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85화 (185/345)

# 185

나동그라진 사람 중에 다시 일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같은 행동을 두 번 정도 반복하니 멀쩡히 서 있는 반군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크으, 역시 압도적이십니다. 전하께서는 도대체 얼마나 강하신 겁니까?”

전투가 끝나자 김성근이 그답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다. 바로 옆에서 호영의 신위를 목격하니 새삼스레 마음이 들뜬 것 같았다.

“곧 있으면 경도 이 정도의 무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전하의 무공을 보면, 정말 하루빨리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진짜 폐관 수련이라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강해지고 싶은 욕구로 가득 찬 김성근을 보며 호영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해 봐라, 너의 재능이라면 A급도 멀지 않았으니.’

그의 타고난 무재는 가히 천재적이었다. 지금 당장이야 준기보다 성장이 느린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것은 무공의 상성 문제일 뿐이었다.

대한국과 대한 길드의 무공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으니 김성근이 자신에게 적합한 무공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A급까지는 순식간에 치고 올라갈 것이다.

‘솔직히 폐관 수련이 필요한 것은 김성근이 아니라 나지. 김성근이야 그래도 꾸준히 발전하여 B급이 되었지만 나는 1회 차부터 지금까지 A+급에 머물고 있으니까.’

물론 A급이라는 경지는 4회 차가 된 지금도 세계 제일 수준이었다.

무공의 종주국이라는 중국에서도 호영의 경지인 A+는 신선이라느니 화경이라느니 거의 ‘신’급으로 추앙될 정도니까.

애초에 A급의 경지에 다다른 이는 NPC밖에 없었고 말이다.

아마 유럽이나 미국을 가도 비슷한 반응을 받을 것이다.

3회 차부터 이미 ‘무신’이라는 칭호를 받은 일본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호영으로선 지금의 무위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무공의 발전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 회 차만 해도 A급의 경지에 다다른 무인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다음 회 차인 5회 차에는 ‘가짜 검강’이라 불리는 최상급 검기를 사용할 줄 아는 A+급 무인이 등장할 것이고 말이다.

이른바 ‘재능충’이라 불리는 무공 천재들이 그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었으니 호영으로선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전하! 반군 수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도주한 것 같습니다!”

호영이 무공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하고 있을 때, 친위대는 관아 내부를 수색하고 있었다.

반군 지도부를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한참을 찾아봐도 반군 지도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잘 찾아본 거 맞아?”

“그렇습니다. 모든 방을 뒤져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한 친위대원의 말에 호영은 싸늘한 미소를 짓고는 정면으로 걸어갔다. 벽 앞에 선 호영은 그대로 창을 내질렀다.

콰앙!

벽이 무너지고 비밀의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 도망쳤나 했더니 이런 곳에 쥐새끼처럼 숨어 있었군.”

비밀의 방에는 귀족처럼 비단 옷을 입은 사내들이 무덤덤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마치 조정의 고관대작들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들이 바로 경상도 지역에서 반란을 주도했던 반군의 수뇌부였다.

“천한 것이! 여기가 어디라고 무례를 저지르는 것이냐?”

심술궂은 얼굴의 사내가 가장 먼저 그렇게 외치니 다른 사내들도 연이어 소리를 질렀다.

“한국에서 발붙이고 살고 싶거든, 썩 물러가라!”

“이 이상 우리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용서치 않으리라!”

재벌들은 센추리에 나름 적응한 모양인지 낯부끄러운 사극 톤의 말을 잘도 지껄였다.

그러자 김성근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도련님들. 그런데 이거 어쩝니까? 여기는 현실이 아닌데.”

“이 미친놈이? 너 누구야!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냐?”

“예예, 재벌가의 도련님들 아니십니까?”

“저, 저! 알면서도 감히 이 같은 짓을 벌여? 네놈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

김성근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 미소는 누가 봐도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였다.

“애들아, 역적들이 센 척하는 모습을 내가 언제까지 봐야겠냐?”

“입을 다물게 만들겠습니다.”

친위대원들이 주먹을 쥐며 재벌들에게 다가갔다.

재벌들은 ‘설마’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현실을 가혹하였다.

퍼억! 퍽!

“으악!”

“그, 그만! 그만 때려!”

“살려 줘!”

친위대원들의 무차별적인 폭력에 재벌 유저들은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몇몇은 살려 달라고 빌기까지 하였다.

허세를 부렸지만 순수한 폭력 앞에서는 그저 연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호영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상석에 앉은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신유한 상무.”

“나를 어떻게 알아봤지?”

“그렇게나 대놓고 활동했는데 못 알아볼 리가. 당신의 아바타 몽타주는 이미 오래전에 확보해 두었어.”

“······.”

그 말에 신유한의 얼굴이 굳어졌다.

단순히 군사력에서 밀리는 것이 아니라 정보력부터가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생각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나를 적대할 것이냐고 물었다.”

“반란 진압에 성공한 거 가지고, 유세라도 떨려는 거냐? 그래, 확실히 이번에 느끼긴 했어, 센추리에서는 네놈들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게 뭐? 어차피 우리의 기반은 현실에 있다. 네놈들이 발버둥을 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거야!”

“그 기반이 언제까지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뭐?”

“다른 그룹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겠지.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니까. 하지만 너희 로테 그룹은 위태위태할 텐데?”

로테 그룹은 현재 서비스, 관광, 식품 등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센추리가 흥행할수록 매출이 낮아지는 구조를 가졌다.

가상현실에서 여행하고 먹거리를 즐기는 게 경제적으로 10배 이상, 시간적으로는 4배 이상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센추리로 진출하여 똑같은 사업을 한다면 이윤이 증가할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부동산이 필요하였다. 어떤 사업이든 땅이 없으면 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웃기는 소리! 우리 그룹의 역사가 얼마나 되는 줄 알고 떠드는 거냐!”

“그런 게 중요한가? 시대의 흐름에서 도태된다면 역사가 어떻건,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어. 매출이 줄어드니, 당연한 이야기지. 이미 주가부터가 폭락하고 있을 텐데?”

“······.”

신유한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몰랐다면 센추리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터.

하지만 그놈의 자존심이 문제였다.

만약 호영이 같은 레벨의 인간이었다면 이쯤에서 승복을 했겠지만 호영은 흔히 말하는 ‘흙수저’ 출신이었다.

이미 개천에서 용 난 수준을 넘어섰건만, 신유한은 여전히 개천 냄새가 난다는 식으로 호영을 멸시하고 있었다.

“로테 그룹을 우습게 보지 마라. 우리는 네놈 따위가 없어도 건재할 것이다.”

“쯧.”

호영은 혀를 찼다.

가능하면 이쯤에서 재벌들과 화해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동안 괴롭힌 것에 대해 분풀이를 하고 싶었지만 그는 감정보다 이성이 앞선 사내였다.

센추리에 집중하기 위해 이제라도 화해하여 공존을 모색하는 게 서로한테 좋았다.

하지만 신유한이 이렇게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뻗대고 있으니 평화협정은 아직 요원한 것 같았다.

‘현실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겠군.’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를 명확히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만약 끝까지 자존심을 앞세운다면 아예 본보기로 만들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고 말이다.

* * *

일본식 다다미방 정중앙에 건장한 체구의 노인이 가부좌를 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10분, 20분, 30분······.

노인은 무려 2시간 동안 앉은 채로 일체의 미동이 없었다. 마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흠흠!”

참다못한 나머지, 노인을 지켜보던 사내가 인기척을 냈다.

그러자 노인의 눈이 번쩍 뜨였는데 순간적으로 마치 광채가 뿜어져 나온 것 같았다.

사내는 그 모습에 잠시 감탄하다가, 이내 조용한 목소리로 노인을 불렀다.

“국장님.”

“······.”

하지만 사내의 부름에도 노인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눈만 떴을 뿐, 여전히 목석처럼 꼿꼿이 앉아 있었다.

사내, 야마자키 스스무는 그런 노인을 보고 익숙하다는 듯 아무런 반응을 내비치지 않은 채 말문을 열었다.

“반도의 내전이 금일부로 완전히 끝났습니다.”

“······.”

“역적 수뇌부는 모조리 붙잡혔고, 잔당은 고작 수백 명만이 살아서 산으로 도망쳤습니다. 무인들이 움직였으니 아마 그 수백 명도 머지않아 토벌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루닌들을 복귀시켜라.”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노인의 입이 벌어졌다.

“예?”

스스무는 노인의 말을 이해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금 말했다.

“쓰시마로 간 루닌들을 복귀시켜라.”

“조선 정벌을 취소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감히 자신의 명령에 의문을 드러내는 스스무를 보고 노인이 살기를 일으켰다.

노인의 살기는 검술 사범으로서 무려 C급의 검술 실력을 가진 스스무로서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커헉!”

“루닌들을 복귀시켜라.”

“예! 알겠습니다!”

스스무는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그렇게 답하였다.

잠시 후, 스스무는 도망치듯 방을 벗어났다. 얼굴이 하얘진 것이 괴물이라도 목격한 것 같았다.

도망치는 스스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노인은 조용히 독백하였다.

“이번에도 조선의 왕이 문제인가.”

노인은 오래전부터 조선의 왕을 지켜봐 왔다.

대한국, 정확히는 현리국을 세웠을 때부터 말이다.

오랫동안 지켜본 이유야 단순했다. 일본에 위협이 될 것 같아서.

정작 한국인들은 몰랐지만 현리국의 발전 속도는 실로 놀라운 수준이었다. 오크니, 수인족이니 온갖 외부 위협이 존재하는 나라임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이 같은 발전 속도는 3회 차가 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한반도 전체를 통일할 것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던 것이다.

대한국의 성장세를 보며 노인은 확신했다. 머지않은 시일에 대한국은 일본의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쇼니 가문과 도요타 왕국의 조선 정벌이 처참한 실패를 겪으면서 대한국의 위협은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4회 차에는 일본이 대한국의 침공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이 대마도주, 즉 소오 요시토시를 이용해 조선의 내전을 키우려 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가만히 두면 대한국이 언젠가 일본을 침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노인의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하였다. 마치 쇼니 가문과 도요타 왕국의 조선 정벌처럼, 대한국의 압도적인 무력에 의해 처참한 실패를 겪은 것이다.

‘역시 그때 죽였어야 했나.’

일본 최대 폭력 조직을 배후로 둔 노인에게 있어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외국인이어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어느 나라에서든 청부업자는 존재하였고, 야쿠자의 입김이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는 한국이라면 재벌이나 국회의원이 아닌 이상 암살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조선의 왕이라는 사람은 재벌도, 정치인도 아니었다.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흔해 빠진 일반인이 돌연사한다고 기사가 뜨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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