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
#예비 장인어른
차한열은 희열에 차 있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크으, 대왕에게 도전장을 내밀다니. 이거 엄청 흥미진진하잖아.”
그는 2회 차에 센추리를 처음 시작한 유저였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으로 시작한 게임이었다.
신문사의 편집장으로서 센추리가 어떤 게임인지 알기 위해 호기심으로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취미가 되더니, 이제는 인생의 일부처럼 변하였다.
하루라도 접속을 하지 않으면 거북함을 느낄 정도였다.
다만 그는 다른 사람들이 주로 흥미를 느끼는 전쟁이나 모험, 주색잡기 등에는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3회 차 때 조합의 모험가가 되었으나 그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모험이 아닌, 다른 것이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 정도의 사건이라면 무조건 역사에 기록해야겠어! 흐흐!’
그는 바로, 역사의 산증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매료되었다.
기자 출신답게 자신의 글이 역사서에 기록되거나 널리 알려지는 것에 황홀감을 느끼는 것이다.
아무튼, 센추리에서도 기자로서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 차한열은 중국에서 온 ‘황보관’이라는 인물을 취재하기 위해 움직였다.
다행히도 황보관은 SNS에 도전장을 내밀고서 자신의 위치를 공개했기 때문에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중국에서 오신 분이십니까?”
연예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 있는 중국 복색의 유저에게 다가간 차한열은 중국어로 말했다.
그러자 황보관으로 보이는 중국 유저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가 바로 중국에서 온 황보관입니다.”
“한국말을 아주 잘하시는군요. 저는 한경오 신문사에서 나온 차한열 편집장이라고 합니다.”
“기자라······. 저를 취재하기 위해 찾아오신 것입니까?”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질문을 던지는 황보관의 모습은 마치 개구쟁이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생긴 것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그렇고, 뭔가 강해 보이지는 않은데······.’
차한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연 이 중국 유저가 자신이 들은 그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의심을 털어 내고는 눈앞의 중국 유저에게 질문을 던졌다.
“황보관 님이 대한국에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떤 유저들은 황보관 님이 제나라의 첩자라고 하던데.”
“첩자요? 하하, 저는 그저 대한국의 국왕이라는 사람과 붙어 보고 싶어서 대한국을 찾은 사람입니다. 제나라가 한때 저의 나라였던 것은 사실이나 지금은 전혀 아닙니다. 뭐, 믿기 어려우실 수도 있지만 말이죠.”
대한국에서 온갖 소동을 일으킨 범죄자와 대화하는 것치고 지극히 평범하였다.
마치 내한한 외국의 연예인과 인터뷰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주변을 지나가던 유저들도 흥미진진한 눈으로 황보관의 인터뷰를 지켜보았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왜 하필 대한국의 국왕 전하를 노리신 것입니까? 세상에 강자들은 많이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일단 제나라에서 가까운 나라라는 점이 매력적이었고, 무엇보다 신이라고 불리는 무인은 거의 없지 않나요? 얼마나 강하기에 신으로까지 불리는 것인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이렇게 외국으로 올 정도면 무공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혹시 본인의 경지에 대해 얘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뭐, 숨길 필요는 없겠죠. 저는 중원에서 ‘검기 상인’이라 불리는 경지, 즉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무난하게 인터뷰가 진행되던 도중, 황보관의 한마디에 구경꾼들 사이에서 소란이 생겨났다.
“말도 안 돼! 초절정이라니! 중국에서 초절정이면 B급에서도 최상위권이라는 거잖아.”
“허세겠지. B+급의 고수가 다른 나라에 올 이유가 어디에 있어? 어떤 나라든 특권층이 될 수 있는 실력인데.”
“애초에 그 나라에서 B+급의 고수를 유출시킬 일이 없지 않을까? 솔직히 B+급이면 핵무기 수준 아니냐?”
소란이 터진 이유는 황보관의 실력에 대한 의심 때문이었다.
그가 말한 초절정의 경지는 대한국에서, 아니 세계 전체를 살펴봐도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무공의 종주국이라 불리는 중국에서도 기껏해 봐야 백 명 정도 있을까?
더군다나 이 백 명이라는 숫자도 대부분 ‘무림’이라는 곳에 소속되어 있었고, 각국에 소속되어 있는 초절정의 고수는 기껏해 봐야 한두 명에 불과하였다.
강대국으로서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대한국조차 B+급 고수의 숫자는 열 명이 안 될 정도였다.
그만큼 B+급 고수는 희귀하다는 것이다.
‘정말일까? 만약 사실이라면 재미있는 승부가 되겠는데?’
차한열도 황보관의 말을 100퍼센트 신뢰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일말의 기대를 가져 보기로 하였다.
초절정 정도 되는 실력자여야만 앞으로의 일이 재미있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그닥! 다그닥!
그때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한두 마리가 아닌, 족히 수백 마리의 군마가 달려올 때 나는 소리였다.
“친위 기사단이다!”
“헐, 친위 기사단이 중국 유저의 도전에 응한 거야? 이거 대박인데?”
구경꾼들의 소란에 차한열은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그가 기다리던 승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저 끝마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초절정들의 대결을 볼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아쉬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네놈이냐?”
친위 기사단의 대장으로 보이는 거한이 말에서 내리며 그렇게 말했다.
‘마치 삼국지의 장비를 보는 것 같다.’
거한은 삼국지에서 만인적이라 불리는 장비와 닮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만인적’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친위대장 김성근.
3회 차에는 돌격대장으로서 활약했던 그 김성근이 바로 눈앞의 거한이었다.
“네놈이냐고, 제나라에서 온 짱개 놈이.”
“하하하! 짱개는 아니고 중국 유저입니다. 황보관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분위기를 읽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두려움이 없는 것인지 황보관이라는 중국 유저는 천연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김성근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는데, 안 그래도 무서운 외모가 한층 더 험상궂게 변하였다.
건드리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우리나라를 아주 우습게 보는 모양이네? 국왕 전하에게 도전장을 내밀지 않나, 온갖 소동을 일으키지 않나.”
“대한국을 우습게 본다기보다는 제 실력을 믿는 거지요.”
“그래? 그럼 한번 네놈의 실력을 봐야겠구나.”
“저는 대한국의 왕에게 도전하였는데요?”
“흥! 너 같은 놈이 국왕 전하와 대결을 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잔말하지 말고 덤벼라. 덤비지 않으면 그냥 죽여 버릴 것이다.”
“어쩔 수 없군요. 당신을 쓰러뜨리고 왕에게 요구하는 수밖에.”
“미친놈, 죽여 주마.”
마침내 두 사람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과연 누가 이길까?’
차한열이 흥미진진한 눈빛을 보낼 때, 김성근이 멧돼지처럼 달려들더니 황보관을 향해 대도를 휘둘렀다.
부우웅! 부우웅!
하지만 황보관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김성근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 냈다. 생긴 것처럼 민첩한 것 같았다.
“꽤나 하는구나.”
“그쪽은 생각보다 별론데요? 그렇게 느려서야 저를 어떻게 잡으시려고요?”
“이 새끼가.”
거칠게 콧김을 뿜어내고는 김성근이 재차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마나를 일으켰는지 황보관만큼이나 날렵하였다.
채챙!
황보관은 더 이상 피할 수만은 없었던지 검을 들어 김성근의 맹공격을 막아 냈다.
그렇게 수차례 검과 도가 부딪쳤다.
‘엄청나다. 이게 바로 B급 고수들의 싸움인가? 옛날 홍콩 영화를 보는 것 같군.’
무공을 익히지 못한 차한열의 시각에서는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치열한 싸움이었다.
‘용호상박’이라는 단어가 바로 이럴 때 쓰인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내막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두 사람의 대결을 팽팽하다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실력이긴 하구나.”
“하하하하, 그쪽도 실력이 나쁘지는 않군요. 재미는 있었습니다. 뭐, 저를 상대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말이죠.”
“네 말대로 지금은 내가 부족하긴 한 것 같다.”
갑자기 싸움을 멈추고는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며 차한열은 흠칫하였다.
‘지금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는 거지? 설마 저 김성근이 외국인에게 밀리고 있다는 건가? 이럴 수가!’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무력으로는 대한국에서 거의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사람이 바로 김성근이었다.
아니, 대한국 안에서가 아니라 한국인 전체를 따져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그만큼 김성근의 실력에 대한 명성은 엄청났다.
당연하겠지만 김성근의 패배는 그 혼자만의 패배가 아니었다. 이것은 나라 간의 자존심을 건 일대 승부.
만약 김성근이 진다면 마치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가 대항전에서 진 것과 비슷한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대한국의 위신이 크게 실추된다는 말이었다.
‘김성근, 네가 중국인에게 지면 안 되지!’
두 사람의 대결을 그저 흥미롭게만 지켜보던 차한열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마음속으로 김성근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김성근과 어떠한 친분 관계도 없었지만 같은 대한국의 사람으로서 김성근의 승리를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인정해 주시니, 이야기가 한결 편해지겠군요.”
“아직 이야기할 때는 아니지. 승부가 끝난 것은 아니잖아?”
“끝까지 싸우겠다는 뜻입니까? 이미 우열은 가려졌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이미 우열이 가려졌다고?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내가 부족하다고 했던 것은 대도를 쓸 때의 나를 말하는 거야.”
“예?”
그 말에 황보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성근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차한열은 김성근이 대도를 내던지고 창을 잡는 순간 눈을 크게 뜨며 경악했다.
‘맞아! 김성근의 주 무기는 창이었어!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김성근뿐만이 아니라 대한국에서 무위로 이름을 떨치는 이들 대부분이 창을 주 무기로 사용하였다.
‘와, 그러면 주 무기도 아닌데 그렇게 맹위를 떨친 거였어? 엄청나네?’
차한열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며 이어질 대결을 기대하였다.
“대도에 익숙해지려 하였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자, 이제부터 진짜 승부다. 덤벼라!”
“창이 주 무기라는 거군요. 흠, 그렇다면 저도 본격적으로 움직여 보겠습니다!”
공수가 바뀌었다.
황보관이 먼저 공격을 시도한 것이다.
챙, 챙.
일반인의 눈으로는 따라잡기도 어려운 쾌검.
아니, 무인이라 해도 최소 C급이 아닌 이상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공격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차한열의 눈으로도 황보관의 검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불빛만이 간간이 보일 따름이었다.
‘누가 이기고 있는 거지? 겉으로 봐서는 비슷해 보이는데.’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차한열은 초조한 눈으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봤다.
“검기다! 검기야!”
“와, 진짜 초절정이었네. 고수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때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무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탄성을 내지른 것인데 그들은 하나같이 ‘검기’를 외치고 있었다.
김성근과 황보관, 이 두 사람이 검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와, 검기라니. 나도 보고 싶다.’
불빛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