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
“엄청나군요. 이런 창술이 있을 줄이야.”
황보관이 돌연 검을 내려놓더니 감탄하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김성근도 창을 내려놓고는 자부심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국왕 전하께서 만드신 창법이다.”
“헉, NPC가 만든 게 아니었나요?”
“1회 차부터 사용하셨던 무공이야. NPC가 만들었을 리는 없잖아? 뭐, 믿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말이야.”
갑자기 대결을 멈춘 두 사람은 왠지 모르게 친밀함이 느껴지는 분위기를 하고서 대화를 나누었다.
대결을 하는 와중에 서로 친해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
구경꾼들은 대결이 어정쩡하게 끝났다는 생각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차한열은 기자로서의 직분에 충실하려 하는지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솔직히 믿기 어려운 일이기는 한데, 그래도 궁금하기는 하군요, 국왕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너도 보게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존경할 가치가 있는 분이라는 것을.”
“저로서는 아쉬울 따름이네요. 꼭 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왜? 안 보고 갈 생각인가?”
“제가 졌잖아요. 패자로서 어찌 대한국의 국왕을 볼 수 있겠어요?”
황보관이 졌다고?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차한열은 희열에 찬 얼굴을 하였다.
‘김성근이 결국엔 이겼구나!’
대한국의 자랑스러운 승리였다.
차한열은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두 사람의 대화를 마저 들었다.
“미안하지만 너는 국왕 전하를 보게 될 수밖에 없어.”
“네? 왜요?”
“국왕 전하께서 너를 잡아 오라 하셨으니까.”
“······그렇게 되는 건가요?”
“괜히 서로 피곤하게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고. 얌전히만 잡혀 준다면 밧줄은 쓰지 않을게.”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야.”
“······하아, 알겠어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니, 어쩔 수 없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치열한 대결을 나누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운 대화였다.
‘어떤 대결을 나누었는지 궁금하네. 카메라만 있었으면 다 잡는 건데······.’
아쉬웠으나 차한열로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혀를 차며 친위 기사단에게 포위당한 채 왕궁으로 연행되는 황보관의 뒷모습을 아련히 바라보았다.
* * *
“김성근 친위대장이 소동을 일으켰던 중국 유저, 황보관을 포획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지금 친위대장이 직접 황보관이라는 유저를 왕궁으로 끌고 오고 있습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날아온 희소식에 호영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겼구나! 김성근이 이겼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다.
그가 기억하는 황보 세가의 유저는 S랭크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천재였다.
세계 정상급의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김성근 역시 S랭크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아직 상성에 맞는 무공을 찾지 못했다는 맹점을 가지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김성근이 불리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성근은 호영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결국 승리를 따냈다. 호영으로선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를 이곳으로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대전으로 일단의 무리가 들어섰다. 갑옷을 입은 무리였는데, 바로 친위대 장병들이었다.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추우웅!”
경례하는 친위대원들을 보며 호영은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친위대원들이 양옆으로 물러나더니 사내 한 명을 중앙으로 끌고 왔다.
“이자가 황보관이라는 유저인가?”
“예, 맞습니다.”
호영의 물음에 대답한 사람은 김성근이었다.
“실력은 어떻던가?”
“B+로 저와 비슷한 실력이었습니다.”
“그래?”
김성근과 비슷한 실력이었다니.
호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운이 좋았던 것 같았다.
“무인이시면서 너무 겁이 많으신 거 아닙니까!”
그때 친위대원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황보관이 호영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네놈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떠드느냐!”
“예를 갖추어라!”
황보관의 돌발 행동에 친위대원들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예를 어긴 것에 대해 응징하려는 것이다.
“그만.”
호영은 친위대원들의 행동을 말려 세우고는 황보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겁이 없는 것인지, 황보관은 빛나는 눈빛으로 호영을 직시하고 있었다.
확실히 예사로운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하기야 S랭크의 자질을 가진 사람인데 평범한 인물일 리는 없지.’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는 황보관을 향해 말했다.
“나에게 겁이 많다고 했나?”
“예! 겁쟁이가 아니라면 저와 단둘이 만났겠지요.”
“그러다 네놈이 헛짓거리를 한다면?”
“그러니 겁이 많다는 것입니다. 무인이라 자부하신다면 제가 무슨 짓거리를 하든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스스로의 무위에 자신감이 없지 않다면 말입니다!”
그것은 도발이었다. 감히 겁도 없이 대한국의 최고 권력자를 상대로 도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놈이구나.”
하지만 호영은 흥분하지 않고서 그저 웃음만 지었다.
친위대원들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여 당장이라도 황보관을 쥐어 팰 것 같았지만 호영만은 아무렇지 않아 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호영이 황보관의 도발에 응한 것은 아니었다.
“너의 말이 맞긴 하다. 무인이라면 두려워할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나는 이 나라의 왕이다. 나에게 수백만 수천만 명의 운명이 달려 있는데 어찌 함부로 행동하겠느냐?”
“······.”
“쓸데없는 도발은 그만두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이유나 말해 보아라.”
호영의 물음에 황보관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여러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저 강자에게 도전하겠다는 이유 하나로 대한국에 온 것입니다.”
“첩자가 아니라는 말이냐?”
“하!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제가 첩자라면 왜 이딴 식으로 행동하겠습니까? 쥐 죽은 듯이 숨었겠지요!”
제 딴에는 맞는 말이었다. 첩자라고 하기에는 황보관의 행동이 지나칠 정도로 요란스러웠다.
애초에 왕을 상대로 도전장을 내미는 간 큰 첩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것도 무공 수준이 B+나 되는 강자가 말이다.
“하지만 첩자가 아니더라도 죄인인 것은 분명하다. 감히 교역장에서 벗어나 온갖 소동을 일으켰지 않느냐?”
“······그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하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선처를 내려 주십시오.”
자신의 죄를 깔끔하게 인정하는 황보관의 모습에 호영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국제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당사자가 죄를 인정하였으니 뒷말이 나올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일단 감옥에 가 있어라.”
“예?”
“어떤 처벌을 내릴지는 추후에 결정할 것이니 감옥에서 대기하라는 말이다.”
“······질문은 더 하지 않으십니까? 저에게 궁금한 것이 많을 텐데요.”
“그것도 나중에 물어보면 될 일이지.”
호영은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친위대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죄인을 하옥하라.”
“충!”
그렇게 감옥으로 끌려가는 처지가 된 황보관은 몸부림을 치며 외쳤다.
“끌고 가지 않아도 알아서 갈 테니 그 전에 대련 좀 해 주십시오! 국왕님과 대결하기 위해 중국에서 찾아온 것인데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아니, 진짜 이건······ 윽.”
황보관의 몸부림은 친위대원들의 억센 손에 의해 제압되었다. B+급 무인도 저렇게 사방에서 포위된 상태라면 힘을 못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 특이한 놈이로군. 저렇게까지 호승심이 강하다니. 한번 붙어 보고 싶을 정도야.’
왠지 모르게 호영도 호승심이 생겨나는 기분이었다.
“전하.”
“음?”
“황보관에게 어떤 벌을 내리실 생각입니까?”
갑작스러운 김성근의 물음에 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아직 결정하지 못했는데.”
“친위대로 받아들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
“아깝지 않습니까, B+의 실력을 가졌는데.”
김성근의 말에 호영은 눈을 크게 떴다.
“중국인을 친위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냐?”
“안 되는 일입니까? 저는 솔직히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
호영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황보관을 친위대로 받아들인다니,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김성근의 말처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B+의 실력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한국에서도 호영이나 준기, 김성근, 순현, 윤수 등등 열 명 정도만이 B+의 실력을 갖고 있었다.
물론 B-급이나 B급의 강자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B와 B+의 차이는 의외로 엄청났다.
일단 검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투력에서 큰 차이를 보였고, 마나 운용 실력도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초절정의 고수는 절정의 고수 두세 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황보관 같은 B+급 인재를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찬밥 대우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생각했던 그 사람이 맞다면 황보관은 몇 년 안에 S랭크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중국처럼 인구가 많은 나라가 아니고서야 S랭크의 인재는 극히 드물 수밖에 없었다.
호영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한국의 경우 8회 차가 될 때까지 S랭크의 경지에 도달한 유저가 열 명이 채 안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만큼 희귀한 존재라는 것이다.
‘나는 수인족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면서까지 외국의 거대 세력에 대항하려 했다. 뭐, 그것은 절반의 성공으로 그쳤지만 어쨌든 외국인이라고 끌어들이지 않을 이유는 없어.’
호영은 수인족조차 아군으로 삼았다.
물론 4회 차가 되니 견인족을 제외하면 혼혈만이 남게 되었지만 어쨌든 그는 다른 종족까지 아군으로 만드는 포용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외국인이라고 가릴 이유는 없었다. 황보관처럼 재능이 엄청난 유저라면 더더욱 말이다.
“친위대장, 나 역시 황보관이라는 유저를 친위대원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그를 믿을 수 없어. 그러니 친위대장, 경이 해 줘야 할 것이 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황보관의 모든 것을 알아내. 성격, 이념, 종교, 국가관 그리고 현실의 정보까지. 만약 정보를 다 알아낸다면 그 이후에는 대한국의 사람으로 만들어 봐. 아예 귀화할 수 있게끔 말이야.”
호영의 말에 김성근은 잠시 입을 꾹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명을 거부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지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행동력이 빠른 김성근답게 고민하는 시간은 짧았다.
“알겠습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해 보겠습니다.”
김성근의 대답에 호영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았다.
* * *
“억! 사장님? 갑자기 웬 양복이십니까?”
충구가 정복 전쟁의 준비 과정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호영의 집무실을 찾아왔다가 양복을 입은 호영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 하였다.
회사에 출근할 때도 언제나 편한 복장을 고수하는 호영이다 보니 웬만해서는 양복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끔 중요한 회의나 격식 있는 자리에 초대받았을 때만 양복을 입었는데, 충구가 알기로 오늘 그런 스케줄은 없었다.
“오늘 중요한 만남이 있다고 말했잖아.”
“중요한 만남이라면······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