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86화 (186/345)

# 186

‘하지만 놈은 100만의 수하를 두고 있는 자다. 놈을 죽였다간 자칫 국제 문제로까지 비화될 수 있었어.’

조선의 왕은 현실에선 그저 평범한 일반인이었지만 센추리에서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진 길드의 주인이었다.

휘하 유저 수만 무려 100만.

제아무리 게임의 수하들이라고 해도 100만의 유저를 휘하에 둔 시점에서 조선의 왕은 이미 평범한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야쿠자를 배후로 둔 노인조차 섣불리 손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현실에서 죽이는 것도 불가능하고 센추리에서 방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면······.’

노인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잠시 손잡는 수밖에.”

#평화협정

로열사의 대회의실.

로열패밀리의 간부들이 갑옷 대신 정장을 입고서 회의실에 참석해 있었다.

회의실 정면에는 마치 군대의 지휘 통제실처럼 지도 화면이 띄워져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현실의 그것과는 달라 보이는 지도였다.

센추리, 정확히는 본 게임의 지도였다.

“중앙군 총사령관이 NPC로 이루어진 경기도 반란군을 격퇴하고 안성희, 박영종을 사로잡았습니다. 물론 반란의 명분이 되어 주었던 왕제 역시 사로잡았고 말입니다.”

충구는 지도 화면에서 경기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던 부분이 지워졌다.

경기도 지역의 반군이 모두 제거되었다는 표시였다.

그 이후로 충구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연이어 가리켰다. 세 지역도 마찬가지로 빨간 색깔이 모두 지워졌다.

“사장님께서 직접 이 세 지역의 반란군을 진압하셨습니다. 반란을 주도하였던 반란군 수괴들은 안성희, 박영종처럼 생포한 상태입니다.”

“그자들의 처리는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제가 알기로 세 지역의 반군 수뇌부는 재벌이라고 들었는데요.”

3회 차에 합류한 사내 중에 한 명이 그리 묻자 충구가 답했다.

“일단 의사를 물어볼 생각입니다.”

“어떤 의사를 말입니까?”

“우리와 계속 싸울지, 아니면 투항할지에 대해서. 참고로 로테 그룹의 경우는 사장님이 이야기를 해 봤는데 전쟁밖에 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로테 그룹과는 끝까지 가는 것이군요.”

간부들은 별로 놀라지 않은 눈치였다.

이미 소식을 들은 이들도 있었고 자신감이 팽배해져 로테 그룹 정도는 우습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

“나머지 지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충구가 제주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주도의 경우는 아직 반란 진압이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로열패밀리 1군 백 명을 보내 놓았기에 곧 있으면 승전보가 들려올 것입니다.”

다음에 가리킨 곳은 강원도였다.

“강원도 같은 경우는 북방군의 기병 일부를 차출하여 반란을 진압하였습니다. 3천의 반군 중에 2,500명을 궤멸시키고 나머지 오백 명이 산간으로 도주했습니다.”

“북한 지역은 어떻습니까?”

“여기 보시는 것처럼 북한 지역은 주황색으로, 아직 반란이 일어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북방군만 제대로 관리한다면 북한 지역은 안심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실상 반란 진압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 같은 물음에 충구는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예, 맞습니다. 내전은 이제 끝났습니다.”

“오오.”

내전 종결을 선언하는 충구를 보며 간부들이 감탄하였다.

고작해야 일주일, 센추리 시간으로는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간부들에게는 길게만 느껴졌던 내전이었다.

그 지겨웠던 내전이 마침내 끝났다고 하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짝짝짝!

누군가가 손뼉을 치는 것을 시작으로 한참 동안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모두 수고했다.”

호영은 손을 들어 박수를 멈추게 하고는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간부들이 뜨거운 눈으로 호영을 바라보았다.

“사장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이 모든 게 사장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결코 오버하는 것이 아니었다. 간부들은 진심으로 호영에게 감탄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한국도, 대한 길드도, 현실의 로열사도 모두 호영이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그들이 두 세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던 것도 모두 호영 덕분이라는 것이다.

비단, 준기나 원목, 원재 등이 아니더라도 호영에게 충성심 비슷한 감정을 품는 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 좋기는 한데······ 왠지 남자들에게만 인기가 있는 것 같아서 좀 그렇군.’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박수 소리를 들으며 호영은 애매한 미소를 짓다가 이내 정색하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야. 기나긴 폭정으로 내정은 엉망이고 여기에 내전까지 터져서 전국이 어수선해.”

“······.”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의 침략이 예고되고 있다는 거야.”

들떴던 분위기는 호영의 한마디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싸늘해졌다.

일본의 침략!

간부들로선 유쾌하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빌어먹을 쪽바리 새끼들. 3회 차에도 그러더니 아주 지랄 염병을 해요.”

“내전도 끝났겠다, 우리가 먼저 공격해 버리죠! 방어보다는 공격이 낫지 않습니까?”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며 분노를 토해 냈다.

이것만 봐도 로열패밀리 간부들이, 아니 한국 유저들이 일본을 어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호영의 휴대폰이 진동하더니 모르는 번호가 액정에 떠올랐다.

“잠시만.”

얼마 전이라면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에 그의 휴대폰 번호가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모르는 전화가 계속 걸려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그는 휴대폰과 전화번호를 바꿨고, 센추리에서 만난 몇몇 이들에게 휴대폰 번호를 알려 주었기에 모르는 번호라고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여보세요.”

“모시모시.”

모시모시?

느닷없이 들려오는 일본어에 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십니까?”

“아, 반갑습니다. 저는 하라다 사노스케라고 합니다.”

“제가 누군지 알고서 하는 전화입니까?”

“물론입니다. 송호영 씨 전화 아닙니까?”

호영은 안색을 구겼다.

어디서 정보가 노출되었기에 일본인까지 자신의 번호를 알고 있는지,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라다 씨였나요? 아무튼 저는 누구신지 모르겠는데요.”

“센추리에서 제가 쓰는 이름은 소오 요시토시입니다.”

소오 요시토시라면······!

“대마도주?”

“예, 그렇습니다. 대마도, 정확히는 쓰시마의 도주입니다.”

그 말에 호영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하필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대마도주의 전화가 걸려 오다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일단 들어는 보자.’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도망치듯 들어 보지도 않고 전화를 끊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침착한 태도로 하라다 사노스케라는 사내와 통화를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호영이 휴대폰을 내려놓자 모두가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화해를 하자는데.”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호영은 짧게 말했다.

“허! 화해요? 지들이 먼저 쳐들어오려고 했으면서 화해?”

“내전이 끝나니 우리가 두려워졌나 봅니다. 하기야, 국력 차이부터가 압도적이니.”

“흥,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쳐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든가. 대마도에 수만 명을 집결시켜 놓고 이제 와서?”

“사장님, 쪽바리 새끼들은 결코 봐주면 안 됩니다! 저 새끼들은 앞으로도 우리의 후환이 될 것입니다!”

몇몇은 황당한 목소리로, 몇몇은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3회 차부터 일본에게 당한 것이 있었던 만큼,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화해하자고 했습니까?”

모두가 흥분한 표정을 할 때 충구만은 침착한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일단 사과를 하더군. 도발해서 미안하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것이라고.”

“사과만 했습니까?”

“센추리에서도 조약을 체결하자던데. 다른 일본 세력이라면 몰라도, 자신들은 더 이상 한국을 침공하지 않겠다면서.”

“배상금은 없었습니까?”

“그런 이야기는 없었고 교역량을 늘리자는 이야기는 있었어. 그리고······.”

그 말을 듣자 충구의 표정이 좋지 않아졌다.

충구라고 반일 감정이 없을 수는 없는 법.

국익을 위해서라면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겠지만 일본의 제안이 딱히 국익에 기여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호영의 말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기에 충구는 조용히 기다렸다.

“귀화를 제안했다.”

“······!”

“센추리에서의 귀화를 말하는 것은 아닐 테고, 현실에서 일본으로 귀화하라는?”

“그래. 한국에서는 차별받고 있지 않느냐며, 일본에 오면 귀하게 대접해 주겠다고 귀화를 제안했어.”

여기저기서 코웃음이 나왔다.

귀화라니. 그것도 일본으로 귀화? 한국에서 나고 자란 간부들의 입장에서는 들어 볼 가치도 없는 제안이었다.

물론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이었으면 들어 보는 시늉 정도는 했겠지만 말이다.

“들어 줄 가치도 없는 제안이군요.”

충구조차 어처구니없게 만든 일본의 귀화 제의!

하지만 일본의 제의는 시작에 불과했다.

“중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미국은 또 왜 귀화를 제의하는 겁니까? 그들은 본 게임에서 우리와 마주할 일이 없지 않습니까?”

이틀 정도가 지나자 강대국이라 부를 수 있는 나라들에서 귀화 제의가 왔다. 일본처럼 엄청난 대우를 약속하면서 귀화를 제안한 것이다.

“초보자의 섬에 있는 영토 때문이겠지.”

“아.”

어느덧 대한 길드가 보유한 영토의 면적은 5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했다.

대한민국의 영토 절반보다 조금 큰 면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면적은 초보자의 섬 전체에서 거의 4퍼센트에 달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지.’

미래를 알고 있는 호영은 가치가 높은 부동산을 선점하였다.

영산이나 던전이 있는 부동산이 대표적이었다.

현실과는 다르게 마법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초보자의 섬에서 영산과 던전은 석유 이상으로 막대한 가치를 지녔다.

단순히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넘어서 군사적인 가치까지 지니고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한국 정부처럼 센추리에 무관심한 나라가 아닌 이상, 대한 길드는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미래의 성장 동력이자 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오늘에 와서야 귀화를 제의했다는 사실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지금에서야 귀화 제의를 한 것은 대한 길드가 한국 정부의 것이라고 착각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군. 하긴, 이름부터가 대한이었으니.’

그때 허영만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귀화 제의를 이용하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일단 언론에 알리는 겁니다. 우리가 세계 여러 나라들에게서 이 같은 제안을 받고 있다고, 그래서 흔들리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 말에 충구가 눈썹을 찡긋거리며 물었다.

“그것은 재벌들이 극단적으로 나올 수 있다며 반대하였던 의견이지 않습니까?”

“지난번과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먼저 귀화를 요구한 게 아니라, 강대국에서 귀화를 제안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우리가 기득권의 공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확실히, 지난번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일단 센추리의 관심도부터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태이고, 대한 길드의 가치를 재해석하는 여론도 상당해졌다.

만약 이 같은 여론만 잘 이용한다면 정부든 재벌이든 적절하게 압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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