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00화 (200/345)

# 200

나이 차이도 있고, 실전 경험도 오히려 호영 쪽이 압도적이었기에 방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최선을 다하기로 하였다.

상대가 장인어른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라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아까부터 계속 찝찝함이 느껴졌기 때문에 방심할 수가 없었다.

‘무척 강해 보인다. 이렇게 이름 없는 도장의 관장을 하고 있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아.’

진지하게 상대를 관찰했기 때문일까.

호영은 박선후가 녹녹한 실력을 가진 상대가 아님을 확신하였다.

자세부터가 그랬다.

빈틈이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완벽한 자세였다.

진정한 실력은 직접 겨뤄 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얕볼 수 있는 상대는 아닌 것 같았다.

“하압!”

잠시 상대의 실력을 관찰하던 호영은 이내 기합을 지르며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상대, 박선후도 눈을 빛내며 마주 달려왔다.

휘휙 휘휙!

호영이 먼저 선공을 하였는데 아쉽게 공격은 실패하였다.

하지만 어차피 가벼운 공격이었기에 개의치 않고서 다시 공격을 이어 갔다.

“흡!”

연속해서 이어지는 호영의 공격에 박선후는 조금 놀랐는지 급하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나 그는 50대 중후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렵하게 움직여서는 호영의 공격을 피해 냈다.

50대가 아니라 20대를 보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물론 호영의 공격을 완벽히 피해 낼 수는 없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돌려 차기를 맞고 말았던 것이다.

‘김성근도 나의 발 차기를 맞으면 몸이 굳어지는데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은 모양새로군. 그 상황에서 피해를 흡수한 건가?’

창술의 전문가였지만 실전 경험이 워낙 월등하였기 때문에 그의 격투 실력은 프로 격투가 못지않았다.

만약 링 위에서 싸우는 게 아니라 길거리에서 싸운다면 프로 격투가도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을 실력이었다.

그렇다 보니 호영의 공격은 50대 중년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강하였다. 연륜으로 견뎌 내기 이전에 육체가 견뎌 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선후는 호영의 공격을 견뎌 냈다.

박선후의 육체가 나이를 이겨 낼 정도로 젊기 때문은 아니었다.

분명 무술가답게 몸을 잘 관리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호영의 공격을 막아 낸 것은 육체의 내구도 때문이 아닌, ‘요령’ 덕분이었다.

공격을 피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는 요령, 박선후에게는 바로 그 요령이 있었다.

‘질 것 같지는 않지만 쉽게 이길 것 같지도 않네.’

그는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며 장기전을 예상하였다.

센추리에서 초고수라 불리는 그가 50대 중년 사내를 상대로 장기전을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호영의 이 같은 예상은 정확히 적중하였다.

파바박!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는 두 사람.

호영은 맹렬했고, 박선후는 표홀했다.

아니, 박선후의 경우는 표홀하다는 설명으론 부족하게 느껴졌다.

유연하다고 해야 될까?

마치 호영의 움직임을 모조리 읽기라도 하는 것처럼 최소한의 동작으로 호영의 공격을 피해 냈다.

아까처럼 우연하게 맞는 경우도 이제는 사라진 것이다.

‘만약 이분이 전성기의 육체를 가졌다면 나는 질 수밖에 없었을 거다!’

호영은 경악했다.

중년 나이가 무색할 만큼 실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정도로 자신의 움직임을 꿰뚫어 보다니.

준기나 김성근처럼 S랭크의 자질을 가진 이들을 상대할 때도 자신의 공격 패턴이 읽힌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연륜으로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었다.

실전 경험이 수십 년이나 되었기에 공격 패턴이야 대결을 하는 와중에도 수시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선후는 달랐다.

공격 패턴을 아무리 바꿔 봐도 마치 미래를 엿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호영의 공격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 냈다.

그나마 장기전이 되면서 체력이 떨어졌는지 동작이 점점 둔해졌지만 애초에 호영을 상대로 장기전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호영이 속으로 했던 생각처럼 박선후가 전성기 시절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면 호영뿐만이 아니라 대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초고수들도 박선후를 어쩌지 못했으리라.

“확실히 대단한 실력이군요.”

그때 박선후가 말문을 열었다.

호영은 흠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버님께서도 무척이나 대단하십니다.”

“아버님이라······. 나는 그럼 사위라고 불러야 하나요?”

“편한 대로 불러 주십시오.”

한번 겨루고 나서야 호칭을 정리하는 박선후였다.

“아직은 두 사람이 결혼할지 모르니 사위라고 부르는 것은 나중에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지금은 그냥 송 사장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어요.”

“예, 그렇게 하십시오.”

“그런데, 송 사장은 센추리에서 가장 강하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예,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강합니다.”

박선후의 질문에 호영은 자신감 있는 어조로 답했다.

실제로 따져 보면 준기와 우열을 가릴 수 없겠지만 공식적으로는 그가 최고의 실력을 가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기를 잘 다루나 보군요. 몸을 다루는 것은 조금 미숙하니.”

“······.”

몸을 다루는 것이 미숙하다는 말에 호영은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박선후의 실력을 보았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몸을 다루는 실력은 확실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다음에는 센추리에서도 한번 붙어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바쁘다고 들었는데, 정말 괜찮아요?”

“아버님과의 대련은 저에게도 유익하니 오히려 제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경선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오버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박선후와의 대련은 호영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아직 내공을 다루는 실력이 어떤지는 보지 못했지만 몸을 다루는 그 요령만으로도 호영으로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좋군요. 오늘이나 내일 한번 센추리에서 겨뤄 봅시다.”

박선후는 링에서 내려가며 그렇게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송 사장도 내려오세요.”

“아, 예.”

호영이 대답하며 링에서 내려오니 경선이 달려와서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어요?”

“경선아, 일방적으로 당한 건 난데 왜, 송 사장만 걱정하는 것이냐?”

박선후가 심기 불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니 경선이 박선후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답했다.

“잘 피하던데, 뭘. 애초에 아빠가 대련을 하자고 했던 거잖아.”

“······쯧, 딸 열심히 키워 봤자 소용없다더니, 내 꼴이 딱 그 짝이구나.”

“지금 그 이야기가 왜 나와? 벌써 출가외인 취급하려는 거야?”

“어차피 결혼할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며 호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원래 경선의 가족 분위기는 가부장적이라 가장의 권위가 절대적이라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예외인 것 같았다.

‘아버님이 참 특이한 분이시네. 다짜고짜 대련을 신청할 때부터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실력까지 터무니없으시다니, 정말 어떤 과거를 가지셨는지 궁금할 정도야.’

어쨌든 미래의 장인어른, 박선후와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북해도

“여자 친구분의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센추리에 접속하니 충구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호영은 그런 충구의 물음에 콧등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글쎄, 어떤 분이라고 확실하게 말하기는 힘드네. 워낙에 범상치 않은 분이셔서.”

“그렇습니까?”

“무도가신데,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계셨어. 만약 젊을 육체를 가지고 계셨다면 나도 감당할 수 없었을 정도야.”

“호오, 그 정도입니까? 엄청나군요. 그런데 그분은 센추리를 하십니까?”

“초보자의 섬에서 활동하고 계시다는데, 정확히 어떤 지역에서 활동하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실력이 상당하다면 대한 길드에서 활동하는 게 좋을 텐데 말입니다.”

두 사람은 잠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본격적으로 일본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로 전쟁에 동원될 물자나 병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호영은 이 두 가지에 대해 우려의 기색을 드러냈다.

“나는 수송이 걱정이다. 아국의 해군력으로 물자와 병력을 원활하게 수송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야.”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북해도를 침공하기 위해서는 수송선이 필요하였다. 바다를 건너야 하는 까닭이었다.

이 수송선에 관해 충구는 나름 자신감이 있었는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보다 훨씬 작은 선박을 사용하는 일본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아국을 침략하였으니 수송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는 전쟁도 아니니 말입니다.”

“내가 들은 이야기랑 다른데? 내가 듣기로 제나라는 몰라도 일본에 배를 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했어.”

“흠, 이웃 국가에 배를 보내는 게 어렵다는 말씀이십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하는 충구를 보고 호영이 말했다.

“아무래도 해군 관련자를 불러들여야겠군.”

충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해군에 대한 정보가 생각보다 부실하다는 것을 파악한 호영은 수송선의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해군의 총책임자를 왕궁으로 불러들였다.

“현재로썬 최대 만 명까지 수송하는 게 가능합니다.”

“만 명이라······.”

3회 차에는 강바다라는 이름의 아바타를 사용했고, 4회 차부터는 강파도라는 이름의 아바타를 사용하고 있는 해군 총사령관의 말에 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하구나. 어차피 이번 원정군은 4천 정도에 불과하니까.”

애초에 호영은 이번 전쟁에서 1만 이상의 병력을 동원할 생각이 없었다. 만주가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일본의 역공도 경계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더군다나 중국을 주로 약탈하는 왜구들이 갑자기 한반도를 노리게 될 수도 있었으니 원정군의 규모는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4천 정도라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다만, 유의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유의할 것? 그게 뭐지?”

“수송 병력이 북해도에 도착할 때까지 병력 손실이 적지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병력 손실이 적지 않을 거라고? 일본의 해군 전력 때문에 그런가?”

아무리 비밀리에 원정을 준비한다고 해도 수송 함대가 출발할 때가 되면 일본도 대한국의 침략 소식을 알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한국의 침략 소식을 알게 된다면 당연히 해군을 동원하여 방해하려 들 터였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해상에서 막는 게 훨씬 이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호영은 일본군의 해군 전력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일단, 수십 개의 세력으로 나뉜 일본이 대한국의 단일된 해군 전력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3회 차에서 4회 차가 될 때까지 대한국의 해군은 크게 발전한 상태였다.

함포만 없을 뿐이지, 조선의 판옥선과 비슷한 성능을 가진 함선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3회 차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에 바다에서의 싸움은 대한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해군 전력보다는 바다 그 자체가 문제입니다.”

“그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 비전투 손실이 일어난다는 말인가?”

호영은 황당하였다.

어디 동남아나 미국을 가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이웃 나라로 가는 것인데 비전투 손실이 발생한다니 황당하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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