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95화 (195/345)

# 195

“왜?”

“아버지도 센추리를 시작하셨거든요. 센추리를 하면서 무공이라는 것에 흥미를 느끼신 것 같은데······ 사장님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강하실지 궁금해하셔요.”

“······듣던 대로 아버님께서 무술을 많이 좋아하시나 보네.”

“예.”

호영은 속으로 난감해하였지만 티는 내지 않고서 말했다.

“일단 센추리에서 어떻게 될지 보고서 결정할게. 아버님께 잘 말씀드려 줘.”

“알았어요. 어차피 급한 거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자 친구의 아버지를 보는 일인데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호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다음 주라고 했으니 그때 생각해 볼 문제였다.

* * *

“공자님, 정말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으실 건가요?”

시비, 소영의 말에 황보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거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갑자기 사직하고는 가문에도 돌아가지 않으시겠다니. 문주께서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무례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시비에 불과한 그녀가 무려 공자의 신분을 가진 황보관에게 힐난조로 따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시비와 공자이기 이전에 마치 오누이처럼 친밀한 관계였다. 두 사람 사이에서 이 정도는 딱히 무례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나를 홀대하는 곳에서 계속 있을 필요는 없잖아?”

“검기상인의 경지에 오르셨다면서요. 경지를 밝히면 누가 공자님을 홀대할 수 있겠어요? 황보 세가에서도 지금껏 단 두 명밖에 오르지 못한 경지인데······.”

그녀의 말에 황보관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

“밝혔다간 홀대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나를 어떻게 해서든 죽이려 들었을걸.”

“······공자님을 죽이다니요?”

“방계 따위가 문주보다도 훨씬 높은 경지에 이르렀는데 어찌 가만히 둘 수 있겠어? 그렇다고 방계를 문주로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야, 후후.”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 황보관이었지만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씁쓸하게 느껴졌다.

“하, 하지만······.”

“관군에 남아 있었어도 결과는 비슷했을 거야. 곧 대대적인 숙군이 진행될 텐데 거기서 내가 살아남을 확률은 무척이나 적거든.”

“공자님을 숙청하다니요? 황보 세가의 혈족을 누가······?”

비록 산둥의 지배자라 불렸던 예전과 달리 세가 많이 약해진 황보 세가라지만 어쨌든 제나라 오대 세가 중 하나였기에 황제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군부에서 황보관을 숙청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전생의 원한이 있거든.”

“전생요?”

“뭐, 그런 게 있어.”

황보관의 대답에 소영은 침울한 얼굴을 하였다. 원래는 서로 비밀이 없는 사이였는데 몇 개월 전부터 갑자기 비밀이 많아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고는 황보관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공자님은 앞으로 무엇을 하실 생각이세요?”

“이 나라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다른 나라로 가야겠지.”

“어디로요?”

“대한국!”

“예······?”

예상치 못한 황보관의 말에 소영은 황당한 얼굴을 하였다.

난데없이 대한국이라니? 그곳은 동쪽 오랑캐, 즉 동이의 나라이지 않은가?

“왜 하필 대한국으로 가시는지요?”

제나라 주변에만 여섯 개의 나라가 있었다. 비록 그들 대부분이 제나라와는 적대 관계에 놓여 있었지만, 그래도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나라들이었다.

만약 이민을 가야겠다면 당연히 주변에 있는 나라로 가는 것이 좋았다. 실제로 일곱 나라는 서로 간에 왕래가 많았고 말이다.

하지만 대한국이라 불리는 반도의 국가는 달랐다. 올해부터 갑자기 양국 간의 교역이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였다.

왜 하필 대한국에 간다는 것일까?

소영의 의문에 황보관은 천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곳에 엄청난 고수가 있대. 검기상인의 경지를 넘어선 고수가.”

“······화경요? 검기상인의 경지를 넘어섰다면 초절정을 넘어섰다는 뜻이잖아요.”

“아마도?”

“하지만 오나라나 초나라에도 화경의 경지에 이른 고수들이 존재한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배분이 너무 높으신 분들이잖아? 나랑 비무를 해 줄 리가 없지.”

무림인들은 무척이나 폐쇄적이었다. 비무 대회 같은 것은 옛날에나 있었던 일이고 이제 다른 나라는커녕 같은 나라 안에서도 무공을 교류하지 않게 되었다.

황보관이 한반도로 가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대한국의 왕, 대연!

한국 제일의 무인이자 초절정 이상의 무인이라고 알려진 대연과 대련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비, 비무라고요? 공자님! 너무 위험한 일이에요!”

“괜찮아. 그 정도 수준의 무인과 대련을 할 수 있다면 약간의 위험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 물론 그자가 대련에 응해 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야.”

“공자님······.”

소영은 위험을 자초하는 그를 어떻게 해서든 말리고 싶었지만 단호한 황보관의 표정을 보고 이내 말끝을 흐렸다.

얼굴만 봐도 황보관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 * *

“드디어 도착한 건가.”

황보관은 화색을 띠며 배에서 하선하였다.

부두로 내려가니 이국적인 풍경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대한국에 도착한 것이다.

‘동양이 아니라 서양에 온 것 같네. 전부 석재로 되어 있다니.’

부두 바깥으로 나오니 조그만 교역장이 보였다. 아직은 규모가 작게만 느껴졌는데, 그래도 황보관의 눈에는 모든 게 새롭게만 느껴졌다.

“이야, 마정석이 화폐로 쓰인다더니 진짜였네?”

특히나 새롭게 느껴졌던 것은 대한국에서 쓰이는 화폐였다.

금도, 은도, 쌀이나 소금도 아닌 마정석을 화폐로 쓰다니! 중국인인 황보관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마물들을 거의 박멸시킨 중국에서는 마정석을 구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감탄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황보관은 교역장 구석에서 물약 같은 것을 파는 상인을 발견하였다.

간판에는 ‘내공 증진의 비약’이라 써져 있었는데 황보관으로서는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황보관은 곧장 상인의 앞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세요.”

강호의 무림인이 상인에게 존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황보관은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진 사람답게 직업으로 상하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공손한 태도로 상인에게 물었다.

“이건 뭐에 쓰는 겁니까?”

“이야, 한국말 잘하시네요?”

중국옷을 입고서 한국말을 하니 상인이 꽤나 놀란 눈을 하였다. 그러자 황보관은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 하하하! 제가 원래 한국을 좋아해서요. 예전부터 한국 게임이나 드라마를 많이 보고 많이 해 봤습니다.”

“그래요? 이거 참, 가상 세계에서 한국을 좋아하는 중국인을 보다니. 아, 이게 뭐냐고 물었죠? 이거는 말 그대로 내공 증진을 시켜 주는 비약이에요. 비약. 마법사 조합에서 만든 건데, 출시 된지 며칠밖에 안 지났어요.”

“영약이라는 말입니까?”

“네. 영약이긴 영약인데, 마정석을 가공해서 만든 영약이죠. 신기하지요?”

“허얼.”

상인의 말에 황보관은 탄성을 질렀다.

‘인공적으로 영약을 만드는 게 정말 가능한 이야기인가?’

실로 믿기지 않은 이야기였다.

마정석을 가공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마정석으로 영약을 만들어 내다니.

중국에서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물론 영약보다는 질이 떨어져요. 저는 무인이 아니라서 모르는데, 최하급 영약과 비슷하다던가? 그래도 조합에서 계속 연구하고 있으니 나중에는 달라질 것 같네요.”

“······설령 그렇다 해도 놀랍기 그지없네요.”

“한번 드셔 보세요. 무인이라면 앞으로 이 비약은 필수입니다, 필수.”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마정석이 없어서······.”

“뭐, 아무것도 없어요? 한국으로 상행을 왔는데 교환할 것이 하나라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말에 황보관은 자신의 봇짐에서 주섬주섬 비단을 꺼내 들었다.

“이걸로 안 되겠습니까? 중국에서 만든 비단인데.”

“에이, 비단은 우리나라에도 만들 수 있어요. 가격이 아직 세긴 한데 비약과 교환할 정도는 아니죠. 그것보다 구황작물 같은 건 없어요? 내 듣기로 중국에 감자가 들어왔다고 하던데?”

황보관은 콧등을 긁적였다. 혈혈단신으로 대한국을 찾아온 그에게 구황작물이 있을 턱이 없었다.

물론 약간의 금전이 있었지만 한눈에 봐도 그가 가진 금전으로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떡하지? 갖고 싶은데······. 그냥 가지고 도망칠까? 어차피 나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텐데.’

잠시 그 같은 고민을 하던 황보관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며 약초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게 뭡니까?”

“옥수지라고, 중국의 영초입니다.”

“오! 영초라고요? 한데 영초를 가지고 있는데 영약은 왜 구입하려는지?”

“이미 많이 먹은 거라 저에게는 효과가 없습니다.”

“아하.”

“어떻게, 이걸로 구입할 수 있겠습니까?”

상인은 흔쾌히 말했다.

“2회 차부터 센추리에서 상인을 했던 제가 처음으로 보는 영초니 교환해 드리죠. 대신 이 비약이 효과가 있다면 중국에서 홍보 좀 해 주세요. 이제 막 출시된 거라 아는 사람이 너무 없어요.”

기어코 황보관은 상인에게서 비약을 받아 냈다.

‘효과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겠는데? 만약 대한국과의 교역을 독점한다면 엄청난 이문을 얻게 될 것 같다.’

잠시 그 같은 생각을 하던 황보관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상인이 아닌 무인이었다.

‘구경은 충분히 하였으니 이제 수도로 가 볼까.’

대한국을 찾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관광하기 위함이 아닌, 한국 무인들과 대련을 하기 위함이었기에 그는 주저 없이 대한국의 수도로 향하였다.

“이곳에서 벗어나실 수 없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중국인인 그가 교역장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은 이들이 아니라면 교역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보관은 피식 웃고서 경공을 사용하였다. 무공 사용이 금지된 교역장에서 대놓고 법을 어긴 것이다.

“멈추시오!”

“죄송하지만 제가 할 일이 있는지라.”

황보관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는 줄행랑을 쳤다. 그러자 병사들이 황급히 그를 쫓았다.

물론 경공을 사용하는 황보관을 뒤쫓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병사들 중에서 무인도 섞여 있었지만 경공을 익히지 못한 듯, 둔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제법이네. 저 정도 규모의 부대에서 무림인이 열 명이나 될 줄이야. 대한국은 따로 무림이 없다더니 전부 관부에 속해 있나?’

쫓기는 상황이었지만 황보관의 표정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마치 여행이라도 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여유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경공이란 중국에서도 극소수 문파만이 사용할 수 있는 비기였다.

황보 세가처럼 나라에서 손꼽히는 문파나 무가만이 경공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황보관은 관군의 추격이 두렵지 않았다.

내공도 출중하고 체력도 충분하니 두려울 게 없었다.

“이크! 기병이잖아!”

물론 갑작스러운 기병의 등장에는 황보관도 식겁하고 말았다.

아무리 경공이 대단해도 기병의 추격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의 앞에 숲이 없었다면 대한국의 왕과 붙어 보기도 전에 어처구니없게 붙잡히고 말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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