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83화 (183/345)

# 183

처음 기업들끼리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던 건 신유한이었다. 영남 혁명군의 총대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고.

그런데 정작 힘을 합쳐야 할 시기가 오니 슬며시 발을 빼고 있었다. 어부지리를 노리려는 것이다.

‘각개격파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건가?’

지난 회 차를 경험했던 유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지금 상황은 결코 유리하다고 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국의 유저들은 줄곧 불리한 전투만 치러 온 역전의 용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대한국의 왕은 한국 제일의 무인이었고 말이다.

충청도에서 있었던 일이, 전라도에서 그리고 경상도에서 일어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이래서 경험이 없는 자들로 지도부를 구성하면 안 되는 거다.’

혁명군의 지도부는 대부분이 본 게임을 처음 경험하는 재벌 3세들이었다. 숫자의 우세만 믿고 날뛰는 ‘무경험자’들이라는 말이었다.

그래서인지 심각한 소식을 들었음에도 태연자약하였다. 여전히 혁명 세력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윤도현 부사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혁명군은, 아니 우리 영남 혁명군은 이번 전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며 윤도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센추리 진출의 실패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 * *

신유한은 눈썹을 찡긋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혁명군의 지휘관들이 꽤나 불안해하는 것 같아.”

그러자 왜소한 체구의 중년 사내가 말했다.

“총대장께서 계신대도 불안해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뭐, 그들 눈에 나는 고작해야 재벌 3세에 불과할 테니까.”

“허어, 감히 로테 그룹의 후계자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있나 보군요.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중년 사내의 이름은 소오 요시토시.

신유한이 일본의 모라 증권사에서 일하던 시절, 우연히 친해진 일본인이었다.

“솔직히 나도 불안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야.”

“예에?”

“현실에서야 별거 아닌 놈들이라 해도, 센추리에서는 지금까지 승승장구했던 놈들이잖아? 어떤 식으로 나올지 예상할 수가 없어. 어쩌면 전라도의 혁명군까지 순식간에 박살 낼 수도 있다는 거야.”

유저들 앞에서는 시종일관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신유한이지만 그라고 해서 승리를 100퍼센트 확신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왕의 반격이 있기 전까지야 100퍼센트로 확신하였지만, 갑작스러운 반격에 충청도의 혁명군이 순식간에 붕괴되자 경각심을 느꼈다.

어쩌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만약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일본의 용병들을 불러 모으겠습니다.”

하지만 신유한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가 믿는 구석이란 바로 눈앞에 있는 일본인, 소오 요시토시였다.

“쓰시마의 주인이 나의 친구라니, 정말 든든하네.”

요시토시의 신분은 대마도주.

한반도에 가장 인접해 있는 일본 세력의 주인이었다.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병력만 5천이 넘는다고 했던가? 여기에 일본의 용병들까지 불러 모은다면 2만? 아니면 3만? 하하하! 로열 놈들, 네놈들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다.’

신유한, 그가 전라도의 혁명 세력과 힘을 합치지 않고 경상도에 남아 있는 이유는 바로 요시토시 때문이었다.

대마도주로 있는 요시토시라면 경상도로 언제든지 지원하러 올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물론 가능하면 혁명전쟁에서 외세의 도움을 받는 것은 피해야 하겠지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릴 때였다.

“총대장님!”

“무슨 일이냐?”

웬만하면 요시토시와의 독대를 방해하지 말라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두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급히 신유한을 부른다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 벌어졌음을 의미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부하 직원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전해졌다.

“호남 혁명군이 왕의 군대에게 패배하였습니다!”

순간 신유한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호남 혁명군이 패배하였다니? 그 말은 전라도의 혁명 세력이 붕괴되었다는 말이 아닌가.

“이틀도 버티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 호남 혁명군의 병력이 2만이다. 이만!”

“하나 그들이 패배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미 현실에서는 호남 혁명군의 패배로 여론이 떠들썩합니다!”

신유한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변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틀 만에 이 같은 일이 벌어질 줄이야.

“총대장님,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요시토시.”

“말씀만 하십시오. 소오 가문의 역량과 수단을 총동원하여 총대장님을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부탁하마.”

“하이!”

그 누구보다 믿음직한 요시토시를 보며 신유한은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변수가 생겼지만 요시토시가 있는 한, 해결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차라리 잘되었어. 어찌 되었건 경쟁자가 줄어든 셈이니 말이야.’

남의 불행은 곧 자신의 행복.

신유한은 여유를 되찾은 얼굴로 왕국군과의 일전을 기다렸다.

* * *

어느덧 호영은 전라도를 넘어 경상도로 진입하였다. 전라도의 반군을 모두 토벌하고 경상도로 넘어온 것이다.

물론, 남방군 1만 2천은 아직까지도 잔당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원래 반란이라는 것은 정면전보다 유격전이 더 골치가 아픈 법.

그래서 호영은 남방군과 친위대 보병을 그대로 남겨 두고 오직 ‘친위 기사단’만 이끌고서 경상도로 진입하였다.

‘북양 그룹의 사병들인가? 급하게 함양으로 이동하려는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너무 늦었어.’

경상도에 진입하기 무섭게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대략 3천 정도 되어 보이는 반군이었다.

호영은 반군의 모습을 보며 조소를 지었다.

반군 입장에서는 호영의 반격이 시작되었을 때 진즉에 병력을 한곳으로 집결시켰어야 했는데, 방심이라도 한 것인지 뒤늦게 병력을 이동시키고 있었다.

이건 각개격파를 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친위대장.”

“예, 전하!”

“시간 끌 필요 없다. 단숨에 몰살시켜라.”

“충!”

호영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말을 탄 삼백 명의 친위 기사들이 정면을 향해 달렸다.

다그닥, 다그닥!

“이번에는 내가 MVP다!”

“웃기네! 열 명도 못 잡았던 주제에. 이번 전투의 주인공은 나야, 나!”

“적장의 목은 내 거다!”

상대는 아군보다 10배가 많았지만 친위 기사단의 단원 중 두려움을 내비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투지를 불태웠다.

“미친! 기병이라니!”

“실화냐?”

반면 적군은 한눈에 봐도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처음 겪어 보는 기병 돌격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충청도나 전라도에서도 느꼈었지만, 한국 유저들은 기병에 너무 무력하군.’

호영이 그 생각을 할 때, 그의 군마는 어느덧 반군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콰아아앙!

군마가 반군의 몸에 충돌하자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의 육체가 파괴되는 소리였다.

“으아아악!”

기병 돌격의 압도적인 파괴력을 목도하자 반군 중 한 명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렇게 한번 시작된 비명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크악!”

“살려 줘!”

반군은 도저히 기병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였다.

고작 10분.

전투가 벌어지고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적군은 처절한 비명과 신음밖에 내지르지 못하는 패잔병이 되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허무한 전투였다.

하지만 호영과 친위 기사단은 이 상황이 익숙하기라도 한 것처럼, 농부가 곡식을 베듯 적군의 목을 베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지겨울 정도로 겪었던 일이었기에 새삼 특별할 것도 없었다.

“이놈들은 발전이라는 것이 없군요.”

추격전까지 말끔히 끝내고 나자 김성근이 혀를 차며 말했다.

“왜, 심심한가?”

“솔직히 그렇습니다. 제가 바라던 전쟁은 이런 게 아닌데 말입니다.”

완승을 거두고도 아쉬워하는 김성근을 보며 호영은 피식 웃었다.

정말, 그다운 반응이었다. 김성근 같은 전쟁광이 이 정도의 전투에 만족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간에 기별도 안 갔을 수도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적들도 생각이 있으면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않겠냐?”

“충청도나 전라도에서는 끝까지 형편없던데.”

“그자들이야 로열패밀리가 내분을 조장했으니 우리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

“호오, 그렇습니까?”

김성근이 사뭇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기대하는 극적인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호영의 군대를 가로막던 경상도 반군은 일방적으로 도륙당할 뿐이었다.

‘나도 김성근처럼 전쟁광이 된 것인가? 시시하군.’

파죽지세!

그의 군대는 엄청난 속도로 반란군 지도부가 설치되어 있는 함양시로 향하였다.

* * *

“드디어 마지막인가.”

“하하하하! 드디어가 아니라 벌써 아닙니까? 진압에 나선지 열흘도 안 지났는데.”

“4회 차가 시작된 지 센추리 시간으로 20일이 넘게 지났으니 드디어가 맞지.”

호영은 김성근에게 그리 말하고는 전방을 바라보았다.

정면에는 4미터 높이의 성채가 있었다. 경상도에 몇 없는 성채였다.

“그나저나 산으로 도망치지 않고 수성을 택하였군.”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저들이 믿을 구석이라는 것이 있었나?”

“마법사들이 있지 않습니까? 무인들도 조금 있어 보이고 말입니다. 친위 기사단의 숫자가 적으니 어떻게든 막아 보려는 것이겠지요.”

김성근의 말에 호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마법사라······.”

3회 차부터 마법을 발전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던 그였다.

물론 2회 차 때도 마법에 어느 정도 신경을 썼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3회 차 때부터였다.

그가 한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마법사들의 지위를 인정해 준 것이다.

대한국은 원체 무공의 발전이 빨라, 상대적으로 마법이 천시되고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마법사는 무인들과 비교당하며 비인기 직종이 되어 버렸다.

아주 극소수의 인원들만 마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호영은 마법사들의 지위를 인정해 줌과 동시에 그들이 체계적으로 마법을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었다.

한마디로 마법 연구소를 만들어 일자리 걱정 없이 마법에만 전념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두 번째로 그가 한 것은 모험가들을 동원하여 마족들의 던전을 탐험한 것이다.

마법이란 애초에 마족들에게서 비롯된 것.

그리고 마족들은 여전히 지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던전을 탐험하다 보면 마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본래라면 4회 차가 끝날 무렵부터 본격적인 던전 개척이 시작되겠지만 호영은 무려 100년 일찍 던전 개척을 진행하였다.

그렇게 던전 개척이 빨라진 만큼 자연히 마법 발전 속도도 빨라졌다.

세 번째로 그가 한 일은 가축을 키우듯, 마물을 사육한 것이다.

대한국의 국력이 강해짐에 따라 한반도의 마물들은 급속도로 소멸되어 갔다.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마물을 가만히 방치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물이란 현실의 석유처럼 막대한 가치를 지닌 자원의 보고였다. 지금 당장이야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나중이 되면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아니, 지금 당장도 마법사들의 실험에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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