이들이 도와줘서 나라를 세우고 경영할 수 있었습니다.”

“호오, 그래요? 그렇다면 송 사장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활용한 셈이네요. 인재를 적재적소로 활용하는 게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는데.”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제가 꼭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입니다. 나머지는 다른 이들이 도와준 것이고요.”

호영은 무덤덤한 어조로 대답하였지만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대통령은 간담회 때와 마찬가지로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는 대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화제를 풀어 나갔다.

대화를 통해 분위기를 풀 생각인 것 같은데 호영으로선 시간 아깝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이래서 정치인들을 상대하는 것은 피곤하다니까. 그냥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하면 안 되나? 대통령이라서 바쁠 텐데도 저러네.’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그로선 대통령과의 독대가 벌써부터 피곤하게 느껴졌다.

“이야, 센추리에서 수십 년간 왕을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오히려 제가 배울 것이 많네요. 하기야 거기는 아직 봉건제라고 했죠? 송 사장은 대통령이 아닌, 국왕이고요?”

“······그렇습니다.”

“국왕이니 저보다 익숙할 수밖에요. 어쩌면 송 사장은 정치계에 입문해도 크게 성공하셨을 것 같네요. 권력이나 정치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아니 말이에요. 더군다나 인기도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정말 정치인이 돼도 괜찮겠는데요?”

호영은 그 말에 눈썹을 찌푸렸다.

왠지 자신을 견제하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한 채 말문을 열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있을 곳은 어디까지나 센추리입니다. 정치계는 저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요?”

대통령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화제를 전환하였다.

“송 사장, 혹시, 초보자의 섬에서도 제왕적인 권력을 가졌나요?”

“······제왕적인 권력이라 하시면?”

“대한 길드나 다른 길드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파워를 가졌냐는 질문이에요.”

“대통령님도 아시다시피 초보자의 섬에서 대한 길드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그리고 저는 대한 길드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죠.”

“한마디로 센추리에서는 송 사장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거군요.”

그 말에 호영은 순간 움찔하였지만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면 몇 가지 양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호영은 직감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말씀하십시오. 들어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일단, 제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을 말씀드릴게요. 아, 참고로 이는 저만 우려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와 정부 모두가 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

“현재 국회에서는 대한 길드가 우리 헌법 119조 2항에 중대한 위반을 하고 있다 판단하고 있어요.”

“헌법 119조라면, 설마 독과점을 말하는 겁니까?”

허영만인지 아니면 다른 측근이었는지, 아무튼 호영의 주위 사람 중 누군가가 헌법 119조에 대해 말해 준 기억이 있었다.

정확한 내용은 생각이 안 났지만 대통령의 말을 듣고 ‘독과점’이라는 단어가 불현듯 떠올랐다.

“예, 잘 알고 계시군요. 송 사장이 말했던 것처럼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서 규제와 조정을 하도록 규정하는 게 바로 우리 헌법 119조입니다. 즉, 독과점과 부의 편중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입니다.”

“······제가 그 119조를 위반했다는 겁니까?”

“대한 길드는 대만보다 더 큰 영토를 소유하고 있다 들었어요. 다른 길드들의 경우 전부 합쳐 봤자 제주도보다 작은데 말이죠.”

“그게 잘못된 것입니까?”

“······물론 저는 대한 길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단지, 대한 길드에서 보유한 영토가 시장을 독점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는 게 문제에요.”

“설마 땅을 강매시키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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