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
“사장님은 아직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사장님과 대한 길드 그리고 대한국의 인기를, 아니 우리 로열사 전체의 인기를 말입니다.”
“모르지는 않다. 다만 고작해야 그 정도의 인기로 정부 부처와 맞서는 게 가능하냐는 거야.”
“그렇게 폄하할 수 있는 수준의 인기가 아닙니다. 일개 정부 부처가 아닌, 정부의 수장과 맞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정도의 인기입니다.”
“……!”
호영은 눈을 크게 떴다.
한마디로 말해서 대통령을 능가할 정도의 인기라는 말이 아닌가?
“너무 오버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인기 하나로 대통령과 맞서는 게 가능할 리 없잖아.”
“유저의 숫자가 이제 수백만을 넘어, 천만 명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수백만의 유저들 대부분이 사장님을 지지하고 있지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만한 지지자를 거느리고 있다는 것은 힘이나 영향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와 다를 게 없습니다. 만약 사장님이 대권에 도전하신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그 말에 호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대권이라니. 센추리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는데 현실에서는 대통령 노릇을 하라는 건가?
하지만 호영은 허영만의 말을 그저 농담으로 취급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어느 정도 자신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송호영으로서의 인기가 아니라, 대한국의 국왕인 대연으로서의 인기지만.’
어찌 되었건 허영만의 말처럼 그의 인기가 엄청난 것은 사실이었다.
북해도를 점령한 것이 그만큼 현실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누구?”
-총무 비서관께서 오셨습니다.
“…….”
총무 비서관?
순간 호영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였다.
‘총무 비서관이 왜 이곳에?’
지금으로썬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들어오라시라고 전해라.”
하지만 언제까지 멍하게 있을 수는 없는 법.
호영은 곧장 정신을 차리고는 총무 비서관이라는 사람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처음 뵙습니다. 총무 비서관, 강성호라고 합니다.”
강성호라는 사내는 마치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중년 사내였다.
“예, 로열사의 사장 송호영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호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통성명을 하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름이 아니라, 다음 주 토요일에 청와대에서 간담회가 있습니다. 센추리의 유망한 길드들과 기업들을 초청할 예정인데, 송호영 사장님께서도 간담회에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간담회요.”
“예, 혹시 그날 시간이 안 되신다면 지금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 해서든 날짜를 미루겠습니다.”
청와대의, 그것도 ‘문고리 권력’이라고까지 불리는 총무 비서관의 태도치고는 이례적일 정도로 공손하였다.
마치 재벌 회장이나 정당의 대표를 대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호영은 상대의 극진한 태도에 현혹되지는 않았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 이런 대우는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직 ‘꼰대’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현실에서건 센추리에서건 그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성삼 그룹의 힘을 넘어설 수도 있을 터.
아무튼, 호영은 자신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있었기에 상대가 어떤 태도를 보이든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이득을 생각할 뿐이었다.
‘다른 길드를 부르는 것은 요식행위이고 결국 나를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과연 지금처럼 정부와 불편한 상황일 때에 대통령과 만나는 게 이득이려나, 손해이려나.’
잠시 고민하던 호영은 허영만을 바라보았다.
끄덕.
허영만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간담회에 참석하라는 뜻 같았다.
‘모르겠으면 일단 참석해 보자. 어쨌든 대통령과 한번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니 말이야.’
그렇게 결정을 내린 호영은 강성호에게 말했다.
“토요일이라고 했죠? 알겠습니다. 참석하겠습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권력자이면서도 거리낌 없이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하는 강성호를 보며 호영은 눈을 빛냈다.
총무 비서관이라는 사람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대통령과의 만남이 나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담회를 부른 이유는 나 때문이겠지?”
강성호가 물러나고 호영은 허영만에게 물었다.
그러자 허영만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예, 드디어 대통령도 사장님께 관심을 가진 모양입니다.”
“솔직히 대통령에게 관심을 받는 것이 그리 좋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총무 비서관의 태도를 보면 사장님의 사회적 지위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반대로 그만큼 센추리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지.”
호영은 그 말을 하고서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지금은 무슨 말을 하건 의미가 없었다. 다음 주가 되어야지만 대통령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제발 귀찮게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는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대통령이 자신을 귀찮게 굴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 *
“한번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뵐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송 사장님.”
“사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초보자의 섬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업, 길드, 문파의 수장들이 청와대에 초대되었다.
센추리 대표자 초대 간담회에 초대된 것이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단연 대한 길드의 실질적인 수장이라고 볼 수 있는, 로열사 사장 송호영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름이 꽤나 알려진 길드장이나 문파의 수장조차도 호영 앞에서는 허리를 바짝 숙이며 저자세를 취하였다.
기업인들의 태도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랑방귀를 뀌지는 않았지만 극도로 조심스럽게 행동하였다.
나이 지긋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호영은 센추리에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신진호까지 나에게 저자세를 취할 줄이야. 세상 참 살고 볼 일이로군.’
센추리에서 줄곧 악연이었던 신진호.
회귀하고 나서도 3회 차 이후로 줄곧 적대 관계였는데, 오늘의 만남으로 적대 관계가 모두 청산되었다.
자신이 을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인지 호영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사과하며 앞으로 대한 길드의 행사에 적극 협조할 것을 맹세하였던 것이다.
아직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신진호의 성격상 영악하게 굴지는 않으리라.
“너도 초대되었을 줄은 몰랐다.”
호영은 간담회의 주인공답게 여유로운 몸가짐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참석자들을 상대하다가 또래의 사내를 보고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또래의 사내가 피식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대한 길드에 많이 못 미쳐서 그렇지, 우리 길드의 영향력도 작지만은 않거든.”
“그래?”
또래의 사내, 최진수의 말에 호영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너는 재벌이니까, 이번 간담회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돌지 대충이라도 알고 있겠네?”
“이번 정권에서 재벌인 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 나도 전혀 몰라,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요구를 할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호영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재벌가의 일원인 최진수조차 정보가 없을 줄은 몰랐다.
“어. 그래도, 뭐 별거 있겠냐. 나 같은 경우야 어차피 대통령과 사이가 안 좋으니 무시하면 그만이고, 너도 이제는 대통령 눈치 볼 정도는 아니잖아?”
그 말에 호영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그의 말처럼 대통령이 간담회에서 어떤 말을 하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애초에 그런 이유로 간담회 초청에 응한 것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초청이 나를 목표로 했다는 것이다.’
센추리 대표자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병풍이랑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대한 길드.
센추리 대표자로는 대한 길드만으로 충분하였다.
초보자의 섬에서 대한국령으로 알려진 영토의 90퍼센트 이상이 대한 길드 소유였기 때문이다.
“대통령님께서 입장하십니다.”
호영이 이번 간담회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대통령이 마침내 등장하였다.
참석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에게 인사를 건네자 매서운 눈매에 강직한 인상을 가진 대통령은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받아 주었다.
“자, 자, 자리에 앉으세요.”
“예.”
그렇게 자리에 앉으니 대통령이 간단하게 인사말을 하였다.
딱히 특별할 것은 없는 인사말이었는데, 대통령은 인사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영의 이름을 불렀다.
“로열사의 송호영 사장님이시지요?”
“예.”
“자기소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호영은 대통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정해진 절차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 대한 길드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그가 대표로 가장 어울렸다.
이번 간담회는 어디까지나 센추리와 현실 간의 상호 협조 및 공동 이익을 위해 센추리를 대표하는 이들을 초대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저는 본 게임에선 대한국의 국왕으로 초보자의 섬에선 대한 길드의 수장으로 현실에선 로열사의 사장으로 있는 송호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과 이렇게 자리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짝짝짝!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니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모두가 호영을 환영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대통령도 웃는 얼굴로 박수를 보내고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기소개를 부탁하였다.
참석자들 입장에선 이미 간담회 시작 전에 서로 통성명을 하였기에 의미가 없는 요식행위였지만 원리원칙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대통령답게 한 명도 빠짐없이 자기소개를 시켰다.
“모두 식사 안 하셨지요?”
-예.
“그럼, 간단하게 식사부터 합시다.”
그렇게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식사까지 끝마치자 본격적인 간담회가 시작되었다.
“요즘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처음 센추리가 등장했을 때, 솔직히 저는 그저 컴퓨터 게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래 그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관심이 적었거든요. 그런데 어느덧 센추리는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죠.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저조차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말이에요.”
이 대통령은 마치 넋두리를 하듯이 센추리로 인한 실생활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자신은 따라가기도 버겁다는 둥, 그래도 변화가 긍정적인 경우가 많아서 다행이라는 둥.
정부의 센추리 진출이 지나치게 늦었다는 언론의 비판을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지 관련자라고 할 수 있는 간담회 참석자들에게 일종의 변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회귀 전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지. 원래라면 지금쯤 비판 수준이 아니라 탄핵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왔을 정도니.’
회귀 전에는 정부건 대기업이건 센추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온 신경이 대통령의 재벌 개혁에 쏠렸기 때문이다.
정부와 대기업은 센추리에 무관심하고 언론은 센추리를 탄압하였으니 당연히 한국은 센추리 진출에 있어 후발 주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호영이 회귀하면서 역사는 달라졌다.
호영의 활약으로 한국은 센추리에서 독보적인 세력을 확보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바뀐 미래에서도 과연 탄핵 사태 같은 일이 벌어질까?’
호영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통령의 미래를 생각해 보았다.
회귀 전의 역사에서 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감하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센추리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원 역사에서 한국은 센추리 진출이 그 어느 나라보다 늦어졌고, 2회 차부터 크게 뒤처지기 시작하다가 3회 차부터는 절망스러울 정도로 도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