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
“히유. 위험했네.”
가까스로 추격에서 벗어난 황보관은 이내 싱긋 웃었다.
이렇게 대응 속도가 빠르다니, 생각했던 것보다 수준 높은 나라인 것 같았다.
‘대연이라는 자의 무공도 소문처럼 대단한 수준이었으면 좋겠군.’
과연 대한국의 왕은 한국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화경 수준에 이르렀을까?
아니면 중국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초절정에 불과한 수준일까?
황보관은 대한국의 왕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 * *
호영이 센추리에 접속하니 마침 원재가 알현을 청하였다. 그의 접속을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무슨 일이냐?”
“송구하옵니다, 전하.”
무슨 일로 찾아왔냐고 묻자 원재가 느닷없이 사과하였다.
호영은 그의 사과를 듣고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직도 잡지 못한 것이냐?”
“그렇사옵니다.”
“관아의 창고까지 털렸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잡지 못했다니. 국가 망신도 이런 망신이 또 있을까?”
그가 원재에게 화낸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원재는 유능한 데다가 성실성까지 갖춘 인재 중의 인재였다.
언제나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 주었기에 호영으로선 원재에게 화낼 일이 있을 턱이 없었다.
하지만 원재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일까?
최근에 보여 준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고작 한 명, 단 한 명의 무인을 잡아들이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되었다. 그자의 무공이 범상치 않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 고수를 쫓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호영은 애써 분노를 가라앉히며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현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사태를 해결하지 못했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따지고 보면 화를 낼 만한 일도 아니었다.
상대의 무공 수준은 B급을 확실히 넘어선 것으로 판단되었고 수준 높은 경공까지 익히고 있었다.
더군다나 언어 실력이 한국인과 구분이 안 될 정도라는데, 어찌나 영악한지 용병이 되었다가, 모험가가 되었다가 하면서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이러니 잡아들이는 게 쉽지가 않았다. 유저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일일이 확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친위대를 보내야겠어.”
“······하나 이 같은 일에 친위대를 보낸다면 전하의 권위에 손상이 갈 것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친위대는 왕권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니만큼 함부로 움직여서는 아니 되었다.
반란군이나 강력한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나 움직여야지, 다른 일로 움직인다면 소 잡는 칼로 닭 잡는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호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자를 계속 놔두는 것보다 내 권위에 손상이 가는 일은 없을 거다.”
중국 유저가 계속해서 활개 치게 놔둔다면 중앙의 지배력이나 호영의 통치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루빨리 중국 유저를 잡아들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호영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전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알겠습니다. 친위대장을 곧바로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원재가 그렇게 말하고서 물러났는데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7척 거한이 호영의 침소로 찾아왔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그 거한은 다름 아닌, 친위대장 김성근이었다.
“경이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혹, 짱개 놈을 처리하는 일입니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지금 그 짱개 놈 때문에 친위대 전체가 소란스럽습니다. SNS로 도전장을 날렸다는데,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도전장이라고?”
호영은 눈썹을 찡긋거렸다. 그러자 김성근이 콧김을 뿜어내며 말했다.
“황보관이라는 중국 유저가 인터넷에서 전하에게 비무를 신청하였습니다. 자신은 대한국에 와 있으니 대한국의 국왕은 용기가 있으면 붙어 보자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인이 누구인지를 가려 보자고 말입니다.”
“허.”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짓던 호영은 이내 ‘황보관’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이 황보라면 당연히 황보 세가의 사람이라는 건데, 설마 내가 아는 그 사람인가?’
진지한 얼굴이 된 호영은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활동 영역이 경기도를 넘어선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활동 범위가 협소하였던 호영은 외국의 역사나 주요 인물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중국에 관해서는 꽤나 기억하고 있는 것이 많았다.
북한이 중국의 식민지가 되고 중국 해적들이 주기적으로 쳐들어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황보 세가라는 중국의 무림 세가는 호영의 기억 속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단순히 무협지에서 자주 나오는 이름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황보 세가의 무공이 중국에서 수위를 다투는 수준이었던 탓이다.
무림 십절을 꾸준히 배출한 것만 봐도 그들의 힘을 알 수 있었다. 검법으로는 아마 중국 전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전하, 소장을 보내 주십시오. 그 오만한 짱개 놈을 박살 내고 오겠습니다.”
“······흠.”
호영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고민하는 얼굴을 하였다.
원래 그는 김성근을 보내려고 마음먹었지만 상대가 황보 세가라는 사실에 고민이 되었다. 어쩌면 김성근이 중국인에게 패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준기가 있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정말 아쉽네.’
황보 세가가 아니라 중국에서 화경이라 불리는 노고수들이 온다고 해도 준기가 나선다면 두려울 게 없었다.
호영의 실력을 넘어선 시점에서 준기는 이미 천하제일 고수라고 칭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준기는 선조의 유적을 찾으러 간 상태였다. 이제 와서 아쉬워해 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내가 가는 것은 어떨까? 명성이야 깎이겠지만 그래도 지는 것보단 나을 텐데.’
속으로 그 같은 고민을 하던 호영은 김성근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주 잠시지만 김성근의 눈에서 강렬한 광채 같은 것을 본 것 같았다.
“좋다. 황보관이라는 중국 유저를 처리하는 것은 경에게 맡기겠다.”
“충. 전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믿겠다.”
호영은 결국 김성근을 믿어 보기로 하였다.
‘만에 하나 황보관이라는 유저가 나의 기억 속에 있는 황보 세가의 고수라고 해도 김성근 역시 재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천재 중의 천재야. 나에게 하사받은 무공도 있으니 질 이유는 없어.’
* * *
중국 유저에 대해서는 김성근에게 맡기기로 결정한 호영은 곧장 대전으로 향했다.
“내년이나 내후년이면 몰라도 올해 원정에 나가는 것은 무리수입니다. 원정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지 않습니까?”
“거창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요동국과의 전쟁에서도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압도적으로 승리하였던 우리나라입니다.”
“그건 점령전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사분오열되어 있는 일본 따위, 점령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동원한 총병력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예비군까지 포함하면 40만이 넘습니다. 그 40만도 일본의 이인자였던 도쿠가와 가문의 병력은 제외된 병력입니다. 만약 도쿠가와의 병력까지 포함한다면 50만도 넘었을 겁니다!”
“여기서 임진왜란이 왜 나옵니까? 이곳은 조선 시대가 아니라 센추리입니다!”
“예를 들기에 적합하여 들었을 뿐입니다. 아마 실제로 따져 봐도 군사력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즉, 일본에게는 50만이 넘는 군사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대한국의 무공이 아무리 대단해도 50만이 넘는 일본군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내전으로 단련된 일본군을?”
“일본이 하나가 된다면 이기기 어렵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일본은 분열되어 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북해도에 주둔해 있는 일본의 병력은 2천 정도에 불과합니다.”
호영이 대전에 도착하니 격렬한 논쟁이 한창이었다.
최근 들어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 진출에 관한 논쟁이었다.
“모두 정숙해 주시길 바랍니다. 전하께서 입장하셨습니다.”원재가 그렇게 말하니 소란스럽던 대전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직도 논쟁이 끝나지 않은 건가?”
“송구하옵니다, 전하.”
호영이 물으니 충구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였다. 그러자 다른 대신들도 고개를 숙였다.
“대군사, 경의 생각은 여전히 북해도로 진출하는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문관들이 전부 반대하는데도?”
여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대한국에서의 매파는 무관이었고 비둘기파는 문관들이었다. 예외적으로 문관에 가까운 충구가 전쟁을 외쳤지만 말이다.
“소신도 문관들의 뜻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기에 북해도 점령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왜 적기라고 생각하지?”
“추수가 끝났고, 바다는 잠잠하며 일본은 내전의 소용돌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NPC와 유저 간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일본을 공격하기에 지금보다 적절한 시점은 없을 것입니다.”
충구의 답변에 호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번에는 재무 장관, 동호에게 물었다.
“재무 장관, 경은 여전히 북해도 점령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예, 그렇습니다. 민심이 비록 안정되었다고는 하나, 전국적인 내전이 벌어진 것이 불과 몇 달 전입니다. 거기에 비축된 식량도 얼마 없고, 병사들의 사기도 최악에 가깝습니다. 차라리 지금은 일본 내부에 우호 세력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 같은 답변에 호영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심하였다.
둘의 말은 모두 일리가 있었다.
지금은 일본도, 한국도 전력을 기울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은 전국시대가 한창 벌어지고 있어서 그랬고, 한국은 불과 얼마 전에 내전을 치렀기에 그러했다.
의견이 나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충구는 상대가 약하니까 치자는 것이었고, 동호는 우리가 약하니까 치지 말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치가 먼저냐 외정이 먼저냐의 다툼이었다.
‘이들을 탓할 게 아니야. 이건 애초에 내가 결정해야 될 문제였어.’
탁탁.
호영은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북해도로 출정하겠다.”
그의 결정에 희비가 엇갈렸다.
무관들은 환호했고, 문관들은 탄식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호영의 권위는 절대적이었고, 그가 결정을 내린 이상 설령 잘못된 결정이라 해도 물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재무 장관의 의견대로 일본 내부에 아군을 만드는 작업도 병행한다. 작업 방식은 요령성에서 했던 것과 비슷하게 하면 될 것이다.”
“NPC들을 밀어주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우리가 일본을 침공하면 사분오열되어 있던 일본인들이 힘을 합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니, NPC라도 아군으로 만들어야지 않겠어?”
한국의 침략을 받는다면 아무리 수백 년간 끊임없이 동족상잔을 일으켰던 일본인들이라 해도 힘을 하나로 합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한국에게 열등감과 경쟁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한국의 입장에서는 일본을 최대한 분열시킬 필요가 있었다.
유저가 아닌 NPC들이라면 동맹 대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할 것이리라.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