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그렇다 보니 대한 길드가 자신을 용병으로 쓰려는 사실이 이상하게만 느껴지는 미사요시였다.
솔직히 말해서 조경호라는 이름의 대한 길드 간부가 사기꾼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예, 다만, 초보자의 섬에서 용병으로 쓰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본 게임이군요.”
“그렇습니다.”
미사요시의 얼굴이 굳어졌다.
본 게임에서 좋지 않은 일을 겪었던 미사요시다 보니 대한 길드의 제안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제안을 다 듣기도 전에 거부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는 애써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서 대한 길드의 간부라는 유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을 시키실 생각입니까?”
“그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물어보십시오.”
“혼슈의 동북부 지역에 위치한 센다이 왕국과 어떤 관계에 있으십니까?”
“…….”
혼슈는 현재 2강 3중 5약으로 나뉘 있었다. 그리고 이 중에 5약은 동북부 지역에 밀집되어 있는데, 센다이 왕국은 바로 이 5약 중 하나에 해당하는 세력이었다.
“무슨 대답을 원하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더 이상 센다이 왕국과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미사요시는 이를 악물며 그렇게 대답하였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센다이 왕국을 공격하는 것도 괜찮으시겠군요.”
“……예?”
조경호의 무뚝뚝한 목소리에 미사요시는 눈을 크게 떴다.
센다이 왕국을 공격한다니?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저는, 우리 대한 길드는 센다이 왕국과의 전쟁에서 당신을 용병으로 고용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조경호라는 사내는 확인 사살을 하는 것처럼 다시금 센다이 왕국을 거론하였다.
“세, 센다이 왕국과 전쟁을 한다니요? 대한국이 일본을 침공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히는 센다이 왕국의 유저들과 전쟁할 계획입니다. 우리 대한국은 센다이 왕국의 NPC인 이 왕자를 지지할 것이고 말입니다.”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그러십시오.”
미사요시는 놀란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대한국과 센다이 왕국이 전쟁한다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그건 아무래도 좋아. 하필 나를 용병으로 쓰겠다니, 나에 대한 사정을 알고 있는 것인가?’
그는 과거, 센다이 왕국의 건국 공신이었다.
그것도 그냥 건국 공신이 아니라 센다이 왕국을 창업하는 데 절대적인 공을 세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2년 전의 과거일 뿐이었다.
그처럼 엄청난 공을 세운 공신은 왕의 입장에서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미사요시는 센다이 왕국의 국왕에 의해 토사구팽을 당하고 말았다.
나라가 안정되기 무섭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본 게임에서 토사구팽을 당한 이후로 미사요시는 초보자의 섬에서만 활동하였다.
오버로드라는 조그만 길드를 설립하고서 유유자적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을 뿐, 센다이 왕국에 대해 애증의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건국 공신으로서 왕국을 건설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니 말이다.
‘이들의 손을 잡아 다시 돌아간다고? 나를 토사구팽하였던 센다이 왕국으로? 허어, 한때 건국 공신이었던 자가 이제는 배신자가 되어 돌아가는 셈이로군. 뭐,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말이야.’
1분, 2분, 5분…….
그의 고민은 무려 15분 동안 계속되었다.
15분이 지나자 마침내 결정을 내렸는지 입을 악다물던 미사요시가 말문을 열었다.
“이 왕자를 지원하겠다는 것은 센다이 왕국을 친한파로 만들겠다는 의도입니까?”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일본과 전쟁하겠다는……. 아, 의미가 없는 질문이었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용병이 되어 센다이 왕국의 일본 유저들과 싸우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오버로드의 길드장으로 남아 있으시겠습니까?”
미사요시는 눈을 부릅 뜨며 말했다.
“용병이 되겠습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대신, 코인은 후하게 주셔야 할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보수를 후하게 주겠다는 그의 말에 미사요시는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찝찝함을 완전히 털어 낼 수 있었다.
대한 길드 정도의 재력을 가진 곳이라면 분명 엄청난 보수를 지급해 주리라.
‘그래. 센다이 왕국이 어떻고, 일본이 어떻게 되는지는 신경 쓰지 말자. 어차피 나를 토사구팽했던 것들이잖아? 복수도 하고 돈도 얻는 거야.’
어떻게 보면 일석이조와도 같았다.
미사요시는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서 대한국의 용병으로 합류하였다.
* * *
이이제이.
즉, 일본 안에 일본의 적을 만드는 작업은 무척이나 순조로웠다.
재일 교포, 친한파, 무정부주의자, 좌익, 반제국주의 그리고 단순히 돈에 매수되는 유저들까지.
일본의 기득권에 반하는 세력을 모조리 끌어모아서는 혼슈의 동북부로 집결시켰다.
북해도를 치기 전에 혼슈의 동북부를 대한국의 동맹 세력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중에서 최초로 성과를 보인 곳은 바로 센다이 왕국이라는 곳이었다.
“센다이 왕국의 이 왕자가 아국의 요구를 수용하였습니다. 정식으로 물자 지원 및 병력 지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외무 장관, 최인준의 보고에 호영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내전이 발생하겠군.”
“하여 소신이 우선적으로 용병 5천을 센다이 왕국으로 보냈습니다.”
이번에 말한 사람은 일본과의 전쟁을 총괄하는 대군사, 강충구였다.
“5천으로는 부족할 텐데?”
호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비록 5약 중 하나로 불리는 센다이 왕국이라지만 그 국력이 약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3회 차에 대한국을 침공하였던 도요타 왕국과 거의 대등한 국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군사력으로만 따지면 최소 2만이 넘을 것이리라.
“이 왕자가 거느린 사병도 있고 용병은 앞으로도 계속 충원될 예정입니다.”
“그렇군.”
“무엇보다 우리의 목표는 내전을 일으키는 것이지 않습니까? 내전에서 이길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내전을 길게 끄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완벽하기 그지없는 충구의 대답에 호영은 다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른 왕국들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최초로 성과를 보인 곳은 센다이 왕국이지만 나머지 네 개의 세력에다가도 친한 정부를 만들거나 내전 상태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었다.
대한국의 목표는 혼슈의 동북부 전체가 북해도에서 일어날 전쟁을 신경 쓰지 못하게 만드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엄청난 노력과 인력 그리고 자금이 들어갔다.
“네 나라 중 두 나라는 순조롭게 정부를 장악해 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중간 계급의 유저들이 불만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진 상황이라 쉽게 매수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돈이 많이 들었겠지.”
“흠흠! 그렇습니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합니다. 아마 두 나라는 우리가 북해도를 칠 때쯤 되면 적극적으로 옹호해 줄 것입니다. 어쩌면 동맹 세력이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고 말입니다.”
돈, 정확히는 코인을 많이 썼다는 게 아깝게도 느껴졌지만 어떻게 보면 적을 아군으로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기에 호영으로서도 나쁘지 않게 생각되었다.
무력으로 적을 굴복시키려 하였다면 큰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다만, 나머지 두 나라는 일본의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곳이라서 정부를 장악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시간이 지체되어서는 안 된다. 암살을 하든, 매수를 하든 간에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장악력을 높여. 그것도 안 된다면 센다이 왕국처럼 내전을 일으켜도 좋다.”
“예, 알겠습니다.”
친한 세력으로 만들지 못하더라도 대한국의 행보에 제동을 걸지 못할 정도만 돼도 상관없었다.
가장 확실한 수단은 센다이 왕국처럼 내전 상태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내전이 시작된다면 대한국의 원정군을 견제하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사전 작업은 이로써 모두 끝났다고 볼 수 있겠군.’
북해도와 가장 가까운 혼슈의 동북부 지방이 충구의 흉계에 의해 무정부 상태 이상 가는 혼란 상태에 빠져들었다.
아직 두 나라가 멀쩡히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길어야 일주일.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왕국이 두 개로 분열되거나 체제가 붕괴되고 마리라.
북해도를 정복하려는 대한국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일본 유저들의 관심이 혼슈의 동북부에서 일어나는 소란으로 쏠린 틈을 타, 북해도를 일거에 점령할 것이다.
“이제 곧 일본 유저들도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게 될 거야.”
호영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들 기대감으로 가득한 눈으로 호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호영은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더 이상 시간이 지체되면 일본 유저들에게 대비할 시간을 주게 되는 셈이 될 테지. 그러니 우리는 이제 출정한다. 이번 주 토요일. 바로 사흘 후에 일본과 전쟁하는 것이다.”
마침내 선포하였다. 일본과의 전면적인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 * *
10월 중순에 마침내 출정식이 열렸다. 예정보다 다소 늦어진 시간이었다.
하지만 출정이 늦어졌을 뿐, 북해도를 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야말로 순식간일 것이다.
천 명의 무인, 그리고 일본인으로 이루어진 4천 명의 정예 유저들까지.
이 정도의 무력이라면, 조각조각 나뉜 북해도를 점령하는 일쯤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리라.
참고로 북해도 침공에 참여하는 일본 유저들은 친한파로 이루어져 있었다. 무인의 통제에 적극적으로 따라 줄 용병들이었는데 정예 유저답게 전투력도 나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1회 차부터 줄곧 전쟁을 겪어 온 유저들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뭐로 보나 북해도 점령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순 총사령관, 잘 부탁한다.”
“충. 맡겨만 주십시오.”
호영은 이번 일본 원정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순현과 악수를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국에 몇 없는 B+급의 무인 중 한 명으로서 전생에서도 이름을 떨쳤던 명장 중의 명장이었다.
순현이라면 호영의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얻어 낼 것이다.
‘다른 자들도 하나같이 대단한 장수들이다.’
그는 순현에게 눈을 떼고는 다른 장수들을 바라보았다.
1회 차부터 함께해 온 유저들도 보였고 북방군 출신의 NPC들도 보였다.
또한 3회 차 막바지에 어렵게 포섭하였던 재원들도 있었다.
‘한성 제일검 김현과 전흥표 범사라……. 여기에 뒤늦게 무공에 입문하였던 청룡창, 정희승까지 원정군에 참여하다니.’
지금도 그랬지만 전생을 생각하면 더욱 화려하게 느껴지는 명단이었다.
세 사람 모두 S랭크의 자질을 가진 재원들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8회 차가 되어도 S랭크의 경지에 도달한 실력자는 몇 명 없었기에 화려하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황보관.”
호영은 마지막으로 짝다리를 짚으며 서 있는 미청년을 바라보다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예? 저를 부르셨습니까?”
군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천진한 태도를 보이는 미청년.
그는 얼마 전까지 옥에 갇혀 있었던 중국 유저, 황보관이었다.
‘당장의 B+급 전력이자 미래의 S급 전력이 무려 다섯 명이라……. 이 정도면 5천에 달하는 병력은 필요 없는 수준 아닌가?’
황보관의 천진한 모습을 보며 호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믿음이라고는 1도 안 가는 모습이었지만 황보관은 무려 B+급의 실력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